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689화 (1,688/1,826)

§ 나는 될놈이다 1689화

“하하. 믿고 있었어요.”

“…….”

그거 전형적으로 안 믿은 사람이 하는 대사 아니야?

-김태현 토벌 퀘스트 진행한다! 다들 모여!

-예? 김태현 토벌 퀘스트를 한다고요??

-시늉만 내는 거야.

-아. 그렇… 왜 그런 시늉을?

-설명하자면 길어! 파티원들 빨리 모이라고 해! 준비해야 하니까!

이세연 쪽 원정대 파티들은 퀘스트를 준비하기 위해 움직였다.

퀘스트 내용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일단 하라면 해야지!

“뭐? 김태현 토벌 퀘스트를 해?”

쑤닝은 길드 동맹 간부들이 갖고 온 소식에 깜짝 놀랐다.

굶주린 혼돈 퀘스트 이후로 가장 놀라운 소식이었다.

솔직히 스미스가 길드 동맹 본진 앞까지 들어왔을 때보다 더 놀랍다!

“그렇답니다!”

“지금 뒤통수를 친다고? 말이 안 되는데?”

“아, 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쑤닝님. 이건 기회입니다!”

“기회고 뭐고 뭐 이런….”

쑤닝은 이세연에게 실망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뒤통수를 때리다니.

자칫하면 서로 공멸하지 않겠는가!

“우리도 빨리 한쪽에 붙읍시다! 둘이 싸우는 건 기회입니다. 그 틈을 타 다시 세력을 키우는 겁니다! 길드 동맹의 원래 길드원들은 기회만 생기면 다시 우리 쪽으로 돌아올 겁니다.”

“…….”

쑤닝은 회의적이었다.

원래 길드 동맹이 박살 났을 때만 해도 ‘다시 부활해서 모조리 쓸어버리겠다’고 이를 갈았지만, 원정대에 참가하고 나서 그 결심은 희미해졌다.

압도적인 현실이 쑤닝 앞에 닥쳐왔기 때문이었다.

길드 동맹 길드원들은 길드 동맹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그냥 길드 동맹이 강해서 거기 들어가 있었을 뿐, 자기 길드라고 애착심을 느끼는 사람은 일부에 불과했다.

길드 동맹에 있을 때는 자기 동전 하나 내기 싫어했던 놈이 원정대 퀘스트에는 전 재산 투자하는 걸 본 쑤닝은 기가 막혔다.

이러는데 어떻게 길드 동맹이 다시 부활할 수 있겠는가.

옛 길드원들한테 모여 달라고 해봤자 대부분이 무시할 게 분명했다.

“쑤닝님!”

“알겠다. 알겠어. 하면 되잖아.”

쑤닝은 내키지 않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길드 동맹 간부들이 저렇게 원하는데 무시할 수는 없었다.

‘이세연 그 자식 더럽게 멍청하군.’

“여러분 뭐하십니까?”

지나가던 파티장이 쑤닝과 간부들을 보며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간부들은 다급히 변명했다.

“아무것도….”

“저희는 그냥 가만히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안 하면 어떡합니까? 퀘스트 준비해야죠!”

“앗. 물론입니다.”

“물론 싸우는 시늉만 내는 거지만, 어서 준비하세요. NPC들이 눈치 챌 수도 있으니까.”

“…???”

“????”

간부들은 귀를 의심했다.

어?

진짜 싸우는 게 아니야?

* * *

태현은 위풍당당하게 성주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밀라느 성주와 카리야스 성주,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귀족 NPC들은 붙잡힌 포로 상태로 태현 앞에 무릎을 꿇었다.

공성전의 승자와 패자만이 연출할 수 있는 모습.

태현의 등 뒤에서는 압도적인 강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아우라가 풍겨 나왔다.

이번 공성전들은 이제까지의 싸움과는 전혀 다른 싸움이었다.

태현은 보통 공성전을 할 일이 생기면 혼자서, 혹은 몇몇의 특수한 NPC만 데리고 성벽을 조용히 넘어서 뒤흔들곤 했다.

아니면 남의 전력을 끌어들여서 도움을 받던가.

어떻게 보면 처절하기까지 한 싸움 방법이었지만, 전력이 부족한 이상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레벨 높은 랭커들로 구성된 원정대 파티들과, 이제는 어엿한 전력이 된 아키서스 교단 NPC들. 거기에 아키서스 포병대와 오크 전사들까지.

말 그대로 정면 승부로 성을 무너뜨리고 점령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전력이었다.

태현도 그걸 알고 있었기에 평소와는 다른 태도로 NPC들을 대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쉬울 게 하나도 없는 거만한 태도!

‘고대 제국 퀘스트 깨려면 위엄을 잡을 필요가 있긴 해.’

태현은 속으로 생각했다.

다 망해가는 교단의 교황이었을 때는 위엄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았다.

일단 살리고 봐야 했으니까!

사실 교황보다는 잡상인에 가까운 사고방식이었다.

-귀족 나으리! 제발 아키서스 좀 믿어보십시오!

그에 비해 지금은 고대 제국 부활 퀘스트를 깨고 있었다.

제국의 후계자를 맡은 사람이 귀족 NPC들 상대로 굽신거릴 이유가 없을뿐더러, 오히려 악효과였다.

<후계자의 위엄-고대 제국 부활 퀘스트>

당신은 고대 제국 부활의 책임을 맡은 후계자로서, 후계자의 위엄을 다른 이들에게 보여줄 의무가 있다.

당신을 반대하는 귀족들을 설득하지 말고 협박하고 굴종시켜라!

그리한다면 당신의 제국의 후계자 스탯은 한 차례 더 성장하리라.

보상: ?, ???

퀘스트도 ‘굽신거리지 말고 강하게 굴복시켜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제 귀족 NPC들도 케인처럼 대할 때가 온 것이다.

-지금 두 왕국의 정당한 지배자시자, 대륙 교단의 교황, 굶주린 혼돈에 맞서는 영웅인 폐하를 뵙는 자리요. 왜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인가!

-맞다, 맞아! 영광으로 알아라!

자리에 모여 있던 기사들과 교단 성기사들이 입을 모아 외쳤다.

옆에 있던 악마 공작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확실히 귀족 놈들이 주제를 파악할 때가 되긴 했지. 기껏 성 하나의 주인이면서 거만하게 굴던 놈들 같으니.

-굴복. 굴복.

사방에서 온갖 살벌한 NPC들이 압박을 넣는데도 성주와 그 밑의 귀족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사납게 대꾸했다.

-시끄럽다! 나는 당당한 왕국의 영주다! 밖에서 쳐들어 온 도적 떼에게 무릎 꿇을 일은 없다!

밀라느 성주의 당당한 외침에, 구경하고 있던 플레이어들은 분노했다.

“저 저 싸가지 없는!”

“야! 니가 굶주린 혼돈하고 싸워봤냐? 싸우지도 않고 배신 때린 놈이!”

“이래서 귀족은 믿어선 안 된다니까! 그냥 처형해 버립시다!”

“다들 진정해라.”

태현은 플레이어들을 말렸다.

“성주. 나는 굶주린 혼돈과 맞서 싸우기 위해 에랑스 왕국의 단결된 힘이 필요하다. 그런데 나를 도와주기는커녕 굶주린 혼돈의 편에 서다니. 그렇게 굶주린 혼돈이 좋은가?”

-말도 안 되는 소리! 굶주린 혼돈의 편에 선 것은 그저 놈의 군대가 강했기 때문이다. 난 굶주린 혼돈을 섬기지 않는다! 고작 그런 이유로 내 성을 공격해서 함락해? 이 비열한 놈! 아키서스 교단의 교황답게 교활하고 사악하구나!

성을 뺏긴 밀라느 성주는 씩씩대며 외쳤다.

굶주린 혼돈이 무서워서 일단 고개를 숙이고 싸움을 피한 건 사실이었지만, 그것 때문에 성이 공격당하다니.

성주 입장에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에 비해 카리야스 성주는 눈치만 보며 입을 다물고 있었다.

먼저 잡혔던 만큼 이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군. 성주를 데리고 가서 설득해라.”

태현은 굳이 자신이 화술로 설득하지 않았다.

아키서스 포병대가 우르르 달려들더니 성주를 끌고 뒤로 가버렸다.

-크아아아아악! 크아아아아아아아악!

“???”

“?????”

얼마나 지났을까.

다시 돌아온 성주는 벌벌 떨며 바닥에 고개를 박았다.

-굶주린 혼돈에 맞서 싸우는 원정대의 위대한 지휘관이시자, 고대 제국의 후계자이신 폐하! 폐하를 섬기겠습니다!

[협박이 성공합니다!]

[화술 스킬이 오릅니다!]

[퀘스트 보너스로 인해 제국의 후계자 스탯이 오릅니다!]

[……]

[……]

태현은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야. 이거 편하군.’

이제까지 귀족 NPC들 한 번 설득하려면 온갖 귀찮은 일을 다 해야 했는데….

이제는 그냥 힘으로 해도 되다니!

[카르바노그가 무슨 타락하는 사람처럼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 * *

[세금이 내려갑니다!]

[창고 안에 있는 아이템이 전부 풀립니다!]

[……]

[……]

[……]

두 성을 손에 넣은 태현은 쉬지 않고 작업에 들어갔다.

사실 작업이라고 해도 별다를 것 없었다. 골짜기에서 했던 짓을 다시 하는 일이었다.

세금 내리고 안에 있던 아이템 풀어서 플레이어들과 NPC들 지원해 주는 것!

‘굶주린 혼돈한테 불만이 있는 만큼 효과가 있겠지.’

“이렇게 퍼주셔도 괜찮겠습니까?”

“남으시는 것도 없을 텐데….”

파티장들은 광장에 몰린 사람들을 보고 당황스러워했다.

공성전은 자원봉사가 아니었다.

그래도 공성전을 지휘한 건 태현인 만큼, 태현이 좀 창고에서 자기 몫을 챙겨 가져가도 될 텐데….

지금 그걸 그냥 싹 풀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영지 스탯이 안 좋아서 저걸 다 풀어줘도 한계가 있을 텐데?”

굶주린 혼돈은 물론이고 공성전까지 했으니 각종 영지 스탯이 모두 내려가 있는 상태였다.

그걸 복구하려면 최대한 풀어주는 게 맞긴 했다. 사람들이 그걸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었다.

돈이 아까워서 그렇지!

“그… 렇긴 한데 아깝지도 않으신가 해서요.”

“골짜기에 비하면 엄청 챙겼는데? 흑자잖아.”

태현은 의아해하며 대답했다.

일단 공성전을 해서 새 영지를 얻었는데, 재정 창에서 [십만 골드가 추가됩니다!] 같은 메시지가 뜨는 것 자체가 매우 고무적이었던 것이다.

-아니, 영지를 점령했는데 내 돈을 안 써도 된다고? 에랑스 왕국은 과연 대단하군! 엄청나게 풍요로워!

“…….”

“…….”

새로 원정대에 참가한 파티장들은 감탄했다.

‘김태현 선수는… 정말 욕심이 없구나!’

‘그래! 이런 퀘스트에서 중요한 건 자기 이득이 아니라 참가한 모두라는 거야!’

그리고 골짜기 출신 파티장들은 속으로 울었다.

‘골짜기 때문에 얼마나 돈을 썼으면….’

‘아탈리 왕국 영지들이 다 개판이라서 지금 감각이 마비되었어!’

하도 아탈리 왕국에서 고생고생하다가 에랑스 왕국으로 오다 보니, 저런 푼돈 갖고서 ‘와 대박이군’하고 기뻐하는 것이다.

골짜기 출신 파티장들은 속으로 울었다.

“지금 사람들 많이 모였으니 건설 퀘스트나 좀 진행하자. 무너진 방어 시설 수리는 물론이고 외부에도 추가 작업을 좀 해놔야 할 텐데.”

지금 밀라느 성이나 카리야스 성은 매우 북적거리고 있었다.

원정대 플레이어들이 대거 들어와서도 있었지만, 굶주린 혼돈한테 해방되었다는 소문이 퍼지자 다른 플레이어들도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굶주린 혼돈한테 점령당한 탓에 정지되었던 각종 거래나 작업들이 다시 진행되고 있는 덕분에 광장은 거의 미어터질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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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공간 없어서 아이템 싸게 팝니다! 빨리 팔고 다른 곳으로 이동할 거니 모두 오십시오!

-식재료 팝니다! 근처 산에서 직접 기른 식재료! 지금 안 구해두면 또 언제 구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예. 퀘스트를 동원하면 다들 올 겁니다.”

“강제로 시키지는 말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파티장들은 확신했다.

강제로 시키지 않아도 모두 모일 것이라고!

* * *

‘강제로 시킨 것 같은데?’

태현은 새카맣게 모여 있는 사람들을 보고 의아해했다.

아무리 봐도 강제로 시킨 게 아니라면 설명되지 않는 동원력이었던 것이다.

“혹시 누가 강제로 시켰나?”

“예?! 아닙니다! 제가 제 뜻으로 온 겁니다!”

‘더 수상한데.’

말 더듬고 당황하는 걸 보니….

물론 상대방은 태현이 갑자기 말을 걸어서 깜짝 놀란 것이었지만, 태현에게는 다르게 느껴졌다.

“김태현 선수! 이세연 선수께서 김태현 선수 토벌을 위해 출발했다고 하십니다!”

“뭐!?”

태현은 깜짝 놀랐다.

설마 일대일 결투 무시하고 이다비 구하러 가서?!

“그렇게 놀라실 건… 그 저번에 말씀하신 가짜 토벌이 시작된 건데요.”

“아아….”

‘이게 그렇게 놀라실 건 아닌 것 같은데.’

태현 본인도 이미 들어서 알고 있으면서 왜 저렇게 놀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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