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705화
“잘 가라, 스미스!”
“진짜 죽!”
그 말을 끝으로 스미스는 차원의 저편으로 날아가 버렸다.
대륙의 어디로 날아갔을지, 혹은 마계나 그 외의 다른 어디로 날아갔을지는 태현도 알지 못했다.
‘아키서스 축복의 룰렛 덕분에 살았다!’
태현은 멀리 추방되는 스미스의 모습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직업 퀘스트를 클리어할 때마다 보상이 나오는 <아키서스 축복의 룰렛>.
아쉽게 전설 검술 스킬은 저번처럼 또 나오지 않았지만, <아키서스의 차원 추방>이 나온 덕분에 간신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오히려 어떻게 보면 검술 스킬보다 더 좋을 수도 있었다.
검술 스킬이 나왔다면 굶주린 혼돈의 군단장들이 쫓아오는 사이 스미스를 처리하고 길을 뚫어야 했으니까.
[<아키서스의 화신> 직업 퀘스트가 갱신됩니다!]
‘…제발 양심 있는 퀘스트 나와다오.’
태현은 간절하게 빌었다.
안 그래도 지금 굶주린 혼돈과 싸워야 하는 입장에서 난이도 높은 퀘스트가 나오면 태현 입장에서는 숨이 막혔다.
굶주린 혼돈 상대하면서 직업 퀘스트까지 깨야 하는 것 아닌가!
<화신의 길-아키서스의 화신 직업 퀘스트>
굶주린 혼돈과 맞서 싸우는 당신의 영혼은 빛나고 있다.
대륙을 떠난 아키서스지만, 아키서스가 남긴 뜻이 당신과 공명하며 길을 안내하리라.
길을 분명하기 찾기 위해서는 당신의 아키서스 검법을 더욱 올려야 한다.
아키서스 검법에 매진하여 길을 찾아내라.
…….
‘됐다!’
태현은 퀘스트창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국왕 목 따와라, 악마 공작들 목 따와라 같은 말도 안 되는 퀘스트가 아닌, 검술 스킬을 올리라는 매우 합리적인 퀘스트였다.
이런 퀘스트라면 굶주린 혼돈을 상대하면서 같이 깰 수 있으리라.
……
(최고급 검술 8: 0/1)
(아키서스의 일곱 번째 공격: 0/1)
(아키서스 전쟁의 검: 0/1)
보상: ?
“…….”
태현은 목표에 경악했다.
지금 검술 스킬이 최고급 검술 6 중반인데, 7도 아닌 8을 찍고….
거기에 일곱 번째 공격을 열고 전쟁의 검 스킬까지 익히라는 건…!
-죽어라!!!
“김태현 선수!! 피합시다!!”
콰콰콰콰콰콰콰쾅!
태현이 ‘죽으라는 건가?’라고 생각하기도 전에 굶주린 혼돈의 군단장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왕국 기사들의 처절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군단장들은 결국 뚫어낸 것이다.
-아키서스 교단의 교황 놈! 난 언제나 네놈과 대결해 보고 싶었다. 네놈이 그렇게 파괴와 약탈에 능하다지?
[굶주린 혼돈의 군단장, 대전사 니테렐로가 당신에게 경쟁심을 품습니다!]
[먼 고대 제국 시절부터 도적들을 이끌고 파괴와 약탈을 해왔던 대전사 니테렐로는 처형 직전까지도 고집을 꺾지 않았던 악한입니다! 그의 목표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무언가 오해가 있는 것 같군! 아키서스 교단은 선신을 모시는 교단으로서 선량함과 자비가 모토다!”
태현은 안 될 걸 알면서도 외치면서 뛰었다.
[설득에 실패합니다!]
[대전사 니테렐로가 당신의 농담에 크게 웃습니다!]
-하하하하하하! 훌륭한 농담이다, 아키서스 교단의 교황!
‘농담 아닌데.’
[카르바노그가 솔직히 자기가 들었어도 농담 같았다고 말합니다.]
“빠져나가! 후퇴 명령을 내려!”
국왕이 쓰러진 지금 이제 평원에서 더 버틸 이유가 없었다.
태현은 화술 스킬과 전술 스킬을 총동원해 평원 전체에 쩌렁쩌렁하게 명령을 내렸다.
“후퇴해!!”
“!”
싸우고 있던 원정대 파티장들은 태현의 외침을 듣고 알겠다고 화답했다.
“후퇴 준비!!”
“후퇴! 후퇴!”
“지금 적들이 무너졌을 때 빠져나가야 해! 놓치면 위험하다!”
콰르르릉!
허공에서 번개가 치더니 저 멀리서 비행 괴수 군단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여기 어마어마한 숫자가 있었는데 또 추가되는 적의 전력에 태현은 혀를 찼다.
‘무슨 무한물량이냐?!’
[굶주린 혼돈의 군단이 추가됩니다!]
[굶주린 혼돈의 전력이 대륙에서 더욱 더 강해집니다!]
니테렐로가 그 모습을 보며 외쳤다.
-아키서스 교단의 교황. 지금 오고 있는 군단들이 어떤 군단인지 아는가? 중앙 대륙 밖의 오지를 점령하고 돌아오는 군단들이다! 네깟놈이 제법 저항을 하고 왕국 몇 개를 지켰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건 보잘것없는 시간낭비일 뿐. 네 운명은 정해져 있다. 계속해서 몰려오는 파멸 앞에서도 건방지게 고개를 들 수 있을 것 같은가!
“그래 굶주린 혼돈 믿어서 좋겠다 새끼야!”
태현은 도망치면서 외쳤다.
“보아하니까 고대 제국 시절에는 깝치지도 못하던 놈이 붙잡혀서 죽기 직전까지 갔다가 굶주린 혼돈하고 계약한 다음에 까불대는 모양인데, 힘자랑할 거면 그때 하지 그랬냐!”
“…….”
“…….”
하늘섬 랭커들은 같이 튀면서 속으로 감탄했다.
지금 서로 정신없이 도망치는 데다가 옆의 동료도 확인하지 못할 정도로 정신이 없는 상황이었는데, 오늘 처음 만난 보스 몬스터 NPC의 약점을 정확히 찔러서 모욕을 던지는 것이다.
모욕의 마에스트로!
[대전사 니테렐로가 분노합니다!]
[화술 스킬이 오릅니다!]
[<영혼에 스며드는 화술>으로 니테렐로에게 데미지를 줍니다!]
[니테렐로의 공격이 느려집니다!]
[<만물의 소리를 들어라>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잊혀진 존재들의 소리를 듣습니다.]
“?”
화술 스킬을 성공시킨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다음에 나오는 메시지 창이 태현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이번에 새로 얻은 <만물의 소리를 들어라> 화술 스킬이 꽤 중요하다는 건 짐작하고 있었지만 이건…?
[고대 제국의 심판관이 당신에게 니테렐로의 약점을 속삭여줍니다.]
[카르바노그가 깜짝 놀랍니다!]
[고대 제국의 심판관이 카르바노그에게 굶주린 혼돈을 쓰러뜨려달라고 부탁합니다.]
[카르바노그가 자기는 그럴 능력 없다고 당황스러워합니다.]
너무 오래전이라 이제는 시체나 무덤도 찾을 수 없었지만, 고대 제국의 심판관이었던 NPC가 태현에게 니테렐로의 약점을 속삭여줬다.
<만물의 소리를 들어라>
잊혀진 존재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확률이 올라갑니다.
이 스킬은 말 그대로 잊혀진 존재들의 소리를 듣는 스킬이었던 것이다.
“니테렐로! 네가 생전에 모아놨던 보물은 고대 제국 사람들이 대대손손 잘 물려주고 있다.”
-!!
분노로 몸을 떨던 니테렐로가 고개를 퍼뜩 들었다.
니테렐로의 약점.
그것은 굶주린 혼돈과 계약하기 이전에 그가 모아놨던 거대한 보물들이었다.
고대 제국에 붙잡혀 처형장까지 갔던 만큼, 목숨은 건졌어도 보물들은 되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네놈은 절대 그 위치를 찾을 수 없을 거다!”
-설마… 설마 네놈이 감히!? 그 위치를 말해라!
“쫓아오는 걸 멈춰라. 그렇다면 말해주겠다!”
태현은 말하면서도 상대가 바로 넘어갈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굶주린 혼돈의 군단장 아닌가.
안 넘어오면 이제 각종 허세와 협박을 통해서 최대한 데미지를 주고 발을 느리게 만들 셈이었다.
-그게 정말인가? 아키서스의 이름을 걸고 맹세해라!
“걸고 맹세하겠다!”
[카르바노그가 저거 완전 호구 새끼라고 어이없어합니다.]
[고대 제국의 심판관이 니테렐로는 아키서스 교단의 매운맛을 본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알겠다! 정지해라!
[설득에 성공합니다!]
[화술 스킬이 오릅니다!!]
[……]
[……]
“????”
“??????”
같이 도망치던 랭커들도 당황스러워했다.
어?
진짜 안 쫓아와??
“이래도 되는 거 맞아요?”
“알 게 뭐냐! 도망치기나 해!”
-니테렐로 님! 저 자들을 쫓아야 합니다! 저 놈들의 간교한 혓바닥을….
-닥쳐라!
콰직!
여기 스미스가 있었다면 목숨 걸고 설득을 했을 테지만, 아쉽게도 여기에는 니테렐로의 부하들밖에 없었다.
그리고 니테렐로는 부하들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간언을 올리려던 몇 명의 머리통이 날아가자 니테렐로에게 말을 꺼내는 사람이 바로 없어졌다.
태현 일행이 거리를 벌리고 평원을 거의 빠져나갈 때쯤 되자 니테렐로는 다시 크게 외쳤다.
-아키서스 교단의 교황! 맹세를 지켜라. 아키서스의 이름을 걸고 한 맹세를!
“그래! 위치를 알려주겠다. 보물의 위치는 이 세상 어딘가에 있다!”
-…?
니테렐로는 순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게 무슨….
[대전사 니테렐로가 극도로 분노합니다!]
[화술 스킬이 오릅니다!]
[<영혼에 스며드는 화술>으로 니테렐로에게 크게 데미지를 줍니다!]
[대전사 니테렐로가 당신의 목에 현상금을 겁니다!]
[대전사 니테렐로가 당신을 집요하게 추적하기 시작합니다!]
[대전사…]
[……]
[……]
[……]
“…….”
태현은 잘 따돌렸는데도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였다.
“다들 무사히 빠져나왔지? 없는 사람 없지?”
“예! 덕분에 다들 잘 빠져나왔습니다!”
랭커들은 서로를 확인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 이다비 선수. 뒤에 있는 건 뭡니까?”
“에랑스 국왕 시체요. 그냥 두고 오기는 좀 그래서 갖고 왔어요.”
“…….”
“…….”
랭커들은 슬금슬금 거리를 벌렸다.
진짜 광기를 살짝 느꼈던 것이다.
* * *
<왕관 평원 전투, 원정대 패배! 굶주린 혼돈의 승리…>
<굶주린 혼돈이 지배하나?>
<왕관 평원 전투는 굶주린 혼돈의 패배다!>
<굶주린 혼돈은 한동안 타격 입은 것 회복하느라 힘들 것… 스미스가 추방된 게 뼈아파…>
왕관 평원 전투가 끝나고 나자, 모든 판온 방송은 물론이고 일반 방송에서도 이 사건을 중요하게 다뤘다.
그 정도로 어마어마한 시선이 쏠렸던 방송이었다.
판온 리그가 중지된 지금 이 퀘스트만큼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받는 퀘스트도 없었다.
하지만 평소와는 그 양상이 조금 달랐다.
원래라면 승패가 명확하게 갈리고 누가 잘했니 누가 못했니 앞으로는 어떻게 되느니 이런 걸 이야기해야 하는데, 이번에는 의견이 팽팽하게 갈린 것이다.
-국왕 죽는 것도 못 막고, 도망치기까지 했는데 진 거지! 이게 이긴 걸로 보이냐?
-국왕 누가 죽였는데? 누가 들으면 스미스가 죽인 줄 알겠다.
-김태현이 에랑스 왕 죽인 게 지킬 자신 없으니까 죽인 거지, 김태현 팬 놈들은 대체 뭘 자랑하는 거야?
-자랑할 거 맞는데? 김태현 에랑스 국왕 죽이고 파워업했는데? 에랑스 국왕 갖고 있던 거 다 물려받았을 듯.
└맞아맞아. 에랑스 국왕 죽였으니까 레벨 한 10은 올랐을듯.
-이런 미친 새끼들! 니들이 굶주린 혼돈 욕할 처지가 되냐!?
굶주린 혼돈 쪽 플레이어들은 기가 막혔다.
저걸 당당하게 자랑하다니!
-못할 게 뭐가 있어? 내버려 뒀으면 굶주린 혼돈이 했을 텐데. 김태현은 해야 할 일을 한 거임.
-김태현이 국왕 쓰러뜨리면서 눈물 흘리는 거 봤냐?
-엥? 그런 장면이 있었나?
-나도 봤음. 눈물 반짝이더라.
-그랬나? 다들 그렇게 말하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원정대가 도망친 건 어떻게 설명할 건데!
-전략적 후퇴지.
-다른 방향으로 전진한 거임.
-하늘섬 떨어져서 굶주린 혼돈 군단 전멸하지 않았냐? 원정대의 승리지.
-그 하늘섬 원정대가 떨어뜨렸냐!!
-자기네들이 떨어뜨리고 지금 자랑하는 거임?
-이제 자랑할 게 없어서 자기네 군단 위에 하늘섬 떨어뜨린 거 자랑을 하네.
-그래서 너희 스미스 지금 어디 있냐? 돌아는 왔냐?
-개자식들. 어디 한 번 두고 보자. 보이는 족족 밟아줄 테니까. 힘으로 이야기하겠다!
-힘으로 이야기하겠대 ㅋㅋㅋㅋ
-힘(1:1로는 발동 안 함)
반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어떤 협박에도 겁을 먹지 않았다.
왜냐하면 도망칠 생각이었으니까!
에랑스 왕국에 없는데 자기들이 어떻게 쫓아오겠는가.
이기고도 찝찝해진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만 분노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