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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1657화 (1,656/1,826)

§ 나는 될놈이다 1657화

-그걸 왜 나한테 묻냐?

니팅거스는 까칠하게 화를 냈다.

지금 대륙을 떠나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자기 목숨 바쳐서 선배 골드 드래곤 대접해 주고 있는데 웬 블랙 드래곤 놈이 뜬금없는 질문을 하니 화가 나는 것이다.

-아… 아니. 물어볼 수도 있지 않습니까.

-레드 드래곤이 블랙 드래곤 사는 곳을 알고 있겠냐? 너 같으면 그러겠냐?

서로 색이 다른 드래곤들끼리는 별로 친하지 않다는 건 어지간한 플레이어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특히 레드 드래곤과 블랙 드래곤은 기본적으로 사이가 최악에 가까웠다.

골드 드래곤이나 실버 드래곤은 서로 선량한 편에 가까워서 가끔씩 안부도 전하고 서신도 교환하고 새로 누구 태어나면 선물도 보내주고 하지만, 레드 드래곤과 블랙 드래곤은 보통 만나면 ‘여긴 내 땅이다 꺼져라’ ‘미친놈 같으니 니가 꺼져라’ 하며 싸웠다.

성질 더러운 레드 드래곤 VS 성질 음험한 블랙 드래곤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니팅거스한테 구박을 받은 흑흑이는 시무룩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저….

-미안하군. 나도 블랙 드래곤들과는 사이가 좋지 않아서. 게다가 내가 봉인된 이후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다.

그러나 고이오노스도 블랙 드래곤들의 소식은 알지 못했다.

애초에 고이오노스가 활동하던 때부터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 연락처를 알 리가 없는 것이다.

-지금 가르침 전수하는데 방해하지 마라.

-미안하군. 블랙 드래곤.

-….

니팅거스와 고이오노스한테 모두 퇴짜를 맞은 흑흑이는 투덜거리면서 입을 다물었다.

그걸 본 태현은 속으로 생각했다.

‘학카리아스를 괜히 잡았나?’

그나마 아는 블랙 드래곤은 태현이 쓰러뜨린 블랙 드래곤밖에 없는데….

* * *

“놈이 움직인다!!”

이다비의 지휘하에서 움직이고 있던 골짜기 파티들은 거대한 드래곤 키메라의 모습에 전율했다.

저 놈은 사실상 드래곤보다 더 위협적인 놈이었다.

“아키서스 포병대 더 빨리 발사 안 됩니까?”

-자네는 양심이 없나?

아키서스 포병대 드워프들은 플레이어들의 말에 화를 냈다.

지금 전투가 시작되고 나서 몇 시간을 쉬지 않고 계속 발사하고 있었는데…!

아무리 대주교들이 버프를 걸어주고 있다고 하더라도 드워프도 사람이고 저 안에 갇혀 있는 악마도 살아 있는 생명체인 것이다.

-여기 이 악마를 보게! 비쩍 말랐잖나!

-흑흑.

“아… 아니. 그건 알겠지만 지금 여러분들의 지원이 없으면 안 되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여러분들이 없으면 저희는 어떡하라고! 대주교님들. 설득해주십시오!”

-으음. 어떻게 조금 더 안 되겠습니까?

방금까지 대포와 포병대에게 각종 버프를 미친듯이 걸어줬던 대주교들이 나서서 저렇게 말하자, 아키서스 포병대는 냉정하게 거절하지 못했다.

이제까지 보여줬던 전투는 사실상 저 교단의 대주교들이 걸어준 버프 덕분이었던 것이다.

[베레타르바 교단의 축복으로….]

[장전 속도가 빨라집니다!]

[대포의 과열이 줄어듭니다!]

[정확도가 올라갑니다!]

[화력이….]

[….]

[….]

[….]

솔직히 아키서스 포병대들도 저 버프 덕분에 신이 나서 더 열심히 쏜 것도 있었다.

-에잇! 어쩔 수 없지. 알겠습니다! 장전 준비해라!

-어르신!!! 아니! 어르신!!!!

-야 이 교단 빌어먹을 놈들아!!!!

우리 안에 갇혀 있던 악마들은 청청벽력 같은 소리에 비명을 질러댔다.

저 교단 NPC 놈들이 시꺼먼 속셈을 드러내는구나!!

-어허. 조용히 해라. 지금 꼭 필요하다는데 어쩔 수 없지 않으냐.

-우리 비쩍 마른 거 안 보입니까?!

-알겠다. 알겠어. 이봐! 특식 좀 넣어줘라! 피 잔뜩 넣어서 끓인 특제 보양 수프다!

-이딴 거 필요 없… 우우웁!

기이잉-

아키서스 포병대는 다시 조준을 마치고 공격을 시작했다.

남은 포탄을 모조리 쏟아 붓겠다는 의지로 퍼붓는 공격!

이다비는 그걸 보면서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폭탄이 너무 아까워…!’

보통 퀘스트 수십 번을 깨도 남을 폭탄을 지금 한 번에 소모하고 있었으니 가슴이 쓰라릴 수밖에 없었다.

“참. 이 아이템 태현 님하고 이세연 선수한테 각각 전달 좀 해줘.”

“네. 알겠습니다.”

이다비는 파워 워리어 길드원한테 아이템을 전달시켰다. 저번에 말한 반지였다.

‘지금 잠깐 시간 났을 때 배달해 놔야지.’

이다비는 망원경을 들고 드래곤 키메라를 관찰했다.

평범한 보스 몬스터라면 지금 들어가고 있는 언데드 몬스터들의 연속공격에 쓰러져도 이상할 것 없었다.

그런데 저 드래곤 키메라는 오히려 혼자서 상대를 압도하더니 이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누가 봐도 목표가 아키서스 포병대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걱정할 것 없소. 망치기사단은 저 타락한 드래곤 키메라가 이쪽으로 오지 못하게 목숨을 걸고 막을 테니.

“오오… 어. 잠깐.”

감탄하던 케인은 멈칫했다.

어?

나도 포함이야??

-왜 안 따라오지?

“아, 아니. 저 망치기사단 아닌….”

-빨리 따라오게!

-뭐하고 있나?

망치기사단 NPC들은 우르르 달려들어서 케인의 양 어깨를 붙잡더니 그대로 끌고 갔다.

아까 싸우는 걸 보니 제법 단단한 게 성기사의 자질이 있어 보였던 것이다.

“잠깐! 잠깐!! 다들 안 도와주고 뭐하냐?! 나 끌려가잖아!”

주변이 워낙 시끄러워서 케인의 외침은 묻혀 버렸다.

게다가 다른 파티들도 지금 망치기사단의 뒤를 따라서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키메라가 오지 못하게 발을 묶어!”

“어지간하면 원거리 공격으로 바꿔! 가까이 붙었다가는 죽을 수도 있으니까!”

“준비됐나? 좋아! 들어가자!”

[타이란 교단의 함성성전사단의 힘이 당신을 강하게 만듭니다!]

[모든 스탯이….]

[데메르 교단의….]

[….]

[….]

“감사합니다! 대주교님!”

“앞으로 돌격!!!”

신호와 함께 골짜기 파티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 앞에 있는 드래곤 키메라는 이제까지 나왔던 보스 몬스터들과 비교도 되지 않는 강력한 보스 몬스터였다.

흔히 드래곤들이 레벨 천을 넘긴다는 말이 많았는데 저 드래곤 키메라는 그 이상일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그러나 골짜기 파티들은 전혀 주저하지 않았다.

‘우리가 받은 버프면 충분하다!’

‘이제까지 이 정도 버프를 받은 파티는 없었을걸?’

각 교단의 대주교와 성기사단장한테서 직접 받은 버프들.

한 명과 같이 퀘스트를 하는 경우도 흔치 않은데 이런 NPC 여럿의 버프를 받았으니 자신감이 넘칠 수밖에 없었다.

잡는 것도 아니고 발을 묶는 것 정도는 해낼 수 있다!

[굶주린 혼돈의 드래곤 키메라가 파멸의 지진을 시전합니다!]

순간 땅이 미친듯이 뒤흔들리더니 주변의 시야가 잡히지 않을 정도로 충격파가 몰려왔다.

꽈과과과과과광!

달려가던 파티는 튕겨나가고 흩어지고 빙빙 돌며 뒤죽박죽이 되었다.

“…?!”

“무… 무슨!”

아직 붙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광역 스킬을 시전하는 모습에 파티원들은 경악했다.

[굶주린 혼돈의 드래곤 키메라가 폐허 포식을 시전합니다!]

[힘을 회복합니다!]

드래곤 키메라는 닥치는 대로 폐허의 잔해를 집어삼키더니 기분 좋게 울부짖었다.

그러고는 다시 스킬을 시전했다.

[굶주린 혼돈의 드래곤 키메라가 파멸의 지진을 시전합니다!]

‘설… 설마 쉬지 않고 스킬을 계속 쓰는 건가??’

플레이어들은 뒤늦게 상황을 깨닫고 경악했다.

접근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리는 광역기를 계속해서 쓴다고?

[굶주린 혼돈의 드래곤 키메라가 차원 뒤틀기를 시전합니다!]

[강제로 이동합니다.]

팟!

근처에 있던 파티 하나가 이동하더니 저 뒤편으로 날아가 버렸다.

“!!!”

그나마 다행으로 멀지 않은 곳에 날아갔지만, 등골이 오싹해지는 건 사실이었다.

아무런 준비 동작도 없이 그냥 저 멀리 날려버리다니.

-안 되겠군. 모험가들이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저희가 나설 때입니다.

-그래. 망치기사단! 지금이야말로 신성한 의무를 수행할 때다! 돌격!

“아니…!”

케인은 반쯤 울상이 되어서 같이 달려 나갔다.

저 드래곤 키메라 앞에 달려 나가라니.

땅은 지진으로 요동치고 주변 잔해들은 차원 뒤틀기 때문에 이리 사라졌다 저리 사라졌다 하고 있는데…!

-크윽!

달려 나가던 망치기사단원 NPC 하나가 뒤로 나뒹굴었다.

지진의 충격파를 견디지 못하고 균형을 잃은 것이다.

-안 돼!

다른 망치기사단원 NPC 하나가 또 사라졌다.

차원 뒤틀기에 당해서 다른 쪽으로 사라진 것이다.

정신없이 균형을 잡고 날아오는 잔해를 피하고 차원 뒤틀기의 조준을 벗어나기 위해 뒹굴던 케인.

어느 순간 뭔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숫자가 너무 많이 줄었던 것이다.

‘어?’

-여기까지 온 모든 망치기사단원들에게 경의를 표하겠다! 너희들은 진정으로 영광스러울 자격이 있는 자들이다!

[망치기사단 단장, 아크락스의 친밀도가 크게 오릅니다!]

[평판이….]

[스킬을 얻습니다!]

[….]

[….]

-자! 놈에게 돌격하라!

“….”

케인은 그냥 도중에 넘어질 걸 후회했다.

너무 균형을 잘 잡아서….

‘제발 누가 좀 도와줘라!’

그 순간 옆에서 붉고 번쩍이는 두 드래곤이 번개처럼 달려들었다.

* * *

꽈꽈꽈꽈꽈꽝!!!

-죽어라!! 이 굶주린 혼돈의 타락한 잡종 새끼야!!

-어허. 니팅거스. 올바른 말을 써야지.

-….

니팅거스는 고이오노스의 말에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래서 동족 모임에도 안 나가는 거였는데!

‘늙은 드래곤 놈들 정말이지!’

[굶주린 혼돈의 드래곤 키메라가 고통에 찬 비명을 지릅니다!]

[데미지로 인해 <파멸의 지진>이 멈춥니다!]

[데미지로 인해 <차원 뒤틀기>가 멈춥니다!]

“김태현!! 조심해라! 차원 뒤틀기를 맞으면 어딘가로 날아가 버려!”

케인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고이오노스 위에 타고 있던 태현은 케인의 말에 깜짝 놀랐다.

“너 어떻게 여기까지 왔냐!?”

“….”

“죽지 말고 알아서 목숨 건지고 있어라! 죽으면 나한테 죽는다!”

“뭐 저런 개….”

-죽어라! 이 불쌍하고 안타까운 자식아!

니팅거스는 사납게 포효하며 날개를 쫙 폈다.

레드 드래곤 특유의 붉은 물결이 그려진 날개가 주변을 꽉 채우고, 니팅거스의 사나운 발톱이 드래곤 키메라에게 작렬했다.

그 뛰어난 마법 능력 때문에 잊기 쉬웠지만 드래곤의 육체 능력 또한 어마어마했던 것이다.

특히 니팅거스 같은 레드 드래곤은 더더욱!

-캬오오오!

[불불이가 니팅거스의 전투법에서 가르침을 얻습니다!]

신난 불불이의 응원은 니팅거스를 춤추게 만들었다.

온몸에 굶주린 혼돈이 남긴 상처가 여럿이었지만 니팅거스는 포효하며 더욱 더 공격을 퍼부었다.

기습적으로 공격을 맞은 굶주린 혼돈의 드래곤 키메라는 웅크린 채 방어에만 전념했다.

-보고 있나, 어린 레드 드래곤! 이게 레드 드래곤의 싸움 방식이다!

-캬오오…!

-이게 레드 드래곤의 용암 자르기!

-캬오오!

-이게 레드 드래곤의 지옥 물어뜯기!

-캬오오!

-이게 레드 드래곤의 숨통 파괴!

-캬오오오오!

[불불이가 니팅거스의 전투법에서 다시 한번 가르침을 얻습니다!]

[크게 성장합니다!]

‘…?’

태현은 불불이의 모습을 보고 눈을 깜박였다.

어…?

좀 커지고 있다??

-이 불쌍하고 안타까운 자식아, 받아라! 이게 진정한 드래곤의 공격이다!

니팅거스는 드래곤 키메라를 앞발로 움켜잡고 목을 뒤로 젖혔다.

거대한 아가리에서 탁탁 튀는 소리와 함께 지옥을 연상시키는 화염이 모이기 시작했다.

레드 드래곤 브레스!

그 모습에 고이오노스는 급히 외쳤다.

-그걸 말하고 공격하면 어떡….

쾅!

드래곤 키메라는 발악하듯이 몸을 털어서 니팅거스의 목을 쳐내고 빠져나왔다.

고이오노스는 안타깝고 답답해서 말했다.

-자네, 나중에 나하고 따로 보세.

-아. 어차피 영계로 갈 처지에 이러시깁니까!?

-영계에도 드래곤만의 법도가 있는 법일세.

-….

“혹시 언데드로 남을 생각이 생겼나?”

분위기를 보던 태현이 슬쩍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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