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655화
‘사실 레드 드래곤이 가장 강력한 드래곤은 아니긴 한데.’
레드 드래곤들은 ‘우리가 드래곤들 중 가장 강하다’고 떠들고 다녔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좀 과장이 있었다.
드래곤들의 싸움은 상황과 장소에 따라 다 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가장 많이 알고 가장 유명한 드래곤은 레드 드래곤이었다.
다혈질인 데다가 성격이 급해서 사람들한테 보일 일도 많고, 기록도 많은 드래곤!
그런 만큼 이런 부분에서 인기로 따지면 레드 드래곤이 이길 수밖에 없었다.
-나도 변신하면 안 되나?
“안 돼. 참아.”
태현은 용용이를 말렸다.
아무리 억울해도 지금 덩치를 크게 키워서 좋을 게 없었다.
물론 용용이나 흑흑이가 약하지는 않았다.
드래곤 브레스를 과하게 써서 힘을 다 잃어버린 건 예전 일이었고, 태현을 따라다니면서 꾸준히 힘을 회복한 덕분에 레벨 500은 가볍게 넘긴 지 오래였다.
하지만 지금 굶주린 혼돈의 하수인들은 그 정도 레벨만 믿고 덤벼들었다가는 크게 다칠 수 있었다.
니팅거스가 어그로를 끌어줄 때 감사히 뒤에서 싸우자!
-캬오오!
[불불이가 니팅거스의 가르침을 받고 화염을 토해내기 시작합니다!]
[더욱더 힘이 강해집니다!]
‘음. 저러다가 괜히 브레스 쓰고 약해질까 걱정이군.’
태현은 브레스 관련해서 안 좋은 추억들이 많았다.
용용이나 흑흑이 모두 브레스 한 번 잘못 썼다가 훅 약해지지 않았던가.
불불이가 새로 스킬 배워서 신난 건 알겠는데 좀 불안….
“저기 드래곤이다! 가지고 온 걸 꺼내라!”
“예!”
“!”
폐허 골목 사이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플레이어들을 본 태현은 무언가 불길함을 느꼈다.
원래 도망치거나 발악하는 놈들은 무서울 게 없었지만 저런 식으로 드래곤이 오고 있는 걸 알면서도 덤비는 놈들은 뭔가 숨기고 있는 한 수가 있는 법.
“불불아. 조심해라!”
-캬오?
[용 사냥의 저주가 발동됩니다!]
[이동 속도가 크게 느려집니다!]
[방어력이…]
[……]
[……]
[……]
“됐다!!”
뉴욕 라이온즈 선수 그라임스는 쾌재를 불렀다.
놀랍게도 드래곤 상대로 완벽한 카운터를 성공시킨 것이다.
<용 사냥의 저주> 주문서는 돈으로도 사지 못하는 귀한 주문서였지만,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
드래곤 상대로 어마어마한 디버프를 강제로 때려 넣었으니까.
아무리 레드 드래곤이라 하더라도 이렇게 저주를 받으면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적들의 발을 묶었다! 이제 더 이상 들어오지 못할 거다!”
-뭐라고 지껄이는 거냐!
분노한 니팅거스는 그대로 달려들어서 앞발을 휘둘렀다.
거대한 드래곤의 발톱이 폐허를 찢어발기고 플레이어들을 그대로 날려 버렸다.
쾅!!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레드 드래곤의 발톱으로 인해 부상이…]
[화상을 입었습니다!]
[회복이…]
“말,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럴 수가!!”
“분명히 주문서가 들어갔는데!”
-…….
흑흑이는 매우 불편하고 떨떠름한 표정으로 앞의 놈들을 노려보았다.
니팅거스는 주문서를 맞고도 멀쩡한 게 아니었다.
주문서를 대신 맞은 건 흑흑이였다.
용에게만 효과가 있는 저주인 만큼, 흑흑이에게도 효과가 있는 것이다.
-저런 멍청한 모험가 놈들이 조준을 제대로 할 것이지 빗나가게 쏴놓고 뭐라는 거야!
흑흑이는 투덜거렸다.
물론 지금 아레네 시 중앙부로 진입하려면 니팅거스가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용용이도 있는데 굳이 흑흑이 본인이 저주를 맞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왠지 모르게 억울하다!
-레드 드래곤에게 그런 잔수작이 통할 것 같으냐!
화르르륵!
니팅거스는 분노의 화염 마법을 연타해 앞을 날려 버렸다.
플레이어들은 비명을 지르며 후퇴했다.
“후퇴!!”
“미친 레드 드래곤 같으니! 사기 아니야!? 어떻게 저 주문서도 씹어버리는 건데! 용 사냥 전용 주문서잖아!”
-레드 드래곤의 강함을 네놈들의 동료에게 전해라!
-주인님. 저 니팅거스 놈이 치사하게 거짓말을 하는데요….
“내버려 두자. 잘 싸우잖아.”
* * *
아레네 시 중앙으로 진입하면 진입할수록 저항도 더욱 더 거세졌다.
“김태현. 이 자식! 네놈이 도시를 한 번 더 파괴하게 두지 않겠다!!”
“절대로 물러나지 마라! 굶주린 혼돈을 위해!”
-굶주린 혼돈 만세! 저 비겁한 침략자 놈들을 물리쳐라!
절박한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은 물론이고 플레이어들까지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다는 듯이 뛰쳐나왔다.
이제 숨으려고 해도 숨을 곳이 없었고 후퇴하려고 해도 후퇴할 곳이 없었다.
무조건 시간을 끌고 막아야 했다.
-감히 건방진 놈들이!
당연히 태현 일행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위험하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니팅거스. 밀고 들어가라! 굶주린 혼돈 놈들아! 너희들이 도시를 지킬 수 있을 것 같으냐! 다시 도시를 부숴버리겠다!”
[니팅거스가 지옥 화염불을 시전합니다!]
[거대한 화염이 주변을 쓸어버립니다!]
[아레네 시의 조각상들이 완전히 파괴됩니다!]
[……]
[……]
쾅! 콰콰콰콰콰쾅!
마치 태현의 외침에 화답하듯이 뒤에서 아키서스 포병대의 지원이 날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들은 정말 끈질기게 버텼다.
폐허 뒤에 숨고 굶주린 혼돈의 마법으로 장애물을 소환해서 버티고….
태현은 상대를 끌어내기 위해 각종 도발을 시작했다.
“뉴욕 라이온즈 놈들아! 여기 아레네 시를 불태운 내가 왔다! 저번에 스미스 포함해서 다 잘려놓고 그렇게 숨어 있을 거면 판온을 왜 하는 거냐? 나 같으면 옛날에 접었다! 아니, 애초에 1:1로 이기지 못할 거면 선수로 뛰는 이유가 있나?”
“…이 개자식이 진짜!!”
참다 참다 폭발한 뉴욕 라이온즈 선수 한 명이 달려 나왔다.
태현은 기다렸다는 듯이 검을 휘둘렀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아키서스의 검술로 인해 추가 효과가…]
[막대한 데미지가…]
[니팅거스가 추가로 공격을…]
[……]
[……]
[HP가 0이 되어 로그아웃됩니다!]
퍼퍼퍼퍼퍼퍽!
“크아아악!”
“하하하! 이것밖에 안 되냐! 나와라! 허접한 놈들아!”
“김, 김태현 선수. 좀 자제하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같이 싸우던 유성 게임단 선수들은 당황해서 태현을 말리려고 했다.
지금 전 세계의 판온 팬들이 보고 있는데 이렇게 도발해도 되나 싶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 태현이 악당 같아 보였다.
불타는 도시를 등 뒤로 한 채 사악하게 웃는 모습이 무슨 이쪽이 악당 같다!
그러나 태현은 무시했다.
원래 판온 1에서는 이러고 살았으니까.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여기 폭탄 하나 더 날아간다! 아레네 시를 불태운 내 폭탄을 받아라!”
콰콰콰쾅!
“아니! 여기 조각상이 있군! 이것도 부숴버리겠다! 자!”
콰콰콰콰콰쾅!
“역시 여기 뉴욕 라이온즈 선수가 숨어 있었군! 장비를 뺏어버리겠다!”
“아, 안 돼!”
“안 되긴 뭐가 안 돼! 죽어라! 야! 너희 동료 장비 뺏긴다! 안 나오냐? 그럼 장비 부순다!”
태현은 닥치는 대로 플레이어들을 끌어내고 박살 냈다.
도발에 걸린 플레이어들부터 시작해서 숨어 있던 플레이어들까지 모두 걸려서 박살이 났다.
‘저거 진짜 김태현 맞냐? 김태현 탈을 쓴 길드 동맹 아냐?’
뉴욕 라이온즈 선수, 네퍼는 숨어서 버티다가 무심코 방송 리플을 확인했다.
이 정도로 태현이 날뛰고 있는데 욕을 좀 먹고 있지 않나 궁금했던 것이다.
-김태현! 김태현! 김태현!
-김태현! 악의 도시 아레네 시를 불태워버려!
-부모 욕을 해! 부모 욕이 효과적이야!
“…….”
네퍼는 경악했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하지 않은가.
물론 굶주린 혼돈이 악당으로 욕을 먹고 있긴 했지만, 지금 같은 상황을 보면 태현이 좀 욕을 먹어야 하지 않나??
그 대단한 도시를 불태우고 부수고 있는데…!
[니팅거스가 지진을 일으킵니다!]
우드득!
바닥이 무너지고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드디어 마지막으로 버티고 있던 적들이 쓰러졌다.
[<파멸의 신전>의 입구가 드러납니다!]
[굶주린 혼돈의 힘을 숭배하는 <파멸의 신전>은 온갖 사악한 음모의 집합소입니다. 신전을 파괴하십시오!]
“찾았다! 니팅거스! 부숴버려라!”
[<파멸의 신전>을 보호하고 있는 힘이 니팅거스의 공격을 버텨냅니다!]
“김태현. 이 짜증 나는 놈…! 정말 여기까지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파멸의 신전 안쪽에서 남은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이 욕설을 퍼부으며 나왔다.
지금 뉴욕 라이온즈 채팅은 완전히 전쟁터였다.
-김태현이 7구역 방어물 돌파했다!!
-알겠어! 6구역에서 버텨!
-김태현이 5구역 방어물 돌파했어!
-6구역에서 버티라니까 왜 벌써 5구역이 뚫려!?
-김태현이 내 장비 뺏었어!!
-뭐!? 장비를 어떻게 뺏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김태현이 지금 4구역 돌파했다! 장난 아니야! 레드 드래곤을 데리고 있다!
-시간만 끌라는데 뭐라는 거야! 왜 시간을 못 끄는데!
-김… 김태현이 도발을 했다고.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신전 안에 있던 선수들은 믿겨지지가 않았다.
태현을 이기라고 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시간을 끌라고 했을 뿐.
근데 그걸 하나 못하다니!
“들어라, 굶주린 혼돈! 다른 존재를 멋대로 세뇌해서 자신의 부하로 만들려고 하다니. 대륙의 모든 선한 존재들이 널 경멸하고 비난하고 있다!”
-맞다! 굶주린 혼돈. 저주받을지어다!
기계 에다오르가 태현의 말에 동의하며 외쳤다. 니팅거스는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고메즈는 태현을 비웃었다.
“네가 모든 퀘스트를 다 이길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마, 김태현! 이번에는 네가 늦었으니까. 나와라! 드래곤! 저기 있는 다 죽어가는 드래곤과 김태현 패거리를 쓸어버려!!”
태현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게 들어왔지만, 고메즈는 집념으로 결국 알의 부화를 완성시킨 것이다.
‘이번에는 내 승리다!’
[드래곤의 알이 깨어납니다.]
[고대 제국의 골드 드래곤, 고이오노스가 알에서 깨어납니다!]
“?”
-?
[?]
태현과 용용이, 흑흑이, 카르바노그는 익숙한 이름에 눈을 크게 떴다.
고대 제국의 골드 드래곤, 고이오노스.
태현에게는 과거 투기장에서 혹독하게 영웅을 단련시키던 미친 골드 드래곤으로 강하게 인상이 남은 드래곤이었다.
아무리 드래곤이 오래 산다고 하더라도 너무 과거의 드래곤이라 지금은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왜 알에서 나오지?
“그래! 골드 드래곤, 고이오노스! 저것들을 쓸어버려라!”
아직 상황 파악이 덜 된 고메즈는 등 뒤에서 나타난 골드 드래곤에게 외쳤다.
고이오노스는 천천히 말했다.
-어린 필멸자야. 예의가 부족하구나. 그런 식으로 말하다니.
“???”
의외의 대답에 고메즈는 깜짝 놀랐다.
‘뭐야?!’
“오랜만입니다. 고이오노스 님!”
-나를 아는 영웅인가? 내가 지금 대부분의 기억을 잃어버려서….
“고이오노스 님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은 영웅입니다!”
-오오….
고이오노스는 태현의 말에 반색했다.
아직 기억은 떠오르지 않았지만 상대가 꽤 괜찮은 영웅인 모양이었다.
직접 가르침을 받았을 줄이야.
“뭐… 뭐!? 속지 마! 골드 드래곤! 널 부화시킨 건 나라고! 저건 적이야! 내 명령을 들어!”
-음. 확실히 날 다시 부활시킨 건 어마어마한 공이긴 하지.
고메즈는 더더욱 당황했다.
말을 안 듣는 건 아니지만, 원래 생각했던 것처럼 명령을 무조건 따르는 소환수와는 거리가 멀었다.
굶주린 혼돈의 의식에 무언가 문제가 있었나?
‘이런 쓸모없는 자식! 이딴 거 하나 제대로 못 해!?’
-둘 중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할지 모르겠….
“고이오노스 님! 저놈은 이 도시를 불태우고 잿더미로 만들었습니다!”
태현은 고메즈를 가리키며 말했다.
상대가 말할 게 뻔한 만큼, 먼저 치고 들어가야 한다!
유성 게임단 선수들은 감탄의 눈빛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정말 대단하다!’
‘절대 퀘스트할 때 적으로 만나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