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665화
“물론. 흑흑아. 당연히 네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다만 저 블랙 드래곤의 악령이 널 공격할까 봐 조심한 거지.”
태현은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말했다. 그러자 흑흑이가 감동받았다.
-주인님!
“그래! 네 안전이 우선이다!”
-공격 안 해도 되나?
기다리던 에슬라가 지루하다는 듯이 물었다.
태현은 흑흑이를 껴안고 시선을 가린 채 에슬라한테 공격하지 말라고 신호를 보냈다.
“블랙 드래곤의 영혼! 이걸 봐라! 여기 블랙 드래곤이 있다!”
-!
블랙 드래곤의 영혼은 기대하지 않았는지 지루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다가 깜짝 놀랐다.
[블랙 드래곤의 영혼이 매우 놀랍니다!]
[평판이 크게….]
[친밀도가 크게….]
[….]
[….]
-놀랍군! 정말로 데리고 올 줄은 몰랐는데!
“봐라. 블랙 드래곤의 영혼! 나는 이렇게 블랙 드래곤과 친하다!”
-그렇게 보인다.
영혼은 인정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상당히 어린 드래곤 같아 보이는데. 어떤 사연으로 같이 다니게 된 거지?
“소환수다.”
-잠깐. 너는 아키서스 아니었나? 어떻게 블랙 드래곤을? 내가 모르는 사이에 블랙 드래곤 종족이 아키서스와 새로운 계약이라도 맺은 건가?
“이야기하자면 긴 사정이 있지. 어쨌든 블랙 드래곤의 인정을 받았으니, 별다른 불만은 없겠지?”
-그렇다. 하지만 궁금하군. 어떻게 된 건지 조금 더 묻고 싶은데….
블랙 드래곤의 영혼은 정말 신기했는지 이것저것 캐물었다.
흑흑이는 대답을 피하기 위해 진땀을 흘렸다.
사디크와 계약했지만 어쩌다가 뺏겨서 아키서스 밑에서 일하고 있다고 하면 그건 너무 멍청해 보이지 않는가.
하지만 블랙 드래곤의 영혼은 생각보다 교활하고 영리했다. 금방 숨겨진 진실을 알아차렸다.
-설마 아키서스한테 뺏겨서 강제로 소환된 건가!? 사디크, 이런 머저리 같은 놈!
블랙 드래곤은 믿기 힘들다는 듯이 외쳤다.
에슬라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에슬라가 블랙 드래곤이었어도 믿기 힘들었을 것이다.
신이라는 자가 계약도 제대로 간수 못 해서 남한테 뺏기다니….
그 반응에 흑흑이는 살짝 안도했다.
분위기를 보니 사디크가 욕먹고 흑흑이는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
-너도 마찬가지다. 어린 블랙 드래곤! 아키서스 정도는 네 혓바닥으로 구워삶을 수 있어야지!
“…….”
-아. 미안하군. 아키서스. 오해하지 마라.
“뭘 어떻게 오해하지 말란 건진 모르겠지만 일단 알겠다.”
-블랙 드래곤으로 태어나서 다른 종족에게 속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우리 블랙 드래곤은 모든 종족을 교활하게 지배하고 다룰 줄 알아야 한다. 무슨 소리인지 알겠느냐?
-예….
흑흑이는 뭐라고 반박도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용용이나 불불이가 선배 드래곤들한테 이것저것 받고서 배울 때는 부러웠는데, 막상 선배 블랙 드래곤을 만나니까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골드 드래곤이나 레드 드래곤과 달리 블랙 드래곤은 같은 종족이라 하더라도 딱히 도움이 되진 않았던 것이다.
쓸데없는 잔소리만 많고….
30분 정도 설교를 하고 나서 블랙 드래곤의 영혼은 흑흑이한테 말했다.
-어리석고 순진한 널 보니, 네가 앞으로 고생이 많을 거라는 게 짐작이 간다. 내가 블랙 드래곤으로서의 가르침을 내려줄 테니 이것을 받아들이고 앞으로는 더욱더 사악하게 굴도록 하여라.
[블랙 드래곤의 영혼이 가호를 시전합니다!]
[흑흑이에게 가호가 시전됩니다.]
[블랙 드래곤의 영혼이 자신의 힘을 흑흑이에게 전달합니다.]
[흑흑이의 성장이 빨라집니다!]
[흑흑이의….]
[….]
[….]
* * *
‘어라? 괜히 따라왔나?’
이다비 뒤를 우르르 따라온 수많은 플레이어들은 속으로 생각했다.
처음에는 ‘오크 아저씨들 따라가다가 우리가 먼저 죽겠다!’ 싶어서 팀 KL 퀘스트를 돕겠다고 따라온 거였는데, 이게 생각보다 너무….
쉬웠다.
-아키서스 교단의 교황이자 고대 제국의 후계자, 오스턴 왕국의 새 지배자이자 아탈리 왕국의 현 지배자, 성과 도시를 파괴하고 악마 공작을 부리시는 자….
-더 말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가서 돕겠습니다!
[대장장이가 설득됩니다!]
[아레네 시로 향합니다!]
이다비가 가서 무슨 말만 하면 NPC들이 ‘돕겠습니다!’, ‘굶주린 혼돈이 이렇게 왕국을 파괴하고 있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며 벌떡벌떡 일어서니 플레이어들 입장에서는 좀 김이 빠졌다.
심심하다!
보통 ‘허허… 모험가여. 나의 도움을 구하기 위해서 찾아왔는가? 성의를 보이기 위해 저 산의 철광석을 모두 캐오거라!’ 같은 불합리한 퀘스트를 시키지 않나?
플레이어들은 인정하기 싫어했지만, 그들은 김태산 길드원들과의 무한사냥에 중독된 상태였다.
1분이라도 쉬면 ‘어? 쉬어도 되나? 뭔가 심심한데?’라고 반응하는 경지!
-걱정하지 마라. 지금 가는 곳에 있는 NPC는 비전 대장장이인 오일라다. 성격 까다롭기로 유명한 NPC지. 분명 귀찮고 짜증 나는 퀘스트를 시킬 거다.
-큭큭. 이다비 선수는 모르고 있겠군요.
-그렇지. 후후.
-…근데 우리 도우러 왔는데 이런 못된 생각을 해도 되는 거 맞습니까?
-못… 못된 생각이라니? 우리가 방해하려는 것도 아니고… 순수하게 도우려는 마음이지!
-맞, 맞아! 그냥 좀 심심해서 할 일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뿐이야! 조금 음험하게 웃긴 했지만 정말 도우려고 한 거라고!
“오일라 님. 여기 새로 쓰실 망치를 찾아서 갖고 왔습니다.”
-정말 세심하구나, 모험가여! 너의 부탁을 들어주겠다! 굶주린 혼돈과 맞서 싸우기 위한 일인데 나 혼자 산골에 숨어 있을 수는 없지!
“…….”
“…….”
플레이어들의 표정은 시무룩해졌다. 아저씨들은 감탄하다가 그걸 보고 의아해했다.
“다들 왜 그러냐?”
“그러게? 별로 안 기쁜 표정이다?”
“기, 기쁩니다.”
“물론 기쁘죠….”
팡!
그 순간 하늘에 불꽃이 쏘아지더니 그대로 터져나갔다. 마치 신호탄 같은 불꽃이었다.
[굶주린 혼돈의 하수인이 신호를 보냅니다!]
-아키서스를 받드는 건방진 모험가들이 나타났다! 놈들을 반드시 쓰러뜨려라!
“와아아아아아아!!”
“왔구나!! 왔어!”
플레이어들은 환호성을 터뜨렸다.
그 반응에 팀 KL 선수들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뭐지?
“…크흠. 크흠.”
“자. 다 같이 싸울 준비 하자!”
“방금 여러분 환호성을….”
“사제님! 빨리 버프 걸어주세요!”
“아까 걸어드렸…?”
어쨌든 앞에 적이 나타난 만큼, 일행은 바로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팀 KL 선수들은 물론이고 여러 랭커들이 있는 상황.
어느 누구도 불리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익숙한 얼굴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스미스!”
“스미스다!!”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 전부 데리고 가서 김태현 한 명 못 잡고 다 말아먹은 스미스!”
“정, 정수혁 선수. 너무 도발이 심한 거 아닙니까?”
“앗. 그렇습니까? 별생각 없이 말했는데 좀 너무 심했나….”
스미스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지만, 그 옆에 있던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이 더 화를 냈다.
“김태현을 직접 상대도 못 해본 새끼들이 뭐라는 거냐!”
“김태현이 그런 스킬 숨기고 있었을 거라고 예상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데 그게 왜 우리 탓이냐!”
“이봐! 넘어가지 마! 우리가 도발에 걸리면 어쩌자는 거냐!”
뒤에 따라온 뉴욕 라이온즈 코치가 선수들을 말렸다.
안 그래도 김태현 한 명과 붙은 충격적인 싸움 결과로 인해 광고 몇 개가 날아가고 광고주들이 진지하게 ‘이거 망하는 거 아니요?’하고 항의 연락을 해온 상황이었다.
농담이 아니라 퀘스트 하나로 게임단 평가가 오르락내리락하는 상황인 것이다.
자유롭게 판온을 즐기던 선수들 입장에서는 황당할 수도 있겠지만, 대기업의 후원을 받아가며 하고 있는 이상 그들도 신경을 써야 했다.
케인은 스미스를 보자 괜히 긴장이 됐다.
‘내가 상대해야 하는 건 아니겠지?’
케인이 신경 쓰는 이유가 있었다.
사실 스미스는 따지고 보면 태현과 1:1로 상대해야 할 포지션이 아니었다.
스미스는 팀의 메인 탱커.
태현은 메인 딜러.
…케인은 메인 탱커.
즉 원래 스미스는 케인이랑 맞붙어야 하는 것이다.
“스미스 놈. 간덩어리가 아주 단단히 부었구나!”
“여기 팀 KL의 케인이 있다!”
김태산과 아저씨들은 호탕하게 외쳤다.
“이 친구를 네가 감히 상대할 수 있을까?”
“저번에 태현이 말하는 거 들어보니까 스미스 넌 이 친구 아래야!”
“예??”
케인은 표정 유지하려 애쓰다가 더 이상 유지할 수가 있어서 펄쩍 뛰었다.
케인 밑 스미스라니.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더라도 케인은 인정하지 못했다.
그게 무슨 무시무시한 소리란 말인가.
그러다가 나중에 스미스가 ‘어이 케인 씨 당신이 나보다 위라고요? 1:1로 한번 겨뤄봅시다’ 같은 말이라도 하면 어쩐단 말인가.
케인이 생각하기에 케인이 스미스보다 뛰어난 점은 팔 개수밖에 없었다.
“케인! 케인! 케인!”
“스미스! 자신 있으면 어디 한번 일대일로 붙자! 넌 솔직히 김태현보다는 케인부터 이기고 와야 해!”
그 말에 자극받은 플레이어들이 합창하듯이 외쳤다.
케인은 사색이 되어서 정수혁과 최상윤을 쳐다보았다.
-제발 말려줘!
‘야 이걸 어떻게 말리지?’
‘그러게 말입니다.’
그러나 정수혁과 최상윤이라 하더라도 저걸 말릴 재주는 없었다.
저 분위기에 끼어들어서 ‘아니! 사실 케인은 스미스보다 약해! 다들 진정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저 자식들이 진짜!”
“뚫린 입이라고 아무 말이나 내뱉어도 되는 줄 아냐! 어떻게 스미스가 케인 밑인데!!”
분노한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은 욕설을 퍼부었다.
밖에서 보는 일반인들 눈에는 ‘와 팀 KL이 1위 팀인가? 거기 메인 탱커라고? 그리고 월드컵도 나가고? 와! 진짜 개쩌는 선수인가 봐!’로 보이겠지만….
거기서 뛰는 선수들은 솔직히 케인이 어느 정도 실력인지 느낌이 오는 것이다.
‘김태현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새끼가 저거!’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주문서 작동시켜!”
뒤에 코치들이 다급하게 외쳤다.
그들도 이렇게 간섭하고 싶진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 뉴욕 라이온즈도 필사적이었다.
오죽하면 퀘스트 나오면 분석팀이 어떻게 깨야 할지 하나하나 다 고민한 다음 방법을 지시할까.
“알겠습니다! 그만 떠들어요!”
[굶주린 혼돈의 힘이 장막을 드리웁니다….]
[굶주린 혼돈의 세계로 이동합니다!]
마치 예리한 칼로 잘라낸 것처럼, 주변 공간이 잘리며 그대로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
“이, 이건…?!”
굶주린 혼돈의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 * *
[용광로의 사용이 가능해집니다.]
[아다만티움 제련이 가능해집니다.]
‘정말… 힘들었다.’
뼈대를 갖춘 대장간은 이제 더 이상 대장간이라기보다는 거대한 투기장이나 요새에 가까웠다.
그만큼 어마어마한 규모였던 것이다.
아직 다 완성되지 않았지만, 안에 설치된 용광로는 열을 뿜어내며 광석을 제련할 준비를 마쳤다.
[레드 드래곤의 숨결이 제련을 돕습니다!]
[사디크의 화염이 제련을 돕습니다!]
[….]
[….]
[….]
[블랙 드래곤의 마법이….]
[진설의 냉기 정령들이….]
[….]
[….]
[….]
[….]
[카르바노그가 대체 얼마나 축복을 모아 온 거냐고 황당해합니다.]
‘고생한 보람이 있긴 하군.’
태현은 일단 작업을 시작할 준비를 했다.
갑옷부터 벗고….
[카르바노그가 작업 도중에 또 시련이 찾아오면 어떡하냐고 묻습니다.]
‘…솔직히 이제 나올 놈들 다 나오지 않았냐?? 없겠지.’
태현은 그러리라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