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664화
원래 대장간 건설 같은 건축 퀘스트는 훈훈하고 화기애애한 퀘스트였다.
-와! 제너럴갓태현! 너 또 새로운 대장간을 짓는 거니?
-그럼! 이번에는 냉기 무기를 집중적으로 만드는 대장간을 지을 생각이야!
-정말 아름답구나! 내가 뭐라도 도와줄까?
-그래! 도와주면 고맙지!
서로 친한 대장장이 플레이어들끼리 협력해서 재료도 모으고 도움도 받아가면서 뚝딱뚝딱 짓는 건축 퀘스트.
평화로운 분위기 때문에 힐링된다면서 이것만 챙겨보는 사람이 따로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도 사람에 따라 다른 법.
[강철에 봉인되어 있던 괴물이 튀어나옵니다!]
[강철의 괴물이 나타납니다!]
“…….”
태현은 황당하다는 듯이 대장간 토대 앞에 나타난 괴물을 쳐다보았다.
분명히 재료를 봤을 때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카르바노그가 대장간 건설을 위한 시련인 것 같다고 말합니다.]
‘아니. 뭐 이딴 시련이 있어?’
다른 대장장이들은 ‘재료 모아오세요’ ‘균형 맞춰서 기둥 세우세요’ ‘통풍 잘 되게 벽칠하세요’ 같은 퀘스트 나오는데, 태현은 왜 멀쩡하던 강철에 봉인되어 있던 괴물이 튀어나온단 말인가.
-정말로 대단하군!
옆에 있던 에슬라가 감탄했다.
-진정 위대한 건축물은 완성되기까지 시련이 필요하지. 온갖 적수들과 괴물들이 찾아와서 완성을 방해한다. 이렇게 괴물들이 찾아오는 걸 보면 진정 위대한 건축물이 완성되려고 하는가 보군.
“헛소리하지 말고 돕기나 해라.”
-알겠다. 알겠어.
태현이 까칠하게 말하자 에슬라는 악마들과 함께 더 이상 강철의 괴물이 날뛰지 못하도록 포위망을 쳤다.
마치 거대한 골렘처럼 생긴 강철의 괴물은 고함을 치며 달려들었다.
-뛰어난 대장장이여! 진정 강철을 다루고 싶다면 나를 굴복시켜봐ㄹ….
꽝!
에슬라는 강력한 힘으로 강철의 괴물을 후려친 다음 넘어뜨렸다.
그런 다음 마법을 연타로 갈겨서 강철의 괴물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비겁하다! 비겁하다! 이게 무슨 짓이냐! 악마를 시켜서 나를 제압하다니!
“…그럼 뭐 어쩌라고??”
태현은 어이가 없어서 강철의 괴물을 쳐다보았다.
갑자기 튀어나와서 날뛰던 주제에 정정당당하게 승부하라니.
뭐하는 새끼야 저거?
-네가 정정당당하게 나를 굴복시킨다면, 나는 네가 짓는 대장간을 축복하는 수호령이 되어줄 것이다! 나를 정정당당하게 굴복시켜라!
<강철의 괴물–거대 대장간 건축 퀘스트>
당신이 짓는 위대한 건물의 소식은 수많은 금속과 보석에 잠들어 있던 영혼들을 일깨웠다.
이 영혼들의 시련을 통과하고 그들을 인정시킨다면, 이 영혼들은 당신 대장간의 수호령이 되어 도와줄 것이다!
보상: ?, ???
‘아니….’
태현은 갑자기 예전 건축이 그리워졌다.
그냥 플레이어들만 설득하면 건축 끝이었던 그 시절!
그때는 이런 쓸데없는 고민을 하지 않고 그냥 지어 올려도 됐었는데….
‘참자. 대장간에 버프 들어가면 좋은 일이니까.’
“그래. 뭘 원하냐?”
-나를 위해 아름다운 무기를 하나 만들어다오! 강철이 들어간 무기여야 한다!
-으음. 귀찮게 되었군.
에슬라는 옆에서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딱 보아도 저 괴물은 보통 금속에서 나온 놈이 아니다. 어지간한 무기로는 만족하지 못할 거다. 저런 무기를 만들어야 하다니. 참으로 어렵겠어.
“…혹시 이 무기로는 안 되나?”
귀찮아진 태현은 <혼돈과 악마와 불의 검>을 꺼냈다.
여러 자루 만들어서 갖고 다니는 덕분에 한 자루 정도는 선물로 내줘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보스 몬스터 잡을 때는 검 파괴까지 해가면서 싸우는 만큼….
그러나 강철의 괴물은 보자마자 화를 냈다.
-지금 나를 뭘로 보는 거냐! 정성껏 새로 만들어도 모자랄 판에! 이런 검은… 음. 괜찮군.
[강철의 괴물이 당신의 검에 만족해합니다!]
[강철의 괴물이 다시 대장간 속으로 사라집니다!]
-이 검은 내가 받아가도록 하겠다. 뛰어난 대장장이여! 너를 축복한다! 너의 대장간을 지키는 수호령이 되어주겠다!
팟!
난동을 피우던 강철의 괴물이 거짓말처럼 사라지자, 건축을 진행하던 대장장이 NPC들은 감탄했다.
-역시 교황 성하십니다! 이런 난제를 한 번에 해결하시다니!
-어떤 대장장이도 교황 성하처럼 해내지는 못했을 겁니다!
돕고 있던 길드 동맹 간부들도 경악해서 수군거렸다.
“김태현 놈 바로 검 내민 거 봤지?”
“저런 제작을 한두 번 해본 게 아닌 것 같은데요?”
퀘스트를 깬 것 자체는 이제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 태현이 퀘스트 못 깨는 게 이상한 거지 깨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문제는 숨도 쉬지 않고 바로 검을 꺼내서 진행시켜 버렸다는 점이었다.
퀘스트에 대해 완전히 파악하고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
‘대체 저런 것까지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 거냐?’
‘무슨 방법으로…?’
-대장장이 랭커들 중에서 저 정도 되는 거대 대장간 만들어 본 사람 없지 않아?
-내가 알기로 없는데. 누가 남몰래 만든 게 아니라면야.
-어떤 사람이 저걸 몰래 만들어? 대대적으로 광고해도 모자랄 판에?
지금 판온의 유명한 대장장이 랭커들은 전부 다 개인 방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방송으로 인기를 모으고, 그 인기로 다시 재료 등을 모으고, 다시 제작을 하고….
사실 대장장이 랭커 혼자서는 직업 퀘스트도 깨기 힘들었다. 필요한 재료부터 쓰러뜨려야 하는 적들까지 너무 많았으니까.
대부분이 길드 소속으로 플레이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비밀리에 저런 걸 짓는 사람이라니. 있을 리가 없었다.
근데 김태현은 어떻게 저렇게 진행하고 있는 거지?
-역시 판온 1 때 실력 어디 안 가죠?
-판온 1이고 뭐고 간에 지금 다른 대장장이 랭커들도 한 적 없는 퀘스트를 어떻게 저렇게 진행시키고 있는 건데!?
* * *
[수랭석에 봉인되어 있던 괴물이 튀어나옵니다!]
[냉기의 괴물이 나타납니다!]
“또냐?”
[화약에 봉인되어 있던 괴물이 튀어나옵니다!]
[화약의 괴물이 나타납니다!]
“…?”
[폭탄에 봉인되어 있던 괴물이…]
“아니. 잠깐.”
계속되는 시련에 슬슬 태현은 무언가 위화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일단 폭탄은 건설 현장에 놓지도 않았던 것이다.
이거 설마….
‘나 때문인가??’
생각해 보니 대장간 퀘스트 떴을 때, 이 대장간은 태현의 분신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나오긴 했었다.
강철도 그렇고 화약도 그렇고 폭탄도 그렇고….
태현이 이제까지 하면서 쌓았던 칭호와 스킬들과 관련된 시련들이 나오는 건가?
‘잠깐… 내 제작 관련 업적이 뭐가 있었지.’
태현은 새삼스럽게 반성하며 칭호들을 확인했다.
뭔가 이것저것 부수고 무너뜨린 것들이 많았던 거 같은데….
<구성 강화의 성공자>
<위대한 파괴자>
<자폭하는 기계공학자>
<사디크의 화염을 막아낸 자>
<신성한 대장장이>
<철거의 달인>
<기계공학의 선두자>
<전설 등급의 제작자>
……
……
‘미친. 왜 이렇게 많지?’
태현은 스스로의 칭호 목록들을 보고 새삼스럽게 질렸다.
정말 많은 퀘스트를 깨왔었구나!
<드래곤을 폭탄으로 바꾼 자>
‘…….’
[…….]
태현과 카르바노그는 동시에 침묵했다.
설마….
설마 안 뜨겠지?
‘블랙드래곤의 악령 같은 거 나와서 제물 바치라고 하면 큰일 나는데.’
<아다만티움의 창조자>
<가장 뛰어난 갑옷을 창조한 대장장이>
<고대 제국 기술의 계승자>
……
……
[카르바노그가 이거 괜찮은 거 맞냐고 묻습니다.]
칭호 하나당 시련 하나만 해도 건설이 불가능할 것 같은데….
[고대 제국의 조각에 봉인되어 있던 괴물이…]
[……]
-고대 제국의 기술로 만든 아이템을 내게 바쳐라! 바치지 않는다면 나는….
“여기 있다! 가져가라!”
태현은 저번에 만들어놨던 아이템 중 하나를 꺼내 집어 던졌다.
퀘스트 깨면서 만들어놔서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얼마나 오래 걸렸겠는가.
“오오오오!”
“또 해냈어!”
광장에 몰려온 플레이어들은 감탄하며 구경했다.
대장장이 기술이 낮아서 직접 돕지는 못하더라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재밌었다.
앞으로는 무슨 괴물이 나올까?
‘작작 떠라.’
[카르바노그도 제발 쉬운 놈이 나오길 기도합니다.]
오죽했으면 처음에는 기쁜 일이라고 축하하던 에슬라도 질린 표정이었다.
-대체 얼마나 업보를 쌓았길래 이렇게 많은 존재들이 찾아오는 것인가? 좀 심한 것 아닌가? 아무리 좋은 대장간을 만들고 싶어도 그렇지….
“내가 좋아서 이런 걸로 보이냐?”
태현은 한숨을 쉬며 앞을 쳐다보았다.
다행히 아직까진 어떻게 다 가능한 것만 나오긴 했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었다.
제발 좀….
[블랙 드래곤의 영혼이 나타납니다!]
“…젠장.”
[카르바노그가 깊은 한숨을 터뜨립니다!]
<블랙 드래곤의 영혼–거대 대장간 건축 퀘스트>
당신은 블랙 드래곤을 쓰러뜨리고 영혼에 그 업적을 새긴 영웅이다.
대륙을 떠도는 블랙 드래곤의 영혼은 그런 당신의 소문을 듣고 이렇게 찾아오게 되었다.
비열하고 까다로운 블랙 드래곤을 납득시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겠지만, 그걸 성공시킨다면 이 블랙 드래곤의 영혼은 당신의 대장간을 축복해 주리라!
보상: ?, ???
“에슬라. 기계 에다오르. 전투 준비해라.”
태현은 주섬주섬 무기를 들었다.
어쩌겠는가.
납득 시킬 자신이 없으면 그냥 패서 쫓아내야지!
‘블랙 드래곤 버프는 포기해야겠군.’
“왜 무기를 드시는 거지?”
“설마 싸우시려는 건가?”
“하. 이래서 무식한 전투 직업들은… 퀘스트 해결 방식이 싸움밖에 없냐?”
“뭐 이 자식아?”
“다들 싸우지 마세요! 방해됩니다!”
“잘 봐라. 김태현 선수는 단순히 전투 직업이 아니라, 제작 직업에서 시작한 사람이야. 그런 만큼 제작 직업 퀘스트를 어떻게 깨는지 잘 알고 있다고.”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있던 대장장이 한 명이 아는 척을 하며 입을 열었다.
잘난 척에 짜증 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다들 궁금한 건 사실이었기에 귀를 기울였다.
“이제까지 해온 것처럼 제작 직업다운 해결 방법을 곧 보여주실 거다.”
“블랙 드래곤도?”
“그래. 블랙 드래곤을 만족시킬만한 아이템을 미리 만들어 놓은 거겠지.”
“오오오오…!!!”
“그게 뭐지?”
“블랙 드래곤의 비늘로 만든 방어구 같은 건가?”
“그건 더 열 받지 않나?”
수군거리는 사람들은 무시하고, 태현은 싸울 준비를 했다.
블랙 드래곤이 입을 열고 방심하는 순간 바로 공격 들어간다!
-내 요구는 하나다. 영웅이여.
“뭐냐? 전 세계 곳곳에 레어를 설치해 줘야 하나? 아니면 블랙 드래곤을 제외한 다른 드래곤들을 모조리 추방해야 하나?”
-그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내 요구는 하나다. 지금 살아 있는 블랙 드래곤 하나에게 인정을 받아라. 네가 블랙 드래곤들의 적이 아니라는 것만 확인한다면, 나는 기꺼이 동족을 쓰러뜨린 너를 축복해 주겠다!
“그래. 알겠다. 에슬라! 기계 에다오르!”
태현은 상대의 말은 한 귀로 흘리고 공격 준비를 했다.
하여간 블랙 드래곤 놈들은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는 재주가 있어!
[카르바노그가 잠시 기다려보라고 말합니다.]
‘기다려. 카르바노그. 이따가 이야기하자고.’
-저기. 주인님??
“흑흑아. 너도 좀 기다려. 지금 싸워야 하는데 왜 그래? 기회 놓치면 어쩌려고 그래?”
흑흑이는 머뭇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분위기 때문에 이상하게 말하는 게 민망하게 느껴졌다.
-아니… 제가… 블랙 드래곤인데… 혹시 저를 잊으신 건….
“!!!”
그랬다.
태현의 곁에는 블랙 드래곤이 하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