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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1688화 (1,687/1,826)

§ 나는 될놈이다 1688화

[말라느 성 공성전이 시작됩니다!]

그러나 태현은 정말 진격을 시작했다.

진격 경로에 위치해 있는 성이나 도시 안에 있는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저… 저거 진짜 온다!

-미친놈 아니야? 성을 점령했으면 회복할 시간을 가져야지!

-제가 김태현 선수 팬이지만 이번 공격은 너무 무리한 듯….

다들 방송에 달려가 열심히 안 된다고 달았지만, 태현이 그걸 보고 멈출 리 없었다.

“달려들어! 내버려 두면 또 아무것도 못 하고 끝나버린다!”

[사다리가 걸쳐집니다!]

[사다리가 걸쳐집니다!]

[사다리가…]

[……]

“미… 미친놈들 아니야 저거? 지금 성벽 위에 방어 시설 그대로 있는데 사다리를 걸어?”

[주문서가 작동합니다!]

[지옥의 바람이 성벽을 후려갈깁니다!]

[……]

[……]

“갖고 온 아이템은 무조건 다 써! 공적치 포인트는 챙겨야지!!”

원래 공성전은 이렇게 무식하게 부딪히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의 전력을 탐색하면서, 어디가 약점이고 어느 쪽으로 공격을 해야 할지 차근차근 계획을 짜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각종 공작이나 계략은 덤이었고.

…그런데 지금 태현이 이끄는 원정대 플레이어들은 전술이고 계략이고 다 갖다 버리고 가장 원시적인 방법으로 공격해 오고 있었다.

정면돌파!

무작정 성문을 때리고 성벽을 기어오르는 기세에, 성 안에 있던 플레이어들은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인데도 겁에 질렸다.

안 그래도 방금 카리야스 성이 순식간에 무너진 걸 본 플레이어들이었다. 그 생각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이거 뭔가 있나 본데?”

“진짜 자신이 있어서 이러는 거 아니야?”

이렇게 무모하게 공격을 해오는 걸 보면 상대는 믿는 구석이 있는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다면 공성전이 시작되자마자 이렇게 전력을 다해서 덤벼 오진 않았다.

막히기라도 하면 그대로 공성전 끝인데!

‘혹시 카리야스 성처럼 뒤에서 오는 건가?’

‘아니면 내성이 이미 점령당한 걸지도….’

-모험가들은 성벽으로 와라! 전력이 필요하다!

-성 안의 모험가들은 모두 모여라! 성주님께서 너희의 도움이 필요하시다!

말라느 성의 기사들은 안을 누비며 플레이어들을 불러 모았다.

사실 말라느 성은 지금 상당히 안정적인 상태였다.

성벽 멀쩡하고 성문 멀쩡하고 NPC들 다 멀쩡하고 방어 시설들 제대로 작동하고 있고….

여기에 성 안의 플레이어들까지 합류한다면 충분히 막아낼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플레이어들은 참가하는 대신 뒤로 빠졌다.

“항복! 항복!”

“저희 굶주린 혼돈 그렇게까지 안 좋아했어요!”

“굶주린 혼돈한테 받은 것도 없는데 그냥 배신 때리겠습니다!”

굶주린 혼돈 퀘스트를 많이 진행한 사람은 빠져나올 때도 페널티가 컸지만, 역으로 진행 덜한 사람들은 빠져나올 때도 비교적 수월했다.

성 안에 있다가 강제로 굶주린 혼돈에 가입된 플레이어들이 우르르 배신을 때리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말라느 성 서쪽 성문이 열립니다!]

“??”

공성전이 굴러가는 걸 지켜보고 있던 태현은 갑자기 서쪽 성문이 열리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

‘뭐야?’

태현은 말라느 성을 공격하고 있었지만, 실패할 경우 망설이지 않고 물러설 생각이었다.

애초에 공성전을 무조건 한 번에 끝내려고 하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불리하다 싶으면 얼마든지 후퇴해야 유리할 때 제대로 싸울 수 있는 법.

지금도 원정대가 너무 적극적으로 공격하는 것 같아서 좀 후퇴를 시켜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서쪽 성문으로! 서쪽 성문 열렸다!”

“지금 다들 남쪽 공격하고 있어서 바로 틀기가 힘듭니다!”

“그러면 내가 가겠다. 지금 움직일 수 있는 파티들은 날 따라와라!”

태현은 직접 전력을 데리고 서쪽 성문을 향해 달려 나갔다.

그 뒤를 우르르 쫓아가던 파티장들은 속으로 생각했다.

‘세상에 이런 행운이…!’

‘정면에서 공격하던 놈들은 억울해 죽으려고 하겠는데.’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이렇게 날로 먹을 기회가 찾아올 거라고 누가 예상했겠는가.

아키서스 교단이 정말 괜히 행운의 신을 모시는 교단이 아니었다.

* * *

[<필립 3세의 저항군 요새>를 발견합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

[……]

‘골짜기 안에 이런 곳이…!’

파른 골짜기.

원래라면 에랑스 왕국의 초보자 플레이어들이나 약초 채집을 위해 들어가는 평범한 곳이었다.

그러나 왕국 기사들은 그 골짜기 안에 숨겨진 길을 알았다.

그 길을 따라서 들어가자, 몇만 명은 가볍게 모일 수 있는 넓은 평야가 나타났다.

여기에 숨어 있었구나!

<필립 3세의 저항군-에랑스 왕국 퀘스트>

에랑스 왕가의 왕족과 귀족들은 오랫동안 내려온 왕국의 비밀스러운 장소와 길들을 알고 있다.

파른 골짜기 안의 요새도 그중 하나!

에랑스 왕국의 국왕, 필립 3세는 굶주린 혼돈의 마수에서 탈출해 저항군을 모으고 있다.

이제 필립 3세에게 당신의 도착을 알려라. 뛰어난 모험가의 도착은 언제든지 환영받으리라.

보상: ?, ???

“와… 뭐 이런 곳이 있나?”

“여긴 알아도 들어올 수가 없겠는데.”

이세연과 이다비 쪽으로 모인 파티들은 혀를 내둘렀다.

기사들을 따라서 왔는데도 길을 찾기 힘들 정도였다.

여기서 다시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가는 그대로 미아가 될 것 같았다.

-폐하께서 행차하십니다!

기사의 말과 함께, 나팔소리가 들리고 요새의 문이 열렸다.

원정대 플레이어들은 물론이고 이세연과 이다비도 살짝 긴장했다.

필립 3세라면 판온에서 손꼽히는 왕국의 왕 아닌가.

만날 때 긴장이 안 될 수가 없었다.

“…!”

“저, 저거…?”

“굶주린 혼돈한테 넘어간 거 아니지?”

플레이어들은 당황한 목소리로 수군거렸다.

필립 3세의 모습이 생각보다 너무….

무시무시했던 것이다.

온몸에서 죽음의 기운을 풍겨내며 옥좌에 앉아 있는 모습이, 무슨 지하 던전 최심부에 앉아 있는 리치인지 왕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필립 3세의 퀭한 눈에서 푸른 안광이 번뜩였다.

-잘 왔다… 모험가들이여! 정당한 왕 밑에 제대로 모였구나!

“아, 예.”

“저희가 그런 사람들이죠.”

플레이어들은 일단 필립 3세의 비위를 맞춰줬다.

아무리 그래도 왕 앞에서 ‘사실 우리는 당신을 그렇게까지 섬기진 않아요’라고는 할 수 없었으니까.

-지금 이 왕국은 온갖 배신자들과 타락자들로 가득 차 있다.

“음. 그런 편이긴 하죠.”

-내가 지나치게 관대하고 선량한 탓에! 이 배신자들과 타락자들을 죽이지 않았는데…!

‘필립 3세 굶주린 혼돈 터지기 전에도 꽤 여럿 목 날리지 않았나?’

‘몰라. 자기 딴에는 관대하다고 생각하나 봐.’

언데드가 된 건 숨겨도 행동까지 완전히 숨길 수는 없었다. 필립 3세의 난폭한 행동은 이미 플레이어들에게 소문이 난 뒤였다.

-진짜 언데드 아니야 저거?

-에이… 설마 왕이 언데드겠어? 그냥 좀 흑마법을 많이 쓴 거 아닌가?

플레이어들은 안 들리게 소곤거렸다.

그러던 도중 파티장 중 한 명이 필립 3세의 눈치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그런데 폐하. 지금 굶주린 혼돈과 싸우기 위해서는 모든 모험가들이 힘을 합쳐야 할 것 같습니다만….”

필립 3세의 한탄을 듣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지만, 그보다 더 급한 건 빨리 에랑스 왕국의 전력을 모으는 일이었다.

여기 있는 원정대 플레이어들이 왜 여기 왔겠는가.

별로 이야기 나눠 본 적도 없는 필립 3세를 향한 충성심 때문이 아니라, 굶주린 혼돈 퀘스트를 깨기 위해서인 것이다.

-지금 안 그래도 그 말을 하려고 했다.

“오오…!”

“나서려나 봐!”

그 말에 플레이어들은 반색했다.

필립 3세가 좀 안색이 안 좋아 보이고 언데드 같아 보여도,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구나!

-내 말을 듣지 않고 반역을 일으킨 귀족들.

“굶주린 혼돈에게 넘어갔죠. 아주 나쁜 놈들이에요.”

-반역을 일으킨 왕자들을 아직도 찾아다니는 놈들.

“그것도 뭐 나쁘긴 한 거 같네요.”

-아탈리 왕국의 국왕을 대신 섬기려는 놈들까지!

“!”

“…?!”

태현의 이름까지 나오자 플레이어들은 당황했다.

아니?

-내게는 이 모리배들의 속셈이 똑똑히 보인다! 내 왕관을 뺏어가서 자신의 머리 위에 쓰려는 속셈이겠지!

‘아니 어떻게 알았…?’

이다비는 깜짝 놀랐다.

태현이 고대 제국 퀘스트를 깨기 위해서는 필립 3세와 부딪혀야 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폐, 폐하. 말씀드렸지만 지나친 생각이십니다. 아탈리 국왕은 그럴 사람이 아닙니다!

-아키서스 교단을 이끌고 굶주린 혼돈과 맞서 싸우고 있지 않습니까?

오죽했으면 기사 NPC들 중 몇 명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그러나 필립 3세는 가차없이 기사들에게 팔을 휘둘렀다.

-크악!

-크아악!

-불충한 데다가 멍청하기까지 한 놈들은 필요 없다! 가장 먼저 아탈리 국왕을 잡아와라. 그놈이 날 배신하려고 했으니, 나도 더 이상 봐주지 않겠다!

<필립 3세의 분노-에랑스 왕국 퀘스트>

폭군, 필립 3세는 혼란과 충격으로 인해 예전의 현명함을 잃어버리고 어리석게 분노하고 있다.

그런 필립 3세에게 현재 가장 거슬리는 상대는 바로 아탈리 왕국의 국왕이다.

에랑스 왕국에서 명성이 올라가고 있는 데다가 귀족들의 지지까지 받기 시작한 아탈리 왕국의 국왕을 잡아와라!

그리한다면 필립 3세는 마땅한 보상을 내릴 것이다.

보상: ?, ???

“뭐 이런 새끼가 있어?!”

“그냥 지금 죽여 버려!”

원정대 플레이어들은 격하게 반응했다.

어지간하면 국왕이 준 퀘스트라 솔깃하는 사람이 나올 법한데도, 모두가 격렬하게 반응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 원정대는 사심 하나 없이 굶주린 혼돈과 맞서 싸우고 있었는데, 왕국 구석에 계속 숨어 있던 왕이 뒤통수나 치려고 하다니.

“김태현 선수는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에랑스 왕국을 도와주고 있었는데 저딴 소리를 해?!”

“진짜 NPC 놈들 믿을 게 안 된다니까!”

“…….”

이다비는 살짝 찔렸다.

태현의 고대 제국 퀘스트를 깨려면 에랑스 왕국이 필요하기는 했던 것이다.

유성 게임단 선수들도 분개해서 이세연에게 말했다.

“주장! 저딴 퀘스트는 절대 받지 맙시다! 진짜 쓰레기 같은 놈이네요!”

“응? 퀘스트는 받아야지.”

“?!”

“!!”

유성 게임단에 새로 들어온 선수들은 존경하는 주장의 말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뭐… 뭐라고?

“주, 주장.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어요? 아무리 김태현 선수가 싫으셔도 그렇죠.”

“저런 NPC의 말을 들으시면 안 됩니다!”

“…….”

이세연은 선수들이 오해하는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퀘스트를 받아야 일단 지원을 받을 수 있잖아. 배신하더라도 퀘스트는 받고 나서 배신해야지. …잠깐. 지금 내가 김태현 뒤통수를 칠 거라고 진지하게 걱정한 거야?”

이세연의 말에 유성 게임단 선수들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잠깐 어색한 침묵이 돌았다.

“아니요?”

“그럴 리가요?”

“농담이었죠….”

“…….”

이세연은 무표정한 눈빛으로 선수들을 쳐다보았다.

‘얘네들은 퀘스트 깰 때 가장 앞에서 굴려야지.’

오해와 별개로, 에랑스 국왕이 저러는 건 썩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안 그래도 굶주린 혼돈 때문에 성가신데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이세연은 한숨을 쉬었다.

“결국 배신을 하게 될 텐데, 배신하고 나서 귀찮게 굴까 봐 걱정이야.”

“앗. 좋은 방법이 있는데….”

“?”

이다비의 말에 이세연은 의아해했다.

좋은 방법이라니?

“태현 님하고 짜고 치면서 계속 이겼다고 하면 보상도 계속 받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싶어서.”

이다비는 말하고 나서 살짝 눈치를 봤다.

…너무 졸렬한가?

“그거 정말 좋은 방법이야!”

그러나 이세연은 반색했다.

보상이 복사된다니!

“김태현 선수한테 이기는 역할은 내가 맡을게.”

“…….”

이다비는 살짝 걱정되는 눈빛으로 이세연을 쳐다보았다. 이세연은 자신도 모르게 변명했다.

“당, 당연히 진짜로 공격하지는 않을 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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