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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1678화 (1,677/1,826)

§ 나는 될놈이다 1678화

“예? 싫어요.”

“당신이 누군지 알고?”

-…….

에드안은 당황한 것 같았다. 투구 때문에 얼굴이 보이진 않았지만 동작이 멈춘 것이다.

설마 이런 제안을 모험가들이 거절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탓이었다.

-내가 누군지 모른단 말이냐? 제국의 삼대 보물을 훔치고, 황궁의 가장 심층부에 들어갔다 나왔으며, 드래곤의 레어도 내 앞에서는….

에드안은 열심히 말했지만 자리에 있는 플레이어들에게는 딱히 와닿지 않았다.

왜냐하면 고대 제국 시절 일이었으니까!

대다수의 플레이어들은 고대 제국 시절 있었던 일을 알지 못했다. 워낙 옛날 일이었던 것이다.

태현 같은 사람이나 퀘스트 깨면서 정보를 얻고 짐작을 하는 거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대 제국 때 뭔 일이 있었는지도 잘 알지 못했다.

대충 적당히 망한 나라!

-…이런 머저리 같은 모험가 놈들이! 몰라도 될 게 따로 있지!

물론 고대 제국 시절에 이름을 날린 에드안에게 지금 같은 상황은 믿기 힘들었다.

제국의 어린아이들도 에드안의 이름을 알고, 부모들은 ‘잠 안 자면 에드안이 와서 잡아간다!’ 같은 말을 할 정도였는데….

“저. 질문이 있습니다.”

-뭐냐?

“그런데 그렇게 대단한 도둑이신데… 굶주린 혼돈한테는 왜 잡히신 겁니까?”

“맞아.”

“그러게? 굶주린 혼돈한테는 그냥 잡힌 거잖아?”

플레이어들은 깨달음을 얻고 웅성거렸다.

에드안은 그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단검을 뽑아서 번개같이 집어 던졌다.

[단검 유성우가 시전됩니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갑옷의 내구도가 크게 하락합니다!]

[중독됩니다!]

[자두꽃 독에….]

[원추리꽃 독에….]

[…….]

[…….]

에드안의 공격을 집중적으로 얻어맞은 플레이어는 그대로 나뒹굴었다가 로그아웃됐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뭐라고 지껄였냐? 다시 말해봐라.

“…….”

그제야 플레이어들은 깨달았다.

굶주린 혼돈 쪽 NPC들은 아무리 친절하고 관대해 보이더라도 절대 방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 한 마디 잘못했다가 이렇게 개박살이 날 줄이야….

-자. 날 따라올 테냐, 말 테냐?

“따, 따라가겠습니다!”

“따라가게 해주십시오!”

방금까지 투덜거리고 불평한 게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플레이어들은 우르르 에드안 뒤를 쫓았다.

에드안은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랭커 볼랏은 요즘 굶주린 혼돈 쪽에 가입한 걸 후회하고 있었다.

‘괜히 굶주린 혼돈에 가입했나?’

길드 동맹이 스미스에게 박살 나는 걸 보면서 볼랏은 ‘이야, 스미스의 시대가 오는구나!’ 하고 확신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렇게 강해 보였던 길드 동맹이 정면 대결에서 거짓말처럼 무너진 것이다.

보고 있던 입장에서는 아무리 굶주린 혼돈이 악이라 하더라도 이길 거라고 예상할 수밖에 없었다.

볼랏뿐만 아니라 여러 눈치 빠른 랭커들이 그때 굶주린 혼돈 쪽으로 갈아탔다.

-보아하니 굶주린 혼돈이 한동안 대륙을 지배할 거 같다.

-스미스는 그걸 눈치채고 먼저 탄 거겠지. 우리도 지금이라도 들어가자. 늦으면 늦을수록 나중에 퀘스트 진도 따라잡기 힘들어질 거다.

-지금 먼저 시작하면 나중에 대륙에서 따라올 만한 플레이어들이 없을걸?

그런 생각으로 랭커들은 굶주린 혼돈 쪽에 가입했다.

그러나 세상일은 꼭 예상대로만 흘러가지 않았다.

-김태현, 반(反) 굶주린 혼돈 원정대 조직!

-아탈리 왕국 함락 실패, 오스턴 왕국 공방전 패배!

그렇게 기세 좋던 굶주린 혼돈의 공세가 사방에서 멈칫하고 오히려 반격까지 허용하고 있지 않은가.

볼랏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이득도 없는데 이렇게 나서지?’

볼랏이 보기에 굶주린 혼돈과 맞서 싸우는 건 손해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 손해를 감수하고 나서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그런 것들 때문에 지금 분위기가 이렇게 된 걸지도 몰랐다.

뉴욕 라이온즈 놈들은 자기들끼리 다투고 발목 붙잡느라 분위기가 흉흉하고, 남은 랭커들은 눈치나 보고 있고….

그리고 지금 그들을 데리고 움직이는 NPC도 수상하기 그지없었다.

고대 제국 출신 도적이라고?

‘좀… 못 미더운데.’

도적 플레이어들은 언제나 발끈하면서 부정하는 사실이었지만, 판온에서 도적 플레이어들의 이미지는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었다.

-파티 가입하고 싶습니다! 직업은 방패 전사, 레벨은 188입니다!

-오오! 환영합니다. 들어오십시오!

-파티 가입하고 싶습니다! 직업은 표창 도적, 레벨은 199입니다!

-죄송합니다. 도적 자리는 다 차 있어서….

-도적 자리가 다 차 있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지금 파티에 도적 하나도 없잖아!!

기본적으로 기습적인 PVP에 능한 데다가, 배신에 특화된 스킬 구성, 거기에 악 성향 플레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고르는 직업.

정말 필요한 순간이 아니라면 좀 꺼려지는 것이다.

그런 만큼 도적 NPC도 이미지가 좀 구려 보일 수밖에 없었다.

같은 고대 제국 출신이어도 고대 제국 대전사나 천인대장, 혹은 기사단장 NPC가 묵직하고 과묵하며 믿을 수 있는 이미지라면….

고대 제국 도적 NPC라면 뭔가 좀 뒤통수 잘 칠 거 같고 플레이어들을 희생양으로 쓸 거 같고 정신 놓으면 아이템 훔쳐 갈 것 같았다.

믿어도 되나?

-자. 들어라. 너희들이 왜 약한지 말해주겠다.

“?”

“……?”

지하 통로로 들어서자 에드안이 입을 열었다.

-너희들이 약한 건 여러 이유가 있다. 레벨이 낮고 스킬이 없고 직업이 약하고 단결하지 못하고 겁이 많고 이 지형을 이용할지 모르고…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너희들이 싸우려는 의지가 약해서다!

‘미친놈 아니야?’

‘의지가 강하면 김태현이 쓰러지나?’

플레이어들은 황당해했다.

의지만 갖고서 이길 수 있다면 상황이 이렇게 흘러갔겠는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러나 에드안은 매우 진지했다.

-너희 모험가 놈들은 걸핏하면 배신하고 뒤통수를 친다. 그런 썩어빠진 마음이니까 안 되는 거다. 지더라도 상대에게 어떻게 한 대 더 찔러 넣을 독한 마음가짐을 가져라! 그래야 상대를 이길 수 있다.

“그렇군요.”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플레이어들은 대충 맞춰줬다.

뭔 개소리냐고 하면 또 단검 던지면서 난리를 칠 테니까.

-또 안 듣고 있군. 멍청한 놈들. 직접 봐라. 의지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보여줄 테니까. 네놈들이 얼마나 나약한지 알려주겠다!

철컥-

[굶주린 혼돈을 섬기는 도적, 에드안이 지하 통로의 장치를 가동합니다!]

[통로가 움직입니다!]

에드안이 벽을 두드리자 갑자기 통로가 소리를 내며 변화하기 시작했다.

벽이 길이 되고 길이 벽이 되더니 방금까지 갈 수 없었던 방향이 열렸다.

-따라와라.

[굶주린 혼돈을 섬기는 도적, 에드안이 지하 통로의 장치를 추가로 가동합니다!]

[적의 위치를 발견합니다!]

놀랍게도 벽에 적들의 모습이 환영처럼 그려지기 시작했다.

마치 멀리서 소환수로 감시하고 있는 것처럼!

‘이런 장치가 있었다고?’

-이 굶주린 혼돈의 성은 고대 제국 시절에 있던 성을 그대로 갖고 온 것이다. 지하 통로에는 온갖 장치들이 있지. 아무리 강한 영웅이라 하더라도 이 장치들만 사용하면 꼼짝하지 못하게 쓰러뜨릴 수 있다. 알겠나? 의지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의지가 아니라 아이템의 힘 아닌가?’

“예!”

어쨌든 시무룩해져 있던 플레이어들에게 에드안의 말은 꽤 괜찮은 소식이었다.

이렇게 장치가 있다면야….

[거울 환영 장치가 파괴됩니다!]

“!”

-!

보고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김태현 일행이 감시 장치를 부숴 버린 것이다.

‘어떻게 알았지?!’

그러나 김태현 일행은 감시 장치를 알아차리고 부순 게 아니었다.

그냥 적당히 필요하겠다 싶으면 벽이고 뭐고 다 부숴 버리고 있었기 때문에 같이 부숴진 것이다.

그걸 깨달은 에드안이 분노했다.

-그만 부숴라! 이 무식한 놈들!

“다른 장치로 막으셔야 합니다!”

-걱정 마라.

철컥!

[굶주린 혼돈을 섬기는 도적, 에드안이 지하 통로의 장치를 가동합니다!]

[함정이 가동되기 시작합니다!]

통로의 바닥이 무너져내리더니 갑자기 천장에서 독 발린 바늘이 쏘아져 나왔다.

원정대 플레이어들은 깜짝 놀라서 바로 방어에 들어갔다.

파파파파파팍!

-케인 선수! 저희를 위해 막아주시다니!

-비… 내가 비키라고… 했는데… 왜 안 비….

-크흑! 저희를 위해…!

-아니라… 고…!

“김태현 놈에게는 효과가 없습니다!”

“더 강한 함정을!”

플레이어들은 자신도 모르게 에드안에게 큰 목소리로 외쳤다.

에드안은 씩 웃었다.

모험가 놈들이 점점 더 용기를 되찾고 있었던 것이다.

이게 바로 의지의 힘!

-걱정하지 마라. 이 지하 통로는 어떤 적들도 빠져나올 수 없을 테니까!

[굶주린 혼돈을 섬기는 도적, 에드안이 지하 통로의 장치를 가동합니다!]

[함정이 가동되기 시작합니다!]

거대한 바윗덩이가 살벌한 소리를 내며 굴러들기 시작했다.

태현은 폭탄을 연속으로 던져서 바위의 속도를 늦춘 다음 고대의 망치를 꺼내서 미친듯이 쪼개버렸다.

에드안은 이를 갈며 다음 함정을 작동시켰다.

벽 양쪽에서 장전된 창칼이 태현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태현은 피하지도 않고 행운으로 막아버렸다.

-뭐 이런 새끼가 있냐?! 저놈 무슨 아키서스의 앞잡이 놈도 아니고!

“아키서스 놈입니다!”

-…아키서스 교단 소속이었어!? 어쩐지!

에드안은 기름을 바른 것마냥 강력한 회피력을 자랑하는 태현에게 치를 떨다가 그제야 납득했다.

어쩐지 대도적도 보여주지 못하는 회피력을 보여준다 했었는데….

“하지만 조금만 더 하면 김태현 놈도 당할 겁니다!”

“지금 놈들은 명백히 당황하고 있습니다! 발이 멈춰서 후퇴하려고 하고 있지 않습니까!”

플레이어들은 뜨겁게 외쳤다.

그들 본인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어느새 에드안을 응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발 김태현을 쓰러뜨려줘!

에드안은 씩 웃으며 말했다.

-이제 알겠느냐?

“……!”

-중요한 건 의지의 힘이다. 적이 아무리 강력한 놈이라 하더라도 절대 굴복하지 말고 힘을 합쳐서 덤벼들어라! 그렇게 한다면 무조건 쓰러뜨릴 수 있다. 배신할 생각부터 하지 말고, 도망칠 생각부터 하지 말고!

고작 NPC의 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에드안의 말은 플레이어들의 가슴을 울리게 만들었다.

굶주린 혼돈에 가입했다고 해서 플레이어들이 감정이 없는 건 아니었다.

‘부끄럽다!’

‘난 언제부터 이렇게 나약한 플레이만 해왔던 거지?’

‘그래. 세력에 가입한 이상 다른 놈들과 뭉쳐서 같이 싸울 생각을 해야지. 이러니까 지는 거다!’

에드안은 단검을 꺼내서 손가락 사이에 장전하며 말했다.

-내가 직접 저놈들을 사냥하고 오겠다. 보고 있어라!

“…예!”

플레이어들은 뜨거운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 * *

-들어라, 어리석은 모험가 놈들. 이 지하 통로에 들어온 이상 네놈들에게는 죽음뿐이다!

“!”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원정대는 멈칫했다.

아까부터 미친듯이 함정이 터지더니, 아마 이 목소리가 주도한 모양이었다.

‘성가신 놈이 걸렸군.’

태현은 혀를 찼다.

아직 길도 못 찾은 지금 이렇게 숨어서 귀찮게 구는 놈을 만나다니.

차라리 직접 덤비는 놈이 더 편했다.

“겁이라도 먹었나? 나와라!”

“맞아! 맞아!”

“안 나오면 넌 스미스 같은 놈이야!”

원정대 플레이어들은 같이 도발하기 위해 입을 모아 외쳤다. 물론 에드안은 그런 하찮은 도발에 넘어가지 않았다.

-너희들은 내 얼굴을 볼 일이 없을 거다. 나, 고대 제국의 대도적. 에드안에게 쓰러지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고 죽어가라!

“에드안?”

-내 이름을 아는가 보군. 아키서스 교단의 후계자여. 하지만 늦었다! 네놈에게는 죽음밖에….

“혹시 우리 교단에 있는 대도적 에드안과 같은 핏줄인가?”

-…거짓말치지 마라.

멀리서 보고 있던 굶주린 혼돈 쪽 플레이어들은 웅성거렸다.

설…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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