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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1680화 (1,679/1,826)

§ 나는 될놈이다 1680화

지하 통로에서 사랑과 우정, 배신이 반복되고 있는 동안, 위에서도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지하 통로 입구를 사수하려는 원정대 쪽 전력과 다시 뺏으려는 굶주린 혼돈 쪽 전력이 충돌하고 있었던 것이다.

“점점 늘어난다!”

-눈 있고 귀 있는 놈이라면 다 알고 있다. 허튼소리 하지 말고 싸워라!

“…….”

파티장들은 짜증 섞인 표정으로 고대 제국 흑마법사들을 쳐다보았다.

고대 제국 흑마법사들은 확실히 강했다.

각종 키메라 괴수 군단을 불러와서 이 주변 성벽들과 성문에 방어벽을 친 솜씨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짜증이 안 나는 건 아니었다.

‘아오. 짜증 나.’

‘네가 참아. 지금 도움 안 받으면 어쩌려고.’

‘그건 그렇지만 너무 심하잖아.’

-요즘 어린 모험가 놈들은 이래서….

-빨리 빨리 움직여서 저쪽을 막지 못할까! 방어벽이 얇아지고 있지 않나!

“예! 지금 가겠습니다!”

“역시 대단하십니다!”

파티장들이 모두 짜증만 내는 건 아니었다.

그중 흑마법사 파티들은 매우 신이 난 상태였다.

[고대 제국 흑마법사들이 <요새 키메라>를 소환합니다!]

[현재 흑마법 스킬이 낮습니다.]

[<요새 키메라> 소환을 완전히 배우지 못합니다!]

[흑마법 스킬이 오릅니다!]

[……]

[……]

평소라면 만날 수 없는 비전 NPC 상대로 각종 스킬들을 배울 수 있는 시간.

원래라면 연계 퀘스트를 몇 개나 깨도 배울 수 없는 희귀한 스킬들에 대한 정보가 들어오자 흑마법사들은 매우 행복해했다.

“저희가 대신 하겠습니다!”

-흥, 뭘 좀 아는 놈이로구나.

“아닙니다!”

“저 흑마법사들 왜 이렇게 신이 났어?”

“내버려 둬. 잘 싸우잖아.”

네크로맨서 랭커, 트고사는 사방으로 몰려오는 적들을 쳐다보며 생각했다.

‘이 정도라면 레벨 업 3번… 아니, 4번 정도.’

이번 원정대에 참가한 신진 랭커들은 각자 야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굶주린 혼돈에 가입한 플레이어들이 굶주린 혼돈 퀘스트를 깨서 레벨을 올리려는 것처럼, 반 굶주린 혼돈 원정대에 가입한 플레이어들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트고사는 신진 랭커 중 이세연의 라이벌로 뽑힐 정도로 유명한 랭커.

어깨에 힘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특히 저번에 굴욕을 당한 뒤로는 더더욱.

-앗. 네가 트고사였나? 이세연하고 1:1 해볼래?

-예? 예??

-이세연하고 1:1 해보라니까. 라이벌이라면서.

판온 월드컵을 앞두고 태현이 찾아와서 ‘야 니가 그렇게 잘한다면서? 이세연하고 붙어봐’ 하고 다그쳤던 일.

지금 생각해도 무시무시한 일이었다.

평소 무서운 것 없이 굴었던 트고사였지만 태현 앞에서는 얼어붙어서 ‘아니요 저 이세연보다 약해요’ 하고 꼬리를 내렸었다.

지금 생각해도 밤에 이불을 뻥뻥 찰 굴욕이었다.

그때 당당하게 받아들였어야 했는데…!

“어. 김태현 선수가 그때 그렇게 사납게 말했었나?”

“꽤 정중하게 말했던 거 같은데.”

“조용히 해라.”

공포 때문에 트고사는 약간 기억이 왜곡되어 있었다.

태현은 그때 판온 월드컵을 준비하느라 순수한 마음으로 ‘오 이세연하고 라이벌 정도면 잘하나 보다’ 싶어서 말을 건 것이었지만….

“지금 여유가 있어. 공격을 들어가자.”

“!”

트고사의 말에 옆에 있던 흑마법사들이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물론 지금 원정대 전력이 모두 이 주변에 모여서 어느 정도 버틸 만하긴 했다.

굶주린 혼돈의 전사들이 사납게 울부짖으며 달려들어도 그 몇십 배의 숫자로 물고 늘어지니 느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역공이라니.

그래도 되나?

“위험하지 않나? 우리 지금 여기 파악도 못 했잖아.”

“적 얼마나 있는지도 모르는데.”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지. 오히려 강하게 허를 찔러줘야 해!”

“난 싫은데.”

“나도 여기 있을래.”

-헛소리하지 말고 지키기나 해라!

“…….”

NPC부터 플레이어들까지 다 무시하자 트고사는 발끈했다.

‘두고 보자!’

* * *

“…어, 그래서 뭐라고 하셨죠?”

이세연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트고사를 쳐다보았다.

이세연을 호위하고 있던 유성 게임단 선수들은 옆에서 속닥거렸다.

-저 사람 트고사 아니야?

-저번에 기사 봤는데. 이세연 게 섯거라 같은 기사 아니었나?

-저런 싸가지 없는… 감히 어디서 주장한테… 월드컵 우승도 못 해본 게.

“지금 역공을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분위기에 위축된 트고사는 존댓말로 외쳤다.

반말로 외쳤다가는 유성 게임단 선수들이 득달같이 달려들 것 같았던 것이다.

‘쳇. 이세연이나 김태현이나 밖의 이미지랑은 완전 정반대야.’

트고사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둘 다 겉의 이미지는 선량하기 그지없었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였다.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은 짓밟고 나아가는 폭군들!

사실 태현 같은 경우에는 ‘난 이미지 관리 안 했는데 알아서 이런 이미지가 만들어진 건데’ 하고 좀 억울해하긴 했지만….

“역공이라. 다들 가고 싶어 하는 게 맞나요?”

“…그건 아니구, 저 혼자서… 근데 제가 이끌고 있는 언데드 군대가 있으니까 허락만 해주시면….”

“다른 사람도 설득 못 하면서 무슨 역공이야!”

“파티 플레이를 해야지!”

유성 게임단 선수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비난을 시작했다. 트고사의 어깨는 더욱 내려갔다.

이세연은 그만하라는 뜻으로 손을 올렸다. 유성 게임단 선수들의 입이 다물어졌다.

“그 정도는 말 안 하고 해도 상관없을 텐데… 마음대로 해보세요. 실패하더라도 큰 타격은 없을 테고, 성공하면 더 좋겠죠.”

이번 원정대를 이끄는 게 본인이 아닌 만큼, 이세연은 최대한 조심히 행동하고 있었다.

이번 트고사의 제안도 거절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플레이어들의 기세를 살려주는 것도 중요한 일인 것이다.

이세연은 매우 상냥하게 미소 지었다. 물론 트고사한테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비… 비웃고 있어! 실패한다는 건가!? 협박하는 건가?’

트고사는 움찔했다.

“가, 가지 말까요?”

“네? 가세요.”

“안… 안 가겠습니다.”

“아니, 가셔도 좋다니까요… 저기, 이분 좀 도와줄래?”

이세연은 유성 게임단 선수들을 불렀다.

네크로맨서 혼자 역습을 시도했다가 잘못 걸리면 쓰러질 수 있으니, 호위를 붙이는 게 맞았다.

물론 트고사 입장에서는 호위가 호위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괜히 왔어…! 그냥 있을걸!’

트고사는 후회했다.

다른 신진 랭커들처럼 가만히 있으면 절반은 갔을 텐데 하필이면 이세연한테 말했다가!

트고사는 앞으로 김태현이나 이세연 쪽으로는 얼씬도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갑시다. 저희도 심심하던 차였는데.”

“그런데 왜 이렇게 말이 없으시지?”

“나름 주장이랑 라이벌이라 이거지.”

“흥. 얼마나 잘하나 보자고.”

“…….”

유성 게임단 선수들과 같이 걸어가면서 트고사는 침착을 되찾았다.

원래 성질이 더러운 만큼 이세연이 앞에서 사라지자 냉정하게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흥. 너희 같은 놈들보다는 내가 훨씬 강할걸. 보고 있으라고.’

트고사는 지팡이를 꽉 쥐었다.

여기 있는 유성 게임단 선수들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도록 보여줄 생각이었다.

“정지.”

“여기서 시작하시나?”

“해보세요. 기다릴 테니까.”

유성 게임단 선수들은 하품을 하며 트고사를 쳐다보았다. 트고사는 싸늘한 얼굴로 지팡이를 내성 쪽으로 겨눴다.

“칠흑ㅇ….”

쾅!!!!!

굉음과 함께 굶주린 혼돈의 내성이 무너져내렸다.

“…….”

“…대, 대단한걸?”

“뉴스가 나름 근거가 있었나?”

유성 게임단 선수들은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웅성거렸다.

* * *

[<굶주린 혼돈의 내성>에 진입합니다!]

[굶주린 혼돈이 분노합니다!]

“김태현이 내성으로 들어왔다!!!”

탁-

태현은 내성으로 들어오자마자 주변 확인도 하지 않고 미친듯이 폭탄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소식을 듣고 황급히 달려오던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은 이를 갈며 뒤로 물러섰다.

저 미치광이 놈 진짜!!

콰콰콰콰콰콰콰콰쾅!!

[폭발이….]

[사디크의 화염이 추가로….]

[……]

[……]

-훌륭하다 훌륭해!

-아름답다!

마검에서 기계공학자들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지저귀었다.

태현은 남의 성인만큼 신경 쓰지 않고 일단 부수고 박살 냈다. 입구 주변에 버티고 있을 놈들이 있을 테니 치워 버리기 위해서였다.

통로 아래서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은 위에서 들리는 소리에 당황해서 외쳤다.

“김태현 선수! 괜찮으세요!?”

“함정 아닙니까?!?”

“괜찮아! 내가 터뜨린 거다!”

“과연… 어? 그게 괜찮은 거 맞습니까??”

주변의 연기가 얼추 가시자 드넓은 내성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복잡하고 거대한 외성의 구조와 달리 내성의 구조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간단했다.

드넓은 원형 성벽 안에 아무것도 없이 가운데에 위치한 차원문 하나만 존재했다.

물론 구조가 간단하다 하더라도 적들이 없진 않았다. 사방에 설치된 문에서 굶주린 혼돈의 하수인들이 뛰쳐 들어오고 있었다.

“중앙으로 들어간다. 케인! 어그로 끌어!”

“간다!”

케인은 함성을 지르며 앞으로 달려들었다.

사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받쳐줄 탱커도 적은데 그냥 돌진해서 들어가는 건 자살행위처럼 느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케인은 생각하기 전에 행동했다.

하도 많이 든 습관 때문에 몸이 먼저 움직인 것이다.

그 행동이 뒤에 있던 사람들에게는 용감함으로 보였다.

‘대단하다!!’

‘어떻게 저렇게 뛰어들 수 있지?’

케인의 등이 몇 배로 커 보이는 착시가 일어날 정도로, 케인의 돌격은 감동적이었다.

‘어? 잠깐. 나 혼자 가도 되나?’

돌격하던 케인은 멈칫하고 뒤를 힐끗 쳐다보았다.

다른 탱커들 거리가 좀 먼 것 같….

꽝!!!

[굶주린 혼돈의 전사가 던진 도끼가 방패를 파고듭니다!]

“어억.”

“무조건 죽여 버려!”

“여기서도 못 이기면 진짜 개망신이다!”

황급히 달려온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은 이를 갈며 사방에서 뛰쳐나왔다.

지하 통로 입구가 열렸다는 말은 들었지만 설마 이렇게 순식간에 돌파하고 내성으로 올라올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었다.

당황스럽고 어이가 없었지만 해야 할 일은 하나밖에 없었다.

죽이든 쫓아내든 막아내야 한다!

“스미스 이 자식은 대체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스미스 탓하지 말고 싸우기나 해!”

“그렇게 스미스 밑에서 굽신거리면 놈이 뭐라도 주나 보지?”

“닥쳐! 이 자식이….”

“그러고 보니 스미스가 저번에 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하더라.”

“뭐? 진짜?! …잠깐. 김태현 이 새끼!”

그 와중에도 말다툼을 하던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은 은근슬쩍 끼어든 태현을 깨닫고 경악했다.

이 자식이 진짜!

그 순간 태현의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생겨났다. 태현은 본능적으로 뒤로 뛰어서 피했다.

…콰아아아아앙!!

묵직한 소리와 함께 거대한 형체가 아래로 착지했다.

“어… 케인 선수 친구인가?”

“케인 선수 아니야?”

뒤에 있던 사람들은 당황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나타난 적의 모습이 케인과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여러 개의 팔과 머리.

“키메라면 다 나냐!? 키메라 종족 따로 있어 멍청한 자식들아!!”

케인은 정신없는 와중에도 열이 받아서 외쳤다.

이것들이 키메라만 보면 다 나래!

“…스미스냐??”

태현은 경악한 표정으로 물었다.

나타난 키메라의 얼굴이 아무리 봐도 스미스를 닮았던 것이다.

“맞습니다. 김태현 선수. 저는 더 강해졌습니다.”

“…아니야 미친놈아!”

어지간하면 스미스를 적으로서 인정해주는 태현이었지만, 이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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