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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1703화 (1,702/1,826)

§ 나는 될놈이다 1703화

“미리 정해놨었어?!”

기다렸다는 듯이 오토바이 몰고 달려가는 이다비의 모습에, 다른 팀 KL 선수들은 당황스러워했다.

우리한테 말 안 하고 사전에 다른 지시를 내렸었나?!

“아뇨!”

“그러면 그냥 지금 듣고 움직이고 있는 거라고?”

“네!”

“…….”

“…….”

황당했고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일단 선수들은 이다비의 뒤를 쫓아서 달렸다.

“국왕 데리고 빠져나간다! 국왕 데리고 빠져나간다!”

“여기 오스턴 왕국, 아탈리 왕국 영주이자 귀족, 아키서스 교단 마스터 등급이 지나갑니다! 도와주세요!”

지금 상황에서 굶주린 혼돈보다 더 까다로운 상대는 바로 국왕의 호위기사들이었다.

기사들 입장에서 굶주린 혼돈이나 태현이나 비슷비슷하게 보일 수 있는 것이다.

한쪽은 죽이려고 하고 한쪽은 납치하려고 하는데 덥석 믿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

그걸 알았기에 이다비는 필사적으로 설득에 들어갔다.

[현재 명성이 매우 높습니다!]

[아키서스 교단의…]

[……]

[……]

[……]

다행히 진심이 통했다.

이제까지 쌓은 명성과 칭호, 그리고 지금 진행 중인 반 굶주린 혼돈 퀘스트까지.

국왕의 호위기사들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길을 열어줬다.

-폐하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저희가 막겠습니다. 모험가 여러분들은 폐하를!

[필립 3세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죽음의 기운이 필립 3세에게서 뿜어져 나옵니다.]

[생명이 사그라듭니다.]

[어둠이…]

[……]

[……]

안에서 나온 필립 3세의 모습은 엉망 그 자체였다.

풍채 좋던 국왕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마치 데스 나이트처럼 지독한 죽음의 기운을 흩뿌렸다.

이다비는 그 모습에 놀라지 않았다.

죽음에서 돌아온 필립 3세는 생전에도 강했던 만큼 아주 강력한 언데드가 되어 있었다.

게다가 에랑스 왕가의 넘치는 재산을 이용해 각종 흑마법 비전까지 자신의 몸에 시전했으니 강하지 않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여유가 있었을 때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있었지만, 굶주린 혼돈의 지독한 독에 당하고 나서는 그럴 여유가 전혀 없었다.

강력한 언데드의 본색을 드러낼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저럴 수가!”

“말도 안 되는…!”

“진짜 굶주린 혼돈 놈들 더럽고 비겁하다!!”

“?”

그러나 하늘섬 랭커들은 필립 3세의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

안 그래도 이번 암살을 시도한 랭커 구오청은 온갖 곳에서 욕을 먹고 있었다.

길드 동맹 쪽에서….

-저 새끼는 길드 동맹을 망가뜨린 스미스 쪽에 붙어먹다니 양심이 있는 새끼냐??

베이징 파이터즈 쪽에서….

-저런 매국노 새끼는 당장 방출해 버려야…! 어떻게 붙어먹을 놈이 없어서 미국 놈한테 붙어먹냐!

에랑스 왕국 플레이어들 쪽에서….

-필립 3세가 그래도 국왕 NPC들 중에서 얼마나 착한 사람이었는데 저 새끼가!

그리고 좀 어이없지만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도 욕을 했다.

-저런 쓰레기 같은 놈, 혼자 국왕을 죽이려고 하다니.

-자기 혼자 공적치 포인트를 얻으려고 한 거겠지. 이래서 길드 동맹 출신 놈들은 믿어서 안 된다니까. 더러운 본성 나오죠?

-…그게 왜 길드 동맹이랑 상관이 있는데 자식아!

“구오청 이 자식!! 필립 3세를 저 꼴로….”

“요즘은 구오청 저 자식이 스미스보다 더 역겹다니까!”

하늘섬 랭커들은 분개해서 외쳤다.

스미스가 굶주린 혼돈으로 갈아탄 플레이어들의 대표적인 아이콘이라면, 구오청은 요즘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떠오르는 악당이었다.

원래 사람 이미지란 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지만, 가끔은 퀘스트나 영상 하나로 확 달라질 때도 있는 법.

멀리서 쫓아오던 스미스는 랭커들의 대화에 좀 의아해했다.

‘구오청이 그 정도 플레이어는 아닌데?’

굶주린 혼돈 세력 내에서도 쟁쟁한 경쟁자들이 있었지만 구오청은 사실 별로 강한 경쟁자가 아니었다.

일단 굶주린 혼돈 가입도 늦게 했고, 길드 동맹 출신이고(길드 동맹 출신은 기본적으로 적이 많았다, 미국 쪽 게임단이 아닌 중국 쪽 게임단 출신에(마찬가지로 적이 많았다)….

스미스는 지금 온갖 곳에서 욕을 먹고 경쟁자들이 견제하려고 했지만, 스미스 친위대부터 시작해서 지지세력이 탄탄했다.

그에 비해 구오청은….

스미스가 보기에 절대 오래 갈 만한 랭커는 아니었다.

* * *

“미, 미친 거 아니냐? 지금 같은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끼리….”

“너야말로 미친 거 아니냐 구오청? 같은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라니. 뭔 정신 나간 소리냐?”

“누가 들으면 우리가 친구인 줄 알겠다?”

구오청은 황당하다는 듯이 플레이어들을 쳐다보았다.

필립 3세를 즉사시키진 못했지만 강력한 치명상을 입히고 도주에 성공한 구오청.

굶주린 혼돈의 암살자 퀘스트를 성공한 만큼 기쁨에 가득 차있었다.

-이제 내가 굶주린 혼돈 세력에서 앞서나간다!

-암살자 랭커들, 더 강해지고 싶으면 나한테 와라. 내가 가르쳐준다.

-솔직히 굶주린 혼돈에서 지금 제일 잘나가는 건 나 아니냐? 김태현 하나 못 잡는 누구하고 비교할 수준이 아닌듯.

구오청은 신이 나서 영상을 올리고 글을 쓰고 다시 영상을 올리고 글을 썼다.

태현이나 이세연이 봤다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을 짓이었다.

-저런 멍청한….

-스스로 적을 만들고 있네.

원래 퀘스트 하나 잘 깨면 다른 경쟁자 랭커들이 등 뒤를 찌르고 싶어서 눈에 불을 켜는데, 구오청은 이런 부분에서 조심성이 너무 없었다.

자기 위치를 숨기고 정보를 감춰도 모자랄 판에 저렇게 잘난 척을 하다니.

그 대가는 곧바로 돌아왔다.

굶주린 혼돈에 가입한 랭커들이 구오청 있는 위치로 친절하게 찾아간 것이다.

-못 튀게 막아!

-저 자식 <흡혈 칼날>하고 <저주 받은 암살의 이동>부터 못 쓰게 해!

게다가 이 친절하게 찾아온 굶주린 혼돈의 랭커들은 친절하게 구오청이 올린 영상을 보고 또 본 사람들이었다.

구오청에 대한 공략 방법을 잔뜩 준비해 왔다.

안 그래도 방어 낮고 HP 낮은 암살자라 먼저 맞으면 치명적인데 이렇게 기습을 당했으니….

“죽어라 구오청!”

“네깟 게 뭔데 판온 최고 암살자 같은 소리를 하고 있어! 김태현이 해도 재수 없는 말을 네가 뭔데 새끼야!”

[치명타를 당했습니다!]

[이동 속도가…]

[시야가…]

“비… 비겁한 놈들…!”

구오청은 두들겨 맞으면서 이를 갈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런 불리한 상황에서 괴력을 발휘해서 판을 뒤집을 수 있는 건 랭커들 중에서도 소수였다.

“!”

힘겹게 도망치던 구오청은 굶주린 혼돈의 암살자들을 발견했다.

“도와주십시오!! 암살자 어르신들!”

구오청에게 퀘스트를 내주고 같이 깼던 굶주린 혼돈의 부하 NPC들.

구오청은 동앗줄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외쳤다.

-우린 도와줄 수 없다!

“예?”

-굶주린 혼돈을 섬기는 자라면 무릇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 스스로 해결하고서 빠져나와라.

뒤에서 쫓아오던 랭커들은 암살자들의 말에 감탄했다.

“맞는 말씀이십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시라잖아! 구오청!”

“이… 이 개 같은 굶주린 혼돈…!!!”

구오청은 이를 악물었다.

만약 이 자리에서 빠져나온다면, 진지하게 굶주린 혼돈 탈퇴를 고민해 볼 생각이었다.

무슨 놈의 세력이 이렇게 대접을 안 해줘!!

* * *

“스미스가 온다!”

“케인 선수. 부탁드리겠습니다!”

“맡… 맡겨만 둬라!”

케인은 떨리는 외침으로 달려오는 스미스를 노려보았다.

이럴 날이 올 거라고 각오하고 있긴 했지만 정말로 올 줄이야.

국왕을 데리고 빠져나가는 사이 케인이 시간을 벌어야 했다.

-…비켜라!

“?!”

“아니, 국왕 폐하! 튀어야 한다니까요!”

최상윤은 답답하다는 듯이 외쳤다.

필립 3세가 하라는 도망은 안 치고 스미스를 공격하려고 하고 있었던 것이다.

[<에랑스 왕가의 암흑검>이 시전됩니다!]

[공기가 어둠으로 물듭니다!]

주변이 어두워지더니 필립 3세가 강력한 검을 휘둘렀다.

스미스는 달려오면서 방패로 받아냈다.

꽝!!!

[에랑스 왕가의 암흑검이 당신의 육신을 암흑의 기운으로 물들입니다.]

[굶주린 혼돈의 힘이 저항에…]

[……]

-쿨럭, 쿨럭!

필립 3세는 공격을 날리고 나서 비틀거렸다.

부서지기 직전의 언데드 육신이 공격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다.

스미스가 감탄하며 외쳤다.

“이 정도로 강할 줄은 몰랐습니다! 언데드가 되고 나서 힘을 감추고 계셨군요!”

살아 있는 국왕으로 얌전히 위장하고 있을 때는 몰랐지만, 언데드로서 힘을 완전히 드러내자 필립 3세는 막강한 강력함을 뿜어냈다.

물론 하늘섬 랭커들한테는 스미스가 조롱하는 걸로 들렸다.

“이 자식이 어디서 시치미야! 네가 언데드로 만들어놓고!”

“죽어라, 스미스!”

퍼퍼퍼퍼퍼퍽!

스킬이 연달아 불을 뿜었지만 스미스는 멈추지 않고 전진했다.

거대한 방패로 몸을 가린 채 여러 개의 팔로 차근차근 붙어오는 랭커들을 날려 버렸다.

요새 그 자체의 모습.

태현은 따라붙으면서 외쳤다.

“케인, 괜히 시선 끌 필요 없다. 같이 빠져나가!”

“알겠다!”

케인은 고민하지 않고 달렸다. 어떻게든 필립 3세를 들고 나갈 생각이었다.

자칫하면 목표가 그대로 사라질 상황이었지만 스미스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래봤자 헛수고입니다. 김태현 선수. 필립 3세는 반드시 잡아갈 생각이니 말입니다.”

스미스는 아이템을 꺼내더니 그대로 발동시켰다.

[굶주린 혼돈의 힘으로 <에랑스 왕가의 피로 새겨진 장막>이 발동됩니다!]

[에랑스 왕국의 왕족들은 이동할 수 없습니다!]

촤아악!

검붉은 장막이 펼쳐지더니 주변을 완전히 둘러쌌다.

태현은 메시지창을 읽고 얼굴을 굳혔다.

‘큰일 났다!’

스미스가 저렇게 말하는 걸 보니 정말로 뚫고 나갈 수 없는 상황이 분명했다.

아주 작정하고 준비해 온 것이다.

“저런 결계를 어떻게 준비해 왔는지 궁금하실 겁니다. 김태현 선수께서 에랑스 왕국을 불태우고 몇몇 영지를 점령하는 동안, 전 왕국의 남은 왕족들을 모조리 붙잡았습니다.”

“캐인도?!”

듣고 있던 케인이 깜짝 놀라 외쳤다.

왕국의 4왕자, 캐인도 설마?!

“그런 왕자도 있었습니까? 모조리는 아니고 쓸 만한 왕족들은 모조리 붙잡았다고 바꾸겠습니다. 힘든 퀘스트였지만 보람은 있었습니다. 덕분에 더 강해질 수도 있었고, 이런 아이템도 준비할 수 있었으니까요. 다른 사람들은 굳이 이런 아이템을 준비할 필요가 있냐고 했지만….”

사실 이런 식으로 국왕 하나만 가두는 아이템은 낭비 중의 낭비였다.

그냥 가서 잡으면 되지 귀한 제물 갖고 뭐하는 짓이란 말인가.

하지만 스미스는 이 아이템을 고집했다.

왠지 이럴 것 같아서!

“김태현 선수라면 방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미친놈 아니야 이거?”

케인은 어이가 없었다.

그딴 이유로 저런 귀한 아이템과 공적치 포인트를 낭비하다니.

머리가 어디 나쁜가?

“실제로 효과가 있지 않습니까?”

“…….”

케인은 입을 다물었다. 치사하게도 맞는 말이었던 것이다.

“장막을 뚫고 나갈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어차피 이쪽은 시간만 벌면 되니 말입니다. 장막이 뚫리는 것보다 다른 군단장들이 먼저 올 겁니다.”

스미스는 재수 없을 정도로 여유로웠다.

지금 상황이 상황인지라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굶주린 혼돈의 군단장들이 이쪽으로 오고 있는 데다가 왕국의 기사단장들은 다른 적들에게 발목이 묶인 상황.

어떻게 해도 상황을 뒤집을 방법은 보이지 않았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이를 갈았다.

‘저 자식…!’

‘저번에 겪은 패배를 제대로 설욕하겠다 이건가?’

스미스의 퀘스트 승리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전리품이 되어야 하나 싶어서 모두 절망하고 있을 때, 스미스가 기겁해서 비명을 질렀다.

“안 돼!!!”

푹!

“???”

“뭔….”

태현이 필립 3세를 찌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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