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654화 (1,653/1,826)

§ 나는 될놈이다 1654화

“어… 어어!”

옆에 있던 유성 게임단 선수들도 같이 넋이 나가 있다가 태현의 공격에 정신을 차렸다.

“공격해! 뭐하냐!”

“죄, 죄송합니다! 김태현 선수가 레드 드래곤을 공격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반응이 늦었습니다!”

“…….”

유성 게임단 신인 선수들의 천진난만한 대답은 태현의 마음에 살짝 상처를 남겼다.

‘아니… 내가 그 정도야?’

[카르바노그가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태현이 아무리 다른 교단의 권능을 강탈해서 쓰고 드래곤을 폭탄으로 만들어서 터뜨려 버리고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서 왕국의 수도를 잿더미로 만들어버리긴 했다지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부른 레드 드래곤을 경험치와 아이템 먹으려고 공격할 정도로 파렴치하진 않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꽤 솔깃하긴 하군. 다음에는 참고해 봐야지.’

[……]

“니팅거스. 힘을 얼마나 쓸 수 있지?”

-걱정… 마라.

[레드 드래곤 니팅거스가 언령을 사용합니다!]

[강력한 힘의 주박이 적들을 묶기 시작합니다!]

[이동 속도가 매우 느려집니다!]

[공격 속도가…]

[……]

“!!”

아무런 징조 하나 없이, 피할 틈도 없이 바로 스턴에 가까운 디버프를 걸어버리는 레드 드래곤의 마법.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과 굶주린 혼돈에 가입한 플레이어들은 경악했다.

계약 이후 나름 강해졌다고 우쭐대고 있었지만, 진짜 드래곤의 강함은 상상을 초월했던 것이다.

‘김태현 저놈은 예전에 드래곤을 대체 어떻게 잡은 거야?!’

“물러서! 드래곤까지 온 이상 무리야!!”

“뒤로 후퇴해!”

“지금 어떻게 후퇴하냐! 느려져서 다 잡힐 텐데!”

“아니다! 방법이 있다!”

“뭐지?!”

퍽!

뉴욕 라이온즈 선수 한 명이 같이 온 플레이어들을 넘어뜨렸다.

그리고는 뒤로 호다닥 후퇴했다.

“…이런 개… 뉴욕 라이온즈 새끼들아!! 니들이 그러고도 선수냐!? 길드 동맹으로 이름 바꿔!!”

졸지에 뒤통수를 맞은 플레이어들은 분노의 외침을 토해냈다.

태현은 그걸 보고 생각했다.

‘말이 좀 심하군.’

실제로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도 허겁지겁 도망치면서 저 말을 다 들었는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어지간히 굴욕적이었던 모양이었다.

“니들은 앞으로 길드 동맹이야!”

“하는 짓이 하나하나 졸렬하고 비열한 놈들 같으니!”

‘이 새끼들 왜 우리를 욕으로 쓰는 거야….’

뒤에 있던 길드 동맹 간부들은 속으로 울컥했다.

왜 가만히 있는 길드 동맹이 얻어맞는단 말인가.

“기계 에다오르! 돌아와라! 깊게 추적하지 마라.”

태현은 쫓아가려는 에다오르의 고삐를 잡고 발을 묶었다.

어차피 지금 덤벼든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은 태현의 관심사 밖이었다.

더 중요한 건 저놈들이 말한 드래곤이었다.

‘드래곤이 나오기 전에 해치워야 하는데.’

태현은 초조한 표정으로 니팅거스를 쳐다보았다.

믿었던 놈이 이렇게 크게 다쳐 있으니….

“니팅거스.”

-아키서스.

니팅거스는 가쁜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멀지 않은 곳에 교단의 대주교들이 있다. 대주교들을 불러오면….”

-아니. 내 상태는 내가 안다. 이건 회복이 불가능한 상처다.

중앙 대륙에서 플레이어들이 굶주린 혼돈의 세력과 싸우는 동안에, 대륙 밖에서의 음모도 진행되었다.

굶주린 혼돈이 보낸 암살자들은 니팅거스에게 지독한 중상을 입혔다.

적들을 어떻게든 쓰러뜨리긴 했지만 니팅거스는 자신의 수명이 그리 길게 남지 않았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안 돼. 니팅거스! 이대로 쓰러지지 마라! 네가 싸워야 해!”

-…레드 드래곤인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아키서스 네놈은 싸움에 너무 환장한 거 아니냐….

‘굶주린 혼돈이 먼저 대륙을 불태우고 있는데 누가 싸움에 환장했다는 거야?’

태현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굶주린 혼돈이 날뛰지만 않았어도 태현은 아키서스 퀘스트 오순도순 깨면서 평화롭게 살았을 것이다.

[카르바노그가 니팅거스가 은근슬쩍 다시 거만해졌다고 말합니다.]

‘음. 저번에는 존경심을 표하더니 은근슬쩍 말을 놓는군. 아쉬울 게 없다는 건가.’

니팅거스 같은 자존심 강한 레드 드래곤에게, 저번처럼 생각지도 못하게 아키서스의 후계자한테 당한 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굴욕일 것이다.

부상도 크게 입었겠다 수명도 얼마 안 남았겠다 다시 거만하게 말하는 게 이상하진 않았다.

태현은 너그럽게 넘어가 주기로 했다.

“니팅거스. 내가 굳이 나팔에 걸린 맹세를 말하지는 않겠지만.”

-이미 말하고 있잖아….

“지금 네게 상처를 입힌 건 굶주린 혼돈이고, 대륙을 불태우려고 하는 것도 굶주린 혼돈이다. 이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다는 걸 알고 있지 않나.”

-…물론이지.

그 순간 니팅거스의 파충류를 닮은 거대한 눈동자에서 불꽃이 튀었다.

드래곤들 중에서 가장 성질 더럽고 원한을 오래 기억하는 레드 드래곤답게, 니팅거스가 원한을 잊을 리가 없는 것이다.

-내 수명의 불꽃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내가 싸우지 않는다는 건 아니다. 아키서스만큼은 아니지만 나 니팅거스 또한 전투를 즐긴다!

“꼭 말끝마다 아키서스를 넣어야 하냐?”

-내 이름을 걸고 맹세하겠다. 내 남은 수명의 불꽃이 꺼지기 전까지 아키서스 너와 같이 굶주린 혼돈을 불태우겠다고!!

“그거면 됐다, 니팅거스!”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레드 드래곤답게 니팅거스는 끝까지 든든한 존재였다.

“근데 혹시 죽을 경우 언데드로 되살아나서 같이 싸울 생각은 없나?”

-…….

[레드 드래곤 니팅거스의 공포가 올라갑니다!]

[악명이 올라갑니다!]

‘질문 하나 한 건데….’

* * *

“고메즈! 서둘러야 해!”

“시끄럽게 굴지 마! 어차피 이 안까지는 공격이 못 들어온다는 걸 알고 있을 텐데!”

밖이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포격으로 시끄러웠지만, 굶주린 혼돈 세력 쪽도 만만치 않았다.

폐허가 된 아레네 시 중앙 광장 지하 쪽에 새로운 건축물을 세운 것이다.

[<파멸의 신전>이 맥동합니다!]

[공격을 막아냅니다.]

[……]

[……]

아무리 공격을 쏟아내도 버티는 굶주린 혼돈의 건축물.

그 건축물 중앙에서 뉴욕 라이온즈 선수, 고메즈는 거대한 퀘스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굶주린 혼돈의 드래곤-굶주린 혼돈 퀘스트>

오만한 모험가들의 음모로 인해 굶주린 혼돈에게 바쳐져야 할 아레네 시는 파괴되었고 굶주린 혼돈의 기사 또한 크게 부상을 입었다.

이에 굶주린 혼돈은 오스턴 왕국을 잠시 미뤄두고 다른 왕국들부터 먼저 손에 넣으려 한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라!

굶주린 혼돈은 자신을 섬기는 나약한 종들을 버릴 생각이 없으니.

굶주린 혼돈이 남기고 간 드래곤의 알을 깨워라.

굶주린 혼돈을 섬기는 드래곤은 오만한 모험가들에게 진정한 절망을 보여줄 것이다!

보상: ?, ???

무려 드래곤을 깨운다는 어마어마한 퀘스트!

고메즈는 확신이 있었다.

드래곤을 깨우는 데에 성공만 한다면 스미스보다도 더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을 거라고.

스미스나 화이트 나이트 길드?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드래곤을 직접 타고 다니는 플레이어는 이제까지 없었으니까.

‘내가 뉴욕 라이온즈의 꼭대기에 선다!’

스미스가 타격을 받은 지금 고메즈는 더욱더 위로 올라가길 원했다.

[다음 제물을 바치십시오!]

[와이번의 피…]

[굶주린 혼돈의 조각…]

[모험가 열 명…]

[……]

“다음 제물 준비해!”

“김태현이 드래곤 불렀다!!”

“…….”

아무리 침착하게 진행하려던 고메즈여도 사람이었다.

밖에서 세상 끝난 것처럼 포격 소리가 들려오고 김태현이 드래곤을 불렀다는데 초조하지 않으면 그건 사람이 아니라 초인이었다.

“고메즈!! 큰일 났어! 김태현이 드래곤 준비하는 걸 알아냈어!”

“뭐!? 그걸 어떻게 알아내!!”

고메즈는 결국 폭발했다.

이 퀘스트가 진행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상대는 최우선적으로 방해를 해오지 않겠는가.

살기 넘치는 고메즈의 눈빛에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은 우물쭈물했다.

김태현한테 도발당해서 털어놓았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케… 케인.”

“케인??”

“케인 놈이 잠입했었잖아. 그때 어떻게 캐냈나 봐.”

“이 자식이 진짜!! 리그에서도, 판온에서도!”

고메즈는 입술을 깨물며 외쳤다.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고맙다, 케인!’

‘나중에 인기투표하면 한 표 정도는 넣어주마!’

“다들 모이라고 해! 얼마 남지 않았어. 시간만 끌어도 충분하다고!”

“알고 있어! 고메즈!”

* * *

-…잠깐. 잠깐. 아키서스.

빠르게 아레네 시 중앙부로 돌입해서 공격을 개시하려던 태현 일행.

그걸 멈춘 건 니팅거스였다.

“왜지? 혹시 죽어서도 싸울 각오가 선 건가?”

-…그건 아니고. 지금 네 어깨 위에 있는 레드 드래곤은 대체?

“아. 불불이?”

니팅거스는 경악한 눈빛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설마 납치….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캬오오!

-지금 주인님이 그런 사람으로 보이나!

골드 드래곤 용용이도 화를 냈다. 니팅거스는 그 말에 움찔하다가 멈칫하더니 의아해했다.

-물론 아니… 잠깐. 그런데 골드 드래곤은 종족 단위로 아키서스한테 사기당하….

“니팅거스. 지금 굶주린 혼돈이 대륙을 불태우고 있다!! 이렇게 시간을 끌수록 굶주린 혼돈을 도와주는 일일 뿐이야!!”

태현은 말을 끊어버렸다. 니팅거스는 당황해하면서도 말했다.

-지금 상황은 알고 있다. 다만 저 어린 레드 드래곤을 누군가 보살펴줘야 한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생각해 봐라. 앞뒤좌우 꽉 막힌 골드 드래곤이 레드 드래곤을 가르칠 수 있겠는가? 음흉하고 비열한 블랙 드래곤이 레드 드래곤을 가르칠 수 있겠는가?

-…….

-…….

용용이와 흑흑이는 살벌하게 니팅거스를 노려보았다.

지금 싸우자 이거요?

-레드 드래곤은 오로지 레드 드래곤만이 가르칠 수 있다. 저 불불이를 잠시 나한테 맡겨다오. 나하고 같이 싸우면 저 불불이도 배우는 게 있을 것이다.

“그렇군… 알겠다.”

태현은 선선히 수긍했다.

불불이가 니팅거스한테서 이것저것 배운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았으니까.

[레드 드래곤, 니팅거스가 불불이를 맡습니다!]

[어린 드래곤은 나이 든 드래곤에게서 각종 전투법과 지혜를 배웁니다.]

[불불이의 성장에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

[……]

[……]

‘허. 저런 효과가.’

태현은 어마어마하게 쏟아지는 버프에 감탄했다.

드래곤이란 종족이 강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저런 식으로 일타강사한테 1:1 교육을 받으니 안 강해질 수가 있나.

“혹시 나도 배울 순 없나?”

니팅거스는 태현의 질문을 못 들은 척 무시했다.

* * *

도심 안으로 들어간 레드 드래곤 니팅거스는 거대한 이동요새였다.

아무리 부상을 입었다지만 레드 드래곤은 레드 드래곤.

산발적으로 튀어나오는 적들이 공격을 날려봤자 용가죽을 뚫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니팅거스 위에 타고 있던 태현과 선수들은 편안하게 공격을 퍼부으며 쓸어 담으면 됐다.

“정말 대단합니다!!”

“이런 드래곤을 부르실 줄이야….”

유성 게임단 선수들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떨리고 있었다.

아레네 시로 들어가고 있어서 떨리는 게 아니었다.

레드 드래곤을 타고 파티 플레이를 하는 경험을 또 살면서 언제 해보겠는가.

“역시 드래곤 중의 드래곤, 레드 드래곤입니다!”

“정말 드래곤을 꼭 한번 타보고 싶은 게 꿈이었는데. 이렇게 이루게 될 줄이야!”

-…….

-…….

선수들이 흥분해서 떠들수록, 용용이와 흑흑이의 얼굴은 구겨졌다.

태현은 미안하다는 듯이 둘을 쓰다듬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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