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710화
원래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저런 식으로 존경심을 보내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보통 누가 나가면 뒤에서 흠집을 잡는 사람들이었다.
-아, 케인 놈 솔직히 김태현 빨 아님? 나도 김태현하고 같은 팀이었으면 리그제일탱커했음.
…같은 느낌으로.
그러나 지금,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평소에 보낸 적 없는 존경심을 보여주고 있었다.
원래 사람이 궁지에 몰리고 상황이 안 좋아지면 없던 존경심도 생겨나는 것이다.
하물며 몇몇 사람들은 ‘김태현 놈 진짜 돕는 거 맞아?’ 하고 의심하고 있었던 상황.
그런 상황에서 태현이 정말 곰 수인족들을 데리고 나왔으니 기쁨은 몇 배였다.
“김태현! 김태현! 김태현!”
“우린 정말로 널 믿고 있었어!”
그 모습에 이다비가 속삭였다.
“보통 저렇게 ‘정말로’ 붙이면 거짓말이던데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좀 찔리는 게 많은 놈들이 저런 강조를 많이 했다.
케인이 ‘나는 정말로 열심히 퀘스트했어!’ 같은 말을 하듯이….
<곰 수인족 전사들의 보복-곰 수인족 부족 퀘스트>
오만하고 도도한 고대 수인족 부족, <붉은 태양> 곰 수인족 부족들은 계속 귀찮게 구는 굶주린 혼돈의 세력에게 그들의 강함을 보여주려고 한다.
전사들을 따라가 보복에 참가하라!
보상: ?, ???, ???
‘흠. 겁이 없어도 너무 없군.’
태현은 퀘스트를 냉정하게 평가했다.
이런 퀘스트는 보통 함정 퀘스트였다.
퀘스트 내용만 읽어보고 ‘와 곰 수인족 전사들 든든한데?’ 하며 참가했다가는 두들겨 맞을 수 있는 것이다.
원래 퀘스트 설명은 가능성이나 난이도와는 상관없는 법.
곰 수인족 전사들은 자기들 힘만 믿고 거만하게 굴고 있었지만, 그건 굶주린 혼돈과 직접 상대한 경험이 적어서였다.
장로의 목소리가 말해줬듯이, 직접 상대한 사람만이 굶주린 혼돈이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었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강력한 굶주린 혼돈의 하수인들이 순식간에 몰려올 텐데….
[카르바노그가 하지만 오히려 좋은 상황이라고 말합니다.]
‘맞는 말이다. 카르바노그.’
태현은 동감했다.
원래라면 이런 위험한 퀘스트는 하지 않는 게 좋았지만, 지금 태현의 목적은 조금 달랐다.
곰 수인족 전사들에게 굶주린 혼돈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게 해줘야 하는 상황!
그러려면 조금 호된 맛을 보여줘야 했다.
-어디가 좋을까? 건방진 굶주린 혼돈 놈들에게 호된 맛을 보여주기 위해서….
-놈들의 병영을 불태워버리자!
-아니야! 그보다는 놈들이 먹고 마실 걸 모아놓은 창고를 불태워야지! 굶주리고 갈증에 시달리면 우리의 강함을 떠올리게 될 거다!
‘저런. 너무 순수하군.’
태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기껏해야 식량 창고나 병영을 공격하겠다고 하다니….
“아닙니다!”
-??
“굶주린 혼돈을 섬기는 자들은 멍청하고 우둔합니다. 그 정도 충격으로는 알지 못할 겁니다. 총독의 궁전을 공격해야 합니다!”
-총독의 궁전을? 거길 공격해 봤자 배가 고파지지도 않고 목이 말라지지도 않을 텐데 굳이?
-병사들도 줄지 않을 텐데?
순박한 곰 수인족 전사들은 눈을 끔벅이며 이해하지 못했다.
태현은 이 곰 수인족 전사들에게 속성 강의를 해줄 필요성을 느꼈다.
아키서스식 ‘어떻게 해야 상대방이 극도로 열이 받는가?’ 강의!
“일단 총독이란 무엇인가? 이 주변 도시와 성, 마을들과 요새를 관리하는 총책임자입니다. 이자는 창고를 관리하고 병영을 관리하며 명령을 내립니다. 총독이 사라지면 그 밑의 부하들은 어마어마한 충격을 받을 겁니다.”
-왜 그런 충격을 받지? 난 우리 장로가 사라져도 아무 생각 없을 텐데.
“여기 왕국 놈들은 연약해서 그렇습니다.”
-과연…!
곰 수인족 전사들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동의했다.
연약한 왕국 놈들이라면 자기네 지도자가 한 명 사라지는 것만으로 커다란 충격을 받을 수도 있었다.
하긴 그런 거라면….
[설득에 성공합니다!]
[화술 스킬이 오릅니다!]
* * *
“?????”
[<안다탑 총독의 궁전> 외부 성벽이 박살 납니다!]
[<안다탑 총독의 궁전> 초소가 완전히 무너져내립니다!]
[안다탑 지역 전체에 악명이 오릅니다!]
[안다탑 지역…]
[……]
[……]
“????”
태현은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아니… 왜… 뭐야?’
곰 수인족 전사들과 함께 도시 밖에 도착한 태현.
굶주린 혼돈 들으라고 아주 시끄럽게 공격을 시작했다.
폭탄도 던지고 스킬도 낭비하듯이 쓰고….
-김, 김태현 선수. 굶주린 혼돈을 너무 도발하는 건 위험하지 않습니까? 조용히 공격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은데….
-뭘 모르는군. 원래 무는 개는 짖지 않는 법. 이렇게 요란하게 공격해야 굶주린 혼돈 쪽에서 방심하고 무시하는 거다.
-…그… 그래요?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지만 일단 태현이 그렇다니까 받아들였다.
굶주린 혼돈 상대하는 데에 있어서는 확실히 전문가였으니까.
그리고 놀랍게도 태현의 말은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도시 밖에서 총독 궁전 외부 성벽까지 도착하는데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은 것이다.
몇 명 있던 도시 경비병은 보자마자 도망가고, 굶주린 혼돈 지원은 오지도 않고….
이렇게 되자 오히려 태현이 더 당황스러웠다.
‘아니 이러면 안 되는데?? 굶주린 혼돈 이 자식 자나?’
굶주린 혼돈의 지원이 사방에서 몰려오고, 곰 수인족 전사들이 ‘으악 너무 강하다!’ 하면서 도망을 쳐야 장로 퀘스트가 깨지는 것인데….
지금 너무 파죽지세로 몰고 나가서 굶주린 혼돈이 뭘 하기도 전에 진짜 총독 궁전 박살 내고 유유히 떠나버릴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김태현 선수, 정말 감탄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조용히가 아니라 시끄럽게 공격해야 한다니…!”
“정말 굶주린 혼돈은 이 정도는 되어야 상대하는 거군요!”
“…….”
옆에서 호들갑을 떠는 약탈자 플레이어들이 태현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이다비는 자신이 대신 한 대 때릴까 고민했다.
[곰 수인족 전사들이 <고대 야수의 울음>을 시전합니다!]
[도시가 공포에 빠져듭니다!]
-다들 어디 간 거냐! 겁쟁이 놈들!
-겁쟁이 주제에 성가신 짓은 아주 많이 하는구나! 이제 주제를 알았으면 다시는 건방 떨지 마라!
신이 난 곰 수인족 전사들은 성벽을 부수고 길을 박살 내며 외쳤다.
태현은 최대한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며 시간을 끌려고 노력했다.
‘굶주린 혼돈 놈들… 뭐하냐! 빨리 오란 말이다!’
“여기, 성벽을 다 부수셔야 합니다!”
-뭐? 왜? 지나갈 만큼은 충분히 부쉈는데??
“아닙니다! 총독의 궁전을 공격한다는 건 벽돌 하나까지 확실하게 부순다는 뜻. 이대로 성벽이 남아 있으면 적들이 우습게 볼 겁니다!”
“????”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다시 당황했다.
그… 그런 게 있나?
“성벽 확실히 부수면 뭐 추가로 효과 나오는 게 있어?”
“김태현 직업 특성인가?”
“성벽을 부숴봤어야 알지….”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뭔가 이상했지만 나서진 않았다.
그만큼 태현의 권위가 대단했으니까.
아마 무슨 생각이 있으리라!
[<안다탑 총독의 궁전> 외부 성벽 잔해가 완전히 부서집니다!]
[성벽 안에 숨겨진 굶주린 혼돈의 문양이 발견됩니다!]
[굶주린 혼돈의 문양이 파괴됩니다!]
[굶주린 혼돈의 힘이 약해집니다!]
-과연! 굶주린 혼돈의 문양이 성벽 안에 숨어 있었다!
-인간 약탈자, 제법이군!
곰 수인족 전사들은 감탄했다.
태현의 말대로 정말 성벽 안을 하나하나 부수니, 숨겨진 힘이 있었던 것이다.
[붉은 태양 곰 수인족 내에서 평판이 크게 오릅니다!]
[친밀도가 크게…]
“진짜 대단하다…!”
“김태현은 뭔가 다르긴 하구나!”
약탈자 플레이어들의 감탄은 덤!
하지만 태현은 환장할 노릇이었다.
‘아니 이 자식들 왜 안 와!?’
* * *
태현과 곰 수인족 전사들이 습격하기 몇 시간 전.
안다탑 총독의 궁전에 도착한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총독을 만나서 읍소했다.
“아이고, 총독 각하! 저희를 좀 도와주십시오!”
“굶주린 혼돈 님을 진심으로 섬기기 위해서 총독 각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명성이 낮습니다!]
[신분이 낮습니다!]
[굶주린 혼돈 내 공적치 포인트가 낮…]
[……]
[……]
-이제 별의별 놈들이 날 접견하려고 하는군. 모험가 놈들아. 내가 그렇게 한가한 사람으로 보이느냐?
안다탑 총독은 매우 불쾌하다는 듯이 콧수염을 만지작거렸다.
굶주린 혼돈이 지배해서 그 밑으로 들어갔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플레이어들을 ‘와, 우린 같은 굶주린 혼돈을 믿는 친구군요?’라고 환영해 주지는 않는 것이다.
같은 굶주린 혼돈의 노예라 하더라도 급의 차이는 있는 법!
“…….”
“…….”
싸늘한 반응에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당황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좀 심하지 않은가.
“아니, 총독 각하. 여기 그러니까 엄청나게 위험한 아키서스 교단의 교황….”
-교단의 교황이고 뭐고, 내 알 바 아니다. 너희들이 잡고 싶으면 너희들이 알아서 잡을 것이지 왜 내 재산, 내 부하들을 희생해서 잡으라는 것이냐? 감히 건방진 모험가 놈들이!
“말이 심하시네 너무!”
“거 같은 굶주린 혼돈 믿는 사이에 너무한 거 아니요?! 굶주린 혼돈한테 일러버린다!”
최근에 계속된 성공으로 인해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간덩이가 좀 부어 있었다.
에랑스 왕국만 해도 NPC들이 굽신거리며 ‘아이고 굶주린 혼돈을 섬기는 분들이군요’ 같은 반응을 보여주는 것에 중독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원래 그런 상태로 돌아다니다 보면 언젠가 크게 당하는 법.
바로 오늘이 그때였다.
[안다탑 총독이 매우 분노합니다!]
[친밀도가 매우 크게 떨어집니다!]
[안다탑 지역 내 평판이 크게 떨어집니다!]
[……]
[……]
[……]
-저 모험가들을 당장 잡아 가둬라!! 내 친히 처벌을 내리겠다. 이런 건방진 놈들!
“진… 진짜 잡아 가두겠다고?! 굶주린 혼돈을 섬기는 우리들을?”
-뭐하느냐!
-예!!
[포로 상태로 변합…]
“이거 놓지 못해!?”
촥!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기겁해서 무기를 휘둘렀다.
아무리 같은 굶주린 혼돈 소속이라 하더라도 그냥 잡혀서 죽어 줄 생각은 조금도 없었던 것이다.
-감히 저항까지!?!?
[안다탑 총독이 더욱더 분노합니다!]
[친밀도가 더 이상 떨어질 수 없습니다!]
[현상금이 걸립니다!]
[에스파 왕국 지역에서…]
[……]
[……]
“미… 미친 총독 자식이 진짜! 김태현은 안 잡고!”
-잡아라! 저놈들을 붙잡으면 내 친히 태워 죽이겠노라!
“도망쳐! 총독이 미쳤다!!”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탈출을 시도했다.
어이가 없었지만 가만히 있다가는 사방에서 몰려드는 총독 경비병들한테 잡혀 죽을 테니까!
[굶주린 혼돈의 힘을 사용합니다!]
[스탯이 크게 오릅니다!]
[이동 속도가…]
굶주린 혼돈한테 받은 힘이 이렇게 도망칠 때에 도움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김태현 상대할 때 쓰려고 아껴둔 건데…!
“튀어! 튀어!!”
“뭐야?! 무슨 일인데!”
“나중에 설명해 줄 테니까 튀어!”
“병사들이 너무 많이 나오는데?!”
“못 쫓아오게 불을 질러!”
[궁전에 불을…]
[총독이 더욱 더 분노…]
[도시 전체에 소집령이…]
[정찰병들이…]
[……]
[……]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당황한 나머지 연속으로 실수를 저질렀다.
태현이 봤다면 ‘저런 멍청한 놈들 어떻게든 총독을 설득하거나 붙잡아서 인질로 잡았어야지!’라고 말했을 테지만, 원래 누구나 처음 하는 일은 서투를 수밖에 없었다.
결국 도시 전체가 추격을 개시!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혼비백산하며 왕국의 황무지를 달려 나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