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708화 (1,707/1,826)

§ 나는 될놈이다 1708화

“우리가 팔아준 술이 몇 잔인데 지금 배신을 때리는 거냐!?”

“아니, 대체 왜 배신을 때리는 건데?? 이유라도 말해봐!”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너무 황당했다.

배신을 하더라도 이유나 알고 싶었다.

대체 왜 이제까지 친밀도 쌓은 그들은 무시하고 김태현 놈 질문에 홀랑 넘어간 거란 말인가.

김태현이 뭘 했다고!?

-저, 저분의 악명을 보고도 감히 속일 수 있겠습니까!

“…….”

“…….”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경악의 눈빛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대체 악명 스탯이 몇이길래…?

“뭐. 왜. 불만 있냐?”

“아, 아니.”

태현의 말에 플레이어들은 시선을 피했다. 태현은 술집 카운터 안으로 들어가 상하기 직전의 요리들을 아키서스의 권능 요리 스킬로 바꾸며 물었다.

“그래서. 무슨 속셈으로 날 불렀지? 아니. 말 안 해도 된다. 내가 맞춰보지.”

“그야….”

“날 죽이려고 부른 거겠지. 뻔해도 너무 뻔하군.”

“아니야!”

“하하. 아닌 척 하지 않아도 된다. 자. 누구부터 덤빌 거냐?”

태현은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도 이런 습격이나 함정을 많이 겪다 보니, 이제는 오히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살짝 심심할 정도였다.

[<아키서스의 권능 요리>로 <물을 탄 저급 맥주>를 새로 만듭니다!]

[<아키서스의 맥주>가 완성됩니다!]

[……]

[……]

태현은 완성된 요리 아이템을 차곡차곡 옆에 놓았다. 술집 주인 NPC는 감탄하며 고개를 숙였다.

[술집 주인의 친밀도가 크게…]

[평판이 크게…]

[……]

“김태현 선수! 오해하지 말고 들어주십시오!”

신진 랭커이자 약탈자 플레이어인 메이미가 나섰다.

“저희는 정말 김태현 선수와 별 원한이 없습니다! 물론 몇몇 꼰ㄷ….”

“방금 꼰대라고 하려고 했냐?”

뒤에 있던 판온 1 때부터 해왔던 랭커들이 의심에 찬 눈초리를 던졌다.

“…몇몇 판온 1 때부터 김태현 선수와 원한이 있던 랭커들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건 믿어주십시오!”

메이미의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약탈자 랭커들도 순간 ‘오 저 정도라면 김태현도 설득이 되겠군’ 싶을 정도로.

‘그래. 우린 정말 마음에 걸리는 게 없다! 김태현을 설득하는 거다!’

“우린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

“???”

뒤에 있던 판온 1 출신 랭커들은 귀를 의심했다.

어?

원래는 ‘우리는 정말 순수하게 불렀습니다!’라고 해야 하지 않나?

왜 ‘우린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이 자식들이 손절을?!?!”

상황을 깨달은 판온 1 출신 랭커들은 벌컥 일어났다.

신진 랭커들이 그들을 손절하려고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손절을 해야지!! 당신들 지금 도움이 하나도 안 되잖아! 자존심 있는 약탈자 플레이어면 자기 몫은 자기가 알아서 일을 해야 하는데, 당신들은 계속 ‘김태현 오면 우리 죽는다’ ‘김태현이 우리 조질 거라니까’ 같은 소리만 하고 있고! 도움은 하나도 안 돼!”

메이미의 외침은 정말 진심이 담겨 있었다.

신진 랭커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니 원래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그런 사이였다.

저 판온 1 출신 랭커들이 김태현과 원수를 졌다면, 그냥 버리면 되는 것 아닌가.

왜 그들이 신경을 써줘야 하지?

“감히 배신을 해?!”

“배신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이쪽 장사 하루이틀 하나!”

‘오. 흥미진진하군.’

태현은 맥주를 들이키며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싸움을 구경했다.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일이었지만, 사실 정정당당한 길드간의 결투보다 더 재밌는 게 약탈자 플레이어들간의 무규칙 싸움이었다.

정말 온갖 개짓거리는 다 나오는 처절한 싸움!

“다들 진정해라!”

그러나 아쉽게도 싸움은 터지지 않았다.

랭커 한 명이 사이에 뛰어들어서 말린 것이다.

일촉즉발의 분위기는 순간 멈칫했다.

“지금 서로 말하는 건 이해가 간다. 나만 해도 김태현한테 당한 적이 있으니까 두려울 수밖에 없었지. 당하지 않은 랭커들은 우리가 하는 소리가 이해가 안 갔을 거고. 하지만 여기서 싸우면 진짜 굶주린 혼돈을 물리치고 뭐고 하기 전에 같이 공멸하는 거다!”

“어? 나한테 당한 적이 있었냐?”

태현의 질문에 랭커는 움찔했다.

“…기기긱이다. 판온 1에서 광산을 점령하고 있다가 너한테….”

“미안하군. 광산 점령하고 있던 놈들이 너무 많아서 기억 안 나는데.”

“…….”

기기긱이 울컥하자 뒤에 있던 랭커들이 급히 말렸다.

“참아! 네가 참아!”

“김태현 저 새끼 원래 저런 새끼잖아!”

* * *

설명을 다 들은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굶주린 혼돈과 싸우고 싶다고?”

“그래! 굶주린 혼돈의 사악한 지배를 몰아내고, 원래 에스파 왕국처럼 웃고 떠들며 도적질을 하고 싶다고!”

“??”

[??]

태현과 카르바노그는 약탈자 플레이어들의 말에 의아해했다.

‘양심이 없거나 대가리가 없거나 둘 중 하나는 없는 게 분명하군.’

저런 말을 진지하게 한다는 점에서 더 웃긴 놈들이었다.

하지만….

‘도움이 필요하긴 하지.’

태현 입장에서도 에스파 왕국 플레이어들의 도움은 필요했다.

지금 퀘스트를 진행해야 하는데 계속 숨어 다녀야 하는 이상, 도와줄 사람은 많을수록 좋았다.

게다가 태현이 찾고 있는 야만부족들은 에스파 왕국에서도 찾기 쉽지 않을 테니….

“좋아. 손을 잡자! 굶주린 혼돈과 맞서 싸운다면 누구라도 환영이지.”

“오오…!”

“김태현! 우리가 널 오해하고 있었구나!”

“난 네가 피도 눈물도 없는 쓰레기 같은 놈인 줄 알았는데!!”

“…….”

신진 랭커들은 황당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저러니까 두들겨 맞은 거 아닌가?

“김태현. 어떻게 굶주린 혼돈과 맞서 싸울 생각이지?”

“걱정 마라. 내게 계획이 있으니까. 먼저 너희들이 해줄 일이 있다. 에스파 왕국에 있는 야만부족들을 찾아내라.”

산맥 깊은 곳이나 혹은 황야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왕국의 야만부족들.

플레이어들도 퀘스트가 없으면 굳이 찾아가지 않는 편이었다.

강하기도 강한 데다가 보통 왕국 소속 플레이어들한테 적대적이라 좋은 꼴을 보기 힘든 것이다.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게 굶주린 혼돈과 맞서 싸우는 데에 필요하다.”

태현은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뻔뻔하게 거짓말을 했다.

굶주린 혼돈이고 약탈자들의 도둑질할 권리고 뭐고, 일단 자기 퀘스트부터 깰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미 굶주린 혼돈에게 몇 번이고 데미지를 입힌 태현의 말에는 묘한 무게감이 있었다.

판온 최고의 굶주린 혼돈 전문가!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의아해하면서도 일단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알겠다. 야만부족들을 찾아보도록 하지.”

“김태현. 여기 마을 근처에 굶주린 혼돈을 섬기는 총독이 지배하는 곳이 있는데 거기는 언제 공격할 생각이야?”

“흠. 기다려라. 섣불리 공격할 수는 없으니 준비가 필요해.”

“과연….”

태현의 모습에 몇몇 플레이어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김태현치고는 너무 신중하지 않냐? 왜 이렇게 낯설지?”

“거 김태현한테 몇 대 맞았다고 되게 아는 척 많이 하시네요. 어련히 알아서 하겠죠.”

“이, 이 자식들….”

“김태현 선수라면 벌써 완벽한 계획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을 겁니다.”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태현이 지금 왕국의 굶주린 혼돈을 몰아낼 방법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 * *

“애들아! 도와줄 사람들 구했다!”

“어? 진짜? 누구?”

“굶주린 혼돈과 싸우려고 모인 플레이어들인가? 에스파 왕국에도 그런 길드가 있었나?”

“아니. 약탈자 플레이어들.”

“…….”

“…….”

최상윤은 솔직히 감탄했다.

정말 잘 어울린다!

태현은 언제나 부정했지만, 솔직히 판온에서 태현과 가장 잘 어울리는 건 약탈자 플레이어들이 맞았다.

하는 짓이나 생각하는 방향성 보면 태현은 약탈자 플레이어했어도 정말 정말 잘 했을 것이다.

“아니… 약탈자 플레이어들이 우리 퀘스트하는 걸 왜 도와준대?”

케인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속였지.”

“…….”

케인은 바로 납득했다.

아…!

“약탈자 플레이어들이 야만부족 위치 알아내는 대로 다 이동해서 확인해 보자고. 참. 입 관리 잘 해. 괜히 눈치채게 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물론이죠.”

일행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면서 한 사람을 빤히 쳐다보았다.

사실 이 모든 말들은 한 사람을 위한 말이었다.

케인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난… 그냥 과묵한 컨셉으로 입 다물고 있으면 되잖아.”

“그래! 좋은 생각이야!”

“케인. 많이 늘었군.”

태현도 케인을 칭찬해 줬다. 케인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 정도쯤이야!

* * *

“케인 선수. 저번에….”

“나한테 말 걸지 마라.”

“??!”

“아. 미안. 요즘 케인이 많이 날카로워졌거든. 굶주린 혼돈 때문에.”

“가까이 다가가면 물 수도 있으니까 다들 물러서라.”

“…….”

케인은 어이가 없었다.

미친놈아 내가 개냐!

그러나 더 어이가 없는 건 약탈자 플레이어들이 저딴 개소리를 믿는다는 점이었다.

“헉. 진짜 무나 보다.”

“키메라 종족한테 물리면 어떻게 되지? 키메라 되는 거 아니야?”

태현은 화제를 돌렸다.

“지금 가고 있는 곳이 어디지?”

“아. 예. <붉은 태양> 고대 곰 수인족 마을입니다. 나름 유명한 곳이에요.”

고대 수인족 부족들은 야만족들 중에서도 막강한 강함을 자랑했다.

실제로 태현도 몇 번이고 죽을 뻔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이들의 특징은….

‘고대 제국과 관련된 건 대부분 다 싫어하지.’

고대 제국도 싫어하고, 고대 제국에서 이어지는 왕국들도 싫어하고, 아키서스 교단도 당연히 싫어하고….

카르바노그 때문에 태현의 편을 드는 토끼 수인 부족이 매우 예외적인 경우였다.

<붉은 태양> 고대 곰 부족은 나름 왕국 내에서도 알려진 거대 부족이었다.

플레이어들 중에서 부족 마을로 들어가서 퀘스트를 받고 나온 사람이 있을 정도였으니, 이 정도면 많이 알려진 게 맞았다.

“들어가는 방법이 있나?”

“예. 비밀입니다만, 약탈자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도는 방법이 있어요. 약탈자 플레이어들이 쓰는 길을 사용해서 뇌물을 주고 들어가면 됩니다.”

“오오….”

이다비는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메모했다.

이런 정보가!

‘잘 써먹어야지.’

자신들의 귀한 정보가 쏙쏙 빨아먹히고 있다는 걸 아직 눈치채지 못한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순진무구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김태현 선수. 여기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굶주린 혼돈을 섬기는 총독이 지배하고 있는 도시가 있는데, 이 도시를 곰 부족의 힘을 빌려서 공격하실 생각이신가요?”

“아주 영리하군. 바로 그거야.”

태현은 대충 맞다고 해줬다. 물론 별 계획 같은 건 없었다.

그러나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뛸듯이 기뻐했다.

“역시…!”

“왜 야만족들을 찾아다니나 했는데 역시 이런 이유에서였구나!”

“설득할 방법이 있으시니까 저러는 거겠지!”

[<곰들의 초소>를 발견합니다!]

메마른 협곡과 골짜기의 좁은 길을 지나 조심스럽게 들어가자, 곰들의 초소가 나타났다.

곰 수인족 보초들이 지름길로 들어오는 침입자들을 감시하고 있는 중이었다.

“곰 어르신들!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에스파 왕국과 아무 상관이 없는 무법자들입니다!”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자신의 신분을 강하게 어필하며 뇌물을 꺼냈다.

이 뇌물이면 길이 열….

-미안하군. 통행 금지다.

“!?”

-요즘 굶주린 혼돈 때문에 주변이 시끄러워서 어중이떠중이들은 들여보내주지 않아.

그렇게 말하던 곰 수인족 보초들은 태현 일행을 훑어보았다.

[명성이 매우 높습니다!]

[……]

[……]

-너희들은 들어가도 되겠군.

“흠. 그러면 들어가도록 하지.”

“김, 김태현 선수! 저희는 그럼 어떻게 들어가죠?”

“기다리고 있으면 되겠지.”

태현은 그렇게 말하고 훌쩍 들어가 버렸다.

남은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서로 쳐다보았다.

“…분, 분명히 돌아오겠지?”

“물… 물론이지. 넌 왜 이상한 소리를 하냐.”

그런데 왜 이렇게 불안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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