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656화
“저… 저 진짜 길드 동맹보다 사악한 새끼가 진짜!”
“양심을 갖다 팔아 치웠냐!!”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은 당연히 격렬하게 반응했다.
기껏 얻은 아레네 시가 지금 누구 때문에 잿더미가 되었는데!
“드래곤! 제대로 들어라! 이 도시는 저놈이 불태웠다고! 설마 저딴 거짓말에 속진 않겠지!”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은 드래곤의 지능에 희망을 걸었다.
이제까지 태현에게 속아 온 다른 NPC들과 달리 저 드래곤이라면….
-보아하니 너희들은 굶주린 혼돈을 섬기는 모양이로군. 굶주린 혼돈의 힘으로 나를 지배하려고 했느냐?
“!”
그러나 고이오노스는 플레이어들의 생각보다 훨씬 더 현명했다.
주변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과 플레이어들의 말만으로 상황 파악을 끝낸 것이다.
<고이오노스의 희생-골드 드래곤 퀘스트>
예로부터 골드 드래곤 종족은 아키서스의 든든한 지지자였다.
그중 장로인 고이오노스는 언제나 대륙의 영웅을 키워내서 위기를 막아온 것으로 명성이 높았다.
생전 고이오노스는 대륙을 걱정하여 죽기 전에 스스로의 육신을 알 안에 봉인해놓았다.
알을 연 영웅들은 고이오노스의 힘을 빌려 대륙의 위기를 막아야 할 것이다!
보상: ?, ????
-분명 악당들이 내가 봉인된 알을 건드릴 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굶주린 혼돈일지는 몰랐지만. 너희 타락한 모험가들아. 부끄러움을 알아야 할 것이다. 골드 드래곤은 속지 않는다. 어떤 존재도 골드 드래곤을 속일 수는 없다!
[카르바노그가 아키…]
‘조용히 해.’
-굶주린 혼돈의 힘을 빌려 골드 드래곤을 조종하려고 한 것은 물론이고 이 아름다운 도시를 잿더미로 만들다니….
“그건 아니라니까!!!”
-조용! 파렴치한 주제에 목소리만 시끄럽군.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은 환장하기 직전이었다.
굶주린 혼돈만 믿고 열심히 드래곤을 부화시켜놨더니 그 안에서 나온 놈은 김태현 편이나 들고 있고…!
-내 너희한테 반성할 기회를….
“굶주린 혼돈 제대로 하는 게 뭐냐!?”
“퀘스트 이딴 식으로 낼 거야!?”
선수들은 울분이 터져서 외쳤다.
알도 잘못 가져와, 그 알 제대로 지배도 못해….
[굶주린 혼돈이 실수를 인정합니다.]
“!!”
플레이어들은 깜짝 놀랐다.
설마 굶주린 혼돈이 실수를 인정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굶주린 혼돈이 하수인들을 강제로 제물로 바칩니다.]
[당신은 계약에 따라 제물로 바쳐집니다.]
“????”
“????”
“어….”
태현 일행도 순간 당황해서 할 말을 잃었다.
신전 앞에 자리 잡고 있는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이 전부 로그아웃되기 시작한 것이다.
[굶주린 혼돈이 산 제물을 받고 힘을 얻습니다!]
[굶주린 혼돈이 산 제물을 받고 힘을 얻습니다!]
“아, 안 돼!!!”
“굶주린 혼돈 미친놈아!! 뭐하는 거야 이게!!”
“잘… 잘못했어요! 잘못!”
보고 있던 플레이어들은 물론이고 수많은 시청자들도 경악했다.
물론 굶주린 혼돈 세력에 가입한다는 게 위험한 일이라는 건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
보통 악 세력이 원래 그랬으니까.
선 세력과 달리 악 세력은 실수 한 번 하면 크게 페널티를 받고 잘못하면 갇히거나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건 예상을 뛰어넘었다.
저 많은 플레이어들, 그것도 대부분이 랭커인 플레이어들이 강제로 제물로 바쳐지다니!
-이… 이게 뭐야? 지금 강제로 제물로 바쳐진 거 맞아??
-로그아웃된 거 맞지? 맞는 것 같은데?!
-크게 잘못한 게 있었나?
-욕한 거 말고는 없었잖아? 욕 그거 했다고??
-나, 나도 굶주린 혼돈 소속인데….
-잘 됐네. 같이 죽어라.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냐!
수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아서 떠들고 있었지만,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건 태현 일행이었다.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이 강제로 제물로 바쳐진 건 별로 놀랍지 않았다.
태현에게 있어서 선수들이 죽든 말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보다는 굶주린 혼돈이 하려고 하는 게 더 충격이었다.
저렇게까지 제물을 바쳐서 할 일이란…?
[굶주린 혼돈이 드래곤 키메라를 소환합니다.]
[분노한 굶주린 혼돈이 짜증 나는 잡놈들과 다 죽어가는 드래곤들을 오늘이야말로 해치워버리겠다고 선언합니다!!]
고대 제국이 멸망할 때 본 적 있던 드래곤 형태의 키메라가, 허공에서 뭉글뭉글 끓어오르는 굶주린 혼돈의 힘과 함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때는 고작해야 와이번 정도 되는 크기였다면….
이번에 나타난 놈은 드래곤 몇 마리는 합쳐 놓은 것 같은 크기라는 게 차이점이었다.
* * *
[카르바노그가 상대가 단단히 분노한 것 같다고 말합니다!]
‘아니 지가 알 잘못 골라놓고 왜 성질이야?’
태현은 속으로 불평했다.
태현이 알을 줬나?
아니었다.
그냥 굶주린 혼돈이 알아서 알 찾은 다음 ‘크하하하! 드래곤의 알을 손에 넣었다. 이제 이 드래곤은 내 하수인이 될 것이다!’ 한 다음 북 치고 장구 치다가 실패한 것 아닌가.
[카르바노그가 상대가 속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
어라?
그런가?
태현은 잠깐 고민했다.
‘굶주린 혼돈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기껏 알을 구해다가 부하한테 맡겼는데, 태현이 들어오더니 그 알 안에서 태현의 편을 들어주는 골드 드래곤이 나왔다.
물론 우연이었지만 굶주린 혼돈 입장에서는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말 억울하군. 물론 내가 아레네 시를 불태우긴 했지만 이것까지 덤터기를 써야 한다니.’
[굶주린 혼돈이 도망치지 말고 맞서 싸워서 파멸을 맞이하라고 외칩니다!]
뒤에서 들려오는 굶주린 혼돈의 저주에, 태현은 어이가 없었다.
양심이 없나?
-주인이여! 조심해라! 뒤에서 공격이 날아온다!
[굶주린 혼돈의 드래곤 키메라가 오염된 마력탄을 발사하기 시작합니다!]
지금 태현 일행은 빠르게 후퇴하고 있었다.
“후퇴해서 합류한다!”
-놈의 힘이 보통이 아닌데, 정말 괜찮겠나?
고이오노스는 날아오는 공격을 날개로 튕겨낸 다음 말했다.
이 주변에 모인 전력을 모르는 고이오노스인 만큼 불안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내가 지금 부활하긴 했지만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차라리 빠르게 싸우는 게 나을지도 모르지. 저기 저 레드 드래곤도 그리 시간이 많지 않으니, 우리 둘의 목숨을 바쳐서 저 추악한 생물을 쓰러뜨리겠다.
-…….
갑자기 자신한테 화살이 날아오자 니팅거스는 당황했다.
물론 다 죽어가기 직전이고 굶주린 혼돈한테 원한이 많아서 한 방 먹여주고 싶은 건 사실이었지만, 싸움에서 굳이 앞장서서 희생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빌어먹을, 장로라서 뭐라고 욕할 수도 없고….’
니팅거스는 속으로 꿍얼댔다. 고이오노스가 워낙 항렬이 높은 드래곤이라 니팅거스도 뭐라고 함부로 말할 수가 없었다.
괜히 건방지게 굴었다가는 레드 드래곤의 장로들이 ‘네놈은 위아래도 없냐!!’ 같은 소리를 할 것 아닌가.
“걱정하지 마십시오. 밖에 모인 전력은 보통이 아니니 말입니다.”
태현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지금 괜히 후퇴하는 게 아니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언데드 정예 군대와 아키서스의 포병대, 각 교단의 대주교와 성기사단장들이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굶주린 혼돈이 분노로 이성을 잃고 드래곤 키메라를 불러낸 모양이었지만 장소가 좋지 않았다.
지금 여기는 원정대 전력이 모일 만큼 모인 자리.
[굶주린 혼돈의 드래곤 키메라가 오염된 마력탄을 발사하기 시작합니다!]
꽝!!
굶주린 혼돈이 불러낸 드래곤 키메라는 안 그래도 박살이 난 아레네 시를 완전히 가루로 만들어버렸다.
-아키서스를 지원해라!
-아키서스를 보호해라!
저 멀리서 데스 나이트들이 이끄는 정예 언데드들이 유령마를 타고 달려오기 시작했다.
아레네 시 외곽 정리를 끝낸 언데드 군대들이 지원을 위해 들어온 것이다.
“저건 또 뭔데!”
이세연은 보자마자 한탄했다.
어떻게 편하게 끝나는 퀘스트가 없을까!
물론 이게 김태현 때문은 아니었지만, 유난히 태현과 같이하는 퀘스트는 난이도가 몇 배로 뛰는 기분이었다.
“굶주린 혼돈이 플레이어들을 제물로 바쳐서 소환했다고 합니다!”
“뭐… 뭐? 우리 팀도 잡혔어?”
“아뇨. 적이요!”
“!”
이세연은 깜짝 놀랐다.
아군을 바쳤다고??
‘진짜 막 나가는구나….’
“데스 나이트들은 각자 부대를 끌고 앞으로 진격! 시간을 끌어라! <위대한 흑색의 영역>, <사악한 흑마법사의 오오라>, <사라지는 공포>!”
[<위대한 흑색의 영역>이 시전됩니다!]
[영역 내 모든 언데드들이…]
[……]
[……]
곳곳에 배치된 데스 나이트들이 살벌한 말발굽 소리를 내며 어마어마한 기세로 포위망을 만들기 시작했다.
날뛰던 드래곤 키메라도 사방에서 달려오는 데스 나이트들의 숫자에 경악한 것 같았다.
[굶주린 혼돈의 드래곤 키메라가 드래곤 브레스를 준비합니다!]
“!!!!”
“걱정할 거 없으니까 계속 움직여!”
이세연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애초에 데스 나이트들은 소모품으로 보낸 거였다.
보스 몬스터를 사냥개처럼 붙들고 늘어져서 각종 스킬들을 빼내고 체력을 소진시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어마어마한 숫자의 언데드가 있었기에 가능한 물량공세!
콰콰콰콰콰쾅!
[아키서스 포병대의 포격이 데스 나이트들을 공격합니다!]
“…가서 조준 좀 잘하라고 말해!”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군 팀킬까지 넘길 수 있는 건 아니었다.
* * *
-놈의 발이 묶였다. 어린 레드 드래곤. 대륙의 종족들을 위해 위대한 희생을 할 준비가 되었는가?
-…….
니팅거스는 매우 매우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누가 어려?’
안 그래도 죽기 전에 싸울 생각이긴 했는데 괜히 저런 말을 들으니 심술이….
“니팅거스! 난 널 믿고 있다!”
-조용히 하지 못해?
때리는 고이오노스보다 말리는 아키서스가 더 밉다고, 니팅거스는 아키서스가 더 미웠다.
저놈 지가 죽는 거 아니라고….
-캬오오.
-알겠다. 알겠어.
불불이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쳐다보자 니팅거스는 화를 내며 말했다.
다 자란 레드 드래곤으로서, 어린 레드 드래곤에게 뭔가를 남겨주기는 해야 했다.
-내가 하는 걸 보고 잘 배워라. 어린 레드 드래곤.
-누가 어린… 아. 완전히 아기잖나?!
고이오노스는 깜짝 놀랐다.
-저런 드래곤을 데리고 전투에 참가했었던 건가? 자네, 제정신이 있는 건가?
-아, 아니. 고이오노스 님. 제가 데리고 다닌 게 아니라….
-변명은 듣고 싶지 않다! 어떻게 같은 레드 드래곤으로서 그런 무책임한 짓을 할 수가 있지?
-…….
니팅거스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같은 드래곤인 건 사실이었으니까!
옆에서 아키서스 놈이 입 다물고 있는 게 매우 얄미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반성하게! 알겠나?
-예… 반성하겠습니다….
-그래. 반성하면 됐네. 그리고….
-헉.
용용이는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피했다.
같은 골드 드래곤이었지만 고이오노스와 용용이는 그 항렬이 달랐다.
고이오노스는 거의 조상님 수준의 드래곤!
-저, 그게 말입니다….
-수많은 전투로 인해서 많이 지치고 약해진 모양이로구나. 걱정 말거라.
[고이오노스가 생명력을 사용해서 자신의 힘을 전달합니다!]
[용용이에게 추가 버프가 들어갑니다!]
[용용이가 고이오노스의 스킬을 전수받기 시작합니다!]
[고이오노스의 싸움에서 추가 성장을 얻습니다!]
니팅거스는 불불이에게.
고이오노스는 용용이에게.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늙은 드래곤들이 대륙을 떠나 드래곤들만의 영계로 가기 전, 어린 드래곤에게 자신의 힘을 넘겨주는 모습은 실로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그걸 지켜보던 흑흑이는 문득 생각이 나서 입을 열었다.
-어… 그런데 블랙 드래곤은 아무도 없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