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643화
태현이 무심코 에슬라를 쳐다볼 정도로 에다오르는 강력했다.
-저 악마 놈은 대체 어디서 나온 놈이냐?!
-너무나도 강하다!
어지간해서는 기세가 꺾이지 않는 오크 전사들.
게다가 굶주린 혼돈의 힘까지 받아서 더욱 강력해졌는데도 기계 에다오르 앞에서는 허수아비나 마찬가지였다.
콰르르르르릉!
기계 에다오르가 또 한 번 대검을 휘두르며 미친 듯이 오러를 날리고 발을 굴러서 지진을 만들어냈다.
-배제. 배제.
-저 악마 놈을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배제. 배제.
몇몇 오크 전사들이 발악하듯이 덤벼드는 것을 파리 때려잡듯 털어낸 에다오르.
-주인. 전진. 길 확보.
“고맙다. 에다오르!”
에다오르의 뒤를 따라가면서 태현은 평소에 느껴보지 못한 편안함을 느꼈다.
강한 랭커가 초보자 플레이어들을 데리고 던전을 돌아줄 때나 느낄 수 있는 편안함.
‘아니. 진짜 편하잖아?’
중독될 것 같은 편안함에 태현은 고개를 흔들었다.
이런 거에 적응하면 사람이 케인처럼 변하는 것이다.
-저기, 오크 놈들이 뼈 방벽에 구멍을 뚫었다! 저기로 가는 게 좋겠다!
“에다오르. 저쪽으로!”
-확인. 전진.
태엽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에다오르가 폭풍처럼 전진했다.
우우우우우우웅!!
[기계 에다오르가 <대검의 폭풍>을 시전합니다!]
태현은 대검을 엄청나게 빠르게 휘두르면 주변에 거대한 검막이 생겨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기계 에다오르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대검을 휘둘러 자기 반경에 아무도 다가오지 못하게 만들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아키서스!! 야! 아키서스!!!!
뒤에서 구시렉이 외쳤지만 태현은 못 들은 척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야 했으니까!
* * *
“김태현 선수!”
[구덩이에서 올라온 독이….]
[회피에 성공합니다!]
[뼈 방벽에 묻어둔 독이….]
[회피에 성공합니다!]
[방벽 밑에 자리잡은 저주가….]
[회피에 성공합니다!]
[…….]
“반가운데, 무슨 놈의 요새가 이렇게…?”
태현은 황당하다는 듯이 물었다.
구덩이 안에 독, 구덩이 위에 독, 방벽 속에 독, 방벽 뒤에 독이라니.
누가 네크로맨서 아니랄까 봐 지독하기 그지없는 요새였다.
하지만 사실 성벽 앞 해자에 폭탄, 해자 위 폭탄, 성벽 밑 폭탄, 성벽 위 폭탄, 성벽 속 폭탄, 성문 안 폭탄을 깔아놓는 태현이 할 소리는 아니긴 했다.
“굶주린 혼돈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김, 김태현 선수 맞습니까? 정말로? 어떻게 여기에??”
“이야기하면 길어지는데… 어쨌든 싸우다가 이쪽으로 떨어졌다. 도와주러 왔지. 이세연은 안쪽에 있나?”
“예. 안쪽에서 지휘하고 계십니다.”
유성 게임단의 신인 선수들은 태현한테 말이라도 한마디 붙여보고 싶어서 시선을 던졌다.
같은 선수라고 해도, 이제 막 새로 들어오기 시작한 선수들에게 태현은 거의 신이나 마찬가지인 수준이었다.
자기가 직접 만든 게임단을 이끌고 쟁쟁한 리그를 휩쓴 선수가 언제 또 나오겠는가.
“저… 김태현 선수!”
“?”
신인 선수 한 명이 태현에게 말을 걸자, 류태수가 바쁜데 쓸데없는 말 하지 말라는 엄한 눈빛을 보냈다.
“저 악마는 뭡니까…?”
‘음. 저건 확실히.’
저 질문은 류태수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진짜 저 악마는 뭐지?
“저 악마는 원래 악마 공작이었는데 서로 같이 싸우다가 어느새 친해져서 날 위해서 싸우게 됐지.”
-아키서스의 적. 파괴.
“네?”
“그게 뭔?”
물론 태현의 설명이 이해가 될 리 없었다.
유성 게임단 계정으로 방송을 보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도 이해가 안 되는 건 마찬가지였다.
-?????
-악마 공작이 포X몬이었나? 같이 싸우다가 정이 들 수 있는 거였어?
-저거 악마 공작이 아니라 그냥 일반 악마 아니야? 김태현이 악마 데리고 다니잖아.
-아냐. 일반 악마치고는 너무 세. 저 악마 낯이 익은데?
-나도 그래. 저 악마 어디서 많이 본 거 같은데.
-…에다오르 아니야?! 악마 공작 에다오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아니, 에다오르가 맞잖아!?!?
보고 있던 사람들은 충격과 공포에 빠져서 술렁이기 시작했다.
언데드 요새 공방전에 태현이 나타난 것도 어마어마하게 놀라운 일이었지만, 지금 그걸로 떠드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대체 저 악마 공작은 뭐냐??
“기계 에다오르! 뚫린 방벽을 지켜라!”
-기계 에다오르???
-대체 그 근본 없는 이름은 어디서 나온…?
사람들의 충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계 에다오르는 충성스럽게 대답했다.
-방벽 구멍 수비. 방벽 구멍 수비.
“좋아. 든든하군!”
“…김태현 선수?! 김태현 선수??!”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가는 태현을 보며, 유성 게임단 선수들은 당황했다.
지금 이 악마 공작들을 두고 가버리면 우리는 어쩌라고…!
에슬라는 당황하는 모험가들을 보며 눈을 찡긋했다.
-걱정하지 마라. 우린 아키서스와 약속을 맺어서 너희를 공격하지 않을 테니까.
“아. 예. 고맙습니다.”
-하지만 너희들은 나를 제외한 다른 악마 공작들을 공격해도 된다! 내가 모르는 척해줄 테니까.
“아, 아니. 괜찮습니다.”
* * *
처음에 태현이 나타났을 때, 이세연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걸 느꼈다.
‘어떻게 악마가 여기까지? 어디가 뚫린 거지?’
그런데 자세히 보자 태현이 데리고 온 악마들이었다. 이세연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태현을 속으로 욕했다.
‘헷갈리게…!’
“이세연! 지금 밖의 상황이 위험하던데.”
인사 대신 밖의 상황을 지적하는 태현의 목소리는 약간 긴장이 섞여 있었다.
그만큼 지금 밖의 상황이 급했던 것이다.
이세연도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여기서 언데드 군세를 지휘하는 총지휘관인 만큼 이세연도 밖에 얼마나 병력이 많은지 파악하고 있었다.
“주변의 전력이란 전력은 다 이쪽으로 몰려온 것 같아.”
“하지만 오히려 좋은 면도 있어.”
“왜?”
“이다비는 좀 더 수월하게 퀘스트를 깰 거 아니야.”
“……”
이세연은 한 대 때리려다가 말았다. 지금 집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 지금 마법 유지하고 언데드 보내느라 정신없으니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본론만 말해.”
“현재 계획하고 목적만 말해. 거기에 협조해 줄 테니까.”
서로 알 만큼 아는 사이였다. 태현은 긴 말을 하지 않았다.
이세연도 당연히 지금 상황을 알고 있을 테니 대책도 세워놨을 테고, 태현은 그걸 도와주기만 하면 됐다.
“현재 계획은 버티면서 상대 전력 소진시키는 것. 목적은 상대방의 힘이 빠지기 시작하면 카운터. 지금 대마법 준비 중. 이해했어?”
“이해했어.”
이세연이 설명을 하자 그 뒤에 메시지 창이 보이기 시작했다.
[거대한 마력이 네크로맨서 주변에 모이고 있습니다!]
[대마법이 준비 중입니다!]
[현재 마법 스킬이 낮아서 완전히 알아보지 못합니다!]
[…….]
[…….]
‘…난 얘가 강해지면 왜 이렇게 뒤통수가 서늘해지는 걸까?’
[카르바노그가 이미 답을 알고 있을 거라고 말합니다.]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적이 끝없이 달려드는 것 같지만 결국 완전한 무한은 없었다.
계속 버티다 보면 힘이 빠지는 건 상대방.
물론 보고 있는 사람들이야 ‘그냥 계속 웅크리고 있는 게 무슨 전략이야!’라고 하겠지만, 원래 이런 전략이 알면서도 쓰기 어려운 전략인 것이다.
정공법!
“나도 요새를 돌아다니면서 돕지.”
“고마워. 부탁할게.”
[최고급 전술 스킬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데드 군세 지휘에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모든 명령이….]
[…….]
[…….]
“…….”
달려나가는 태현의 뒷모습을 보며 이세연은 황당한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쟤 대체 전술 스킬 얼마나 찍어놓은 거야??
* * *
어마어마한 숫자의 굶주린 혼돈의 군세.
당연히 여기에는 플레이어들도 있었다.
굶주린 혼돈에 가입한 플레이어들!
워낙 숫자가 많아서 눈치채기도 힘들었지만, 이 플레이어들도 나름 야망과 꿈이 있었다.
-대륙을 굶주린 혼돈의 것으로 만든 다음 내가 새로운 영주가 되겠다!
길드 동맹이나 대형 길드 놈들이 영지 잡고서 거들먹거리던 것에 한이 많은 이들은, 굶주린 혼돈의 힘을 빌려서 똑같이 해주겠다는 욕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김태현 합류했다는데??”
“가짜 김태현 아니고??”
“진짜 같아. 데리고 온 거 보면.”
“아. 스미스 이 멍청한 자식!”
신진 랭커, 팔렌스는 돌을 걷어차며 화를 냈다.
물론 스미스가 앞에 있으면 ‘헤헤 스미스 님 퀘스트 한번 같이 가시죠’ 하고 굽신거렸을 테지만, 원래 안 보는 자리에서는 무슨 욕이든 할 수 있는 게 사람이었다.
“김태현을 만났으면 제대로 쓰러뜨리든가 묶어놓든가 했어야지! 그 자식 겉모습만 번드르르하지 하는 게 제대로 없다니까!”
“맞아! 솔직히 인기빨에 뉴욕 라이온즈빨이지 그 자식 은근히 거품 많다니까.”
-모험가 놈들아. 그만 떠들고 싸워라!
-시끄럽다!
“앗. 예. 죄송합니다.”
[굶주린 혼돈의 군단 내에서 평판이 조금 떨어집니다.]
[친밀도가….]
‘짜증 나는 놈들!’
‘뭐 이런 자식들이!’
굶주린 혼돈에 가입한 랭커들은 적응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굶주린 혼돈이 은근히 까다롭고 사람 짜증 나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던 것이다.
“방송에 김태현이 이세연하고 무슨 이야기하는지는 안 나오나?”
“그것까지는 방송 안 하고 있어.”
유성 게임단 선수들도 바보가 아닌 만큼, 상대 쪽에도 플레이어가 있을 수 있다는 건 짐작하고 있었다.
공개해도 되는 요새 성벽 부분을 제외하면 다른 부분은 영상으로 나오고 있지 않았다.
“쳇. 어차피 상관없어. 그냥 힘으로 뚫어버릴 테니까.”
랭커들은 언제 어떻게 뚫리냐의 차이일 뿐, 저 요새를 뚫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확신을 하고 있었다.
보라!
이 평원과 산맥을 가득 채운 어마어마한 굶주린 혼돈의 군세를.
물론 상대방도 징그러울 정도의 물량을 갖고 왔지만 질로 비교한다면 굶주린 혼돈을 따라올 수 없을 것이다.
[퀘스트가 추가됩니다!]
[북쪽 성벽을 돌파….]
[…….]
[…….]
“퀘스트 나왔다!”
“가자!”
여기 랭커들에게 나온 퀘스트는 첫 번째로 요새 함락 퀘스트였고, 두 번째는 이렇게 돌발적으로 나오는 퀘스트였다.
이런 퀘스트들이 성가시긴 했지만 실수하거나 실패하면 페널티가 컸기 때문에 랭커들은 집중해서 싸워야 했다.
[정예 구울 궁수들이 화살을 날리기 시작합니다!]
[독 묻은 저주의 화살들이 체력을 뺏어갑니다!]
[…….]
[…….]
[북쪽 성벽 공격 퀘스트가 성공합니다!]
[굶주린 혼돈의 군단장이 당신을 좋게 평가합니다.]
[퀘스트가 추가됩니다!]
[부대를 이끌고 북쪽 성벽을 돌파….]
[…….]
[…….]
“!!!!”
팔렌스는 깜짝 놀랐다.
지금 처음으로 부대를 이끄는 권한을 받은 것이다.
출세의 첫걸음이나 마찬가지인 지휘권!
“뭐, 뭐야. 받았어?”
“대단한데??”
“야. 날 따라와! 너희들도 나만 따라오면 이렇게 될 수 있을 테니까!”
팔렌스의 자신만만한 말에, 다른 랭커들은 홀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출세한 팔렌스의 말에는 그 정도 무게가 있었던 것이다.
‘올라간다! 반드시!’
팔렌스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래라저래라 시키는 퀘스트를 깨면서, 팔렌스는 이 언데드 요새를 공략하기 위해 어떤 방법이 필요할까 몇 가지 전략을 세워놨었다.
다른 사람들은 따라올 수 없는 팔렌스만의 창의적인 전략!
그 전략을 보여주고 보상을 받을 때가 드디어 온 것이다.
“어? 방송에서 김태현이 북쪽 성벽에 갔다는 말이 있는데?”
“북쪽에 없잖아?”
“그러게? 그냥 시청자들이 잘못 봤나 보다.”
계획에 집중하고 있던 팔렌스는 뒤에서 오가는 대화를 듣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