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691화
‘하긴 내가 굶주린 혼돈의 힘을 좀… 쓰긴 했지.’
[카르바노그가 좀이 아닌 것 같다고 말합니다.]
원래 독도 잘 쓰면 약이 되고 폭탄도 잘 쓰면 정의의 폭탄이 되듯이 태현은 굶주린 혼돈의 힘을 종종 써왔었다.
폭탄에 살짝 넣으면 제법 효과가 좋은 재료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퀘스트에 참가할 자격이 생길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지만….
“여기가 굶주린 혼돈 시련 퀘스트 맞지?”
“그래. 이게 진짜 핵심 퀘스트 아니냐는 소문이 있어.”
‘왔군.’
태현이 퀘스트창에 의아해하고 있는 사이, 악마들의 무덤에 다른 사람들이 도착했다.
“어? 저놈들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이잖아.”
“저놈들도 깨러 왔나 봅니다.”
팀 KL 선수들은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의 얼굴을 알아봤다.
이번 굶주린 혼돈 관련해서 그렇게 부딪혔는데 못 알아볼 리 없었다.
“뉴욕 라이온즈 분위기가 살벌하다던데.”
소문을 들은 최상윤이 중얼거렸다.
“어떻게?”
“저번에 단체로 굴욕당하고 나서 니 탓이니 쟤 탓이니로 엄청 싸웠다잖아. 코치들도 몇 명 나갔을 정도로.”
“와. 우리는 정말 축복받은 환경에서 게임을 하고 있는 겁니다.”
“…….”
“…….”
정수혁의 말에 최상윤과 케인, 심지어 이다비까지 당혹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방금 그 교과서 읽는 듯한 말투는 뭐지?
“야… 태현이가 옆에 있어도 그렇지 너무 속 보이지 않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좀….”
“훌륭하군. 수혁이가 뭘 좀 안다니까.”
태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참 좋은 환경이야 그렇지?
“그런데 그 싸움은 지금 마무리됐다고 하던데요.”
“그래?”
“네. 스미스 선수가 다시 분위기를 잡았다고 하더라구요.”
“하긴… 저번에 케인화된 거 보니 살벌했지.”
“케인 선수처럼 변했잖습니까.”
“내가 보기에 케인한 건 아무리 봐도 악수인데.”
“…….”
케인은 복잡한 표정으로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었다.
사람 이름을 동사나 형용사로 쓰지 마라…!
“네가 보기에는 어떠냐?”
“스미스? 강하긴 하더라. 계속 그 폼 유지하면 상대하긴 힘들겠던데.”
원래 사람들은 99패 1승이어도 그 1승이 최근이면 1승을 한 사람을 좀 더 높게 쳐주는 편이 있었다.
하물며 0패 1승을 한 태현인 만큼 사람들은 태현을 높게 평가할 수밖에 없었다.
그 1승도 그냥 1승이 아닌,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이 다 같이 덤비는데 칼 한 자루로 전부 썰어버린 1승 아니었던가.
하지만 태현 본인은 상황 파악을 정확히 하고 있었다.
‘숨겨놨던 스킬로 한 번 이긴 것뿐이지.’
전설 검술 스킬 같은 히든 카드를 또 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스미스 본인도 죽은 다음 바로 부활 스킬로 일어났으니 엄밀히 말하자면 진 거라고 하기도 힘들었다.
보는 사람들 눈에는 물론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 전부 썰려나간 차에 스미스도 같이 쓰러졌으니 ‘뭐야 같이 죽었잖아?’로 보일 수밖에 없었겠지만.
이거 관련해서는 스미스가 좀 불쌍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한 번 이미지가 씌워지면 그걸 벗기가 힘든 것이다.
-저는 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바로 부활했고, 그 다음에 반격할 차례였잖습니까. 다른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이 로그아웃당하긴 했지만 그게 제 승패와 관련이 있는….
-응? 뭐라고? 여럿이서 김태현 하나도 못 잡는 선수들이라고?
-…….
논리적으로는 설득이 불가능한 강렬한 이미지!
태현 vs 이세연도 그랬다.
이세연 본인은 판온 1에서 실질적으로 이긴 건 태현이라고 생각했지만, 사람들 기억 속에는 결과만 남았다.
결국 중요한 건 눈에 보이는 결과였다.
2차전에서 태현은 스미스를 상대하지 않고 굶주린 혼돈의 성을 빠져나갔지만, 그걸 스미스가 이겼다고 쳐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처럼.
‘하지만 스미스 놈이 강해진 건 사실이지.’
원래도 레벨 400을 바라보고 있는 최상위권 랭커인데 굶주린 혼돈과 계약해서 닥치는 대로 힘을 늘리고 있었으니 안 강하면 그게 이상한 거였다.
특히 저번 2차전에서 보여준 힘은 살벌할 정도였다.
사기적인 스킬을 쿨타임 없이 연발하며 주변을 몰아붙이던 강력함!
‘물론 케인처럼 키메라 종족으로 갈아탄 건 좀 미친 짓 같긴 한데, 워낙 스펙이 좋아서 그런 것도 커버가 되긴 하는군.’
“결국 이러니저러니 해도 실력이 있으면 길드든 파티든 게임단이든 그 사람 위주로 흘러갈 수밖에 없어.”
태현의 말에 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태현이 케인을 아무리 구박해도 다들 태현의 편을 들어주는 것처럼!
“왜 그런 눈으로 보지?”
“아, 아니. 아무것도.”
“어쨌든 스미스가 그런 식으로 분위기를 다시 잡았다면 뉴욕 라이온즈도 뒤숭숭하겠군. 스미스 놈 자꾸 쑤닝 닮아가는 거 같지 않아?”
‘둘 다 화낼 소리 같은데.’
최상윤은 속으로 생각했다.
스미스도 쑤닝도 태현의 저 말을 들었다면 질색했을 것 같다!
“그러면 저 선수들도 스미스 명령을 받고 온 겁니까?”
“그보다는 아마 스미스가 꼬와서 자기들도 빨리 레벨 업 하려는 생각이겠지.”
굶주린 혼돈 진영 내에서도 경쟁이 치열했다.
누가 더 좋은 퀘스트를 빨리 깨서 강력한 보상을 받느냐?
스미스한테 밀린 선수들이 굶주린 혼돈 시련 퀘스트를 깨러 온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슬슬 칠까요?”
“그럴까? 이다비. 버프 부탁할게.”
<굶주린 혼돈의 시련-굶주린 혼돈 퀘스트>
악마들의 무덤에 자격을 가진 자들이 찾아왔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자격을 가진 자들을 쓰러뜨려라!
보상: ?, ???
“…….”
“…….”
“??”
“뭐야?”
‘저런.’
태현은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의 반응속도를 보며 한탄했다.
태현이었다면 일단 상대방한테 칼 한 방 먹이고 시작했을 텐데!
‘저러니까 스미스한테 못 이기지.’
“이… 이 자식! 지금 날 공격하려고!”
“네가 먼저 배신하려고 했잖아!”
뒤늦게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이 무기를 뽑아 들었다.
퀘스트 내용을 뒤늦게 이해한 것이다.
한 명만이 통과할 수 있다!
“어. 우리도 탈락해야 해?”
“너희는 굶주린 혼돈 퀘스트 참가도 안 했잖아.”
태현은 그렇게 말하며 검을 뽑아들었다. 기계공학자들이 태현에게 속삭였다.
-지금 죽여!
-아니. 조금 이따가 죽여. 놈들이 서로 싸울 때까지.
-그러다가 놈들이 화해라도 하면 어쩌려고? 지금 죽여!
-아니야! 놈들은 화해를 못해!
“…….”
“…….”
태현의 마검을 본 다른 선수들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진짜 마검 같네!
‘저거 계속 쓰다가 태현이 이상해지는 거 아니야? 영화나 만화 보면 그러던데.’
‘저기서 더 이상해질 게 있나?’
“다… 다가오지 마! 다가오지 말라고!”
“너나 무기 내려!”
“지금 날 쓰러뜨리려는 속셈이잖아!”
“정신 차려, 이 멍청한 자식! 같은 게임단 소속인데 설마 공격하겠냐? 허락도 안 받고 그랬다가는 뒷감당은 어떻게 하려고? 침착해! 대화로 해결하자고!”
“그… 그렇군.”
-저런 안일한 놈들! 서로 더 싸워야지!
-내가 뭐라고 했나! 지금 죽여야 한다니까!
마검 안의 기계공학자들은 한탄했다.
자기들끼리 싸울 줄 알았는데 멈추다니!
저러다가 대화로 해결하기라도 하면….
“슬슬 시작해야겠군.”
“갈까요?”
“그래. 잠깐. 가기 전에 쟤 이름이 뭐더라?”
“네퍼 선수요?”
“네퍼군.”
태현은 고개를 끄덕인 다음 뒤에서 걸어 나왔다.
그리고 외쳤다.
“네퍼! 지금 공격하겠다!”
“…???”
네퍼는 갑자기 처음 보는 놈이 처음 보는 곳에서 튀어나오자 당황했다.
너 누군데?
그러나 더 당황한 건 네퍼 앞에 있던 다른 뉴욕 라이온즈 선수였다.
“네… 네퍼 이자식!! 지금 매복까지 시켜놓고!”
“아니야! 모르는 놈이야!”
“헛소리 하지 마라! <갈라크의 표적>, <폐를 찌르는 단검>!”
[<갈라크의 표적>이…]
[……]
“아니라고 했잖아! 이 빌어먹을… <발디드의 바람 화살>!”
콰콰쾅!
팽팽하게 당겨졌던 긴장의 실이 태현의 등장으로 그대로 끊어져 버렸다.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은 서로 무기를 휘두르며 맞붙기 시작했다.
-잘했다! 잘했어!
-역시 우리 후계자답군!
기계공학자들은 그 결과에 대만족했다.
저렇게 싸움을 붙여야지!
“나와서 같이 쳐라!”
태현의 외침이 떨어지자 팀 KL 선수들이 우르르 튀어나왔다.
팔 여섯 개 달린 놈을 본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은 비명을 질렀다.
“김태현이잖아!!”
“멈춰! 공격 멈추라고!”
“너부터 멈춰, 이 자식아!”
“잠깐! 둘 다 계속 싸워라!”
태현은 그렇게 외치며 달려들었다.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은 서로 싸우느라 눈치만 볼 뿐 태현의 접근을 막지 못했다.
덕분에 태현은 쉽게 두들겨 팰 수 있었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추가 효과가 발동합니다!]
[상대방의 갑옷에 균열이 발동합니다!]
[빈틈이…]
퍼퍼퍼퍼퍽!
불꽃이 튀고 태현의 마검이 뉴욕 라이온즈 선수를 난타했다.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은 그제야 공격을 멈췄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이미 진형은 무너진 상태에, 팀 KL 선수들이 완전히 파고든 상태였던 것이다.
[<굶주린 혼돈의 시련> 퀘스트가 완료됩니다!]
[악명이 오릅니다!]
[굶주린 혼돈의 조각을 얻습니다!]
[정보가 추가됩니다!]
<굶주린 혼돈의 시련-굶주린 혼돈 퀘스트>
대륙의 수많은 영웅과 악당들이 굶주린 혼돈의 힘에 경외심을 품고 무릎을 꿇어왔다.
이제 새로 굶주린 혼돈의 힘을 받아들인 당신은 그들을 쓰러뜨리거나 그들에게서 배워야 한다.
교단의 배신자, 파브겔을 찾아가라!
보상: ?, ???, ?????
* * *
“김태현 놈이 굶주린 혼돈 퀘스트 방해하려고 돌아다닌다는데? 뉴욕 라이온즈 놈들이 당했다나 봐.”
“그 자식들은 어떻게 맨날 당하기만 하냐?”
“근데 그 자식들이 대신 맞아줘서 다행이지.”
“하긴 그것도 그래.”
굶주린 혼돈 쪽 플레이어들은 아직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냥 태현이 퀘스트를 방해하려고 돌아다니는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빨리 굶주린 혼돈이 공격 시작해야지 김태현이 저딴 짓을 못할 텐데.”
“솔직히 낭비지. 그거 방해한다고 얼마나 방해가 되겠어. 별로 효과도 없을걸.”
굶주린 혼돈에 가입한 플레이어가 많은 만큼, 시련 퀘스트를 깨면서 김태현을 만날 거라고 진지하게 걱정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김태현이 할 수 있는 일은 기껏해야 퀘스트 시작 위치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기습하는 것 정도인데, 퀘스트 몇 개만 통과해도 김태현이 쫓아오는 건 불가능한 것이다.
퀘스트 시작 위치야 어떻게 유출된 걸 알아냈다 치더라도 그 다음 퀘스트들부터는 정보가 확 줄 텐데 어떻게 알겠는가.
‘김태현도 희한한 짓을 하네.’
‘저번에 스미스한테 도망쳐서 분풀이라도 하는 건가? 그걸 보고 스미스가 김태현 이겼다고 하는 놈들은 없을 텐데.’
‘김태현 속을 누가 알겠어.’
* * *
“교단의 배신자면 아키서스 교단이겠군.”
“에이. 벌써부터 아키서스 교단이라고 확정짓는 건….”
“맞아요. 꼭 아키서스 교단이란 법은 없잖아요.”
태현의 말에 다른 선수들은 꼭 그러리란 법은 없다는 듯이 위로했다.
실제로 그랬다.
교단이 몇 개인데 교단의 배신자가 아키서스 교단 출신이겠는가.
“그런가?”
[카르바노그가 그렇다고 말합니다. 아마 파이토스 교단의 배신자일지도 모른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들으니 또 솔깃해지는 게 사람 마음이긴 했다.
그랬으면 좋겠다!
[배신자의 영역에 발을 디딥니다.]
[아키서스의 저주가 당신을 감쌉니다!]
[아키서스의 화신입니다! 저주가 통하지 않습니다!]
“…….”
[카르바노그가 파이토스 교단의 배신자들이 아키서스의 권능을 훔친 걸지도 모른다고…]
‘됐다. 됐어.’
태현은 한숨을 쉬며 검을 뽑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