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696화
태현이 데리고 다니는 펫에 대해서 예전부터 말이 많기는 했다.
-김태현 펫 되게 귀여운데 뭔지 아시는 분?
-아마 교단에서 주는 드래곤 계열 펫 아닐까요? 드래곤 피가 섞인 와이번이라거나 드래곤 피가 섞인 드레이크….
-이래서 초보자들은. 드래곤 피가 무슨 동네 뒷산에 굴러다니냐?
-내가 보기에는 특수한 와이번임.
-아니 드레이크라니까.
-저번에 김태현 바실리스크 데리고 다니는데 특수한 바실리스크 아닌가?
그런데 지금 보이는 건….
어….
진짜 드래곤 아니야??
“김태현 선수!”
“!”
태현은 달려오는 플레이어들을 보고 반색했다.
하늘섬 플레이어들 중에서도 굶주린 혼돈에 맞서 싸우려는 놈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다비한테 부탁해서 연락을 최대한 돌리긴 했는데 이렇게 나올 줄이야.
“다들 고맙군.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는데.”
“굶주린 혼돈 때문에 지금 하늘섬 레이스가 거의 멈췄는데 당연한 거 아닙니까?”
“저번에 김태현 선수가 세운 기록은 아직도 전설입니다. 제가 거기에 그나마 좀 가깝지만….”
“이 미친놈이 뚫린 입이라고 되는 대로 지껄이고 있네. 누구 마음대로 가깝다는 거냐?”
“김태현 선수. 오신 김에 한 번 더 레이스 하시죠?”
“…….”
일행은 질린 눈으로 자리에 모인 하늘섬 플레이어들을 쳐다보았다.
레벨도 직업도 길드도 다 다른 놈들이 용케 이렇게 모였다 싶었는데….
이렇게 보니까 공통점 하나가 확 느껴졌던 것이다.
‘하늘섬 레이스 중독자들이잖아!’
탈것 하나에 모든 걸 걸고 스피드와 스릴을 즐기는 플레이어들.
하늘섬은 레이스가 유명한 만큼 이런 미치광이 플레이어들이 많았다.
“미안하군. 지금 레이스를 할 때가 아니어서.”
“맞아. 지금 그런 말을 할 때냐?”
케인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중앙 대륙은 대륙이 망하느냐 안 망하느냐로 하루하루 살벌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데 이 하늘섬 놈들은 여유롭게 레이스나 하고 있었다니.
그러나 하늘섬 플레이어들에게는 케인의 말이 더 어이없을 뿐이었다.
“여기서 가장 레이스에 미친 사람을 뽑으면 김태현 선수인데….”
“맞아. 우리가 누굴 보고 따라 하고 있는데.”
저번에 태현이 퀘스트를 깨기 위해 하늘섬 레이스에서 미친놈처럼 독주를 하던 바로 그때.
하늘섬 플레이어들은 그때를 기억하고 있었다.
-아, 저 사람은 참 질주를 좋아하는구나!
“솔직히 레이스 하고 싶으신데 저런 놈들 눈치 보는 거 아니야?”
“떼어놓을 거 그랬나?”
수군거리는 하늘섬 플레이어들.
태현 일행은 반박할 틈도 없었다.
굶주린 혼돈의 다음 군대가 저 멀리 구름을 뚫고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움직입시다! 저희가 길을 안내하겠습니다!”
“각자 나뉘어서 놈들을 유인해! 느리게 움직였다가 잡히는 놈 있으면 게시판에 사과문 올려라!”
“너희 신난 거 아니지?”
태현의 질문에 하늘섬 플레이어들은 못 들은 척 움직였다.
쉬이이익!
미친놈처럼 계속 하늘만 질주한 덕분에 하늘섬 플레이어들의 조종 실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일부는 적들을 유인하고, 일부는 적들을 혼란시키고, 일부는 태현 일행에게 지름길을 안내!
“앞에서 바람을 막아드려!”
[바람의 가호가 당신의 등을 밉니다. 속도가 빨라집니다!]
[…]
[…]
이건 확실하게 빠져나갔다 싶었을 때, 새로운 적이 나타났다.
-아키서스 교단의 교황 놈. 하늘섬에 올 줄은 몰랐는데! 내가 오늘 공을 세우게 되었구나!
[굶주린 혼돈의 전령, 페디데스가 당신을 쫓기 시작합니다.]
[전장의 바람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
[……]
날개 달린 하늘섬의 전사 왕국, 가루다 왕국에서도 배신자는 나왔다.
바로 페디데스가 그런 놈이었다.
하늘섬 플레이어들은 페디데스에게 한이 쌓일 대로 쌓였는지 이를 갈았다.
“김태현 선수. 놈을 조심하십시오! 무서울 정도로 강하고 또 비열한 놈입니다!”
“놈의 계략에 당해 쓰러진 사람이 한둘이 아니에요!”
“어떤 적이길래?”
태현은 의아해했다.
굶주린 혼돈 관련 하수인들을 몇 번 상대해 봤었지만, 그들보다 더 강하고 비열하다니.
얼마나 사악한 심성을 갖고 있는 것일까?
…그 답은 곧 나왔다.
-아키서스 교단의 교황 놈. 하늘섬의 하늘에 대고 일대일 경주를 신청한다. 네놈이 겁쟁이가 아니라면 받아들이겠지!
[굶주린 혼돈의 전령, 페디데스가 경주를 신청합니다!]
[승리할 경우…]
[……]
[……]
“저런 비열한 자식!”
“…어, 잠깐. 경주 신청하는 정도면 뭐 비열한 것도 아니지 않나?”
태현은 당황했다.
저 정도는 다른 놈들과 비교하면 딱히 비열한 수준에 들어가지도 않는 것 같은데?
“경주하는 방식이 비열합니다!”
‘자기들도 경주할 때 온갖 스킬 다 써놓고 뻔뻔하군.’
* * *
“에랑스 왕국 플레이어들이여 일어나라! 잃을 것은 사슬뿐이다!”
“지금 안 싸우면 나중에는 싸울 기회도 없게 된다!”
왕국 기사들이 각자 깃발을 들고 일어서자, 병사들이 구름처럼 몰려들기 시작했다.
거기에 원정대 플레이어들도 같이 참가해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생각보다 엄청 모인 거 아닙니까? 에랑스 왕국 역시 근본이 있는데요?”
“솔직히 아직은 좀 부족하지. 왜 국왕이 도망쳤겠어.”
“플레이어들이 더 모여 줘야 하는데….”
파티장들은 굶주린 혼돈 쪽 게시판들을 확인했다.
-에랑스 왕국에서 지금 싸우겠다고 모이는데 괜찮은 거 맞나요?
-곧 굶주린 혼돈한테 제압당할 듯.
-굶주린 혼돈 군단이 몇 개인데… 아무리 기세 좋아도 별 의미 없음.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신경 쓰지 않는 척하려 애쓰고 있었다.
솔직히 에랑스 왕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눈엣가시 같은 일이었다.
더 무서운 건 여기서 잘못되면, 굶주린 혼돈에 가입한 것 자체가 망할 수도 있다는 것!
그걸 피하기 위해서라면 무조건 원정대가 져야 했다.
“야. 리플 달자.”
-굶주린 혼돈 망한 듯… 군단 다 어디 감?
-워낙 욕심이 많아서 제때 오지도 못한다니까. 굶주린 혼돈 군단 오려면 몇 년은 걸릴 듯.
-너 굶주린 혼돈에 가입한 플레이어 맞냐? 왜 이렇게 부정적이야?
-너야말로 굶주린 혼돈 가입했으면 냉정하게 상황을 볼 줄 알아야지 무작정 잘 될 거라고 말하는 게 옳은 선택이냐?
-난 굶주린 혼돈 탈퇴함… 아키서스 교단 가입해서 페널티 줄여본다. 너희들도 굶주린 혼돈 탈퇴해라.
-몇몇 랭커들만 배 불리는 일이지.
“생각보다 잘 되는데?”
파티장들은 반색했다.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이 웅성거리는 걸 보니, 나름 불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었던 모양이었다.
-난 굶주린 혼돈 탈퇴해서 사디크 교단 찾아가려고. 옛날에 사디크 교단 좀 활동했다가 탈퇴했었는데 요즘 후회됨.
└이 사람 괜히 거짓말 치면서 사람들 관심 즐기는데 차단하죠.
└차단함.
└어, 어째서?! 진짜인데…!
그 와중에 죄 없는 플레이어가 몇 명 게시판에서 쫓겨나긴 했지만….
[에랑스 왕국의 기사들이 평원으로 모이고 있습니다!]
[굶주린 혼돈의 힘이 약해집니다!]
[……]
[……]
-놈들이 건방지게 까불고 있군.
원정대가 계곡에서 기어 나오자, 다른 곳에 있던 굶주린 혼돈의 군단들도 맞서 싸우기 위해 평원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시커멓고 어두운 기운을 뿜어내는 중갑옷으로 무장한 정예병들이 지축을 흔들며 나아가는 모습은, 굶주린 혼돈에 반감을 갖고 있던 플레이어들도 겁에 질리게 만드는 위압감을 풍겼다.
[굶주린 혼돈의 기사, 베르게르니가 기사단을 이끌고 합류합니다!]
베르게르니.
에랑스 왕국 플레이어라면 누구나 알 만큼 유명한 기사 NPC였다.
그런 기사 NPC였지만 굶주린 혼돈의 힘에 굴복해 기사단을 이끌고 넘어간 것이다.
[굶주린 혼돈의 기사, 오베릭이 기사단을 이끌고 합류합니다!]
오베릭 또한 마찬가지로 유명한 기사 NPC였다.
원래 굶주린 혼돈의 군단은 정말 천차만별로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었다.
어느 곳에서는 짐승 군단, 어느 곳에서는 오크 군단, 어느 곳에서는 악마 군단….
에랑스 왕국에 있는 굶주린 혼돈의 군단은 기사와 중보병들로 구성된 최정예 군단이었다.
고대 제국 시절부터 활약해 온 무감정한 병사들이 굶주린 혼돈의 명을 받아 싸우는 것이다.
그에 맞서서 원정대 전력도 비슷했다.
에랑스 왕국의 기사들과 기사들을 지원하기 위해 모인 수많은 원정대 플레이어들.
[왕관 평원에서 거대한 세력의 전투가 시작됩니다!]
[지속적으로 상대에게 피해를 입히십시오. 공적을 쌓을 경우….]
[……]
[……]
[……]
최근에 본 적 없는, 보기 드문 거대 세력의 정면 대결.
아직 전투 한 번 일어나지 않았지만 서로 노려보고 있는 양쪽의 분위기는 금세라도 끊어질 것처럼 긴장으로 팽팽했다.
과연 누가 먼저, 어떻게 공격할 것인가?
* * *
[용용이가 마법을 시전합니다.]
[거대한 마력이 깃털 바람으로 변해 속도를 올립니다!]
“용용아, 달려라!”
-알겠다, 주인이여!
[굶주린 혼돈의 전령, 페디데스가 가호를 시전합니다.]
[속도가 올라갑니다!]
‘낭티오네를 데리고 올 거 그랬나?’
태현은 중앙 대륙에 남아 있는 에랑스 왕가의 공주를 떠올렸다.
왕국 퀘스트 때문에 남겨놓고 왔지만, 낭티오네는 타고난 탈것이었다.
물론 인간 상태일 때는 별 볼 일 없지만, 저주를 받아서 바실리스크 상태일 때는 차원이 달랐다.
하늘섬의 수많은 적수들을 무너뜨리고 승리했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레이스의 패왕!
태현의 기계공학 개조는 그런 낭티오네를 한결 더 강하게 만들어줬다.
[카르바노그가 어지간해서는 뭐라고 안 하지만 그 개조는 좀 이상한 것 같다고 말합니다.]
‘그런가?’
[굶주린 혼돈의 전령, 페디데스가 구름을 불러옵니다!]
[당신의 시야가 가려집니다!]
[……]
-저런 짜증 나는 놈!
태현을 태우고 질주하던 용용이가 분노했다.
저 가루다 전사는 정말 보기 싫은 짓만 골라서 하는 놈이었다.
그런 주제에 잽싸서 계속 용용이를 따돌리고 있으니 화가 날 수밖에.
“걱정 마라. 용용아. 어차피 경주가 중요한 게 아니니까.”
-그게 무슨 소리인가?
“적당히 시간 끈 다음에 놈을 잡을 생각이거든.”
물론 경주에서 이기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태현은 그걸 곧이곧대로 받아줄 생각이 없었다.
경주가 시작되자 태현은 다른 일행에게는 빙 돌아서 경로에 매복하라고 명령했다.
기회가 생기는 순간 페디데스는 죽은 목숨이다!
“김태현, 죽어라!!”
“네 목을 가져가면 시련 몇 개는 그냥 돌파다!!”
“!?”
그때 갑자기 저 멀리 구름 속에서 굶주린 혼돈의 플레이어들이 뛰쳐나왔다.
태현은 살짝 감탄했다.
‘페디데스 이 자식. 나하고 똑같은 생각을 하다니… 비열하다는 평가를 들을 자격이 있군.’
-감히 이게 뭐 하는 짓이냐!!!
그러나 페디데스는 극노했다.
달려오는 굶주린 혼돈의 플레이어들에게 공격을 퍼부을 정도로!
“페, 페디데스 님! 저희는 도우러 왔…”
-닥쳐라! 신성한 경주를 방해하려고 하다니!
“…….”
듣고 있던 태현은 살짝 찔렸다.
-놈은 비록 아키서스 교단의 교황이지만, 나는 당당히 맞서서 놈을 꺾겠다. 너희들은 방해하지 마라!
“죄, 죄송합니다.”
“저희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경주에 방해가 있었군. 다시 한번 붙어보자. 아키서스 교단의 교ㅎ….
말하던 페디데스는 멈칫했다.
잠깐 멈춘 사이에 태현이 페디데스를 추월하고 앞으로 미친듯이 거리를 벌리고 있었던 것이다.
-…….
아…!
승부에는 봐주는 게 없지!
[카르바노그가 훌륭한 스포츠맨십이라고 감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