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636화 (1,635/1,826)

§ 나는 될놈이다 1636화

“너무 걱정 안 하셔도 괜찮을 거 같아요.”

태현의 표정이 심각해 보였는지 옆에서 이다비가 속삭였다.

“일단 아키서스를 믿는 타락자들이잖아요.”

“…미안한데 더 걱정되는데 이다비.”

“!?”

이다비한테는 미안했지만, 아키서스를 믿는다고 해서 딱히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어떤 의미에서는 더 걱정이 됐다.

‘아키서스를 믿는 놈들은 언제 어떻게 사고를 칠지 모르겠단 말이지.’

태현이 이다비와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자, 유성 게임단 선수들이 당황해서 물었다.

“아키서스를 믿는 타락자들을 잡았어야 했습니까?”

“음. 조금 불안하긴 하지.”

“그래도 아키서스를 믿는 타락자니까 괜찮겠지요?”

“음. 그렇… 지 않을 것 같은데.”

“…….”

유성 게임단 선수들은 다시 한번 당황스러워했다.

농담하시는 건가?

“그러면 쫓기라도 할까요? 전력이 나뉘긴 하겠지만 정말 불안하시면 한번 쫓아보죠.”

“그래 주겠나? 고맙군.”

“…….”

당연히 태현이 거절할 줄 알았던 선수들은 웅성거렸다.

진짜로?

“안 돼. 지금 선수 한 명 빠지는 것도 아쉬운 상황이라서.”

이세연이 선수들을 말렸다.

이제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어마어마한 언데드 군세를 이끌고 있었지만, 네크로맨서의 약점은 여전했다.

혹시라도 모를 암살이나 근접전을 대비해 유성 게임단 선수들은 이세연 주변에 남아 있어야 했다.

게다가 길드 동맹 간부들까지 통제해야 하는 만큼 더더욱….

“어쨌든 짐작은 했는데 타락자 보낸 게 너라서 다행이네. 혹시 함정인가 했는데.”

“보통 굶주린 혼돈이 아키서스 사칭하면서 함정 파진 않으니까.”

태현의 말에 자리에 있던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건 그래!

이세연은 흔들림 없는 자세로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 굶주린 혼돈의 관문들은 계속해서 파괴하고 있습니다. 아마 굶주린 혼돈 쪽에서도 우리를 공격하려고 준비하고 있겠죠. 대전투 한 번이면 동쪽은 마무리될 것 같습니다.”

“괜찮겠어?”

태현의 질문에 이세연은 묘한 표정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마치 웃는 것 같기도 하고, 찡그리는 것 같기도 한 표정이었다.

“?”

“괜찮아.”

‘아니. 불길하게 왜 저래?’

태현은 갑자기 불안해졌다.

안 그래도 타락자(아키서스를 믿는) 때문에 살짝 불안했는데 이세연이 저러니 괜히 더 불안해졌다.

게다가 팀 KL 선수들이 ‘야 이세연이 나중에 굶주린 혼돈으로 갈아타면 어떡해? 그냥 거짓으로라도 사과하는 게 어떠냐?’라고 한 것도 있었고….

“이다비. 이세연이 좀 이상한 거 같지 않아?”

“네?”

이다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는 이세연을 쳐다보았다. 이세연은 이다비와 눈이 마주치자 싱긋 웃어주었다.

“평소 같으신데요?”

“…….”

태현은 다시 이세연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이세연도 다시 마주 보았다.

이세연이 태현을 쳐다보는 표정은 이다비를 쳐다볼 때와 확실히 달랐다.

‘아니. 쟤 진짜 칼 갈고 있는 거 아니겠지? 굶주린 혼돈 퀘스트 깨기 전에 덤비면 귀찮아지는데. 설마 그러진 않겠지.’

태현은 걱정이 되어서 이다비에게 속삭였다.

“…이래서 걱정이 되는데, 이세연이 나중에 방해하면 어떡하지?”

“그러실 것 같지는 않은데요.”

이다비는 진심으로 말했다.

태현이나 다른 KL 선수들은 이세연을 두려워하고 있었지만, 이다비는 이세연이 말도 하지 않고 멋대로 공격할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싸우기 전에 당당하게 말을 하고 결투를 할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니야. 이세연은 이런 부분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다고.”

“…….”

이다비는 속으로 ‘이러니까 이세연이 화를 내는 거 아닐까?’ 하고 생각했지만 굳이 말하진 않았다.

이런 부분에서 말없이 태현의 편을 드는 걸 보면 이다비도 태현을 참 많이 아끼긴 했다.

“그러면 선물공세로 매수하시는 건 어때요?”

그리고 이런 부분에서 방향을 잘못 잡은 조언을 하는 걸 보면 이다비도 확실히 파워 워리어 길마가 맞았다.

“그런가?”

하지만 태현은 이다비의 말을 믿었다.

이다비는 언제나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끝나고 이야기해 봐야겠다.”

“저기, 두 분?”

PD는 태현과 이다비를 불렀다.

이제 오스턴 왕국 중앙 전역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둘이 계속 속닥대고 있었던 것이다.

“아. 죄송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하고 있었나요?”

“음….”

“으응…?”

태현과 이다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앞으로의 계획이 맞나?

“그런 것 같기도 한데.”

“아니지 않나요?”

“???”

둘의 말에 다른 사람들은 더 혼란스러워했다.

‘무슨 대화를 나눈 거지?’

‘진짜 궁금한데.’

“그래서 지금 중앙 상황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요?”

“일단 스미스가 점령한 아레네 시는 확실히 박살이 났습니다.”

태현의 말에 모두가 알고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그 광경을 봤던 것이다.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이 썰려 나간 다음에, 도시가 폭풍처럼 불타오르기 시작한 그 모습을!

“불이 엄청나게 많이 났죠.”

“뉴욕 라이온즈가 결국 방송을 껐던데….”

‘솔직히 나 같아도 껐겠다.’

랭커 중 한 명은 그렇게 생각했다.

뉴욕 라이온즈 퀘스트 홍보하려고 켰는데 선수들은 썰려 나가고 스미스는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다가 도시가 박살 났는데….

아무리 자존심 때문에 계속 방송하려고 해도 한계가 있는 것이다.

“도시가 어떻게 됐습니까? 잿더미가 됐나요?”

“…그 반대인 얼음 궁전 비슷하게 되긴 했습니다.”

“???!!”

* * *

[빙결공, 푸르네우스가 <진설(眞雪)의 다섯 번째 조각>을 사용합니다!]

[냉기의 진정한 주인이 찾아옵니다!]

[냉기의 핵이 완전히 깨어납니다!]

태현은 경악했다.

언젠가 푸르네우스를 뒤에서 찌르려고 생각은 했었지만, 너무 갑작스러웠던 것이다.

이렇게 빠르게 닥쳐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데!

[카르바노그가 위험하다고 비명을 지릅니다!]

이번만은 카르바노그가 굳이 알려줄 필요가 없었다.

푸르네우스를 중심으로 이제까지 본 적 없었던 냉기들이 휘몰아치기 시작했으니까.

휘이이이잉!

마치 판온에서 가장 추운 북쪽의 땅에 온 것처럼 싸늘한 냉기가 주변을 휘감고 살벌하게 몰아쳤다.

너 푸르네우스야! 네가 감히 우리들을 가두고 냉기를 멋대로 사용하다니!

마치 수천, 수만 마리의 정령이 동시에 외치는 소리 같았다.

우렁우렁하게 울리는 소리가 주변에 가득 퍼지자 그 소리를 견디지 못하고 귀를 막는 자들이 나올 정도였다.

-닥… 닥쳐라! 하찮은 정령 놈들이! 네놈들은 그저 얌전히 있으면 될 뿐이다! 내게 힘을 바쳐라!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구나!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구나!

“…이 상황이…?”

스미스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태현도 아직 상황파악이 덜 됐는데 스미스라고 될 리가 없었다.

“김태현 선수!! 지금 이것도 속임수입니까?”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스미스! 이게 어떻게 속임수로 보이냐!”

태현은 그렇게 외치며 더 거리를 벌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징조가 좋지 않았던 것이다.

<냉기의 진정한 주인-냉기의 핵 퀘스트>

빙결공 푸르네우스는 정령계의 수많은 정령들을 마계 깊숙한 곳에 가둬 놓고 자신의 수족처럼 부렸다.

정령들은 분노했지만 악마 공작의 힘이 너무 강력해서 어쩔 수 없었던 상황.

하지만 당신의 계략에 빠져 빙결공은 결국 스스로 빈틈을 드러냈다.

냉기의 핵에서 풀려난 정령들을 완전히 해방시키고 이들의 복수를 도와라!

보상:?, ???, ????

[냉기의 핵이 완전히 깨어난 것으로 인해 보상을 받습니다!]

[정령계의 냉기 정령들이 당신에게 매우 고마워합니다!]

[정령계에서 평판이 크게 오릅니다!]

[정령 계열 스킬들에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정령들이 퀘스트를 도와줄 확률이 올라갑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

[……]

‘저런. 푸르네우스. 나쁜 놈 같으니. 정령을 가두고 힘을 착취해?’

[카르바노그가 정말 그렇다고 동의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다른 한 생명체를 우리에 가두고 힘을 뽑아내는 건 못된 짓이었다.

태현은 그렇게 생각하며 내달렸다.

‘굳이 퀘스트까지 추가로 깰 필요는 없다.’

지금 냉기의 핵에서 풀려난 정령들을 굳이 추가로 도울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알아서 잘 싸울 정령들이었으니까.

게다가 이미 보상을 충분히 받은 상태였기에 욕심을 부릴 이유가 더 없었다.

지금 중요한 건 스미스나 푸르네우스를 저기에 내버려 두고 빠져나가는 것!

-저기를 봐라, 아키서스!

에슬라가 매우 즐거워하며 뒤를 가리켰다.

태현은 불길해하며 시선을 돌렸다.

“…!”

화염 회오리로 인해 잿더미가 되어가던 도시가, 이번에는 혹한의 추위로 얼어붙고 있었다.

냉기의 핵에서 풀려난 어마어마한 숫자의 정령들이 분노해서 주변을 휩쓸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훌륭하다! 아키서스.

“에슬라. 혹시 몰라서 말하는 거지만 이건 절대 고의가 아니다! 우연이었다!”

-그래그래. ‘우연’이지. 나도 안다! 아키서스의 우연!

‘아오 이 새끼.’

태현은 에슬라를 한 대 때릴까 고민했다가 참았다.

안 그래도 지금 악마 공작들이 퀘스트 하나 깰 때마다 한 명씩 줄어들고 있는데 남은 악마 공작들이 귀했던 것이다.

[카르바노그가 소름 끼치는 우연에 경악…]

‘너까지 이러지 ㅁ….’

[분노한 정령들이 정령들의 결계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정령들의 결계가 천천히 더 좁혀듭니다!]

[정령들을 해치우거나 진정시키십시오!]

“!”

빠져나가려던 태현 일행은 앞을 가로막는 거대한 냉기 폭풍의 모습에 당황했다.

도시 바깥을 그냥 둥글게 감싸버린 거대한 냉기 폭풍!

마치 지금 태풍의 눈 안에 있는 것 같은 꼴이 되어버렸다.

‘정령들 진정시키는 게 가능한가?’

설득은 무리 같고, 무조건 푸르네우스 죽기 전에는 진정시킬 수 없어 보였다.

결론을 내린 태현은 빠르게 발걸음을 돌렸다.

“안 되겠다. 푸르네우스 잡고 간다!”

-좋은 생각이다. 아키서스. 널 믿고 있었지.

“에슬라. 부탁이니까 제발 좀….”

* * *

[굶주린 혼돈의 힘으로 관문이 열립니다!]

[현재로 돌아갑니다!]

푸르네우스가 폭주하는 것을 본 스미스는 결국 아쉬움을 삼키고 결정을 내렸다.

퀘스트를 실패하는 꼴이 되었지만 이렇게 된 이상 과거에 더 머물러서 얻을 게 없었다.

괜히 여기서 있다가 목숨을 더 잃는 것보다는, 차라리 포기하고 돌아가는 게 더 나았다.

“다들 빠져나갑시다. 후퇴!”

냉기 정령들이 점점 더 날뛰기 전에 스미스는 후퇴를 선택했다.

굶주린 혼돈의 군단들이 차례대로 관문을 타고 빠져나가고, 홀로 남은 푸르네우스는 냉기 정령들과 사투를 벌였다.

-건방진 정령 놈들. 내가 너희들을 소환했다! 너희들은 내 명령에 따라야 한다!

닥쳐라, 더러운 악마 놈아!

푸르네우스의 외침에도 정령들은 기가 죽지 않고 오히려 더 합창하듯이 화를 냈다.

냉기의 핵에서 계속 힘을 빌려오던 푸르네우스.

그 냉기의 핵이 해방되고 힘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물러서지 않았다.

진설의 다섯 번째 조각을 개방한 만큼 온몸에서 힘이 흘러넘쳤던 것이다.

-네놈들의 힘이 얼마나 하찮은지 알려주겠다. 네놈들의 힘은 나에게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내가 악마 공작이 될 수 있었던 건 오로지 내 힘 때문이었단 말이다. 이 주제 파악도 못 하는 정령 놈들아!

“푸르네우스! 우리가 왔다!”

태현 일행이 뒤늦게 달려오자 푸르네우스는 코웃음을 쳤다.

진설의 다섯 번째 조각을 개방한 푸르네우스는 그 힘뿐만이 아니라 오만함도 극한에 도달해 있었다.

-네놈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다. 하찮은 쓰레기들아. 이제 와서… 컥!

“그래! 알겠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