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651화
“왜 그러십니까? 설마 저희를….”
“아, 아니. 여러분들이 없어지면 누가 우리 지원을 해줍니까.”
“맞아요, 맞아요.”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이 정색하려고 하자, 파티장들이 다급하게 달랬다.
골짜기 출신 파티장들인 만큼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이 삐지면 얼마나 귀찮은 존재인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스킬이 많이 오른 골짜기 출신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은 이제 원정대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귀한 인재가 맞았다.
그 많고 많던 불발과 오작동들이 거의 사라진 것이다.
-아아. 이게 터지지 않고 발사되는 대포라는 거다.
-우와아!!! 대포가… 터지지 않고 발사가 된다고!?!?
-아아. 그렇다. 이건 안전하게 던질 수 있는 폭탄이지.
-말… 말도 안 돼!!! 폭탄을?! 안전하게 던질 수 있다고!?!
-그래. 그뿐만이 아니지. 이 로켓들은 오작동을 일으키지 않고 조종 가능해.
-신, 신이시여! 그건 불가능해! 그건 불가능하다고!!
-혹시 골짜기 출신 플레이어들은 단체로 미쳤나요?
외부에서 온 파티들은 ‘쟤네 대체 뭐하는 거냐’ 하며 황당해했지만, 골짜기 출신 파티장들은 감동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옛날 옛적부터 기계공학 대장장이들한테 얼마나 많이 시달려왔는가.
-폭탄 팝니다! 몰이사냥도 MP 소모할 필요 없이 폭탄으로 한 방!
-오오. 그런데 위험해 보여서 전 안정적으로 할래요.
-이런. 그러면 공짜로 드리겠습니다!
-아, 아니. 괜찮다니까요.
-…그렇다면 돈을 줄 테니까 받아주시죠!
-…더 무서워서 싫어요!
-…만약에 이걸 안 받으시면, 필드에서 갑작스러운 폭발 사고가 당신을 덮칠지도 모르겠습니다.
-지, 지금 협박하는 거야!? 당신들?!
-협박이 아니라 그냥 사실을 말할 뿐.
폭탄 강제 선물은 물론이고 영지 내에서 폭발 사고, 남들 소모품 살 때 몰래 폭탄 사이에 끼워 넣어서 착각하고 배낭에 구매하게 만들기, 아키서스 사제들 꼬드겨서 파티 참가할 때 강제로 참가하기 등등 기계공학 대장장이들한테 안 당해본 플레이어들이 없었다.
그런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이 이제 스킬이 높아지고 실력이 늘어서 거의 불발 하나 없는 완벽한 아이템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대기만성!
골짜기 플레이어라면 누구나 불발하지 않는 폭탄을 썼을 때, 마치 자기가 키운 것 같은 감동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크흑…! 기계공학 대장장이들. 애썼구나…!
-그래. 이거면 됐다!
-근데 다가오지는 말고! 폭탄 강제 선물은 작작하고!
“아쉽습니다. 앞장서고 싶었는데.”
물론 스킬만 늘었지 여전히 폭발에 집착하는 건 그대로였다.
파티장들은 어떻게든 뜯어말려서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을 뒤에 있게 해놓았다.
제발 뒤에서 도와줘!
* * *
-역시 아키서스 교단만이 내 뜻을 알아주는군. 고맙소.
“….”
“오. 그래요?”
“아니거든요?!”
파티장들의 말에 이다비는 펄쩍 뛰었다.
아무리 아키서스 교단이 막 나가는 이미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파이토스 교단의 아크락스와 엮이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지금 저 미치광이 기사단장 설득할 수 있을 때까지 들어간 다음, 빠르게 빠져나갈 거예요.”
“알겠습니다.”
“저 NPC 때문에 고생하시네요.”
-불평하는 것처럼 보여도 나는 아키서스 교단의 주교 마음속에는 뜨거운 전투심이 있다는 걸 알고 있소. 고맙소.
[아크락스가 기뻐합니다!]
[교단 내 평판이….]
[친밀도가….]
‘….’
이다비는 어이가 없었다.
아니거든!
파티장들은 소곤거렸다.
“근데 길마님이 그냥 인정하셔도 우리는 뭐라고 안 할 텐데.”
“그러게. 그냥 싸우고 싶다고 하셔도 되는데.”
“!?”
이다비는 파티장들의 오해에 놀랐다.
왜 이런 이미지가?!
이다비는 몰랐지만, 애초에 태현하고 같이 다니는데 이미지가 약할 수가 없었다.
보통 미친놈 주변에 있는 건 같은 미친놈인 것이다.
태현처럼 위험하고 난이도 높은 플레이를 즐기는 사람 옆에 있는 사람은, 똑같이 위험하고 난이도 높은 플레이를 즐기는 사람!
[아레네 시 외곽을 발견합니다!]
<몰락한 도시-아키서스 교단 퀘스트>
한때 아름다웠던 아레네 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사고로 인해 초토화가 되었다.
이 모든 것을 일으킨 굶주린 혼돈에게 저항하기 위해, 아레네 시에 다시 한번 신앙을 퍼뜨려야 한다.
아레네 시에 숨어 있는 적들을 물리치고 도시를 재건하라!
보상:?, ???
‘와…. 이건 좀.’
이다비는 퀘스트를 보고 막막해졌다.
간단해 보이는 내용이었지만 절대 간단한 퀘스트가 아니었다.
하물며 아레네 시 같은 거대 도시를 재건하라니.
얼마나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어갈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길마님! 적 발견했습니다!”
“!”
앞에서 척후를 맡았던 도적 랭커들이 돌아오더니 다급하게 말했다.
이다비는 목소리를 낮추고 물었다.
“몇 명이나 있죠?”
“숫자가 꽤 됩니다. 파티 두셋 정도는 되는 거 같아요.”
“바로 포위해서 공격하죠.”
-이쪽에서 앞장서겠소.
아크락스는 바로 말했다.
전투가 벌어지게 된 지금이야말로 기다리고 기다리던 순간.
싸우기 전까지는 성가시고 귀찮은 상대였지만, 싸우게 된 지금에는 아크락스만큼 든든한 NPC도 드물었다.
“네. 앞에서 탱킹을 맡아주세요. 나머지는 포위를!”
“예!”
아크락스와 망치기사단은 여기 있는 파티들도 따라가기 힘든 어마어마한 탱커였다.
이들이 발을 묶어주는 사이 포위하고 공격을 퍼붓는다면 아무리 상대가 강하다 하더라도 쓰러뜨릴 수 있으리라.
-돌격! 파이토스의 이름으로! 망치기사단이여, 영광스럽게 돌격하라!
아크락스는 무기를 뽑아 들더니 함성을 질렀다.
[망치의 힘이 아크락스에게 깃듭니다!]
[망치기사단 전원에게 <기사단장의 각오>가 깃듭니다!]
[망치기사단 전원에게 추가 버프가….]
[….]
[….]
꽝!!!
대주교나 기사단장 한 명이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일인군단이라는 말이 있었다.
그만큼 대주교나 기사단장 정도 되는 NPC의 힘이 대단하다는 뜻이었다.
높은 레벨도 레벨이지만, 교단에서 각종 사기적이고 희귀한 스킬들을 여럿 갖고 있는 이들은 한 명만으로도 상황을 바꿀 수 있었다.
그리고 아크락스도 지금 그런 힘을 보여주고 있었다.
-성기사다! 죽여라!
-굶주린 혼돈을 위하여!
매복하고 있던 굶주린 혼돈의 전사들이 그대로 아크락스에게 밀려 나갔다.
아크락스는 전차처럼 우직하게 전진하더니 망치를 휘둘러 전사들을 날려 버렸다.
아직 포위망이 완성되지도 않았는데, 아크락스와 망치기사단만으로 상대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힘을 보여줘라!
-예!
굶주린 혼돈의 전사들은 하나둘씩 무너져 내렸다.
그 모습에 뒤에서 지원하고 있던 이다비는 살짝 불길함을 느꼈다.
아군이 강한 것도 사실이었지만 상대가 너무 쉽게 무너져 내린 것이다.
설마?
[굶주린 혼돈의 궁수들이 땅속에서 나타납니다!]
[굶주린 혼돈의 추격대가 폐허 속에서 나타납니다!]
[….]
[….]
“!!!”
척후를 맡았던 도적 랭커들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걸 느꼈다.
분명히 수색을 다 했는데!?
-굶주린 혼돈께서 너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빌어먹을 놈들! 감히 굶주린 혼돈의 도시를 불태우다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맞아! 너희가 불태웠잖아!”
“아니… 사실 우리가 불태운 게 맞긴 하지.”
“어? 그런가?”
“근데 굶주린 혼돈이 점령한 게 문제지. 점령 안 했으면 안 태웠을 듯.”
-저 모험가 놈들을 찢어버려라!
“수비 진형으로!”
이다비는 망설이지 않고 외쳤다.
굶주린 혼돈의 힘으로 매복하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패닉에 빠지면 더 최악이었다.
“죄송합니다, 길마님! 저희가 더 잘 찾았어야 했는데…!”
“아니요! 저런 스킬들은 어차피 누가 갔어도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신경 쓰지 말고 싸우세요!”
-이 하찮은 타락자 놈들이 감히 우리를 포위하려고 하다니! 오히려 잘됐다. 모든 방향으로 죽여주마!
“…수비 진형으로 오라고!”
이다비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외쳤다.
계속해서 싸우려던 아크락스가 움찔했다.
-하지만 기세가….
“수비 진형으로 오라고! 너희부터 공격해 버리기 전에!!”
-알… 알겠소.
옆에서 싸우던 파워 워리어 랭커들은 자기들 일도 아닌데 겁을 먹었다.
-야. 길마님 화나셨다.
-쉿. 눈 깔아. 괜히 엮이기 싫으면.
-저 눈치없는 NPC 놈 때문에 이게 뭐냐?
[굶주린 혼돈의 부식이 시전됩니다!]
[장비의 내구도가….]
[굶주린 혼돈의 오염이….]
[….]
“방패 교체! 시간 좀 벌어줘!”
“오케이! 기다려!”
기습을 받았지만 파티원들은 전혀 흔들리지 않고 버텼다.
불리한 상황이든 뭐든 신경 쓰지 않고 끝까지 버티다가 로그아웃되겠다는 굳은 의지가 느껴졌다.
든든하긴 했지만, 뒤에서 지휘하고 있는 이다비까지 그럴 수는 없었다. 이다비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지금 상황을 뒤집으려면? 지금 상대의 약점은….’
쾅!!
“!!”
싸우고 있던 플레이어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갑자기 적들의 뒤에서 공격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굶주린 혼돈의 전사들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사기가 크게 내려갑니다!]
[포위 효과가 약해집니다. 포위가 풀립니다!]
[….]
“김… 김태현 선수다! 김태현 선수가 돌아왔다!!”
“올 때가 됐지!!”
“뭐? 김태현 왔어!?”
“진짜?!”
파티장 몇 명이 외치자, 앞의 적들과 싸우느라 정신이 없던 파티원들은 일단 기뻐했다.
볼 틈도 없을 정도로 정신이 없었지만 그 와중에도 환호성을 터뜨릴 정도로 기뻤던 것이다.
“김태현 선수가 왔댄다!!”
“뭐?!!?”
“와아아아아!”
“어. 근데 김태현 선수 어디 있는데?”
“저기 있잖아! 아키서스 검술 쓰고 있네!”
“???”
사방에서 싸우고 있는 혼란스러운 상황인 만큼 아무리 랭커라 하더라도 바로바로 확인할 수가 없었다.
플레이어들은 각자 알아서 끼워 맞추기 시작했다.
“저기 검은색 봤지! 데리고 다니는 소환수야!”
“저기 케인도 있네!! 이 정도면 확실하지!”
“방금 폭발 봤냐?! 김태현 선수가 확실하네!”
“….”
이다비는 태현이 아니라는 걸 확신했다.
태현의 공격과는 좀 다른 느낌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들 앞에서 그걸 말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았다.
“…맞네요!”
“맞으시댄다!!”
“와아아아아아아!!!”
플레이어들은 기세가 올라서 더욱 몰아붙였다.
안 그래도 흔들리던 굶주린 혼돈의 전사들은 사방으로 튕겨 나가기 시작했다.
아크락스는 망치를 휘두르며 플레이어들을 더욱 부추겼다.
[아크락스가 <망치기사단의 가호>를 공유합니다!]
[….]
[….]
-전진하라!
“와아아아!!!”
그리고 그 반대편에서 케인이 나타났다.
굶주린 혼돈의 전사들을 뚫고 나타난 케인은 주먹을 번쩍 들고 외쳤다.
“내가 왔다!”
“와아아아아아! 케인! 케인! 케인!”
케인은 오랜만에 듣는 함성에 왈칵 눈물이 솟는 걸 느꼈다.
경기가 중단되고 나서 팬들의 함성을 듣지 못한지도 좀 된 지금, 이렇게 환호를 받는 게 또 얼마 만이란 말인가.
‘아. 이게 팀이지! 이게 파티고!’
케인은 눈물을 꾹 참고 모인 파티원들을 쳐다보았다.
나라도 다르고 직업도 다르고 공통점이라고는 하나도 없지만, 같은 뜻으로 똘똘 뭉친 플레이어들.
“근데 김태현은 어디 있어?”
“김태현 선수 어딨어요?”
“…없는데? 뭔 소리야?”
“너야말로 무슨 소리야? 김태현 선수 있었잖아. 아까 옆에 있었는데.”
“맞아. 나도 봤었는데?”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빨리 알려줘요.”
“아. 지금 다른 사람한테 알려주면 안 되는 거라 이러는 건가?”
“…????”
너무나도 진심인 반응에 케인은 오히려 혼란에 빠졌다.
어??
‘설마 옆에 김태현이 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