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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1634화 (1,633/1,826)

§ 나는 될놈이다 1634화

알로페 대주교는 믿기 힘들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역시 아키서스 교단의 모험가들은 사람의 마음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혹한 괴물들인 것인가?

“…그냥 물어본 거예요!”

이다비는 상대의 경악을 알아차리고 급히 말을 돌렸다.

‘아쉽다.’

하지만 속으로는 아쉬운 게 사실이었다.

가만히 앉아서 반지만 나눠 끼면 퀘스트 완료가 되고, 추가 보상까지 받을 수 있는데….

그렇다면 많이 끼면 많이 낄수록 좋지 않겠는가.

‘몰래 실험해 봐야겠다.’

이다비는 대주교한테 감사를 표하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카르릉.

언제나 일행의 넉넉한 창고 역할을 맡고 있는 소환수, 토왕이가 수상함을 눈치채고 낮게 울음소리를 냈다.

“잠깐 이것 좀 껴볼래?”

-…카르릉!

토왕이는 싫다는 듯이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베레타르바 교단의 반지를 굳이 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가만히 있어!”

[소환수에게는 반지를 착용할 수 없습니다!]

[베레타르바의 분노를 샀습니다! 한동안 베레타르바 관련 스킬에 페널티를 받습니다.]

이다비는 아쉽다는 표정으로 손을 뗐다.

토왕이는 헥헥대며 이다비 뒤로 도망갔다.

대주교 알로페의 반지:

내구력 10/10.

베레타르바 교단의 신성력이 담겨 있는 반지다. 자격 없는 자는 받을 수 없는 이 반지는 특정한 조건을 만족시키면 강력한 베레타르바의 축복을 불러온다.

‘알고 있던 것과 비슷하네.’

이다비는 반지를 유심히 관찰했다.

베레타르바 교단은 사실 꾸준히 인기 있고, 꾸준히 찾는 사람들이 있어서 알려져 있는 정보도 제법 많은 편이었다.

사람들이 커플만 가입 가능하냐고 욕해도 커플들은 조용히 베레타르바 교단 들어가서 각종 축복받고 나오는 것이다.

이 반지도 베레타르바 교단에서 얻을 수 있는 혜택 중 하나였다.

반지 모양에 따라 여러 옵션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대주교가 직접 준 반지라서 그런지 좀 더 크고 보석 색이 진해. 아마 효과가 더 좋겠지. 이 모양이면 옵션은….’

[<아키서스의 황금주교>입니다. 감정에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감정에 성공합니다!]

[……]

이다비는 사제로 갈아탔지만 원래는 상인으로 시작한, 하이브리드 직업.

그런 만큼 감정 스킬도 만만치 않았다.

‘MP 회복에 관한 축복이잖아!’

이다비는 눈을 살짝 크게 떴다. MP 회복 관련된 옵션은 마법사나 사제라면 누구나 탐내는 옵션이었다.

베레타르바 교단의 대주교 알로페가 그만큼 신경을 써서 준 게 분명했다.

굶주린 혼돈에 맞서 싸우는 영웅들인 만큼 이 정도는 당연히….

‘…내가 너무했을까…?’

이다비는 아주 살짝 미안해졌다.

* * *

“대주교님!”

-상대를 찾고 반지를 끼셨나요?

알로페는 기대에 찬 표정으로 이다비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아키서스 교단의 뛰어난 모험가인 이다비가 베레타르바의 축복을 받고 더 강해지길 원했다.

아키서스 교단이 피도 눈물도 없다는 말이 많았지만 알로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베레타르바의 진정한 사랑은 괴물도 사람으로 바꾸고 차가운 강철골렘도 눈물 흘리게 만드는 법.

아키서스 교단이 이런저런 말은 많아도 사랑의 힘을 알게 된다면 많이 달라지리라.

“저. 대주교님.”

-?

“반지를 잃어버렸어요.”

-…….

알로페는 황당하다는 듯이 이다비를 쳐다보았다.

[베레타르바 교단 내에서 평판이 내려갑니다!]

그러나 이다비는 신경 쓰지 않았다.

‘반지 최대한 많이 받아놔야지.’

아까 미안한 건 미안한 거였고, 이다비는 언제나 최선을 추구하는 플레이어였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좋은 선택은?

대주교한테 욕을 좀 먹더라도 최대한 많은 반지를 뜯어내는 것이었다.

그래야 최대한 많이 버프를 받을 수 있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여기 반지를 새로 드리지요.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베레타르바 교단은 데메르 교단처럼 꽤 인내심이 강하고 선량한 편에 속하는 교단이었다.

대주교 알로페도 조금 실망하긴 했어도 더 이상 뭐라고 하지 않고 순순하게 반지를 내주었다.

그리고 30분 후.

“대주교님. 반지를….”

[베레타르바 교단 내에서 평판이 내려갑니다!!]

-…혹시 어디서 잃어버리신 건지 제가 찾아봐도 되겠습니까??

* * *

“김태현 선수! 방송을 켜는 것을 잊어버린 탓에 뉴욕 라이온즈 계정 조회수 신기록을 세워주신 김태현 선수!”

“…제가 미안합니다.”

“농담입니다.”

배장욱 PD는 웃으면서 손짓했다.

솔직히 뉴욕 라이온즈가 조회수를 많이 받아간 게 배가 아프긴 했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태현은 여전히 불리한 상황이었고 방송으로 계속 위치를 노출했다가는 진행하기도 힘들 정도로 막혔을 테니까.

그리고 뉴욕 라이온즈가 스미스 vs 김태현으로 조회수 신기록을 세우긴 했지만, 정작 뉴욕 라이온즈는 그렇게 기쁘지 않을 것이다.

그 조회수는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의 피로 만들어 낸 조회수였으니까.

<뉴욕 라이온즈 대참사! 굶주린 혼돈 퀘스트 도중 선수들 전멸!>

<뉴욕 라이온즈 팬들 충격… 니들이 프로냐?>

<한 명도 잡지 못하고 박살 난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

<‘차라리 내가 뛰어도 너희보단 잘 뛰겠다’… 한 뉴욕 라이온즈 팬의 따끔한 일침!>

그리고 태현은 자기 계정으로 방송을 하진 않았어도 그 누구보다도 이득을 많이 본 사람이었다.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을 썰어대는 걸 그 많은 사람들이 다 목격했으니….

그건 보고 있던 배장욱도 들고 있던 무기를 떨어뜨릴 정도로 장엄한 광경이었다.

어떻게 같은 랭커들을 저렇게 일방적으로 쓸어버릴 수 있단 말인가.

“들어가시죠.”

회의실 안에는 방송국과 인연이 있는 랭커들이 먼저 와서 앉아 있었다.

태현 쪽 원정대에도 같이 참가하고 있는 유명 랭커들!

랭커들은 태현을 보고 반가워하며 손을 흔들었다.

김재준은 태현의 손을 잡고 강하게 악수했다.

“김태현 선수! 밖에서 보니 더 반갑습니다. 절 기억하시겠습니까?”

“네. 그때 원정대에 피디님과 같이 참가하셨잖습니까.”

“하하. 그때 사람이 많아서 기억 못 하실 줄 알았는데….”

김재준이 기뻐하자, 노유리도 초승달 같은 웃음을 지으며 태현에게 말했다.

“진짜 김태현 선수는 게임하고 별 차이가 없어요! 아. 옆의 분은 누구예요?”

“케인인데요.”

“…….”

“…….”

순간 회의실의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배장욱 PD는 헛기침을 했다.

“크흠. 다들 바쁜데 오늘 여기 이렇게 모인 이유는, 앞으로의 퀘스트 때문입니다.”

지금 반(反) 굶주린 혼돈 퀘스트에 참가하고 있는 원정대는 각자 나뉘어서 움직이고 있었다.

게다가 같은 길드도, 같은 게임단도 아니었다.

오로지 같은 목적 하나로만 뭉친 이들!

그런 만큼 서로 의사소통도 힘들었다. 특히 굶주린 혼돈이 대륙의 대부분을 점령하고 있는 지금은 더더욱.

그래서 배장욱은 그 특유의 인맥으로 원정대에 참가한 랭커들을 불러 모으고, 같이 참가한 게임단 선수들도 불러 모았다.

서로 퀘스트 진행 상황을 공유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짜기 위해서.

“저희는 지금 오스턴 왕국 서쪽에서 싸우고 있는데, 상당히 유리한 것 같습니다. 일단 네임드가 거의 없어요.”

최상윤과 정수혁이 먼저 열었다.

서쪽으로 진격한 팀 KL 선수들과 오크 아저씨들, 그리고 미다스 길드원 같은 기타 등등이 포함된 원정대는 오스턴 왕국에서 가장 진행이 빠른 편이었다.

전력으로 치면 가장 걱정스러웠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과가 나온 건 그만큼 상대가 약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굶주린 혼돈의 네임드 NPC들은 다 중앙이나 동부에 있는 게 분명했다.

“굶주린 혼돈 쪽에 가입한 플레이어들이 몇몇 이탈하는 경우도 있긴 한데, 이게 그럴 경우에는 페널티가 좀 심하더군요.”

“어땠습니까?”

“레벨부터 스탯까지 하락이 장난이 아니에요.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몇 번 죽는 페널티보다 더 심한 수준이니….”

굶주린 혼돈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한 번 계약한 이상 벗어날 경우 강력한 페널티가 들어갔다.

더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그 페널티도 올라간다!

“어쨌든 저희는 지금 서부 쪽을 최대한 장악하고 요새를 많이 만들고 있습니다. 에랑스 왕국이나 다른 왕국 쪽에서 언제 공격이 들어올지 몰라서….”

“좋은 방법 같아요.”

“덕분에 다른 방향 원정대가 마음 놓고 싸울 수 있는 겁니다.”

다른 랭커들도 모두 서쪽 원정대의 활약을 칭찬했다.

서쪽에서 다른 굶주린 혼돈의 군단들이 진격하기 시작하면 계획 자체가 엉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일단 오스턴 왕국부터 해방하고 봐야 했다.

“죄송합니다. 늦었습니다.”

회의실 문이 열리고, 이세연이 유성 게임단 선수들 몇몇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왔다.

선수들 중에서 불만을 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만큼 이세연의 이름값이 대단했던 것이다.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을 무 썰듯이 썩둑썩둑 썰어버린 태현도 태현이었지만, 이세연이 이끌고 온 언데드 군단의 충격도 어마어마한 건 마찬가지였다.

지금 팀 KL 선수들은 진지하게 이세연 걱정도 하고 있었던 것이다.

* * *

-야. 태현아. 이세연이 나중에 뒤통수치면 어떡하지?

-지금은 어쩔 수 없어. 나중 가서 생각해야지.

-어쩔 수 없는 건 없어. 대비를 해놔야지. 내가 생각이 있어.

-뭔데?

-네가 딱 눈 감고 판온 1에서 있었던 일 사과해라.

-…미쳤냐?? 내가 뭘 잘못했다고!?

-누가 진심으로 사과하랬냐? 그냥 가식적으로 사과해! 내가 보기에 이세연도 그러면 모르는 척 넘어갈 가능성이 높아!

-뭐라는 거야 미친놈아! 케인하고 놀더니 케인한테 옮았냐?

-뭐… 뭐!? 이 자식! 사과해!

-…니들이 나한테 사과해야지…! 이 새끼들아…!

* * *

하지만 태현도 최상윤의 걱정이 이해 안 가는 건 아니었다.

‘이세연이 나하고 완전히 같은 편은 아니지.’

애초에 이세연 본인도 그렇게 말한 적이 없었다.

목적이 같으니까 힘을 합치고 있을 뿐.

이세연이 쑤닝처럼 초대형 길드로 판온을 지배하고 왕으로 군림하려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경쟁심이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애초에 판온 1에서 왜 둘이 붙었던가.

누가 판온 최강인지 가려보겠다고 붙은 것 아니었던가.

나중에 일이 마무리되면 다시 한번 가려보겠다고 붙을 수도 있었다.

그때를 생각해 보면 저 언데드 군단은 정말 위협적이긴 했다.

유성 게임단이 저 군단을 만들려고 얼마나 투자를 했을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앉으시죠. 지금 막 오스턴 왕국 서쪽 전역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 그렇군요.”

이세연은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조각처럼 기품 있는 모습에 랭커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태현은 그걸 보고 인상을 찡그렸다.

이상하게 태현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이세연의 이미지를 좀 착각하는 경우가 잦았다.

‘대체 왜 착각하는 건지 모르겠군.’

“동쪽은 지금 진행 중입니다. 조금 이상한 상황이 많이 벌어지고 있고… 그 전에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

자리에 있던 랭커들은 모두 이세연을 쳐다보았다.

이세연이 물어보려는 게 뭘까?

“길드 동맹 간부들이 자꾸 자기들을 믿어달라고 하는데,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

“…….”

생각지도 못한 주제에 다들 서로를 쳐다보며 웅성거렸다.

-믿을 만한 놈들인가?

-솔직히 좀 그런데.

-아니, 지금 한 명이라도 더 필요하잖아.

-한 명이 더 필요한 거지 뒤통수 때릴 첩자가 필요한 건 아니지.

대화를 듣고 있던 케인이 태현에게 속삭였다.

“야… 굶주린 혼돈에서 탈출하는 방법 언제 상담하지?”

“그건 좀 기다려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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