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685화
“쫓아옵니다!”
그렇게 함정을 깔아놨는데도 불구하고 기사들은 끈질기게 버티고 빠져나와 추격을 개시했다.
복잡하게 장애물들이 얽혀 있는 숲의 지형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기사들은 앞에 걸리는 장애물들을 닥치는 대로 부숴버리면서 쫓아왔다.
“걱정 안 해도 된다. 아직까지는 계획대로니까.”
팟!
[마차에 아키서스의 축복이 걸립니다!]
곳곳에서 아키서스 사제들이 마차를 몰고 달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튀어나온 마차들의 모습에 쫓아오던 기사들이 경악했다.
-잔수작을!!
-굶주린 혼돈 놈들이 비열하기까지 하구나!
“하하! 꼬우면 굶주린 혼돈한테 따져라!”
-맞아! 맞아!
태현의 외침에 다른 아키서스 사제들도 합창했다.
그 모습에 같이 있던 에랑스 왕국 플레이어들은 황당해했다.
아키서스 교단 NPC들 왜 이렇게 자유롭냐?
* * *
[아키서스 교단의 임시 은신처에 입장합니다!]
“성, 성공한 겁니까?!”
기사들을 어떻게든 따돌려 은신처에 입장하자 에랑스 왕국 플레이어들은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태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끝난 게 아니지.”
마차들로 시선을 현혹시키긴 했지만, 이제까지의 경험상 기사들은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든 찾아오게 되어 있었다.
계속 위치를 바꿔가면서 성주를 고문… 아니, 설득해서 필요한 걸 얻어내야 했다.
“설득을 개시해라!”
-예!
아키서스 사제들은 재빨리 성주를 꺼냈다.
붙잡힌 성주는 정신을 차리고는 외쳤다.
-굶주린 혼돈 놈…!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시끄럽다. 성주! 카리야스 성의 문을 열어라!
-열 것 같으냐! 크아아악!
아키서스 사제들은 어디서 많이 봤던 우리를 꺼내 성주를 가뒀다.
‘저거 악마 가두는 우리 아니야?’
‘아키서스 포병대들이 끌고 다니는 걸 본 것 같은데.’
플레이어들은 궁금했지만 차마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기사들이 접근합니다!]
[경보 장치들이…]
[……]
“!!!”
“이런. 생각보다 빠르군. 지금 움직일 수 있나?”
-지금 시작해서 시간이 필요합니다!
“알겠다. 시간을 벌도록 하지.”
태현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움직였다.
너무 태연해서 플레이어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침착해지는 걸 느꼈다.
어라?
기사들이 여기까지 온 건 별일 맞는 것 같은데….
“괜, 괜찮은 겁니까?”
“생각보다 빨리 오긴 했는데. 어쩌겠나. 싸워야지.”
“여기서 싸울 수 있습니까?”
은신처는 말 그대로 은신처였지, 성 같은 게 아니었다.
성벽도 해자도 없는 상황에서 강한 적을 맞이해서 싸우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닌 것이다.
그 말에 태현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 싸울 자신이 없나? 이 정도는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미안하군. 뒤에 가서 쉬고 있어도 괜찮아.”
“…….”
“…….”
원정대를 이끌고 나서, 태현은 꽤 부드러워진 편이었다.
사람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있는 것이다.
거기다가 대고 ‘너는 왜 못하냐!’라고 하는 건 좋은 리더가 아니었다.
능력이 안 된다면 굳이 억지로 시키기보다는 자기가 싸운다!
…물론 에랑스 왕국 플레이어들에게 저건 어마어마한 굴욕이었다.
나름 길드에서 뽑혀서 온 랭커들인데 무슨 망언을?!
“아닙니다! 싸울 자신 있거든요!?”
“굶주린 혼돈의 전사와 1:1 떠도 안 꿀리는데!”
“아. 그래? 잘 됐군. 그럼 나와서 싸워라.”
“…….”
원래 싸울 생각이긴 했지만 왜 이상하게 속은 기분이 들까?
-기사들이 옵니다!
아키서스 성기사들이 검을 뽑아 들고 외쳤다. 태현은 고개를 끄덕이고 달려갔다.
성벽은 없었지만 은신처도 나름의 방어 장치들은 있었다. 즉석에서 단단하게 쌓아 올린 금속 상자들이 목책 역할을 해주었다.
“위에서 못 넘어오게 해라!”
-굶주린 혼돈의 잡놈들아!
“그러게 누가 믿으랬냐!”
카카캉!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아키서스의 두 번째 공격이…]
[……]
[……]
[……]
은신처 방어 라인 위에서 한바탕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카리야스 성의 기사들은 강력한 방어력을 믿고 방어 라인을 뚫고 들어가려고 했다.
중갑으로 무장한 기사들이 무서운 점은 바로 이런 돌파력이었다.
진형을 강제로 헤집고 들어가서 무너뜨린 다음 주변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탱커-딜러-힐러로 구성된 진형이 무너지는 만큼 바로 지옥이 찾아왔다.
그러나 기사들은 이번에 그러지 못했다.
-아키서스의 축복, 아키서스 화신의 결계!
[아키서스의 축복을 사용합니다!]
[아키서스의 성기사들이 화신의 권능으로 추가 효과를 받습니다!]
[……]
[……]
[……]
태현은 권능 스킬과 화신의 갑옷 스킬을 사용했다.
원래도 강력한 스킬이었지만, 아키서스 교단의 NPC들과 함께하자 그 효과는 더욱더 살벌해졌다.
꽝!
아키서스 교단의 성기사들은 마치 단단한 벽처럼 버텨냈다. 같이 싸우던 플레이어들이 놀랄 정도였다.
특히 구성욱은 더더욱 놀랐다.
‘언제 이렇게 강해졌지?!’
구성욱은 태현과 함께 노예… 아니, 파티 플레이를 한 적이 몇 번 있는 만큼 아키서스 교단 NPC들도 본 적이 많았다.
아키서스 교단 NPC들은 사실 높게 평가하기 힘든 이들이었다.
부활한 지 얼마 안 된 만큼 NPC들의 레벨이 낮고 수준이 떨어졌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모습은 놀라웠다.
철벽 깔고 버티는 것은 물론이고, 검과 방패, 머스킷을 능숙하게 사용해 오히려 적을 밀어내고 있었다.
철커덕, 탕!
-크악!
물론 김태현의 버프를 받은 상태라지만 이 정도로 잘 싸울 줄이야.
‘엄청나게 강해졌구나…! 아키서스 교단!’
탕, 탕! 탕탕!
불꽃이 튀고 아키서스 교단 성기사들이 머스킷을 다시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검과 방패를 들었다.
-이 귀찮은 자들이!
성가신 공격에 근위기사들은 이를 갈았다.
가까이 오면 검과 방패로 싸우고 조금 거리가 벌어지면 머스킷 꺼내서 쏘고….
다른 건 몰라도 확실히 귀찮고 성가신 전투방법이 맞았다.
[아키서스의 축복이 끝납니다!]
[……]
“뒤로 물러서라!”
“어? 그래도 됩니까?”
태현은 축복이 끝나자 망설이지 않고 뒤로 물러섰다.
에랑스 왕국 플레이어들은 그래도 되나 싶어서 당황했다.
방어선 하나를 그냥 내줘도 돼?
“상자 주변에서 떨어져라! 폭발한다!”
“…예?”
무슨 일인지 되묻기도 전에 쌓여 있는 금속 상자 위로 마법 문양이 생겨났다.
[드워프 황금 함정이 발동합니다!]
[안에 들어 있는 폭탄들이 폭발합니다!]
[……]
꽈과과과과과광!
“…….”
“…….”
방금까지 금속 상자를 쌓아서 만든 방어선 위에서 싸우던 플레이어들은 입을 떡 벌리고 경악했다.
이 이 미친 인간이…!
“다음 방어선으로!”
“아니! 아니…!!”
“빨리 움직여!”
에랑스 왕국 플레이어들은 길고 복잡하게 따지는 대신 ‘아니’만 반복해서 말했다.
아니 뭐 이런 게 있어!!
* * *
태현과 플레이어들은 싸우고 시간을 벌었고, 그 틈을 타 다시 성주를 데리고 또 다른 은신처로 이동했으며, 또 싸우고 시간을 벌고….
덕분에 차근차근 심문이 끝난 성주는 결국 자기 조카처럼 입을 열었다.
-크으윽… 굶주린 혼돈 놈들! 그만해라! 마력을 그만 흡수하란 말이다!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
[설득에 성공합니다!]
[화술 스킬이 오릅니다!]
[……]
[……]
“됐군. 다음 귀족 납치하러 가자.”
“…….”
이제 에랑스 왕국 플레이어들은 아무도 당황하지 않았다.
정신없이 싸우고 움직이면서 현실을 뼈저리게 느낀 것이다.
아, 이게 퀘스트구나!
<카리야스 성 공략-카리야스 성 공성전 퀘스트>
카리야스 성주를 붙잡아서 우두머리를 없앴지만, 아직 성의 방어력은 많이 남아 있다.
성주가 쓴 편지들을 이용해서 성의 방어를 맡은 NPC들을 제거하라!
근위기사대장….
……
……
“성 밖에서의 납치와 성 안에서의 납치는 또 다르지.”
“그렇군요.”
“확실히 그럴 것 같습니다.”
구성욱은 변화한 플레이어들의 모습에 놀랐다.
오기 전에 ‘와 김태현 선수와 만나게 되다니’ ‘어떤 퀘스트를 같이하게 될까?’하며 초롱초롱해하던 사람들은 다 어디 가고…?
“성 안에서의 납치가 좀 더 난이도가 높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우리가 힘을 합친다면 충분히 납치할 수 있으니까.”
“예!”
태현은 플레이어들과 함께 카리야스 성 안으로 들어갔다.
굶주린 혼돈에게 점령당한 성이라지만 성 안의 모습은 얼핏 보면 평화로웠다.
그러나 태현은 방심하지 않았다.
‘경보 잘못 울리면 굶주린 혼돈의 하수인들이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지.’
“일단 근위기사대장부터 납치하러 가볼까. 이쪽이군.”
성 안이라서 지도가 있는 건 편했다. 태현은 마치 쇼핑하듯이 일행과 발걸음을 옮겼다.
누가 보면 정말 쇼핑하러 놀러 온 것 같다!
[카리야스 성, 내성 구역에 진입합니다!]
[여기서 더 안쪽으로 들어가려면 작위나 명성, 퀘스트가 필요합니다.]
[주의하십시오! 현재 카리야스 성은 굶주린 혼돈에게 점령당한 상태입니다. 당신의 신분이 발각될 경우…]
[……]
경고창이 떴지만 태현은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정문으로 들어갈 생각은 없었으니까.
-폐하, 폐하!
“…?!”
그때 골목길에서 누군가 태현 일행을 불렀다.
태현은 물론이고 모두 깜짝 놀랐다.
변장을 했는데 알아보다니?
“누ㄱ….”
“없애라!”
“아, 아니. 이야기 안 들어봐요?”
“없애는 게 낫지 않나?”
-폐하! 저희는 폐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태현의 흉흉한 말을 듣지 못한, 골목길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사들이 다급한 표정으로 태현을 불렀다.
“너희는 누구지?”
-저희는 굶주린 혼돈에게 맞서기 위해 모인 기사들입니다. 이 성에는 굶주린 혼돈에게 무릎 꿇은 기사들만 있는 게 아닙니다. 저희처럼 굶주린 혼돈에게 맞서기 위해 모인 기사들도 있습니다! 저희뿐만 아니라 다른 귀족들도 몰래 힘을 모으고 있고… 이렇게 굶주린 혼돈에 맞서 싸우고 계신 폐하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비밀결사-굶주린 혼돈 공략 퀘스트>
에랑스 왕국의 뜻있는 자들은 검을 내려놓지 않았다. 그들은 굶주린 혼돈과 맞서 싸우기 위해 몰래 모여 뜻있는 영웅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 동쪽에서 굶주린 혼돈과 싸우며 고대 제국의 깃발을 다시 들어 올린 당신은 이들에게 강렬한 희망이다!
이 비밀결사와 접촉해 에랑스 왕국에서 반격의 봉화를 올려라!
보상: ?, ???
“!!!”
“김태현 선수! 에랑스 왕국에도 이런 NPC들이 있었어요!”
에랑스 왕국 플레이어들은 뛸듯이 기뻐했다.
그 많고 많던 에랑스 왕국 NPC들이 다 어디로 사라져서 어떻게 찾아야 하나 막막했는데, 이렇게 태현과 같이 퀘스트를 하니 알아서 찾아오는 것이다.
처음에는 태현이 납치만 하고 NPC들하고 접촉은 안 해서 반쯤 포기하고 있었는데, 생각해 보니 태현은 이런 걸 노린 게 분명했다.
이쪽에서 먼저 찾아가면 피할 게 분명하니 저쪽에서 먼저 찾아오게 만든다!
“김태현 선수, 이걸 노리신 거군요! 납치를 해서 계속 사건을 만들면 저 NPC들도 소문을 듣고 이렇게 찾아올 테니까요.”
“하긴, 납치만으로 이 성을 깨는 건 솔직히 힘들겠죠!”
플레이어들은 알아서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태현은 무슨 소리냐는 듯이 반응했다.
“계속 납치해서 성 함락시킬 생각이었는데?”
“…….”
“…….”
“계속 사건 만들어서 NPC들이 찾아오게 만들다니 대단하십니다!”
에랑스 왕국 플레이어들은 자기들끼리 시선을 교환한 다음 이야기를 완성시켜 버렸다.
돌아가서 길드원들한테 이야기하거나 퀘스트 끝나고 인터뷰할 때, 이쪽이 훨씬 보기 좋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