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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1712화 (1,711/1,826)

§ 나는 될놈이다 1712화

-이… 이럴 수가!

-총독 각하께서 인질로 붙잡힌 이상 우리는 그 말을 들을 수밖에 없잖아!

친위대 전사들은 정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무기를 휘둘렀다.

아, 우리는 총독 각하를 위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는데 어쩔 수가 없네!

“김태현 선수?! 인질로 붙잡았으면 그냥 끝장내야지 왜 싸움을 길게 만드십니까??”

“총독 잡았다고 항복하라면 항복하겠냐! 멍청한 소리를 하고 있어!”

“맞아, 이 멍청한 놈들아!”

태현과 케인은 같이 약탈자 플레이어들을 구박했다.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머쓱해졌다.

‘항복하라면 항복할 것 같은데….’

‘근데 그거랑 별개로 지휘까지 내릴 필요는 없지 않나?’

-읍읍읍읍!

총독은 매우 원통하고 겁에 질린 눈으로 태현을 노려보았다.

마검에 깃든 기계공학자들이 속삭이고 있었던 것이다.

-베어서 죽여!

-아니야, 찔러서 죽여!

-일단 목에 폭탄을 감아둬!

솔직히 하는 짓만 보면 태현이 악역인지 굶주린 혼돈이 악역인지 구분하기 힘들긴 했다.

둘 다 마검 들고 있고, 둘 다 기습과 납치를 즐기고….

“멍청한 놈들아! 좌우가 비었다! 좌우를 채워! 포위해! 곰 수인족 전사들은 그렇게 전술적으로 움직이지 않아! 둘러싸서 포위하면 유리하게 싸울 수 있잖아! 궁수들은 위로 올라가! 고지를 점해라!”

[최고급 전술 스킬을…]

[……]

[전술 스킬이 오릅니다!]

[친위대 전사들의 친밀도가 조금 오릅니다!]

태현은 총독의 목숨을 걸고 친위대 전사들에게 지휘를 내렸다.

곰 수인족이 평범한 NPC들이었다면 ‘이게 무슨 개짓거리야!’ 하며 분노했겠지만, 다행히 곰 수인족들은 생각보다 둔했다.

-하하하하! 그런 짓을 해봤자 우리를 이길 수 있을 것 같 크윽!

-이런 잔수작을 부려봤자 진정한 야생의 힘은 밀어낼 수 없 크악!

곰 수인족 전사들은 전략전술 같은 건 신경 쓰지 않고 폭발적으로 밀어붙이는 타입이었다.

막강한 방어력, 어마어마한 HP, 거기에 살벌한 공격력까지.

탱커+딜러가 동시에 가능한 사기적인 전투력.

그러나 세상에 완벽한 존재는 없었다. 곰 수인족 전사들에게도 약점이 있었다.

페이스 조절은 생각도 안 하고 닥치는 대로 스킬을 쓰고 덤벼드는 만큼, 전투 중반 이후부터는 급격하게 힘이 빠지는 것이다.

그걸 아는 태현이 친위대 전사들을 이리저리 돌리며 약점을 찌르자 곰 수인족 전사들은 슬슬 공격이 둔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최고급 전술 스킬로 이어지는 추가 버프는 친위대 전사들에게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다.

[왕국의 잘 훈련된 규율이 전술 스킬에 추가 보너스를 부여합니다!]

[친위대 전사들이…]

[……]

[……]

‘아니. 순간 즐거워서 정신줄 놓을 뻔했네.’

태현은 멈칫했다.

총독 친위대 병사들이 생각보다 너무 잘 맞아서 신이 났던 것이다.

‘정신 차리고 생각해 보자.’

지금 곰 수인족 전사들에게 가장 큰 공포를 주는 방법은?

[굶주린 혼돈의 군단장, 대전사 니테렐로가 나타납니다.]

“…엇.”

태현은 멈칫했다.

[카르바노그가 튀자고 말합니다!]

대전사 니테렐로.

고대 제국 시절부터 약탈을 해오다가 붙잡혀서 처형당한, 어떻게 보면 약탈자 플레이어들의 대선배 같은 존재였다.

물론 같은 약탈자들끼리 선후배라고 봐주는 건 없었다.

게다가 니테렐로는….

‘저번에 나한테 속아서 그걸 마음에 담고 있겠지?’

[카르바노그가 그건 속은 정도가 아니라…]

굶주린 혼돈의 명령을 받고 달려온 군단장과 아키서스의 이름을 걸고 한 맹세를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도망쳤으니, 어지간한 성인군자라도 원수 만들 속임수였다.

‘거 아키서스 이름 내가 좀 더럽히겠다는데 깐깐하군.’

순간 하늘이 어두워졌다.

“?”

뭐지?

[대전사 니테렐로가 산을 집어 던집니다!]

“…모두 피해!!!”

모두 기겁하며 달려 나갔다.

무언가가 햇빛을 가린다 싶었는데, 설마 작은 산이 그대로 날아올 줄이야.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공격이었다.

곰 수인족 전사들도 이건 대적할 엄두가 나지 않았는지 이리 튀고 저리 튀었다.

-대전사 니테렐로 님! 진정해 주십시오! 여기 총독 각하께서 계십니다!!!

-알 게 뭐냐!!

‘하긴 맞는 말이지.’

태현은 무심코 납득했다.

태현 같았어도 ‘여기 당신과 아무 상관없는 귀족이 붙잡혔습니다!’란 말을 들으면 ‘어쩌라고’ 같은 반응이 나왔을 것이다.

-읍읍읍읍! 읍읍읍읍!

태현에게 붙잡힌 총독이 몸부림을 쳤다.

니테렐로의 냉정한 반응 때문에 자신의 목숨이 매우 걱정되는 게 분명했다.

“괜찮다. 총독. 넌 내가 지켜줄 테니까.”

-읍읍읍…!

[안다탑 총독이 감동합니다!]

[화술 스킬이 오릅니다!]

[친밀도가…]

[평판이…]

[카르바노그가 미친놈 보듯이 쳐다봅니다!]

“전사 여러분들! 후퇴해야 합니다!”

태현의 외침에 케인은 당황했다.

‘어? 곰 수인족 전사들을 겁에 질리게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무슨 후퇴 같은 소리를! 우리는 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제가 먼저 가서 길을 열어놓겠습니다! 생각이 바뀌시면 이쪽으로 오십시오!”

-하하하하하! 겁쟁이나 할 생각이구나! 마음대로 해라!

당연히 태현은 곰 수인족 전사들을 후퇴시키려고 꺼낸 말이 아니었다.

태현 일행이 먼저 빠져나가려고 꺼낸 말이었다.

‘됐군.’

“가자!”

태현은 바로 반대편을 향해 달렸다.

지금 니테렐로가 산을 다 던지면 이쪽으로 들어올 텐데, 서로 만나서 좋을 게 없었다.

“곰 수인족 전사 버려도 돼요?!”

약탈자 플레이어들이 깜짝 놀라서 물었지만 태현은 냉정하게 대답했다.

“지들이 알아서 잘 하겠지.”

“…!”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또 한 번 감탄했다.

이게….

이게 판온 최고 선수의 품격이구나!

[대전사 니테렐로가 궁전의 벽을 날려버립니다.]

[대전사 니테렐로가 궁전의 지붕을 날려버립니다.]

[……]

[……]

태현이 도망치고 있는 사이 뒤에서 니테렐로가 닥치는 대로 부수면서 자리에 나타났다.

‘나보다 저놈이 더 많이 부순 거 같은데?’

곰 수인족 전사들은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굶주린 혼돈의 졸개야! 어디 한번….

쾅!

니테렐로는 가까이 있는 곰 수인족 전사를 그냥 날려 버렸다.

거대한 덩치를 가진 곰 수인족 전사가 그냥 하늘로 날아갔다.

-…….

-…….

-아키서스 놈 어디 있나?

-무슨 소리냐! 우리는….

쾅!!

* * *

“앗. 곰 수인족 전사들이 이쪽으로 오는데요??”

태현의 생각보다 빨리 곰 수인족 전사들은 허겁지겁 궁전을 빠져나왔다.

꼴을 보니 정신없이 두들겨 맞은 모양이었다.

문제는 그 뒤에 니테렐로와 총독 친위대까지 쫓아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검술 스킬 배워야 하는 태현 입장에서 저런 혹까지 데리고 올 수는 없는 법.

태현은 총독의 입에 물린 재갈을 풀고 물었다.

“총독 전하.”

-각하다. 무례하고 멍청한 놈아.

“아닙니다. 총독 전하. 왕국이 사라진 지금, 총독 전하께서는 사실상 이 주변의 왕이자 주인, 지존 아니십니까? 그래서 전하라고 한 겁니다.”

“…….”

“…….”

팀 KL 선수들은 경악했다.

아까 희한하게 ‘총독 전하’라고 부르더니, 그때부터 설마…?

[화술 스킬이 성공합니다!]

[안다탑 총독이 감동합니다!]

[화술 스킬이 오릅니다!]

[친밀도가…]

[평판이…]

-흐… 흥! 그딴 아부하지 마라.

안다탑 총독은 투실투실하게 살찐 볼에 홍조를 띄우며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싫은 기색은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총독 전하. 저 야만부족 놈들의 협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따라오게 되었습니다만… 제 명예를 걸고 총독 전하의 목숨은 지켜드리겠습니다!”

-흐, 흥! 어디 한번 지켜보거라.

“대신 저기 쫓아오는 놈들 좀 막아주시죠.”

태현은 미친놈처럼 달려오는 니테렐로와 총독 친위대를 가리켰다.

“저놈들이 계속 쫓아오면 저 야만인들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맞는 말이다. 이봐, 군단장!! 그만 쫓아와라! 내 목숨이 위험하단 말이다!

안다탑 총독은 니테렐로에게 외쳤다.

물론 니테렐로는 씹었다.

-저놈이?!

“아주 위아래도 모르는 못된 놈입니다. 굶주린 혼돈이 뭐 그렇죠!”

-그렇다니까! 굶주린 혼돈 놈이 아주… 어쩔 수 없이 섬기긴 하는데 정말 무례한 놈이지!

“다른 방법 없습니까?”

-음. 딱히 없는데.

‘이런 무능한 새끼.’

태현은 총독을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지 목숨 걸린 일인데!

그러나 총독이 새로운 방법을 쓰지 않아도 상황은 알아서 돌아갔다.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니테렐로 님! 총독 각하의 목숨이 위험한데!!

-닥쳐라. 쓰레기들아. 내게 반항할 생각이냐?

-제 주인님은 총독 각하지 당신이 아니오!

-죽어라!

쾅!

[대전사 니테렐로가 총독 친위대를 공격합니다!]

[총독 친위대가 대전사 니테렐로를 공격합니다!]

-니테렐로 놈이 선을 넘었다!! 안다탑 병사들을 소집해라!

-백인대장들 앞으로!!

-이런 건방진 쓰레기들아!!

“…….”

“…….”

순식간에 난장판이 된 도시를 보며,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할 말을 잃었다.

몇 명은 들고 있던 무기를 떨어뜨릴 정도였다.

이건 이제 더 이상 뭐라고 감탄할 수가 없었다.

‘이건… 인간을 초월한 경지다…!’

* * *

-우리는 졌다! 우리는 졌단 말이다!

-우오어어어어어!

돌아온 곰 수인족 전사들은 살벌하게 울부짖으며 바닥을 두드렸다.

태현은 흐뭇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이제 굶주린 혼돈에게 맞서 싸워야 한다고 설득한 다음 검술 스킬 얻어내면 되겠군.’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패배를 그냥 넘기지 않는다! 전사들이여! 다 모여라! 승리할 때까지!

“…….”

태현은 할 말을 잃었다.

이런 쓸데없이 근성 있는 새끼들 같으니!

[<붉은 태양> 곰 수인족 부족의 장로, 우르가누가 한숨을 쉽니다.]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제가 알 바 아니고, 전 시키신 일 했으니까 보상 받아야겠습니다.”

[…약탈자답게 아주 성질이 더럽다고 우르가누가 말합니다.]

“원래 약탈자가 그렇죠 뭐.”

[보상을 받았습니다!]

[아이템, <오래된 곰 수인족 부족의 검술서>를 얻습니다.]

[사용합니다!]

파아앗!

태현은 아이템을 얻자마자 바로 사용했다.

지금은 일분일초가 아까웠던 것이다.

<야만의 검술-곰 수인족 검술 퀘스트>

대륙 외곽의 야만족들은 그 난폭함과 천박함으로 무시 받곤 하지만, 그들의 검술이 고대 제국 시절보다 더 거슬러 올라간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지금은 여러 부족들의 검술로 나뉘어져 있지만 그 검술의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 하나의 검술로 합쳐진다!

야만의 검술들을 찾아서 합쳐내라. 그 하나의 검술을 완성시킬 때까지!

보상: ?, ???

<아키서스 전쟁의 검-아키서스 검술 퀘스트>

당신은 야만족들의 검술이 단 하나의 원형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아키서스 또한 그 검술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 하나의 원형을 찾는다면, 아키서스 전쟁의 검 스킬은 완성되리라!

보상: ?, ???

‘제대로 찾았구나!’

태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에스파 왕국을 뺑뺑이 돌며 답없는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를 해야 하나 싶었는데, 다행히 제대로 방향을 잡은 것이다.

‘이제 곰 수인족 놈들은 필요 없겠군.’

[<붉은 태양> 곰 수인족 부족의 장로, 우르가누가 당신에게 부탁을…]

태현은 무시했다.

-잠깐, 인간 약탈자! 네 조언이 필요하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조언할 능력이 안 됩니다만.”

태현은 곰 수인족 전사들의 부름에 겸손하게 대답했다.

빨리 빠져나가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네 전투력은 우리보다 약하지만, 저번에 보니 약탈할 곳을 아주 잘 짚어주더군. 우리를 위해 약탈할 곳을 짚어줘라! 짚어만 준다면 아주 후하게 보상해 주겠다!

태현은 조용히 다시 자리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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