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709화 (1,708/1,826)

§ 나는 될놈이다 1709화

불길해하는 약탈자 플레이어들을 뒤로한 채 태현 일행은 유유히 사라져 버렸다.

“뭐야? 왜 너희들만 있어?”

“그게… 여기 입구에… 규칙이 새로 바뀌어서….”

“김태현이… 믿고 기다리랬는데….”

“…….”

뒤늦게 도착한 다른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괜찮은 거 맞나?

* * *

-김태현 에스파 왕국 쪽 출현! 김태현 에스파 왕국 쪽 출현!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 모여라!

태현의 정보를 들은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신이 나서 오두방정을 떨었다.

에스파 왕국이라면 에랑스 왕국보다 훨씬 더 김태현을 잡기 수월했다.

그 쟁쟁하던 NPC들도 없는 데다가 왕국 자체가 굶주린 혼돈의 손에 떨어져 있는 만큼, 포위만 하면 끝장을 내버릴 수 있다!

…그런데 생각보다 모이는 놈이 얼마 없었다.

-야?! 뭐하냐!? 김태현 나왔다니까!

-어? 어어. 김태현 나왔다고? 잡으러 가야지.

-그래. 지금 간다. 조금만 기다려. 너 먼저 가 있어라.

-…이 새끼들 설마…??

눈치 빠른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경악했다.

이 새끼들이 지금 같은 상황에서도 머리를 굴리고 있어??

-야 이 미친놈들아! 김태현 지금 잡아야지!!

-그래. 잡는다니까? 왜 못 믿는 거야? 지금 이 퀘스트만 깨고 간다고.

-지금 가고 있다는데 넌 왜 그렇게 사람한테 무안을 주냐?

-…….

지금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한테는 매력적인 퀘스트들이 너무 많았다.

-에랑스 왕국 고벨레 성 함락 퀘스트가 추가됩….

-새 도시의 영주….

-귀족 가문의 보물….

-…….

주인 사라진 에랑스 왕국은 지금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에게 천국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꼭 에랑스 왕국이 아니더라도 태현을 잡으러 가는 퀘스트는 너무 위험도가 높았다.

어차피 굶주린 혼돈 내에서도 다 같이 경쟁하는 입장.

경쟁자가 김태현 잡으러 갔다가 죽으면 자기만 이득 아닌가.

김태현 잡으러 갈 시간에 쓸 만한 퀘스트만 쏙쏙 빼먹으며 자기 성장을 우선시하는 플레이어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쯤 되자 김태현을 잡으려고 했던 플레이어들도 눈치를 보게 됐다.

-…야, 이걸로 잡을 수 있나? 너무 적은데??

-스미스 놈은 뭐해? 뉴욕 라이온즈들은 김태현 잡고 싶어하지 않았나?

-지금 그쪽은 정신없어. 스미스 놈 구출하느라 총동원됐나 봐. 화이트 나이트 길드도 그쪽으로 몰렸다는데.

평소에는 그렇게 스미스를 욕하던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도 이런 상황이 되자 스미스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최소한 스미스는 눈앞의 이익 때문에 이런 기회를 내버려 두지는 않았으니까!

-미치겠네. 스미스 자식 없다고 이렇게 일이 안 돌아가?

-대형 게임단들은 김태현 잡는 거에 욕심낼 법도 한데….

일반 플레이어들과 달리 대형 게임단들은 태현을 잡는 것에 욕심을 낼 법도 했다.

리그가 중지된 지금 김태현 레이드는 어마어마한 빅 이벤트였으니까.

하지만….

-다들 눈치 보는 것 같은데? 지금 스미스하고 뉴욕 라이온즈가 워낙 악역 이미지가 되어 가지고….

-아오 게임하는데 뭘 그런 걸 신경을 써!

-게임단에 오가는 돈이 얼마인데 신경이 쓰이겠지.

뉴욕 라이온즈야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굶주린 혼돈 쪽에 발을 담갔지만, 다른 게임단들은 지금 상황에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판온의 구도가 점점 노골적으로 선과 악으로 바뀌고 있었던 것이다.

뉴욕 라이온즈가 원한 건 ‘최상위권 랭커들의 치열한 싸움’이었는데 지금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면 ‘굶주린 혼돈에 가입한 놈들이 판온을 망치고 있다’에 가까웠으니….

-평생 뉴욕 라이온즈 팬이었지만 다시는 응원하지 않겠어!

-나도 마찬가지야! 스미스 이 새끼! 실망이다! 어떻게 하늘섬을 떨어뜨려!?

뉴욕 라이온즈 투자자들이 지금 상황 때문에 진지하게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소문들도 돌았다.

여기까지 와서 빠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대로 가면 이미지는 더 독해질 텐데….

-어떻게든 리더십 있는 놈이 필요하다고! 스미스 안 되면 게임단의 다른 선수든 누구든 어떻게 불러와!

-그게 그렇게 쉬울 리가….

한 명 사라진 것으로 이렇게 모래알처럼 뭉치지 못할 줄이야.

스미스를 보내버린 태현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 * *

[곰 수인족 전사들이 당신을 평가합니다!]

[힘 스탯이 낮습니다!]

[민첩 스탯이 낮습니다!]

[체력 스탯이…]

-약하군.

[행운이…]

[신성이…]

[명성이 매우 높습니다!]

[악명이 매우 높습니다!]

[……]

[……]

[……]

-하지만 제법 능력이 있는 인간이로군. 인정한다.

곰 수인족 전사들은 매우 엄격한 기준을 갖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태현을 무시하지는 않았다.

무시하기에는 너무 어마어마한 스펙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으악! 키메라잖아?! 저주받은 생명체를 왜 데리고 다니는 거냐!

“…노예입니다?”

-아. 그렇군. 노예였나.

케인의 대답에 곰 수인족 전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안쓰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대지와 자연에게 저주받은 안쓰러운 자 같으니… 힘내도록 해라.

[설득에 성공합니다!]

[평판이 내려갑니다!]

[친밀도가 올라갑니다!]

“곰 수인족 전사님. 부탁할 게 있습니다.”

-저런. 물건을 팔고 싶은 거라면 안쪽에 들어가서 상인한테 말을 걸어라. 우리는 장사에 관심이 없다.

“아니, 그런 건 아니고… 혹시 검술 스킬에 대해 아시는 게 없습니까?”

-크핫핫핫핫핫!

곰 수인족 전사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검술이라니! 너희 같은 인간들이 검술을 쓸 줄 아느냐?

“아니 말이 너무 심하신….”

케인은 울컥했다.

솔직히 <붉은 태양> 곰 수인족 전사들이 이런 메마른 계곡에서 숨어 있는 동안, 케인과 태현은 대륙을 누비면서 온갖 적들과 싸워 오지 않았던가.

구석에 틀어박혀 있던 놈이 입으로만 저런 소리를 하니 발끈할 수밖에 없었다.

케인이 발끈하자 곰 수인족 전사는 안쓰럽다는 듯이 케인을 쳐다보았다.

-하긴 네 녀석은 멀쩡한 검술을 쓰는 게 꿈이겠지. 너를 조롱하려는 건 아니었다. 저주받은 자여.

“…….”

곰 수인족 전사는 사람을 열받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태현한테 혹독하게 단련된 덕분에 어지간해서는 도발당하지 않는 케인이었지만, 정말 진심으로 말하는 곰 수인족 전사는 케인을 울컥하게 만들었다.

‘아오 저거.’

-우리의 검술을 배우고 싶다면 보통 노력으로는 불가능할 것이다!

<고대 곰 수인족의 검술-붉은 태양 곰 수인족 퀘스트>

고대 수인족들은 제국과 제국의 후계자들을 거부하며 오랫동안 야인의 삶을 유지해 왔다.

그들의 검술은 난폭하지만 강력하다. 그런 검술을 배우기 위해서는 보통 자격으로는 불가능할 것이다.

마을의 퀘스트들을 해결하고 곰 수인족들에게 인정받아라!

보상: ?, ???

[퀘스트, <곰 수인족들이 좋아하는 꿀을…>이 추가됩니다!]

[퀘스트, <곰 수인족들의 훈련장 수리…]

[퀘스트…]

[……]

[……]

‘아니. 이거 심각한데.’

태현은 퀘스트창들의 목록을 보고 인상을 굳혔다.

한동안 왕국들 내에서 퀘스트를 받다가, 왕국 밖의 세력으로 퀘스트를 받으러 오니 체감이 확 됐다.

왕족 버프도 못 받고, 교단 교황 버프도 못 받고, 명성 버프도 못 받는 상황.

원래 새로운 지역에서 퀘스트를 뚫는 일은 이렇게 힘들었다.

태현이 이제까지 너무 쉽게 해온 것뿐!

‘현실적으로 이걸 다 깰 수는 없는데….’

지금 태현의 적은 스미스도, 굶주린 혼돈도 아닌 시간이었다.

언제 굶주린 혼돈이 재정비를 끝내고 공격할지 모르는 상황.

최대한 빠르게 퀘스트를 깨고 강해질 수 있는 만큼 강해져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태현이 찾고 있는 검술이 맞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마을 하나하나 돌며 퀘스트를 다 깨야 한다니.

‘…물론 원래 이게 맞긴 한데.’

사실 이게 원래 퀘스트 깨는 방식이 맞긴 한데, 계속 지름길로 달려온 태현에게는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카르바노그가 실망스러운 건 알지만, 세상에는 편법이 없으니 그냥 성실하게 다…]

-굶주린 혼돈의 암살자다!

“!”

-굶주린 혼돈의 암살자가 들어왔다. 건방진 놈 같으니!

태현이 고민하고 있는 사이, 마을 안쪽에서 싸움이 일어났다.

메마른 분지 안쪽에서 굶주린 혼돈의 암살자가 곰 수인족 전사들에게 외치고 있었다.

-들어라, 건방진 야만족 놈들아. 제국이 멸망했고 제국의 후계자들도 멸망했다. 굶주린 혼돈께서 너희 모든 자들을 평등하게 지배하시려고 하는데 아직도 건방지게 굴고 있….

-죽어라!

곰 수인족 전사들은 상대방의 대사를 끝까지 들어주지 않았다. 태현의 검에 잠들어있는 기계공학자들이 수군거렸다.

-진짜 야만족 놈들이라니까.

-가차 없지.

[<만물의 소리를 들어라> 스킬이 발동됩니다!]

[<붉은 태양> 곰 수인족 부족의 장로, 우르가누가 당신에게 말을 겁니다!]

곰 수인족 전사들이 굶주린 혼돈의 암살자를 패는 사이, 먼 옛날에 수명을 다한 곰 수인족 장로가 태현에게 말을 걸었다.

-굶주린 혼돈은… 위험한 적이다. 그런데 이 젊은 녀석들은 오랫동안 싸워본 적이 없어서 그 위험성을 얕보고 있어!

태현은 냉큼 동의했다.

“맞는 말씀이십니다.”

-모험가여. 너는 제국 출신도 아니고 왕국 출신도 아닌 약탈자라고 들었다. 악명이 이렇게 높은 걸 보니 분명 믿을 수 있는 약탈자겠지.

“…제가 원래 법 없이 사는 사람입니다!”

태현은 빠르게 반응했다.

여기서 ‘고대 제국 후계자인데요?’나 ‘아키서스 교단 교황입니다’ 같은 소리를 했다가는 상대가 바로 정색을 할 게 느껴졌던 것이다.

-저 암살자의 습격은 차라리 잘 됐다. 젊은 전사들이 굶주린 혼돈에게 복수를 하러 갈 테니, 젊은 전사들에게 굶주린 혼돈의 위험성을 느끼게 해다오. 그리한다면 내가 우리 부족의 검술을 배울 수 있게 도와주겠네.

“오…!”

<장로 우르가누의 부탁…>

…….

…….

[카르바노그가 어이없어합니다!]

카르바노그는 어이가 없었다.

세상에는 편법이 없다고 말한 지 몇 분이나 됐다고…!

* * *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초조한 표정으로 입구에서 기다렸다.

어떤 약탈자 플레이어는 기다리다가 못해 꽃을 갖고 오더니 하나씩 잎을 따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김태현이 온다, 오지 않는다, 온다, 오지 않는다….”

“그만해 미친놈아! 뭐하는 거야!”

“하,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김태현은 온다고. 믿어라!”

“근거가 있나?”

“…그냥 믿으라고 새끼야!”

“왜 화를 내는데!”

우르르-

“??”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갑자기 협곡 안쪽에서 나오는 곰 수인족 전사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뭐지??

“무, 무슨 일이….”

-굶주린 혼돈 놈들에게 복수를 하러 갈 거다. 감히 암살자를 보낸 대가를 치르게 해줘야지!

곰 수인족 전사들이 그렇게 말하며 성큼성큼 걸어가자,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어리둥절해하다가 뒤늦게 상황을 깨달았다.

김태현이 정말 곰 수인족 전사들을 끌어낸 것이다!

“역시… 김태현! 대단하다! 남 이간질하는 재주 하나는 정말 판온 제일이구나!”

“야. 인마. 목소리 낮춰.”

“곰 수인족 전사를 끌어내서 굶주린 혼돈을 칠 줄 알았다니까!”

“설마 암살자도 자기가 준비해서 보낸 거 아닌가?”

“그럴지도…!”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뒤에서 나오는 태현 일행을 쳐다보았다.

케인은 약탈자 플레이어들이 부담스럽게 반짝이는 눈빛으로 쳐다보자 조금 당황스러웠다.

“저것들 왜 저러는 거냐?”

“몰라. 중요한 거 아니니까 집중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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