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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1692화 (1,691/1,826)

§ 나는 될놈이다 1692화

태현 일행은 아직 알지 못했지만, 배신자의 영역에는 먼저 와 있는 플레이어들이 있었다.

굶주린 혼돈의 시련 퀘스트가 좋다는 말을 듣고 깨기 시작한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

“아. 왜 하필 아키서스의 저주냐? 기분 나쁘게.”

“무섭냐?”

“무섭다면 어쩔 거냐? 넌 안 무섭기라도 하다는 거냐? 허세 부리지 마라.”

길드 동맹이 망한 다음, 거기 소속되었던 랭커들은 셋으로 나뉘었다.

먼저 스미스의 화이트 나이트 밑으로 들어간 랭커들.

자존심은 조금 상하지만, 스미스가 새로운 대세라고 판단한 이들이었다.

그리고 반 굶주린 혼돈 원정대에 참가한 랭커들.

김태현보다 스미스가 더 싫은, 굶주린 혼돈에게 한 방 먹여주겠다는 이들이었다.

마지막으로 이쪽에도 저쪽에도 속하지 않고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는 랭커들.

-스미스 밑에 들어가라고? 정신 나갔냐? 그딴 놈 밑에 들어가게?

-김태현 밑에 들어가라고? 너 진짜 정신 나갔냐?????

스미스 밑에도, 김태현 밑에도 들어가기 싫은 이들은 알아서 자기 퀘스트를 했다.

대형 길드 밑에서 단물을 빨긴 했지만 이들도 랭커.

얼마든지 마음만 먹으면 개인플레이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이렇게 맥필처럼 굶주린 혼돈에 조용히 가입해 퀘스트를 깨고 있는 랭커도 있었다.

야만전사 맥필.

길드 동맹에서 이름이 알려진 랭커 중 하나였다.

굵직굵직한 퀘스트나 전투에 참가했던 랭커였지만, 이제는 길드 동맹에서 나와 자신만의 퀘스트를 깨고 있을 뿐.

“나는 별로 안 무서운데.”

“퍽이나 그렇겠군.”

얼음 마법의 달인 리우쑹.

길드 동맹 출신으로 미다스에 갈아탔다가 미다스가 반쯤 망하고 이제는 따로 움직이는 랭커였다.

어쩌다 보니 이 둘은 <배신자의 영역>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것이다.

“배신자의 영역… 맵 이름이 공교롭군그래.”

“그래. 누구를 뜻하는 거 같은데.”

리우쑹은 맥필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 말에 맥필이 기가 막힌다는 듯이 대답했다.

“누가 배신자라는 거냐?! 길드 동맹에서 나온 놈이!”

“누가 보면 누군 끝까지 길드 동맹 소속이었는지 알겠는데.”

“난 길드 동맹이 망할 때까지 충성했어! 넌 도중에 나온 놈이고!”

“망해가는 길드에 끝까지 버티고 있었다는 게 자랑이냐? 보통 자랑이라면 길드를 망하지 않게 했거나, 그 전에 나오거나 하는 게 자랑 아니냐?”

“그러는 네놈은 뭐 대단한 줄 아나 본데, 미다스 망하고 따로 노는 게 네놈 아니냐?”

투닥거리는 두 랭커의 모습에, 뒤에 있던 다른 플레이어들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신진 랭커 중 한 명이 지겹다는 듯이 말했다.

“이봐. 싸울 거면 그냥 밖으로 나가서 싸워.”

“맞아. 이 길드 동맹 출신 퇴물들아.”

“…….”

맥필과 리우쑹은 고개를 홱 돌렸다.

지금 누가 누구한테?

그러나 자리에 모여 있던 다른 플레이어들은 조금도 겁을 먹지 않았다.

자리에 있는 대부분이 랭커거나 준 랭커급 고렙 플레이어였던 것이다.

게다가 굶주린 혼돈의 힘까지 받았으니 더더욱 꿀릴 게 없었다.

만약 길드 동맹이나 미다스가 건재했다면 그 뒤에 있는 세력이 무서워서 시선 깔고 다녔겠지만….

이제 저들은 그냥 혼자 다니는 옛 영광에 취한 랭커들일 뿐.

전혀 무섭지 않았다.

“그렇게 쳐다보면 겁먹을 줄 아쇼?”

“예전처럼 길드 척살령 내리겠다고 해보시든가.”

던전이나 퀘스트 깨다가 길드 동맹한테 협박받고 물러선 경험은 누구에게나 한두 번씩 있었다.

그때 서러움이 생각났는지 플레이어들은 슬금슬금 둘을 싸고 포위하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맥필은 이거 좀 위험하다고 깨달았다.

굶주린 혼돈에 가입한 이상 모두 과거를 잊고 영차영차 할 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니 그럴 리가 없었다.

-그만 싸워라. 머저리들아.

음산한 목소리가 위에서 들려왔다.

싸우려던 플레이어들은 멈칫했다.

앞의 절벽 위에 NPC가 어느새 서 있었던 것이다.

[교단의 배신자, 파브겔을 만납니다!]

[강렬한 존재감이 당신들을 압도합니다!]

[모든 스탯이 내려갑…]

[……]

[……]

‘장난 아니다!’

‘굶주린 혼돈 쪽 NPC라더니 역시….’

플레이어들은 움찔했다. 강할 거라고는 예상했었지만 이 정도로 강할 줄이야.

-너희가 굶주린 혼돈의 힘을 얻기 위해 온 머저리들이냐?

“예….”

“그렇습니다.”

-너희들 중에 아키서스 교단 출신이 있느냐?

“…….”

“…….”

누가 봐도 불길한 질문에 플레이어들이 움찔했다.

야 이거 대답하면 망하는 거 아니냐??

-빨리 대답해라. 거짓말할 생각은 하지도 말고. 어차피 알아낼 방법은 있으니.

“저 아키서스 교단… 출신인데… 그 별로 열심히 안 다녔습니다. 플래티넘밖에 안 됩니다.”

“미친놈아 플래티넘이면 얼마나 퀘스트를 깬…!?”

플레이어들이 눈치를 보며 손을 들었다.

그 숫자가 의외로 많아서 서로 놀랄 정도였다.

“너도 아키서스 교단 믿었냐?”

“많이 믿은 건 아니고 그냥 살짝 시늉만 냈어. 골드 정도.”

“…….”

-됐다. 아키서스 교단 출신들은 저쪽으로 가라.

파브겔은 절벽 왼쪽을 가리켰다. 지목된 플레이어들은 불길해하며 그쪽으로 갔다.

-나머지는 아키서스 교단 출신이 아닌 모양이군. 훌륭하다. 아키서스 교단에 가입해서 좋을 게 하나 없지.

“혹시 아키서스 교단 출신이셨습니까?”

[교단의 배신자, 파브겔이 <아키서스의 채찍>을 시전합니다!]

[강렬한 채찍이 당신을 후려갈깁니다!]

[스킬이 강제적으로 변화합니다!]

[<첫 번째 원시의 대검> 스킬이 <단단해지기> 스킬로 변합니다!]

[HP가 절반 이상 깎입니다!]

[……]

[……]

팍!

강렬한 채찍이 질문을 던진 플레이어를 후려갈겼다.

졸지에 스킬 잃고 HP 깎인 플레이어는 비명을 질렀다.

“안 돼!!”

-안 되긴 뭘 안 되나?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듣고 싶지 않나?

“도와줘! 다들!”

“…….”

“…….”

물론 다른 플레이어들이 도와줄 리 없었다.

뭐가 예쁘다고 도와준단 말인가.

“힘내라.”

“앞으로 NPC한테 어느 교단이냐고 묻지 말고. 그거 되게 무례한 질문이래.”

“이… 개자식들!”

[HP가 0이 되어 로그아웃됩니다!]

[……]

[……]

파브겔은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털어내더니 말했다.

-여기 모인 자들에게 내릴 지시는 하나뿐이다. 힘을 모아 나에게 덤벼라. 나를 꺾는다면 굶주린 혼돈의 힘을 전수해주겠다.

[퀘스트, 굶주린 혼돈의 시련이 갱신됩…]

[……]

[……]

“!”

“만만치 않겠는데?”

플레이어들은 수군거렸다.

파브겔은 생각보다 강해 보였던 것이다.

방금 싸운 걸 보면 재빠르고 가볍게 움직이는 스타일의 전사 같은데….

“일단 움직임부터 깎아야겠지?”

“앞에서 한 명, 왼쪽 오른쪽에서 각각 한 명, 뒤에서 한 명.”

“특수 스킬 뭐가 더 있을지 겁나는데.”

플레이어들의 대화에 맥필은 눈썹을 찌푸렸다.

이상하게 불길했던 것이다.

‘설마 꽝을 뽑았나?’

랭커들 사이에서 ‘꽝을 뽑았다’는 은어가 있었다.

겉만 번드르르하지 실제로는 깰 가능성이 전혀 없는 그런 퀘스트가 바로 꽝이었다.

물론 가끔 어떤 미친놈은 그런 퀘스트를 악으로 깡으로 깨곤 했지만, 일반적으로 그런 퀘스트는 지금 깨라고 있는 게 아니었다.

굶주린 혼돈의 시련 퀘스트는 아직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이 많았다.

각자 어디서 시작하느냐에 따라 진행도 달라진다고 들었고.

이 파브겔이 현재 잡을 수 없는 강력한 NPC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맥필. 뭐 하냐? 왜 대답이 없어? 겁먹었냐?”

“아니. 겁은 무슨.”

맥필은 무심코 그렇게 대답했다.

불안해도 그렇지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었던 것이다.

설마 여기 있는 인원이 다 지진 않겠지!

‘파브겔도 시련 진행인데 그렇게 답 없이 싸우지는 않을 거고.’

* * *

“역으로 생각해 보면, 아키서스 교단 배신자는 오히려 좋을 수 있긴 하겠군.”

“왜?”

“약해 보이잖아.”

“…….”

“…….”

태현의 슬픈 말에 다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다들 이러지?”

“그… 태현 님. 반응하기가 좀….”

“아키서스 교단 NPC들 이상하거나 약한 게 어제오늘 일도 아닌데 왜 다들 그래.”

“그건 그렇지만요. 확실히 아키서스 교단 출신이라면 갖고 있는 스킬들이 태현 님한테 안 통할 수도 있겠네요.”

“그렇지.”

태현은 현실을 받아들이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차라리 다른 교단 배신자보다는 아키서스 교단 배신자가 낫겠지!

“근데 태현아.”

“?”

“나 궁금한 게 있는데….”

최상윤은 목소리를 낮추고 물었다. 태현도 목소리를 낮췄다.

“케인 고발하려고? 케인 안 들리게 하려는 거냐?”

“…아니야! 그리고 그건 들리게 해도 돼!”

‘안 들리게 해 나쁜 새끼들아….’

“별건 아니고. 너 지금 새로 끼고 있는 반지 있잖아.”

“어.”

“그거 베레타르바 교단 반지 맞지? 그, 이다비 선수랑 똑같이 끼고 있는 거.”

“맞아.”

최상윤은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고 다시 물었다.

“근데 내가 알기로 너 저번에 이세연 선수하고도 같은 반지 끼고 있지 않았… 냐?”

“그렇지.”

“…….”

최상윤은 순간 아찔함을 느꼈다.

친구가 미쳤나 봐요!

“그 보통 판온에서 커플링이란 게 무슨 뜻인지는 알고 있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태현은 피식 웃었다.

“똑같은 아이템 차고 있으면 사귀는 사이냐? 그러면 스미스하고 케인은 같은 키메라 종족이라 장비 한두 개 겹칠 텐데 사귀는 사이겠군.”

“그… 그런 일반적인 장비랑 베레타르바 교단 반지는 좀 의미가 다르다고! 아무리 성능이 좋아도 그렇지! 이다비 선수나 그 이세연도 알고 있어?”

최상윤은 진심으로 친구가 걱정이 됐다.

나중에 진실을 알게 된 이다비가 태현에게 화를….

‘아니. 이다비는 안 그럴 거 같고.’

이다비가 태현에게 화를 낼 것 같은 이미지는 잘 보이지 않았다.

펑펑 울 수도….

‘그에 비해 이세연은 확실히 태현을 죽이겠군!’

-반 굶주린 혼돈 원정대, 내분… 충격!

-거기에는 한 선수의 양다리가….

“알고 있는데?”

“?!?!?”

“이거 이다비가 얻어서 나하고 이세연한테 준 거야.”

“…….”

최상윤은 경악했다.

‘이런 미친 사람들…!’

알고 있다면 다행이긴 했는데….

아무리 성능에 집착해도 그렇지 셋 중 아무도 이 반지가 가진 사회적인 의미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인가??

‘하긴 이 자식은 성능만 좋으면 치마도 입고 다닐 놈이었지.’

이세연도 김태현과 비슷한 사람이었고(아무리 본인은 아니라고 해도 최상윤이 보기에 같은 부류였다), 이다비는 셋 중 가장 멀쩡해 보였지만 일단 파워 워리어 길마라는 점에서 절대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리고 평범한 사람은 태현하고 그렇게 오랫동안 같이 다니지 못했다.

“쓸데없는 얘기 하지 말고 싸울 준비나 해. 저기 지금 싸움 시작했다.”

“으… 으응.”

멀리서 싸움이 시작된 소리가 들렸다.

먼저 온 플레이어들이 싸우고 있는 모양이었다.

‘잘됐군. 파악 가능하게 됐으니.’

태현은 먼저 온 플레이어들이 싸우는 걸 보고 견적을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과연 아키서스 교단의 배신자는 어느 정도로 강할까?

“싸워서 깨는 식인가? 다른 놈들이 먼저 깨버리면 어떡하지?”

“만약에 먼저 깰 거 같으면 우리가 뺏자고.”

태현은 즉시 대답했다.

꼬우면 굶주린 혼돈 갖고 와서 덤비든가!

“…….”

“…….”

그러나 일행의 눈앞에 펼쳐진 건 예상과는 좀 다른 광경이었다.

“후퇴! 후퇴!!!”

“졌습니다! 졌다고!! 졌다니까 이 새끼야!!”

파브겔….

생각보다 좀 많이 세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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