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671화
‘아다만티움 갑옷 스펙이나 확인해야겠군.’
아키서스 화신의 아다만티움 갑옷:
내구력 ∞/∞, 물리 방어력 990, 마법 방어력 990.
스킬 ‘아키서스 화신의 방어’ 사용 가능, 스킬 ‘아키서스 화신의 마법 금지’ 사용 가능, 스킬 ‘아키서스 화신의 결계’ 사용 가능, 피격 시 스킬 ‘아키서스 화신의 반격’ 발동.
‘아키서스의 화신’이 착용 시 주변 모든 아군에게 강력한 보너스, HP 회복 속도, MP 회복 속도에 강력한 보너스, 물리 저항력 크게 상승, 마법 저항력 크게 상승,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파괴되지 않음.
왕국 거대 대장간의 화력으로 금속을 녹여서 만든, 아키서스 화신의 걸작 갑옷이다.
이것만으로도 더 이상 나아질 수 없을 정도의 걸작이지만 화신에게는 한 단계 위의 갑옷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 갑옷은 그 가능성을 보여주리라.
‘안정… 적이긴 한데….’
아다만티움 갑옷은 태현이 원했던 그대로였다.
이전 갑옷의 완전한 상위호환.
방어력도, 스킬도 전부 다 진화한 상태였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와 김태현 선수는 어떻게 장비 하나하나가 저렇게 특이하고 개성이 넘치는 걸까? 저게 세계 판온 최고 선수의 자존심인가?’라고 오해하곤 했지만 사실 태현은 그런 것에 그리 집착하지 않았다.
그냥 나온 장비들이 전부 이상했을 뿐이었다.
안 입을 수도 없고 어쩌겠는가. 그냥 입어야지.
당연히 이렇게 안정적인 상위호환 갑옷은 기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내게 한 단계 위의 갑옷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니. 무슨 소리지?’
[카르바노그가 아키서스가 대륙에 남긴 지식 아니냐고 묻습니다.]
대륙을 떠난 신들이 신도들을 위해 이것저것 남겨 놓았듯이, 아키서스 또한 이런저런 것들을 남겨 놓았다.
원한으로 가득 찬 원수나 아키서스한테 사기당한 종족들이나 그런….
물론 그런 것만 있는 건 아니었고 태현을 위해 남겨 놓은 권능들도 있었다.
‘아키서스가 대장장이 기술 스킬 관련해서도 능력이 있긴 했지. 대장장이 기술 스킬 관련해서 권능도 있었고… 그럼 권능에 대한 힌트인가?’
지금보다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더 높아진다면 사용할 수 있는 권능에 대한 힌트?
그런 거라면 확실히 기뻤다. 아키서스가 솔직히 이런 식으로 권능을 챙겨주는 신이 아니었으니까.
태현이 알아서 챙겨먹어야 하는 신에 가까웠지….
‘제국 기계공학자의 마검은 솔직히 확인하고 싶진 않군.’
제국 기계공학자의 마검:
내구력 ?/800, 공격력 ?
높은 확률로 방어 무시 데미지, 데미지 시 추가 기계공학 효과 발동, 기계공학 스킬에 공격력 영향 받음, 기계공학 스킬에 내구력 영향 받음, ‘제국 기계공학자들의 조언’ 상시 발동.
고대 제국의 기계공학자들이 자신들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만든 마검이다. 기계공학자들의 영혼이 담겨 있는 이 마검은 후대 기계공학자를 진정한 기계공학의 길로 인도해 주리라.
‘어? 생각보다 멀쩡한데?’
최악을 각오한 것치고 아이템의 설명은 나쁘지 않았다. 훌륭한 옵션에 기계공학 스킬과 연동되는 공격력까지.
[카르바노그가 아까 기계공학자들의 영혼이 말을 건 것은 잊어버렸냐고 말합니다.]
‘그건 당연히 제외하고 말한 거지.’
그리고 옆에서 말을 걸어오는 존재는 이제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
[카르바노그가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 * *
이세연은 기다리는 동안 심심해서 골렘 쌓기를 하고 있었다. 골렘 위에 골렘을 올리고 또 그 위에 골렘을 올리는 단순한 작업이었다.
“와…! 골렘을 저렇게 올리다니…!”
“네크로맨서로서 컨트롤을 훈련하시려고 저러는 게 분명해.”
“나도 해봐야겠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감탄하며 지나갔지만, 이세연은 그냥 심심해서 하고 있는 거였다.
‘나도 그냥 가서 도우면 안 되나? 너무 질척거리는 것처럼 보이려나?’
“김태현 선수의 갑옷이 완성됐대!”
“뭐! 드디어!”
“그래. 그 갑옷만 있으면 굶주린 혼돈도 꼼짝 못 한다던데.”
“내가 듣기로는 모든 공격을 다 막아버린다고 들었어.”
“내구도가 파괴되기 전에는 HP가 무한으로 회복된다고 하던데.”
‘…갑옷 스펙을 확인하진 않았지만 저게 거짓말이라는 건 확실해.’
듣고 있던 이세연은 속으로 생각했다.
보통 헛소문이 많이 퍼진다지만 저건 좀 심했다.
어지간한 랭커들이라면 속지 않을….
“헉. 그 정도 갑옷이었나?”
“우리도 만들어달라고 할 걸 그랬나? 역시 그 거대 대장간의 힘인가?”
“…….”
이세연의 길드에 소속된 길드원들도 솔깃해서 수군거리는 걸 보자 이세연은 할 말을 잃었다.
너희들까지 속으면 어떡해…!
‘거대 대장간의 힘이 생각보다 대단하구나.’
확실히 중앙 광장에 설치된 거대 대장간은 위압감 넘치는 시설이었다.
랭커들도 본 적 없을 정도로 거대한 규모의 시설!
그런 만큼 저런 소문이 도는 것도 이해가 갔다.
게다가 그 거대 대장간을 둘러싼 아레네 시는 예전보다 더 거대한 규모로 빠르게 지어지고 있었다.
이제까지 판온에 모인 적 없는 숫자의 원정대가 일치단결했기에 가능한 작업 속도!
아마 김태현도 이런 원정대를 믿고 있기에 이런 거대 작업을 선택한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다면 곧 굶주린 혼돈과 싸워야 하는 지금 같은 순간에 이렇게 호화롭게 도시를 다시 만들 리 없지 않은가.
“가자.”
이세연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태현의 작업이 끝났다면 이제 이세연의 시간이었다.
판온 1에서부터 이어져 온 대결을 판온 2에서도 펼칠 때가 온 것이다.
앞으로 굶주린 혼돈과 제대로 싸우기 시작하면 태현과 1:1로 대결할 기회가 아예 없을지도 몰랐다.
설사 굶주린 혼돈을 쓰러뜨린다 하더라도 그 뒤는 한쪽이 너무 강해져서 제대로 된 승부가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오직 지금.
지금 하지 않으면 안 됐다.
‘말리고 싶다.’
‘그 귀한 주문서를 꼭 그렇게 써야 하나?’
‘솔직히 지금 둘이 싸워서 좋을 게 없는 거 같은데….’
길드원들은 매우 뜨뜻미지근한 표정으로 이세연을 쳐다보았다.
판온 1 때부터 이세연을 따라왔던 길드원인 만큼 길마의 고집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같은 상황에서 꼭 싸워야 하나’ 싶은 생각은 가시질 않았다.
‘김태현 선수가 그냥 지금은 못 싸우겠다고 하면 안 되나?’
‘스킬 쿨타임이나 사망 페널티 없다지만 싸움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 피로도 보통이 아닐 텐데.’
이세연은 길드원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짐작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
이건 김태현이나 이세연 본인이 아니라면 이해할 수 없는 문제였으니까.
“김태현 선수다!”
마침 반대편에서 태현이 새 갑옷과 검을 들고 걸어오고 있었다.
이세연의 길드원들은 그 모습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둘 중 물러서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냐…!
* * *
[<고대 제국의 잊혀진 결투장>으로 이동합니다.]
[모든 스킬의 쿨타임이 일시적으로 초기화됩니다.]
[사망 페널티를 받지 않습니다.]
[…….]
[…….]
[…….]
‘아니. 이런 주문서가 있었나?’
이동한 태현은 새삼 아까워졌다.
물론 서로 아끼지 않고 치고받으려면 이 정도 준비는 필요하겠지만, 이런 아이템은 정말 처음 들어본 것이다.
아마 이세연도 이 아이템을 얻기 위해 만만치 않은 연계 퀘스트를 깨야 했으리라.
“준비됐으면 말해. 시작하자.”
“난 얼마든지 준비됐지.”
만약 사람들이 알았다면 억만금을 주고서라도 이 희대의 결투를 보려고 했을 것이다.
어떤 제약도 없이 서로 풀파워로 치고받는 김태현과 이세연.
판온 리그의 팬들이라면 누구나 꿈꿔본 꿈의 경기인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지금 이 결투가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아는 사람조차 몇 없었다.
그리고 태현도, 이세연도 이 경기를 밖으로 공개할 생각은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이기면 이세연이 창피하겠지.’
‘내가 이기면 김태현이 창피하겠지.’
미운 정도 정이라고 상대를 나름 배려해 주는 둘.
자기가 질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사실 준비됐으면 시작하자고 말하는 것부터가 약간 안일하다고 해야 하나? 원래라면 그냥 들어온 순간부터 공격해야지.”
“…….”
감정부터 흔들어서 조종하려는 태현의 모습에 이세연은 침착하기 위해 집중했다.
태현의 저런 모습을 한두 번 본 것도 아니잖은가.
“그런 것치고는 왜 안 덤벼드는데? 설마 겁먹은 거야?”
“무슨 섭섭한 소리. 지금 스킬 준비하고 있는 거 안 보여? 시간 되는 순간 나갈 텐데, 먼저 대비하는 게 좋을걸.”
“퍽이나 그러시겠네. 지금 네 근처에 내가 언데드 소환 준비 끝내놓은 건 알고 있고? 이 손가락만 튕기면 공격이 개시될 거야.”
서로 허세와 허세를 부리며 공기가 점점 더 팽팽해졌다.
그렇게 입을 놀리면서도 태현과 이세연은 서로의 동작 하나하나에 눈을 떼지 않았다.
서로 실력은 지겨울 정도로 잘 알고 있었다.
잠깐의 방심이 치명상을 불러올 수도 있다!
‘언데드 군대와 골렘을 소환한 다음 저주로 날 묶으려고 하겠지. 폭탄으로 쓸어버린 다음 무조건 일직선으로 돌격한다. 근접전으로 몰고 가면….’
‘폭탄으로 쓸어버린 다음 일직선으로 돌격하려고 하겠지. 거리를 벌리면서 데미지를 쌓아나간다.’
[굶주린 혼돈이 공간을 찢고 나타납니다.]
“???”
“?????”
들어라. 아키서스의 후계자여. 너의 동료들이 내 손아귀에 갇혀 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놈들이지. 네게 기회를 주겠다.
[굶주린 혼돈이 차원의 문을 엽니다.]
구해보려면 구해봐라. 네 재주라면 자신이 있겠지! 빨리 결정하는 게 좋을 거다. 저 문은 곧 닫힐 테니까.
굶주린 혼돈은 그 말을 끝으로 사라졌다.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
“…….”
이세연은 처음에는 굶주린 혼돈에게 어이가 없었다.
저런 어린아이도 속지 않을 수작을 부리다니.
누굴 바보로 아나?
게다가 태현은 절대 저런 인질극에 흔들릴 사람이 아니었다.
판온 1 때를 생각해 보면 ‘열심히 죽여 봐라’하면서 비웃을 사람!
이세연은 다시 태현을 쳐다봤다. 혹시 태현이 이 상황을 틈타 기습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
이세연은 충격받은 눈빛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태현이 처음 보는 얼굴로 이세연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간절하게 무언가를 부탁하고 싶지만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는 얼굴.
저런 얼굴은 처음이었다. 태현 같은 사람이 저렇게 굴다니.
그리고 지금 같은 상황에서 태현이 하기 힘들어하는 부탁은 하나밖에 없었다.
“이세연. 혹시….”
“안 돼.”
이세연은 자기 입에서 흘러나온 차가운 목소리에 놀랐다. 머리에서 생각하기도 전에 입술이 멋대로 움직인 기분이었다.
그런 거절에도 태현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안 되나?”
“아니….”
이세연은 방금 한 말을 후회하면서 취소하려고 했다.
지금 굶주린 혼돈 쪽에 갇혀 있는 원정대 플레이어들은 태현의 친구만 있는 게 아니었다. 이세연과 친한 플레이어들도 여럿이었다.
그런 사람들을 구하러 간다고 하면 이세연이 이해해 줘야 했다. 아니, 오히려 도와줘도 모자랐다.
그런데 그러라는 말이 도저히 나오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태현의 입이 다시 열렸다.
“이세연. 내가 졌다.”
“…!!”
“누가 물어보면 네가 이겼다고 해도 좋아. 난 기권하겠어. 미안하다. 이렇게 준비했는데 제대로 싸워주지 못해서.”
태현은 그 말과 함께 고개를 숙이더니 그대로 차원문을 향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