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670화
시험을 통과했다는 메시지와 함께 <고대 제국 황실의 반지>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태현의 손가락에 스스로 꽂혔다.
파아아앗!
눈 부신 빛과 함께 나타난 것은 처음 보는 황궁의 모습이었다.
‘고대 제국의 황궁인가?’
누가 설명하지 않았음에도 태현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판온의 내로라하는 호화로운 궁전에서도 본 적 없는 거대하고 아름다운 조각상들.
거대한 복도 옆을 가득 채운 예술품들과 보석들.
이곳이 고대 제국의 황궁이 아니라면 어디겠는가?
[고대 제국의 잊혀진 황궁을 목격합니다!]
[명성이 크게 오릅니다!]
[제국의 후계자 스탯이 오릅니다.]
[<고대 제국 황실의 반지>에게 인정받은 주인으로서 황궁에 입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태현은 크게 놀랐다.
고대 제국의 황궁에 입장할 수 있게 되었다고?
그렇다면 저기 있는 모든 아이템들을 꺼내서 쓸 수 있다는 소리인가??
[카르바노그가 그건 좀 그렇지 않냐고….]
‘고대 제국 사람들도 내가 써주길 원하고 있지 않을까? 카르바노그.’
그러나 태현의 기대는 한풀 꺾여야 했다. 다음 메시지창이 나온 것이다.
[환상으로 만들어진 고대 제국의 잊혀진 황궁에는 고대 제국의 인물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당신을 인도할 것입니다.]
‘…사람보다는 아이템이 좋은데.’
환상이라면 가지고 나갈 수 없지 않은가!
* * *
태현이 발걸음을 내디뎌 황궁으로 입장하자, 벽에 있던 흐릿한 유령이 나타났다.
[고대 제국의 황제, 엑솔랍 3세의 그림자가 당신을 맞이하러 나옵니다!]
[엑솔랍 3세는 검술의 달인이었습니다. 검술 스킬이 오릅니다!]
[엑솔랍 3세가 가진 가호를 넘겨받습니다. 추가적으로 버프를 받습니다!]
[….]
[….]
[….]
‘이게 황제인가!’
흔히 왕이나 황제는 그 타고난 아우라가 다르다는 말이 있었다.
태현은 ‘그게 뭔 소리야?’라고 코웃음을 쳤지만, 놀랍게도 아무 근거 없는 말은 아니었다.
엑솔랍 3세는 만나자마자 자신이 황제라는 걸 느끼게 해줬다.
…각종 보상으로!
‘다른 황제는 더 없나?’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폐하! 그런데 다른 황제분들은….”
-다른 자들은 아직 잠들어 있네. 자네의 능력으로 더 깨울 수 있겠지.
엑솔랍 3세는 위엄 있는 표정으로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러고는 기겁해서 뒤로 펄쩍 뛰었다.
-…으아악! 자네 아키서스의 후계자 아닌가!?
“….”
[….]
태현은 살짝 상처받았다.
‘아니, 아키서스 교단이 그다음에면 모를까 고대 제국 시절에는 정말 충성스럽게 열심히 싸우지 않았나? 너무하네.’
“아키서스 교단의 후계자가 들어오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습니까?”
-아… 아니. 문제는 아니지. 다만 좀 너그럽고 관대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황위에 앉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으흠. 반지의 시험을 통과한 게 맞나? 혹시 다른 방식으로 들어온 건 아니겠지?
“저 그냥 가보겠습니다.”
-아닐세! 아니야!
엑솔랍 3세는 허겁지겁 말렸다.
하긴 아무리 아키서스 교단의 후계자라 하더라도 반지의 시험을 속이고 들어오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정말 말도 안 되는군!’
고대 제국의 황제들은 능력뿐만이 아니라 인성도 중요시 여겼다.
그런 점에서 아키서스 교단은 능력은 있지만 인성은 좀… 그런 편이었다.
그렇기에 여기 찾아올 제국의 후계자가 설마 아키서스 교단의 관련자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이렇게 후계자가, 심지어 아키서스 교단의 후계자가 찾아올 줄이야…. 대륙이 매우 혼란스러운 모양이로군.
“맞습니다.”
왜 아키서스 교단의 후계자가 찾아온 것과 그게 연관된 건진 모르겠지만,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좀 도움을 내놓아라!
-굶주린 혼돈의 짓이겠지. 굶주린 혼돈은 이미 제국 시절부터 대륙을 멸망시키고 자신의 허기를 채우려고 야욕을 부려왔었다. 제국의 황제들은 대대로 굶주린 혼돈의 힘을 막기 위해서 애썼지.
“과연….”
-아키서스 교단은 그중에서도 가장 적극적으로 굶주린 혼돈을 토벌한 교단이다. 아마 제국 이후에도 계속해서 대륙에 남아 굶주린 혼돈과 맞서 싸운 모양이군. 그래서 교단의 후계자가 이렇게 찾아온 거겠지?
“…사실 망하고 나서 제가 부활시켰습니다. 부활시킨 지 몇 년도 안 됐고요.”
-으응?!
엑솔랍 3세는 깜짝 놀랐다.
제국이 망한 건 받아들일 수 있어도 아키서스 교단이 망했다는 건 매우 놀라웠던 것이다.
어떻게 망했지??
-아키서스 교단이??
“망하지 말란 법이 있습니까?”
-그건 아니지만… 정말 놀랍군. 허어. 아키서스 교단이… 그래도 부활해서 다행이야. 아키서스 교단은 없는 편보다는 있는 편이 좋지.
“….”
-아, 아차. 내가 괜한 소리를 했군. 자네에게 이 깃발을 주겠네.
고대 제국 황실의 깃발:
고대 제국 황실에 대대로 내려온 황실을 상징하는 깃발이다. 이 깃발에 깃든 위엄은 어떤 왕족도 따라올 수 없을 것이다.
소지 시 <제국 황실의 후계자> 버프. 영지에 추가 보너스. NPC들의 충성도 증가.
스킬 ‘황실의 위엄’ 사용 가능.
-평범한 깃발로 보이겠지만 그건 평범한 깃발이 아닐세.
‘딱히 평범해 보이진 않는데.’
붉은 비단에 금실로 수를 놓은 화려한 외관부터 시작해서 그 효과까지 어느 하나 평범한 게 없었다.
-전성기에 사용하던 깃발들에 비교하면 초라하고 투박한 깃발이긴 하지만, 그 깃발도 일단 황실의 깃발. 남아 있는 게 이것밖에 없어서 아쉽긴 하지만….
“….”
태현은 황제의 말에 소름이 돋았다.
대체 얼마나 좋은 아이템들이 많았기에….
-그 깃발을 들고 사람들을 모으게! 사람들이 모이면 모일수록 제국이 다시 모습을 갖기 시작할 테니까. 그리한다면 더욱더 많은 선대 황제들이 자네를 도와줄걸세.
<고대 제국의 부활-고대 제국 계승 퀘스트>
황실의 반지에 남아 있던 그림자, 엑솔랍 3세는 당신에게 새로운 길을 가르쳐 줬습니다.
시험을 통과한 당신은 땅과 사람을 모아서 제국의 형태를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황제가 가리킨 방향을 따라 나아가십시오!
보상:???
“알겠습니다!”
-그….
엑솔랍 3세는 말을 다 하고 나서도 뭔가 망설이는 기색이었다.
뭐라도 힌트를 얻을 수 있을까 싶어 태현은 물었다.
“경청하겠습니다. 말해주십시오.”
-그, 반대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좀 죽이지는 말고… 아니, 그것까지는 바라지는 않겠네! 좀 덜 죽이게!
“….”
-…힘들겠나? 그러면 그, 관계자까지 처벌하는 건 좀….
“…알겠습니다. 명심하도록 하지요.”
[엑솔랍 3세의 친밀도가 올라갑니다!]
[평가가….]
-오오! 정말 관대하군! 믿기질 않는군그래!
‘대체 이 황제 속에서 아키서스 교단은 어떤 이미지인 거지?’
태현은 물어보려다가 참았다.
* * *
[<아키서스 화신의 아다만티움 갑옷>이 완성됩니다.]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오릅니다.]
[최고급 대장장이 기술 5에서 최고급 대장장이 기술 6으로 변합니다!]
[<완벽한 강화> 스킬이 진화합니다. <아키서스의 강화>로 변합니다.]
[<수리> 스킬이 진화합니다. <아키서스의 수리>로 변합니다.]
[각종 제작법에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추가로 제작 가능한….]
[….]
[….]
자리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NPC든 플레이어든 가리지 않고 탄성을 내뱉었다.
그만큼 만들어진 갑옷이 아름다웠다.
여러 대장장이 랭커들이 ‘내가 만든 갑옷이 판온에서 최고다’라고 주장해왔지만 오늘 이후로는 그런 말을 할 수 없어질 것이다.
누가 봐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지금 판온에서 만들 수 있는 갑옷 중 최고의 갑옷이 나왔다고!
“입어보시죠.”
주변에 있던 대장장이 플레이어들은 모두 눈빛을 반짝거리며 태현을 쳐다보았다.
대장장이로서 가장 뿌듯한 순간 중 하나는 바로 이럴 때였다.
상대가 입고서 리액션을 보여줄 때!
…같은 대장장이인 만큼 태현이 그런 기분을 모를 리 없었다.
‘꽤 부담되는데 이거.’
태현은 대장장이들이 보내는 초롱초롱한 눈빛에 살짝 긴장했다.
이렇게까지 도와준 이상 제대로 된 리액션을 보여줘야 한다!
“우… 우와아아아앗! 정말 대단한 갑옷이군!”
“역시!”
“만족하실 줄 알았습니다!!”
대장장이들은 태현의 반응에 뛸 듯이 기뻐했다.
평소에 저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사람일수록 더더욱 뿌듯한 법.
“디자인은 어떻게 생각하시죠?”
“정말 완벽에 가까운 디자인이군.”
“무게는?”
“정말 완벽에 가까운 무게….”
“내구도는? 다른 스탯은? 추가 옵션은?”
“정말 완벽에 가까운….”
제작이 관련되면 대장장이 플레이어들은 약간 이상해지게 마련.
질문 폭포에 시달리던 태현을 구해준 건 <제국 기계공학자의 마검>이었다.
[<제국 기계공학자의 마검>이 불을 내뿜습니다.]
[최후의 작업이 마무리됩니다!]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오릅니다.]
[기계공학 스킬이 오릅니다.]
“끝, 끝났다!!!”
“끝났어!! 저 미친놈의 검이 드디어 끝났다고!”
“으헝헝!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
태현은 대장장이들한테 갑자기 미안해졌다.
‘마검은 그냥 혼자 만들 거 그랬나….’
얼마나 사건 사고가 많이 일어났으면 저런 반응을 보였겠는가.
지칠 대로 지친 대장장이 플레이어들은 아까 갑옷과는 정반대의 반응을 보여줬다.
“꼭 들어보셔야겠습니까?”
“다른 사람이 먼저 들면 안 되나?”
“저걸 누가 들어? 들 수도 없을 것 같은데.”
“아… 아무리 봐도 느낌이 싸한데….”
“저 흉악한 디자인을 보라고. 딱 봐도 저주받은 마검인데. 대체 저걸 왜 만드신 걸까?”
“굶주린 혼돈의 첩자가 와서 저주를 풀어놓고 간 거 아니야?”
대장장이 플레이어들은 나름 태현의 귀에 안 들리는 목소리로 쑥덕댔지만, 이미 수군거리는 모습으로 무슨 대화를 하는지 짐작이 갔다.
‘괜히 더 불길해지게 만드는군.’
하지만 이미 만든 아이템을 안 쓸 수는 없었다. 태현은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마검은 그 소란에 비하면 꽤나 평범한 모습이었다.
묵색의 검신에 칼날은 기계장치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복잡한 문양이 겉으로 빛났다.
철커덕!
태현이 가까이 다가가자 칼자루에 박혀 있던 검붉은 보석이 마치 눈동자처럼 떠졌다.
-왔구나. 후계자여.
“???”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전에 고대 제국의 후계자 소리를 들었던 만큼 태현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
물론 검이 말하는 건 놀랍긴 했지만 그 정도야….
“그래. 나는 고대 제국의 후계자로서….”
-무슨 소리냐?
“?”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의 후계자란 소리였다. 우리는 제국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의 영혼이다!
“….”
태현은 질색했다.
[카르바노그가 뭐 저런 미치광이들이 있냐고 질색합니다!]
-우리는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에 버금가는 뛰어난 후계자가 다시 한번 이 마검을 만들고 우리를 깨우는 순간을!
‘…좀 미치광이 같긴 해도 뜻은 나쁘지 않군.’
생각해보니 고대 제국의 황제들도 그렇고 드래곤도 그렇고 다들 먼 훗날을 걱정해서 이것저것 남겨 놓은 것 아닌가.
실제로 태현에게 도움이 되고 있기도 했고.
마검에 깃들어 있던 게 조금 기분 나쁘긴 했지만 태현은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군. 굶주린 혼돈을 멸하고 제국을 지키기 위해서 그쪽도….”
-무슨 소리냐? 그건 알 바 아니고. 기계공학이나 올려라.
-우리가 널 가르쳐 주겠다. 더욱더 높은 기계공학의 길을 향하여!
-기계공학의 정점에 서는 거다!
“…지금 굶주린 혼돈이 대륙을 불태우고 있는데….”
-그건 중요하지 않다니까! 그런 것에 신경 쓰지 말고 기계공학을…!
찰칵-
태현은 손을 뻗어서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