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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1672화 (1,671/1,826)

§ 나는 될놈이다 1672화

탁-

이세연은 태현의 손목을 잡았다.

“잠깐.”

“……?”

“누가 멋대로 그렇게 말하라고 했어? 기권할 필요 없어. 이건 무효니까. 졌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고.”

이세연은 태현에게 차갑게 들리지 않으려고 무진장 애를 써서 말했다.

아까 듣자마자 거절한 것 때문에 더더욱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안 된다면서?”

“…멋대로 혼자 가는 게 안 된다는 뜻이었어. 같이 가. 원정대 플레이어들을 구하는 건 나도 해야 하는 일이니까.”

“정말 괜찮은 거 맞나? 그렇게 1:1을 기대했었는데.”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지.”

“네가 그렇게 준비해 온 주문서도 썼는데?”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지.”

“구하러 가면 이제 1:1을 할 상황은 다시는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그만 좀 하고 들어가 이 눈치 없는 새끼야! 아, 진짜!”

결국 폭발한 이세연은 태현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 * *

“오늘 배급이다!”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원정대 식사 시간.

아무것도 없는 굶주린 혼돈의 영역.

그 영역에 날아간 이상 플레이어들은 겁에 질리고 불안에 빠져 서로를 배신하고 흩어져야 했다.

한두 명도 아니라 어마어마한 규모가 날아간 만큼 더더욱.

…그런데 원정대는 놀랍게도 흔들림이 없었다.

“이게 말이 되냐?”

“약이라도 먹였나?? 폭탄 목걸이 차고 있는 거 아니야??”

멀리서 숨어서 보고 있던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은 혀를 찼다.

원정대의 예측대로,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은 멀리서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상대가 무너지기 시작하면 바로 공격해서 복수를 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반드시…!’

‘이번에는 설욕한다!’

김태현 vs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이라는 전 세계가 지켜보는 빅 이벤트에서 겪은 충격적인 패배.

물론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에게는 이런저런 이유가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런 것까지 신경 쓰지 않았다.

김태현은 승자고, 뉴욕 라이온즈는 패자.

그걸 뒤집고 싶으면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이겨야 했다.

비열하고 치사한 방법이라도 상관없었다. 욕을 먹는 건 순간이고 결국 사람들은 결과만 볼 테니까.

그런데….

상대가 무너지지 않았다.

-으음! 오늘자 돼지고기 김치찌개는 한층 더 맛이 깊군! 건더기 하나 없이 이런 맛을 내다니! 솜씨가 많이 늘었어! 하하하! 국물만 마셔도 맛이 좋구만!

-감사합니다!

-자. 다들 쉬는 동안 스킬이나 연습해볼까? 하나! 둘! 하나! 둘!

“????”

다시 봐도 선수들은 믿기지 않았다.

허세인가?

“허세 아닌가? 그렇지 않다면 저럴 리가 없잖아.”

“아니, 아무리 허세여도 그렇지 이렇게 안 무너지는 건 말이 안 돼. 숫자가 몇 명인데 도망치는 놈이 안 나온다고?”

“차라리 먼저 공격해볼까?”

“공격했다가 막히기라도 하면 놈들의 사기만 더 오를 거잖아!”

“젠장. 뭐 이런 끈질긴 놈들이….”

[굶주린 혼돈이 침입자가 들어왔다고 말합니다.]

“???”

“예?”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은 굶주린 혼돈의 말에 당황했다.

여기가 어디라고 침입자가 들어온단 말인가.

‘벌써 찾았다고? 어떻게?’

‘아니, 그보다 원정대 움직였다는 말도 없었잖아??’

선수들은 당연히 원정대가 굴러가는 방송을 챙겨보고 있었다.

아레네 시가 빠르게 재건되는 것부터 시작해서(많은 선수들이 피눈물을 흘렸다), 태현이 거대 대장간으로 새로운 장비를 제작하는 모습까지.

정말 질투가 나긴 했지만 역으로 생각해 보면 시간을 번 셈이었다. 그 작업들이 다 끝나기 전까지는 김태현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테니까.

그리고 김태현이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면 원정대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침입자라니.

언제 어떻게?

‘다른 파티가 찾아냈나? 아니면 남몰래?’

‘그래 봤자 잡으면 그만이지.’

김태현을 많이 상대한 플레이어들은 일종의 착각에 빠지게 됐다.

다른 최상위권 랭커들을 만나더라도 ‘어 김태현이 아니네?’ ‘그러면 할 만하네’ 같은 자신감을 보여주는 것이다.

태현 옆에 세워 놓으면 적이 상대적으로 약해 보이는 효과!

지금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은 그런 착각에 빠져 있었다.

어느 누가 왔든 간에 여기까지 올 정도의 플레이어라면 절대 얕볼 상대가 아닌데….

[굶주린 혼돈이 침입자를 쓰러뜨리라고 명령합니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스미스! 침입자가 들어왔댄다! 움직이자!”

새로 들어온 선수 중 한 명이 보이는 건방진 모습에, 기존에 있던 다른 선수들이 발끈해서 외쳤다.

“주장한테 건방지게 굴지 마라!”

“뭐? 이 정도 말도 못 해? 그리고 착각하지 말라고. 주장은 주장 역할을 할 때 주장인 거지. 내 윗사람이 아니라고.”

“이 새….”

“그만! 지금 우리끼리 싸워서 어쩌자고!”

원래 뉴욕 라이온즈 내에서 스미스의 이름은 절대적이었다.

실력이면 실력, 인기면 인기, 위에서 신뢰면 신뢰.

새로 들어온 선수들은 아무리 거칠고 싸가지가 없더라도 스미스에게 정면으로 부딪히지 못했다. 그건 자살행위였으니까.

그러나 그런 스미스도 몇 번 실패를 겪자 지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스미스를 평소에 질투하던 선수들이 바로 스미스에게 들이받기 시작한 것이다.

-누가 뉴욕 라이온즈에서 최고인지 가리자!

앉아서 조용히 원정대를 지켜보고 있던 스미스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알겠습니다. 움직입시다.”

“흥. 거봐. 스미스는 불만도 없어 보이는데.”

“그만 싸우고 움직여라!”

같이 따라온 뉴욕 라이온즈 코치들이 선수들 사이의 싸움을 말렸다.

분위기가 안 좋다는 건 코치들도 알고 있었다.

‘빨리 분위기를 전환해야 하는데….’

‘차라리 침입자가 와줘서 다행일지도 모르겠군.’

언제나 퀘스트는 파티를 단결시켰다.

서로 싸우고 견제하는 선수들도 퀘스트 보상이 괜찮으면 잠시 불만이 사라질지도 몰랐다.

* * *

[굶주린 혼돈의 영역이….]

이세연은 바로 리치화를 준비했다.

갈증과 굶주림이 이 영역의 가장 큰 위험이라는 건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던 것이다.

“넌 어떻게 하려고?”

“응?”

태현은 흙을 한 줌 들었다. 그리고 쥐었다 폈다.

[<아키서스의 권능 요리>를….]

[…….]

[찹쌀떡이 완성됩니다!]

“자.”

“…….”

이세연은 할 말을 잃었다.

내가 지금 뭘 본 거야?

“안 먹어?”

“나, 난 됐어… 그보다 빨리 적의 위치부터 찾아보자.”

원정대가 계속 헤매고 있다는 건 태현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차근차근 정보를 모으고 지도를 만들고 있지만 계속 방해를 받고 있다는 것도.

[<신의 예지>를 사용합니다!]

[영역에 흐르는 굶주린 혼돈의 힘이 권능을 방해합니다.]

[…….]

[…….]

‘역시 이렇게 나오나.’

태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굶주린 혼돈이 자신만만하게 부른 만큼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카르바노그가 여기는 굶주린 혼돈이 집어삼킨 땅 중에서도 가장 외지고 뒤죽박죽인 곳 같다고 말합니다. 주변에 흐르는 모든 힘들이 지나칠 정도로 불안정하다고 합니다.]

이세연은 정신을 집중하고 골렘들을 소환하려고 했다.

[영역에 흐르는 굶주린 혼돈의 힘이 마법을 방해합니다.]

[실패 확률이….]

“마법도 위험해.”

“그렇겠지. 위치를 찾는 걸 떠나서 싸울 때 골치 좀 아프겠는데.”

각종 악조건이 겹쳤지만 태현은 일단 적이 나타나 주길 빌었다.

적을 잡으면 일단 위치는 확인할 수 있을 테니까.

두두두두두-

“저기 침입자다!”

“저기 있다! 잡아라!”

멀리서 들리는 말발굽 소리와 플레이어들의 목소리.

태현과 이세연은 눈빛을 빛냈다.

다행히 상대가 먼저 찾아와 준 것이다.

“잠깐.”

“……?”

“상대가 네 얼굴을 보고 도망칠지도 몰라.”

“…에이. 설마. 여기까지 왔는데 그런 짓을 한다고?”

태현은 이세연의 말을 못 미더워했다.

물론 사람이 겁을 먹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지만, 지금 태현과 이세연은 이렇게 ‘날 잡아가쇼’ 하듯이 남의 영역에 대놓고 찾아온 상태였다.

그런 둘을 보고서도 도망치면 그건 진짜 판온 접어야 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얼굴 가려.”

“알겠어.”

태현은 이세연의 말대로 얼굴을 가렸다.

아까 결투를 취소하고 억지를 부린 것 때문에 이세연에게 아직도 좀 미안했던 것이다.

이세연도 곧 얼굴을 가렸다. 멀리서 플레이어들이 점점 거리를 좁히며 다가왔다.

“두 명!? 두 명이서 들어왔어?”

“어이가 없군!”

“건방지게 뭐라도 된 줄 알고 왔나 본데, 아주 개박살을….”

철컥!

태현은 마검을 검집에서 뽑았다. 풀려난 기계공학자들이 태현에게 외쳤다.

-우리를 휘둘러라! 우리의 힘을 보여주겠다!

쉭!

태현이 마검을 휘두르자 검신에 힘이 폭발하듯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고대 제국의 기계공학자들이 이상현상을 일으킵니다.]

[번개 방전이 벌어집니다!]

파지지지직!

태현의 주변으로 미친듯한 연쇄 벼락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굶주린 혼돈의 힘을 믿고 덤벼들던 플레이어들도 기겁해서 일단 물러설 정도로.

-다시 한번 더!

[고대 제국의 기계공학자들이 이상현상을 일으킵니다.]

[자석 효과가 발동합니다!]

“으어어억?!”

케인이 쓴 노예의 쇠사슬마냥, 멀리 있던 플레이어 한 명이 그대로 태현 앞으로 끌려왔다.

“잠….”

태현이 누군지도 몰랐지만 불길함은 느낀 모양이었다. 상대는 황급히 무기를 들어 막으려고 했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제국 기계공학자의 마검>이 추가 효과를 발동시킵니다!]

[기생 기계 부품이 상대에게 들어가 추가 데미지를….]

[…….]

[…….]

콰드득!!

마검은 살벌하게 플레이어의 몸통을 후려갈기며 데미지를 집어넣었다.

휘두르던 태현이 놀랄 정도였다.

-우리의 힘이 느껴지나! 우리의 도움을 받고 싶다면 더 많은 기계공학 스킬을 사용해라, 후계자여!

“…저 새끼 김태현이다!!!!”

마검에서 흘러나오는 외침을 들은 선수 한 명이 비명 지르듯이 외쳤다.

“말도 안 돼! 김태현이… 컥! 김태현이 맞아!”

“저 옆에 있는 건 이세연이다!!”

‘아니. 이 자식들 눈치가 왜 이렇게 빨라졌지?’

태현은 살짝 감탄했다.

사람이 역시 보고 듣는 것보다는 직접 맞아봐야 빨리 는다고,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은 눈치가 정말 늘었다.

원래라면 몇 박자는 더 늦었을 텐데 벌써 눈치채다니….

“김태현하고 이세연이 왔는데 말해주지 않았다고!? 굶주린 혼돈 이 개….”

“야. 야!”

옆에 있던 선수가 화들짝 놀라서 입을 다물었다.

홧김에 욕했다가 어떤 페널티를 받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했던 것이다.

태현은 그걸 보고 말했다.

“오. 불만 있나 본데 아키서스 교단 믿고 굶주린 혼돈 탈퇴할래? 교단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

“닥쳐!!”

쉭!

거세게 날아오는 공격. 태현이 피할 거라고 생각하고 견제하듯이 날린 선수는 움찔했다.

태현이 오히려 파고든 것이다.

태현에게 직접 데미지를 넣으려면 이런저런 준비를 해야 하는 만큼, 평범한 공격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태현은 공격에 담긴 살기를 읽어내고 맞아봤자 별것 없다고 판단을 끝낸 것이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

[…….]

이대로라면 누가 봐도 태현이 또 한 명을 끝장낼 수 있을 것 같은 상황.

그때 지형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굶주린 혼돈의 영역이 변화합니다.]

[굶주린 혼돈을 섬기는 괴수가 나타납니다!]

기괴한 안개와 함께 거대한 괴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태현은 그쪽으로는 시선도 주지 않고 패던 선수를 마저 팼다.

퍽퍽퍽퍽퍽퍽!

[HP가 0이 되어….]

“그만 패고 피해!”

이세연은 언데드들을 돌려서 방벽을 만들며 외쳤다.

한 번도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한 적 없었는데, 처음으로 불쌍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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