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677화
[카르바노그가 하지만 일리가 있다고 말합니다.]
‘뭔 일리가 있어? 찍었다는데?’
[카르바노그가 직감이 나쁜 제국 기계공학자들은 예전에 죽었을 거라고 말합니다.]
‘…….’
태현은 할 말을 잃었다.
그건 그렇긴 하지….
태현이야 행운 스탯이 있으니 기계공학 초중반을 버텼지, 그것도 없는 사람은 그냥 맨몸으로 버텨야 했다.
괜히 기계공학 스킬이 인기가 없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저희 왔습니다!”
“방어벽 세워! 방어벽!”
태현과 계속 손발을 맞춰 온 원정대 파티장들은 매우 유능한 인물들이었다.
태현이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지금 뭘 해야 할지 바로 알았다.
몰려오는 적들에게 지하 통로 입구를 다시 뺏기지 않게 역으로 방어를 준비해야 한다!
[<제국 금속 방패>들을 연결합니다! 방어에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목책을 세웁니다! 보너스를…]
[장애물을 설치…]
[함정을 설치…]
태현뿐만 아니라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갖고 온 폭탄을 앞의 골목 통로들에 닥치는 대로 뿌리기 시작했다.
파티장들은 경악한 표정으로 외쳤다.
“김태현 선수도 아닌 놈들이 그걸 왜 들고 있어!?”
“안전 보증 받은 아이템입니다!”
“그걸 믿으면 어떡해!!”
상황만 여유로웠다면 파티플레이 시 안전수칙 같은 걸 다시 말해줬겠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파티장들은 허겁지겁 수비를 준비했다. 지금은 완벽하게 준비하기보다는 엉성하더라도 급하게 준비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선배님. 들어가십시오! 저희가 막고 있겠습니다!”
-들어가라! 우리가 여길 막고 있겠다!
다른 쪽에서 성벽을 넘어 온 팀 KL 선수들이 합류하고, 고대 제국의 흑마법사들도 성문을 부수고 지하 통로 입구 쪽으로 달려왔다.
‘괜찮을지 모르겠군.’
태현은 아비규환인 상황을 보며 살짝 걱정했다.
물론 원정대가 기세 좋게 성문을 뚫고 성벽을 넘어오고 있긴 했지만, 전체 면적에 비교하면 극히 일부를 점령했을 뿐이었다.
적들이 어떤 식으로 반격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태현이 지하로 빠지는 건 좀 걱정이 됐다.
“괜찮아요. 가죠!”
“!”
태현은 깜짝 놀랐다. 뒤에서 이다비가 태현을 재촉하며 나선 것이다.
“설마 속마음을 읽는 스킬을…?”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에요? 지금 걱정하고 계실 테니까 한 말이죠! 들어가요! 원정대는 버틸 수 있어요!”
“맞습니다!”
“저희 실력을 너무 얕보지 마십시오!”
파티장들은 화답하듯이 외쳤다.
객관적으로 비교하면 승패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까놓고 굶주린 혼돈의 성 안에 어떤 보스 몬스터가 기다리고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하지만 원정대 플레이어들은 서로 단단히 뭉쳐 있었다.
굶주린 혼돈의 영역에서 헤매던 시간을 떠올려보면, 이 정도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해낼 수 있다!
“…다들 고맙다. 지하로 들어간다! 따라와!”
“와아아아아아아!”
태현이 지하 통로로 달려가자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 뒤를 따라가던 케인은 태현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버틸 수 있다는 거냐? 뭐 숨겨 놓은 방법이 있는 거야? 나도 좀 알려주라.”
“…….”
“…….”
* * *
[성의 지하 통로에 입장합니다!]
[굶주린 혼돈의 기운이 더욱 강해집니다.]
[통로를 순찰하는 굶주린 혼돈의 파수병이 당신을 추적합니다!]
“잠깐.”
“?”
태현을 따라 들어온 랭커들은 멈칫했다.
왜 저러시지?
툭-
태현은 밑도 끝도 없이 바로 폭탄을 앞으로 집어 던진 다음 고대의 망치를 꺼내서 벽을 후려갈겼다.
꽝!!!!
폭발과 함께 어마어마한 소리가 났다.
[지하 통로 벽이 파괴됩니다!]
[지하 통로 벽이 다시 수리되기 시작합니다!]
‘단단하긴 한데 못 뚫을 정도는 아니군. <신의 예지>는 힘들 것 같고….’
길을 찾아낼 수만 있다면 바로 직선거리로 뚫고 나가는 게 태현의 공략법이었지만, 아무래도 그건 쉽지 않아 보였다.
“뭐… 뭐하신 겁니까?”
“이것도 모르는 거냐?”
케인이 대신 설명해 줬다.
“이건 던전 공략 방법이다. 길을 따라 가는 대신 벽을 뚫어버리면 훨씬 더 빨리 갈 수 있지.”
케인의 말에 랭커들은 ‘아아 그런 방법이…!’ 하고 감탄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미친놈 보듯이 케인을 쳐다보았다.
‘농담하는 건가?’
‘진지한 것 같은데.’
“진… 진짜야!!”
“케인 말이 맞다. 일단 벽을 뚫을 수 있나 실험해 본 거다. 폭탄은 힘들겠지만 망치까지 사용해서 휘두르면 뚫을 수는 있겠군.”
“…….”
“…….”
태현의 말에 랭커들은 정신이 아득해지는 표정을 지었다.
뭐가 뭐라고…?
[통로를 순찰하는 굶주린 혼돈의 파수병이 소리를 들었습니다!]
“전투 준비!”
통로가 두세 명 정도 설 수 있을 정도로 좁은 탓에 전투는 오히려 쉬웠다.
그저 앞에 있는 놈을 처리하면 된다!
-조심해라! 놈들은 만만치 않다!
-보통 놈이 아니다!
“?!”
마검에 깃든 기계공학자들이 비명을 질렀다.
통로 반대편에서 나타난 파수병.
이제까지 상대해 본 굶주린 혼돈의 전사와 크게 겉모습은 다르지 않았다.
레벨은 500에서 700대로 다양하고, 묵직한 중갑옷에, 각종 굶주린 혼돈 스킬을 쓰는 하수인.
물론 강력하긴 했지만 태현 정도 되는 랭커라면 상대할 수 있었다.
각종 아이템과 스킬들로 밀어붙여서 꺾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위험하다고?
‘뭐지?’
경고를 들어서 그런지 태현의 본능이 예리하게 빛을 발했다.
“들어간다!”
케인은 기세 좋게 방패를 들고 달려들었다.
옆에 태현이 있는 만큼 케인의 자신감은 매우 상승해 있는 상태였다.
[<굶주린 혼돈의 파수병>이 정체를 드러냅니다.]
[고대 제국의 천인장, 팔소스가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필멸자들이여. 어찌하여 너희의 운명을 모르고 이렇게 덤비는 것이냐?
“어?”
콱!
[고대 제국 포박술이 시전됩니다!]
[그대로 붙잡힙니다!]
“어어어??”
케인은 그대로 붙잡혀서 허공에 붕 떴다.
저항이고 뭐고 통하지 않고 바로 포박 상태!
“뭐야!?”
“어쩐지 이상하다 했다!”
태현은 바로 달려들었다.
평범해 보인다 했더니 겉모습을 숨긴 네임드 몬스터였던 것이다.
-이런 비겁한 천인장 놈! 니가 그러고도 고대 제국의 무장이냐!
-야! 칼 버려라! 나 같으면 쪽팔려서 칼 버린다! 양심 있는 새끼면 황제 폐하께서 하사한 칼을 못 들고 다니지!
고대 제국의 기계공학자들은 매서운 목소리로 천인장을 모욕했다.
천인장은 그 외침에 정곡을 찔려서 당황한 것 같았다.
‘오….’
태현은 의외로 효과가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나도 동의한다! 고대 제국의 후계자로서 양심이 있으면 칼과 갑옷은 내려놔라! 뻔뻔한 도둑놈아!”
[<영혼에 스며드는 화술> 스킬이 성공합니다!]
[화술 스킬이 오릅니다!]
[고대 제국의 천인장, 팔소스가 강렬한 타격을 받습니다!]
최고급 화술 스킬이 7레벨을 찍고 얻은 추가 스킬, <영혼에 스며드는 화술>.
화술이 성공하자 팔소스는 스턴 상태에 빠질 정도로 강력한 타격을 받았다.
-너희 같은 놈들 때문에 제국이 망한 거야!
-우리 기계공학자들이 제국을 지키기 위해서 뼈빠지게 일했는데 너희 같은 놈들은 갈아타기나 하고 말이야!
“천인장 직위도 떼고 돌아다니지 그러냐!”
[<영혼에 스며드는 화술> 스킬이 성공합니다!]
[고대 제국의 천인장, 팔소스가 강렬한 죄책감의 저주를 받습니다!]
[공격 속도가 느려집니다!]
[포박이 풀립니다!]
각종 상태 이상을 받은 덕분에 케인은 탈출할 수 있었다.
허겁지겁 거리를 벌린 케인은 팔소스를 보며 외쳤다.
“야 이 비열한 놈아! 천인장 정도 되는 놈이 정체 숨기고 그러면 좋냐!”
-어디서 되도 않는 키메라 노예 놈이 나를 모욕하느냐? 날 그런 말로 현혹할 수 있을 줄 알았느냐?
“…….”
케인은 어이가 없었다.
물론 케인이 태현처럼 화술 스킬로 유의미한 효과를 기대한 건 아니었다.
케인이 화술 스킬이 높은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렇지만 이건 너무….
‘심하지 않냐!?’
최소한 들어는 줘야지 그냥 저렇게 무시해 버려?!
“팔소스. 고대 제국의 후계자이자 아키서스 교단의 후계자로서 너를 비판하겠다!”
-크윽!
“고대 제국의 황제인 엑솔랍 3세도 네놈의 배신에 분노하셨다!”
-크으윽….
매번 화술 스킬이 터질 때마다 들어가는 데미지와 스킬 성장 효과에, 태현은 의외로 놀랐다.
‘쓸 만하잖아?’
상대와 지금 제대로 전투를 벌였으면 어떻게 굴러갔을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고대 제국 천인장 출신에 이름도 따로 있는 걸 보면, 이 좁은 통로에서 속절없이 밀려났을 가능성도 높았다.
그런데 화술 스킬 하나만으로 지금 발을 묶고 있다니.
“이다비. 뭐 좀 더 효과적인 욕 없을까?”
“네?!”
갑자기 화살이 돌아오자 이다비는 당황했다.
그렇게 말한다고 욕이 떠오를 리 없지 않은가.
이다비는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따라온 랭커들은 자기들한테 화살이 돌아오자 당황했다.
“부… 부모 욕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고대 제국 망한 거 관련해서 욕을 해보면 어떻습니까? 얼마나 못했으면 고대 제국이 망했는지를 최대한 기분 나쁘게….”
랭커들은 평소와 너무 다른 던전 공략 방식에 당황했다.
보통은 상대의 약점을 파악하고 어떻게 HP를 깎을지 생각을 하는데….
지금은 상대를 어떻게 기분 나쁘게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이게 맞나?
일단 잘 풀려가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카르바노그가 고대 제국 황실의 깃발을 꺼내라고 조언합니다.]
펄럭!
태현은 깃발을 꺼내 들었다.
좁고 어두운 통로인데도 불구하고 깃발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엄은 통로를 밝게 채웠다.
그리고 그걸 본 천인장은 오열하며 무릎을 꿇었다.
-죄송… 죄송합니다! 폐하!
[<영혼에 스며드는 화술> 스킬이 성공합니다!]
[화술 스킬이 오릅니다!]
[고대 제국의 천인장, 팔소스가 쓰러집니다!]
[화술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 * *
굶주린 혼돈은 지금 상황이 믿기질 않았다.
지하 통로로 들어간 놈을 잡으라고 팔소스를 보냈더니 잡으란 놈은 안 잡고 순식간에 쓰러질 줄이야.
고대 제국 놈들은 왜 하나같이 다 이 모양이란 말이냐!
굶주린 혼돈이 분통을 터뜨리는 이유가 있었다.
흑마법사란 놈들은 잘나가다가 배신하고, 전사장 놈들은 잘싸우다가 갑자기 참회하질 않나….
하나같이 다 믿을 수 없는 놈들이었다.
[굶주린 혼돈이 명령을 내립니다!]
[지하 통로에 침입한 적을 막으십시오!]
<지하 통로 봉쇄-굶주린 혼돈 퀘스트
성의 지하로 침입한….
“!”
성벽 쪽에서 일진일퇴를 벌이던 굶주린 혼돈 쪽 플레이어들은 퀘스트 창에 놀랐다.
김태현 놈이 지하로 들어간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퀘스트까지 따로 나올 줄이야.
“갈 사람 있냐?”
“아니. 넌 갈 거냐?”
“아니….”
“…….”
무거운 침묵이 플레이어들 사이에 가라앉았다.
굶주린 혼돈 퀘스트가 나왔는데 이렇게 시큰둥한 반응은 또 처음이었다.
“지하 통로에서 싸우면 이쪽이 엄청나게 유리해! 잘 생각해 봐. 적은 지형을 모르고, 이쪽은 각종 함정과 지원을 받아가면서 싸울 수 있다고!”
옆에 있던 뉴욕 라이온즈 소속 코치가 그렇게 말했지만 플레이어들은 여전히 시큰둥했다.
객관적인 수치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안 될 거 같다!
“가라고!”
“미친놈 아니야 이거? 우리가 뉴욕 라이온즈 선수도 아니고 왜 우리한테 그래?”
“니네 선수한테나 가라고 해!”
-그만 싸워라. 모험가 놈들아.
묵직한 저음과 함께 망토로 몸을 가린 NPC가 나타났다.
양손에는 시커먼 기운이 솟구치는 단검을 들고, 얼굴은 투구로 가린 NPC는 누가 봐도 암살자나 도적 계열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굶주린 혼돈을 섬기는 도적, 에드안이 <침묵의 망토>를 시전합니다!]
[은신 상태로 변합니다!]
[은신 발각 확률이 크게 줄어듭…]
[……]
[……]
-날 따라와라. 모험가 놈들. 내가 너희들을 승리하게 해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