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653화
[카르바노그가 저건 신성력이 담겨 있는 공격이라고 말합니다.]
‘아키서스의 힘인가?’
[카르바노그가 폭발한다고 모두 다 아키서스가 관련된 건 아니라고 말합니다! 저건 여러 교단의 신성력이 합쳐진 공격이라고 말합니다!]
‘대주교들이 지원한 거군.’
태현은 바로 상황을 파악했다.
오스턴 왕국 중앙을 공격하기 위해 나선 이다비 측 원정대에는 아키서스의 포병대뿐만 아니라 각 교단의 대주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어떻게 보면 가장 강력한 전력!
레벨이면 레벨, 스킬이면 스킬.
어떤 상황에서든 간에 든든하게 버팀목이 되어주리라 생각해서 보낸 거였는데….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김, 김태현 선수! 이거 좀….”
유성 게임단 선수 중 한 명이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공격 시작 전에 광역기 쫙 깔아주고 들어가는 건 좋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었다.
게다가 지금 김태현 선수는 이 아레네 시를 점령하고 나서 오스턴 왕국을 회복해야 하지 않은가.
‘근데 이렇게 잿더미로 만들어버려도 되나?’
물론 아레네 시가 지금 어느 사악한 자의 음모 때문에 반쯤 폐허나 마찬가지인 상태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 폐허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더 부술 필요는….
“더 세게 하란 건가? 알겠다! 저쪽으로 연락을 보내도록 하지!”
“아니요! 아니요! 적당히 해야 하지 않냐고요!”
“뭐? 왜?”
태현은 진심으로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적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는데?
“…그, 그렇습니까? 김태현 선수가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적들이 뛰쳐나온다! 포위해!”
계속되는 포격이 도시의 모든 구역을 가리지 않고 두들겨 패고, 그 안에서 계속해서 숨어 있던 굶주린 혼돈의 하수인들이 뛰쳐나왔다.
-위대한 주인을 위해, 심연의 병사들이여. 싸워라!
그리고 그 적들을 맞이하는 건 어마어마한 숫자의 언데드 병사들이었다.
이미 장전을 마친 언데드 궁수들이 닥치는 대로 화살을 퍼붓기 시작하자, 정말로 하늘이 화살에 덮여서 순간 어두워질 정도였다.
‘아니 이런 미친?’
유성 게임단 선수들과 같이 싸우기 위해 대기하던 태현은 공격을 보고 깜짝 놀랐다.
요새 안에 갇혀서 버티고 있을 때는 몰랐는데 그 많고 많은 언데드들이 모두 밖에 나와서 일점사를 동시에 갈기자 그 위력이 상상을 초월했다.
네크로맨서들이 자주 하는 말이 ‘양이 질을 압도한다’였는데, 질까지 보장이 되니 위력이 더….
‘…아니. 지금은 저걸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고민할 때가 아니지.’
태현은 다시 집중했다.
지금 상황은 원정대가 압도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아레네 시 같은 중요한 곳에 아무도 배치 안 해놨을 리 없었다.
분명 한 번은 위기가 닥쳐올 터.
그때 나서서 정확하게 막아내야 했다.
‘고대 제국 출신 전사장부터 시작해서 대마법사까지. 이제 뭐가 나와도 놀랍지 않긴 하다.’
“김태현!!”
그 순간 저 앞에서 포화를 뚫고 달려오는 무리들이 있었다.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과, 굶주린 혼돈 세력에 가입한 플레이어들이었다.
“이 자식!! 다른 놈은 몰라도 넌 진짜 죽여 버리겠다!”
그들은 살기 넘치는 표정으로 달려 나왔다.
안 그래도 태현 때문에 젖과 꿀이 흐르는 아레네 시가 폐허로 변하고 그들이 얻을 이권도 다 날아갔는데, 또 찾아와서 그나마 남은 기둥뿌리도 날려 버리려고 하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케인을 잠입시켜서 수많은 선량한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을 괴롭히기까지 했다.
김태현이 길드 동맹 팰 때는 웃으면서 볼 수 있었지만, 정작 적이 되자 정말 없애버리고 싶었다.
“뭐야. 너희들이냐?”
그러나 정작 태현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태현은 실망한 표정으로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을 쳐다보았다.
‘숨어 있던 보스 몬스터가 나온 줄 알았는데, 아니군. 이다비 쪽이 아니라 이쪽에 나와야 하는데.’
“김, 김태현 선수. 저놈들도 믿는 게 있을 겁니다. 너무 얕보는 건….”
“맞습니다. 특히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은 굶주린 혼돈과 계약해서 어마어마하게 강해졌다고 들었습니다.”
유성 게임단 선수들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지금 저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과 플레이어들이 아무 생각 없이 뛰쳐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만한 언데드 군단을 앞에 두고서도 승산이 있다고 생각해서 튀어나왔을 것 아닌가.
실제로 기껏해야 굶주린 혼돈의 전사들 수십을 데리고 나왔는데도 뿜어내는 분위기는 압도적이었다.
개개인이 보스 몬스터 같은 아우라를 풍기다니.
유성 게임단 선수들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플레이어들은 굶주린 혼돈 세력 퀘스트에서 가장 앞서고 있는 플레이어들이라는 것을.
그렇지 않다면 저 강함이 설명되지 않았다.
“그래봤자 플레이어들이지. 내가 기다렸던 건 다른….”
“…김태현!!”
뉴욕 라이온즈 선수, 저스틴은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뛰었다.
다른 것보다 그냥 무시가 사람을 더욱 열 받게 만들었다.
손뼉도 손바닥이 마주쳐야 치는 거지, 한쪽만 시끄럽게 외쳐대면 얼마나 민망하겠는가.
감히 우리를 무시해!
[굶주린 혼돈의 힘이 창에 실립니다!]
[미지의 창술이 추가됩니다!]
콰드드드득!
저스틴이 뻗은 창이 땅을 박살 내고 회오리를 일으키며 태현의 목을 날카롭게 노렸다.
과연 이렇게 달려 나올 만한 실력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태현은 직접 상대할 생각이 없었다. 바로 거리를 벌리면서 검을 휘둘러 날아오는 공격을 쳐내고 손짓했다.
“기계 에다오르.”
-제거. 제거. 제거!
“잠…?!”
저스틴은 갑자기 옆에서 ‘쾅’ 소리와 함께 튀어나온 악마 공작의 모습에 경악했다.
[기계 에다오르가 어마어마한 괴력으로 당신을 붙잡습니다!]
[벗어나는 데에 실패합니다!]
[움직일 수가…]
-죽는다. 인간 배신자!
기계 에다오르는 무식한 힘으로 저스틴을 붙잡고 그대로 벽에 던져 버렸다.
[막대한 충격으로…]
[……]
[……]
“컥…!”
기계 에다오르는 멈추지 않았다. 박살 난 벽으로 뛰어들어 저스틴 위로 미친 듯이 공격을 퍼부었다.
“잘한다. 에다오르!”
“…….”
“…….”
태현을 돕기 위해 옆에 있던 유성 게임단 선수들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적을 동정하게 된 건 또 처음이었다.
‘뭐 저런 무시무시한 악마가…?’
‘저건 대체 어떻게 부리시는 거야?’
그러는 사이 태현은 적 선수들을 쳐다보았다.
예상했던 적은 아니어서 실망스러웠지만, 상대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서는 저들을 이용해야 했다.
‘가장 좋은 건 도발이지.’
팟!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추가 공격이…]
[……]
“온다! 조심해라!”
태현이 달려들어서 공격을 퍼붓기 시작하자, 다른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도 긴장하며 거리를 벌렸다.
아무리 굶주린 혼돈의 힘을 받아서 강해졌다지만 태현은 여전히 위협적인 상대였다.
특히 뉴욕 라이온즈는 과거의 고대 제국에서 태현을 만났다가 거의 전원이 몰살당한 뼈아픈 기억이 있었던 것이다.
‘겁을 먹었군. 이놈들.’
객관적으로 전력만 보면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은 다 같이 공격을 퍼부으면 오히려 태현을 몰아붙일 수 있었다.
개개인들이 상위권 랭커에 굶주린 혼돈의 힘까지 받았으니 이 정도면 충분한 전력이었다.
그런데도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은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저번에 당한 패배가 너무 뼈아픈 탓이었다.
이해는 가지만….
‘싸울 때 겁을 먹으면 이길 싸움도 지게 된다.’
태현은 더욱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가장 잘 싸워야 할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이 머뭇거리자 다른 플레이어들도 눈치를 보는 상황.
한 놈씩 확실하게 보내버린다!
“그래! 내가 아레네 시를 부쉈다! 아레네 시를 부순 내 공격을 받아라!”
[카르바노그가 너무 사악한 도발이라고…]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아키서스 검법으로…]
“아레네 시를 부숴버린 내 공격이 어떠냐!”
“이… 이 새끼 진짜…!”
안 그래도 도시 박살 난 것 때문에 화가 나는데 저딴 도발까지 받자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은 제대로 열이 받았다.
유성 게임단 선수들이 당황스러워할 정도로!
‘왜 저렇게까지 도발을 하시지?’
‘팬서비스인가?’
“너희들도 아레네 시 폐허에 같이 묻어주마! 죽어라! 영지도 없는 놈들!”
사실 지금 제일 화나야 할 건 아레네 시를 가꾼 길드 동맹 사람들이었지만,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도 그에 못지않게 분노했다.
“죽여!! 죽여 버려!”
“같이 죽더라도 넌 보내버린다!”
태현은 흥분한 선수들을 비웃으며 외쳤다.
“너희들로는 안 된다! 도시 안에 있는 걸 빨리 갖고 와라!”
“뭐…?! 그, 그걸 어떻게?!”
“케… 케인 놈이 설마 그것까지 본 건가?!”
흥분한 와중에도 몇몇 선수들은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깜짝 놀랐다.
지금 도시 안에서 준비하고 있는 건 굶주린 혼돈에 가입한 플레이어들 중에서도 몇몇만 아는 비밀이었던 것이다.
오죽하면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도 대부분 몰랐다.
‘설마… 케인… 이놈이 진짜…!’
선수들은 이를 빠득 갈았다.
설마 설마 했는데, 케인이 진짜 그 비밀을 캐기 위해서 들어왔던 거였다니.
척살 순위 1순위를 태현이 아니라 케인으로 바꿔야 하나 고민이 될 정도였다.
“내가 케인을 왜 보냈을 거 같나? 설마 아무 의미도 없이 보냈을 줄 알았나?”
“그래 봤자 이미 늦었다! 김태현! 곧 드래곤이 나온단 말이다!”
“…….”
태현은 속으로 놀랐다.
전사장이나 대마법사 상대한 만큼 이제 누가 와도 놀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드래곤이라고?
“놀랍군. 드래곤이라니.”
“…잠깐. 알고 있었다면서? …이 자식이 진짜!!!!”
속은 걸 깨달은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은 분노로 쓰러질 지경이었다.
그런 적들은 무시하고, 태현은 바로 아이템을 꺼냈다.
바로 <니팅거스의 나팔>이었다.
‘굶주린 혼돈이 어떤 드래곤을 어떻게 손에 넣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상성이 최악이다.’
드래곤 같은 적은 일 대 다수로 싸울 때 막강한 위력을 발휘했다.
어마어마한 덩치와 브레스부터 시작해서 언령 마법까지. 하나하나가 다 광역기 특화인 것이다.
잘못하면 이세연의 언데드 군단은 물론이고 이다비 쪽의 골짜기 원정대까지 녹아내릴 수 있었다.
지금 상황에 막대한 희생을 감수하고 잡을 수는 없었다.
최대한 빠르게 해치워야 한다!
뿌우우우우우우-
[<니팅거스의 나팔>을 사용합니다!]
[레드 드래곤, 니팅거스가 맹약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
“!!!!!!!!!”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태현이 갑자기 레드 드래곤을 소환하는 나팔을 사용했는데 놀라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중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이 가장 큰 충격을 받았다.
“말… 말도 안 돼! 어떻게 드래곤을! 어떻게 드래곤을?!”
“설마 저번에 나왔던 드래곤을 상대하면서…!”
태현이 드래곤 슬레이어의 업적을 세웠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것보다 더 어려운 게 드래곤을 이렇게 부르는 일이었다.
쉬이이이이이익!
공기가 떨리고, 멀리서 드래곤만이 뿜어낼 수 있는 포효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태현의 곁을 지키고 있던 용용이와 흑흑이가 외쳤다.
-이 타락한 자들아. 들어라! 감히 드래곤의 힘을 오염시켜서 사용하려고 하다니! 진짜 드래곤이 오고 있다!
-내가 레드 드래곤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레드 드래곤의 성격상 네놈들이 하는 짓거리를 보면 아주 미쳐 날뛸 거다!
“…….”
“…….”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은 자신도 모르게 무방비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만큼 레드 드래곤이 날아오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레드 드래곤, 니팅거스가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촤아아아악!
“…???”
[카르바노그가 뭔가 이상하다고 말합니다.]
처음 봤을 때는 몰랐는데, 자세히 보니 니팅거스의 상태가….
좀 많이 아프고 다쳐보였다.
쿵!!
니팅거스는 비행이 힘들었는지 바로 착지했다. 태현이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뭐지? 왜 그런 꼴이 된 거지?”
-굶주린 혼돈이 보낸 적들이 찾아왔다. 아키서스.
“…….”
[……]
태현과 카르바노그는 당황해서 할 말을 잃었다.
그래도 태현은 일단 할 일을 했다.
‘빈틈!’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컥!!!”
레드 드래곤의 등장에 넋이 나가 있던 뉴욕 라이온즈 선수 한 명이 그대로 나뒹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