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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1694화 (1,693/1,826)

§ 나는 될놈이다 1694화

진짜 일부러 한 거 아니야…!

하지만 태현은 변명할수록 스스로가 궁색해진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악마 공작들을 회담에 끌어내서 같이 싸우기 시작했는데, 태현과 사이가 안 좋은 악마 공작들이 하나씩 사라진다?

…케인이라도 ‘야 이건 솔직히 노렸네!’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후계자. 굶주린 혼돈의 힘은 강력합니다. 그런 만큼 단 하나의 힘으로만 상대할 수는 없습니다. 먼 옛날, 아키서스께서도 여러 힘을 동원하셨다고 합니다.

“하긴 일대일은 무리겠지.”

-예. 흔히 세간에는 아키서스께서 골드 드래곤 종족을 속였다는 소문이 돌아다니지만, 그건 아무것도 모르는 자들의 헛소리입니다. 골드 드래곤들의 장로와 대륙을 지키기 위해 손을 잡은 겁니다.

“…어? 그랬어?”

-모르셨습니까?

[카르바노그도 깜짝 놀랍니다!]

“아니. 짐작은 하고 있었지.”

태현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물론 지금은 과거보다 더 힘들 겁니다. 대륙의 신들도 사라지고 그들이 남긴 힘과 연결도 미약해진 상황. 천사들도 오기 힘들 테니 말입니다. 게다가 드래곤들의 숫자도 많이 줄었으니….

‘왜 꼭 과거보다 더 난이도가 올라가는 걸까?’

태현은 의문을 품었다.

꼭 이런 퀘스트가 나오면 ‘과거보다 난이도가 올라갔습니다 ㅎㅎ’란 설명이 붙었다.

그동안 다들 열심히 영차영차 준비해서 ‘과거보단 쉬울 거예요’라고 해도 되지 않나?

불평한다고 해서 별 소용은 없었지만 저절로 불평하게 되는 불합리함!

-하지만 아직 방법은 있습니다. 가능한 힘을 모두 모으십시오. 왕국의 왕관들로 나눠진 고대 제국의 힘. 아키서스 교단 후계자로서의 힘. 극한에 도달한 스킬의 힘. 악마왕으로서의 힘.

“그래.”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멈칫했다.

응?

“악마왕으로서의 힘?”

-예. 무슨 문제라도?

“아니… 그게 모은다고 모아지는 힘인가?”

-지금 악마 공작들을 모아서 제거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대로 가시면 됩니다.

“…….”

오해라니까!

<잊혀진 악마왕의 후계자-마계 악마왕 퀘스트>

고대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악마 공작들이 가장 강력한 존재, 악마왕이 되고 싶어 했지만 어느 누구도 되지 못했다.

악마왕의 자격은 악마왕의 숨겨진 유물을 찾는 것도, 가장 강한 악마 공작이 되는 것도 아니다.

악마왕의 자격은 악마 공작들을 진심으로 굴복시키고 그 인정을 받는 데에 있다.

악마왕의 탄생에 관여한 아키서스의 후계자로서, 새로운 악마왕의 자리에 진심으로 도전하라!

보상: ?, ????

퀘스트 등급: 전설

‘아니.’

오해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오는 퀘스트창에 태현은 황당해했다.

황당한 점이 너무 많아서 뭐부터 지적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악마왕의 후계자 퀘스트를 깨라고 진지하게 제안하는 것도 그렇고, 악마왕의 조건이….

‘뭐? 악마 공작들에게 진심으로 인정을 받아? 미쳤나?’

[카르바노그도 제정신이 아닌 퀘스트라고 말합니다.]

악마 공작들에게 진심으로 인정을 받으라니. 어처구니없는 퀘스트였다.

악마왕이 한동안 없었던 것도 이해가 갔다. 저런 퀘스트를 어느 누가 깨겠는가.

‘그보다 이런 걸 알려줄 거면 미리 말해줬어야지. 지금 악마 공작 여럿을 보내버린 다음에 저런 소리를 하면….’

태현은 어이가 없었다.

미리 말해줬어야 악마 공작들하고 친해지기라도 하지, 지금 악마 공작 몇이 죽고 한 놈은 이상한 개조를 시켜놨는데….

‘음. 근데 생각해 보니 그리 나쁜 상황은 아니군.’

따져보니 악마 공작들이 죽은 게 그리 안 좋은 건 아니었다.

설득 안 될 바에는 죽는 게 차라리 낫지 않겠는가.

괜찮은데?

‘남은 악마 공작들한테만 인정을 받는다면… 어떻게 인정받을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고민해 보도록 하지.”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후계자.

파브겔은 검을 들더니 갑자기 태현 뒤에 떨어져 있던 플레이어를 거세게 공격했다.

먼저 와 있던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는 방심하고 있다가 그 공격을 그대로 맞고 나뒹굴었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장비의…]

[……]

[……]

“으아아악!”

“뭐, 뭐하는 거야!!”

플레이어들은 당황해서 외쳤지만 태현은 파브겔이 왜 저러는지 알 것 같았다.

-아키서스 교단도 아닌 놈들은 죽어라.

“미친놈이 진짜!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냐!!”

플레이어들은 아직 멀었다.

원래 진짜 미친 사람 상대로는 저런 협박이 안 통하는 것이다.

그걸 먼저 알아채고 다른 식으로 대응해야 하는데….

[HP가 0이 되어 로그아웃…]

[……]

[……]

“김태현!!! 아까는 같이 싸우자면서!!”

“어?”

플레이어들이 간절하게 태현을 불렀다. 물론 태현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생각이 바뀌었어. 열심히 싸워봐라.”

“…저 저 저 개….”

“항복! 항복!”

[항복합니다!]

[……]

[……]

드디어 눈치 빠른 플레이어가 항복을 외쳤다. 파브겔은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항복으로 끝인가?

“네? 아… 아! 아키서스 교단 다시 믿겠습니다!”

-그래. 그러면 저쪽으로 가라.

“…….”

“…….”

자리에 모여 있는 플레이어들은 태현을 노려보았다.

이거 김태현 이 새끼가 파놓은 함정 아니야??

‘굶주린 혼돈 시련인데 이런 식으로 함정이 있는 게 말이 돼?’

‘아무리 생각해도 김태현 놈 수작 같은데???’

* * *

[필립 3세가 만족합니다!]

[보상이 주어집니다!]

[……]

[……]

[……]

“오오…!”

“괜찮은데??”

에랑스 왕국 국왕의 퀘스트를 끝낸 원정대 플레이어들은 감탄했다.

그냥 가짜 싸움만 했는데 이런 후한 보상이라니.

이 퀘스트….

괜찮다!

“다음에 언제 싸우러 갑니까?!”

“한시라도 빨리 김태현 선수를 공격하고 싶습니다!”

“김태현 선수의 목은 제가 베겠습니다!”

남들이 들으면 오해할 소리를, 원정대 파티장들은 신이 나서 외쳤다.

허공에 무기 휘두르고 이렇게 보상을 받을 수 있는 퀘스트가 있다니.

“다들 진정해. 너무 티나게 하면 걸릴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차근차근 빼먹어야지.”

“그, 그렇군요.”

“들키지 않게 조금씩 김태현 선수를 공격하는 식으로….”

파티장들은 벌써 어떻게 실감나게 가짜 싸움을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은 그렇게 생각대로만 흘러가지 않았다.

[굶주린 혼돈의 암살자가 습격을 시작합니다!]

[적들이 계곡에 들이닥칩니다!]

“기습이다!!!”

“다들 이쪽으로 와! 국왕이 위험해!”

“…잠깐, 이거 막아야 하는 거 맞습니까?”

파티장 중 몇몇은 눈치를 보며 이세연에게 물었다.

에랑스 국왕이 든든한 물주긴 했지만 지금은 맛이 간 상태인 것이다.

김태현 선수를 빨리 잡아오라고 외치는 만큼, 차라리 지금 같은 상황에서 먼저 보내는 게 맞을지도 몰랐다.

“…일단 가서 상황을 보자. 적을 보고 판단해도 충분하니까!”

이세연과 랭커들은 계곡 안쪽에 있는 국왕이 머무는 요새로 달려갔다.

벌써 암살자들이 들이닥쳤는지 요새 안팎으로 불과 함께 마법들이 터져나오고 있었다.

-국왕 폐하!

-폐하를 지켜라!

소식을 듣고 달려온 기사 NPC들. 그런 NPC들을 굶주린 혼돈의 주술사들이 막아섰다.

-기사들이 요새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

-굶주린 혼돈의 힘이여, 저들을 묶어버리소서!

[굶주린 혼돈의 주술사들이 꿈틀거리는 해자를 시전합니다!]

[이동 속도가 매우 느려집니다!]

[……]

[……]

“하하하하! 내가 에랑스 왕국 국왕의 목을 땄다!!”

“!!”

발이 묶인 플레이어들 앞에, 요새 위에서 한 명의 랭커가 모습을 드러냈다.

“구오청!?”

“길드 동맹 랭커 놈이 왜?!”

길드 동맹 소속 암살자 랭커, 구오청.

제법 악랄한 행적으로 이름이 높긴 했지만, 레벨이나 아이템에 비해 그 실력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평가가 많았었다.

베이징 파이터즈나 상하이 팬더즈에 입단하려다가 실패할 정도였으니….

원정대에 있던 길드 동맹 간부들은 당황했다.

“구오청! 뭐하냐! 이쪽으로 와!”

“닥쳐, 이 쓰레기들아! 김태현 때문에 길드 동맹이 망했는데 김태현 밑에서 헤헤거리는 놈들!”

“…….”

“…….”

묵직하게 명치를 때리는 원 길드 랭커의 말에 간부들은 울 뻔했다.

하지만 태생적으로 부끄러움을 모르는 쑤닝은 당당했다.

“그러는 네놈은 스미스 놈 밑에 붙냐?? 네놈이 그러니까 인기가 없는 거야! 넌 길드 동맹 랭커들 중에서도 약한 편이었어! 레벨하고 장비 때문에 그나마 껴준 거지! 여기 앨콧을 봐라!”

‘아니 왜 날….’

암살자 랭커, 앨콧은 쑤닝의 애정이 매우 부담스러웠다.

길드 동맹이 망했음에도 불구하고 간부들과 쑤닝은 앨콧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앨콧밖에 없다!

-제가 만약에 게임 접더라도 앨콧한테 전 재산 주고 접을 겁니다.

-그래야지! 앨콧이 해준 게 얼마인데!

앨콧 본인이 태현의 첩자인 만큼 더욱더 부담스러운 애정!

빠드득!

구오청은 앨콧을 보더니 이를 갈았다.

“앨콧 이 자식. 언제나 날 무시하고 업신여겼지.”

“내가 언제…!”

“네놈이 좀 잘나간다고! 아주 충성스러운 척은…! 하지만 네놈의 속마음이 시꺼멓다는 걸 난 알고 있었다!”

‘아니 어떻게 알았지?’

앨콧은 별로 화나지 않았다.

사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길드 동맹 간부들은 극도로 분노해서 외쳤다.

“이런 개자식이 누구를!”

“구오청, 네놈이 저번에 백적성 퀘스트를 할 때 눈물 질질 짜면서 실패한 영상 끝나자마자 파워 워리어에 보내버린다!”

“너 이 새끼 저번에 1:1로 깝치다가 져서 애인한테도 차인 새끼가 앨콧한테 까불어?”

“아, 아니. 다들 진정하세요.”

앨콧은 간부들을 말렸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인신공격은 좀….

하지만 구오청의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었다가 푸르게 물들었다가 변하는 걸 보니, 효과는 확실했다.

“다들 닥쳐! 다들 닥치라고! 이제 앨콧도, 재칼도 내 적수가 아니다. 바로 이 내가! 암살자 랭커들 위에 우뚝 설 시간이다!”

원정대에 참가하고 있던 재칼은 황당하다는 듯이 구오청을 쳐다보았다.

케인이랑 같은 길드 출신이라고 사칭하다가, 태현을 만난 덕분에 아키서스 교단 비전 암살자로 전직한 재칼.

남들은 꽤 높게 평가해주고 있었지만 재칼 본인은 자기 명성이 거품이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왜 나를….’

더 쟁쟁한 놈들이 많은데!

“넌 이 새끼야 사람이 되어라!”

“길드 동맹의 수치 같은 놈!”

“마음껏 지껄여봐라. 국왕은 이제 곧 죽을 테니까.”

구오청은 단검을 들어올렸다. 앨콧은 그 단검을 알아보고 깜짝 놀랐다.

“<푸른 피 살해자의 단검>…!”

“알아보는군! 국왕이 이제 어떻게 될지 알겠지?”

맹독 옵션을 가진, 그것도 귀족이나 왕족 특화 맹독 옵션을 가진 전설적인 단검이었다.

그걸 구오청이 갖고 있다니.

필립 3세가 그 단검을 맞았다면 아무리 마법사들이나 사제들이 회복을 시키려고 해도 희망이 없었다.

“이제 국왕이 죽었으니, 에랑스 왕국은 뿔뿔이 흩어질 거다!”

“아니… 오히려 김태현 선수 밑으로 모이지 않나?”

“좋은 거 아닌가?”

파티장들은 웅성거렸지만 구오청은 눈치채지 못했다. 의기양양하게 웃더니 다른 굶주린 혼돈의 하수인들과 합류해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쫓아! 저 자식! 길드 동맹의 이름으로 용서하지 않겠다!”

“진정하세요. 지금 그럴 때가 아니잖아요.”

파티장들은 길드 동맹 간부를 말려야 했다.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이세연은 멈칫했다.

‘그런데 필립 3세는 언데드라서… 독 효과가 좀 약하게 들어갈 텐데?’

이세연의 예상은 사실이었다.

필립 3세가 비틀거리며 천막에서 걸어나온 것이다.

“폐하!!”

-폐하!!

“암살자를 잡아오겠습니다!”

“김태현 선수도요! 그러니까 보상을 좀 더 넉넉하게!”

-…됐다. 잡아올 필요 없다. 쿨럭.

“???”

-아키서스 교황을… 모셔 와라. 전할 말이 있다.

필립 3세의 말에 쑤닝은 감탄했다.

“이 자식. 제법이군. 저런 속임수를 쓰다니.”

“…….”

이세연의 길드원들은 쑤닝을 한없이 한심하게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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