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630화
뉴욕 라이온즈의 팬들은 충격을 받고 침묵에 빠졌다.
그만큼 태현이 보여주는 학살은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덤벼들었던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이 순식간에 나뒹굴다니.
팽팽하게 싸우다가 밀린 거라면 이해라도 할 수 있었다.
한 명당 10초도 쓰지 않고 그냥 녹여 버리는 태현의 모습은 공포 그 자체였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전설 검술 스킬이 상대의 방어를 무력화시킵니다!]
[약점에 추가 데미지가 들어갑니다!]
[상대의 장비가 파괴됩니다!]
[추가 스킬이 발동됩니다!]
[……]
[……]
[……]
‘정말 사기적이군.’
태현은 전설 검술 스킬의 손맛을 누구보다도 더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중독될 것 같은 강함!
이래서 사람들이 마검을 뽑고 취하는 게 분명했다.
한 번 이런 힘을 맛보게 되면 쉽게 정신을 차리기 힘든 것이다.
“거리 벌려! 거리 벌려!!!”
“미친놈이다 저거! 무조건 시간을 끌어!!”
“너무 말이 심한 거 아니냐?”
태현의 대꾸에도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어지간해서는 대답했을 텐데도, 그만큼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방송이고 뭐고 여유 하나 없는 필사적인 모습!
마치 던전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보스 몬스터를 만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원거리 위주로!”
“원거리로 돌려!”
선수들은 온갖 상황을 연습해 왔던 만큼 이런 상황도 준비는 했었다.
근접전에서 밀렸을 경우 최대한 거리를 벌리면서 원거리 공격 위주로!
…하지만 이렇게 빠르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밀릴 거라고는 정말 누구도 상상한 적 없었다.
[굶주린 혼돈의 화살이 하늘을 뒤덮습니다!]
[지하에서 기어 올라온 저주가 당신을 노리고 달려듭니다!]
[……]
[……]
딱 봐도 행운 스탯으로 버틸 수 없어 보이는 원거리 공격들이 닥치는 대로 날아오기 시작했다.
태현에 대해 공부할 만큼 공부한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이 평범한 공격을 할 리 없는 것이다.
[전설 검술 스킬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간이 느려집니다!]
카카카카카캉!
태현은 날아오는 화살비들을 하나씩 검으로 쳐내며 접근하기 시작했다.
“…!!!”
“저 자식 진짜 뭐야!?!?”
보고 있던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에게는 공포 그 자체였다.
저게 대체 어떻게 가능한 거야?!
콰직!
[축복받은 왕가의 화살통이 부러집니다!]
게다가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에게는 운도 따라주지 않았다.
선수 중 한 명이 쓰고 있던 화살통이 그대로 부서지더니 화살들이 쏟아진 것이다.
“!?”
‘어. 저거 내가 만들었던 <아키서스의 선물> 아닌가?’
<아키서스의 선물>.
아키서스의 사악한 의도가 담긴 선물을 제작하는 권능!
태현이 아닌 사람들은 그 선물에 담긴 사악한 속성을 볼 수 없었다.
겉으로는 매우 좋은 아이템이니 별생각 없이 쓰다가 나중에 크게 다칠 수밖에 없는 사악한 권능이었다.
‘…아니. 나 분명 예전에 길드 동맹 놈들한테만 뿌렸는데 왜 저놈들이 들고 있지?’
태현은 살짝 황당해했다.
분명 길드 동맹 놈들한테 뿌린 아이템들이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의 손에 들려 있었던 것이다.
…혹시 뺏었나?
‘하필 뺏어도 그걸….’
“안, 안 돼! 안….”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안 그래도 불리한 상황에서 저런 아이템 파괴까지 일어나자 포위망은 순식간에 붕괴했다.
-화살통 어떻게 부숨???
-무슨 스킬로 부순 거지?
-저건 그냥 내구도 관리 안 돼서 부서진 거지.
-저게 우연이겠냐??
-나 방법 찾아냈음. 김태현이 싸우기 전에 저놈만 매수한 거임. 일부러 못 싸우도록.
-오… 그럴듯하군.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 전원을 매수했네.
-어쩐지 빨리 죽더라.
뉴욕 라이온즈 생중계 계정은 폭발적으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전 세계의 판온 팬들이란 팬들은 전부 다 모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뉴욕 라이온즈 관계자들 중 어느 누구도 웃고 있지 않았다.
결과가 처참해도 너무 처참했던 것이다.
이게 대체….
‘이거, 수습 어떻게 하지?’
* * *
“…허어!”
이사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 매킨리는 그 모습에 움찔했다.
설마 이 결과에 화가 났다고 주먹을 휘두르려는 건 아니겠지?
그러나 그건 과한 걱정이었다. 이사는 지금 홀린 듯 태현의 플레이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팀 선수들 아작내고 있는 적인 만큼 망하기를 빌어야 했는데, 이상하게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보는 사람을 본능적으로 몰입시키는 플레이!
“저런 선수를 데리고 왔어야 했는데….”
“…….”
매킨리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억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조건을 제시해도 영입이 안 되는 걸 어떡합니까.’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예전에 해결했을 것이다.
오죽하면 팀 KL을 통째로 인수한다는 소리가 나왔을까.
김태현이 일개 선수였다면 통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김태현은 직접 게임단을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는 선수였다.
다들 실패할 거라고 예상했을 때면 모를까, 기적적으로 성공시킨 지금에야 저걸 받아들일 이유가 없었다.
“음. 그래서.”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나서야 이사는 고개를 돌렸다.
“이렇게 실패한 건가?”
“아. 아닙니다.”
매킨리는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갈라져 나오는 것을 느꼈다.
솔직히 방금 같은 대참사를 보면 누구나 이렇게 반응할 것이다.
반반은 무슨….
‘아껴놨던 스킬을 꺼낸 거 같은데, 지금 그렇게 변명해 봤자 구차하게 들릴 뿐이겠지.’
매킨리는 속으로 태현을 욕했다.
무슨 놈의 아껴놨던 스킬들이 그리 많단 말인가.
랭커들이 한 두개씩 숨겨놓는다는 건 알았지만 태현은 그 정도가 심해도 너무 심했다.
적이 많은 건 알겠지만 그래도 그렇지.
“스미스가 남아 있습니다.”
“스미스로 수습이 될지 모르겠군. 이미 타격이 큰 것 같은데.”
“…그래도 이긴다면 수습이 가능합니다. 결국 마지막에 남은 사람이 승자가 될 테니 말입니다.”
이건 변명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태현이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을 전부 다 썰어버렸다지만, 결국 본인이 죽으면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로그아웃은 퀘스트 진행에 치명상이 될 테니….
“그렇군.”
“이사님. 그. 말씀하신 약속 시간이 다 된 것 같은데 출발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매킨리는 이사의 일정을 떠올리고 말했다.
그리고 솔직히 혼자서 보고 싶은 것도 강했다.
혼자서 보면 눈치나 안 보이지, 옆에 이사가 있으면 없는 눈치까지 다 봐야 하는 것이다.
“아니. 미루도록 하지. 이걸 끝까지 보고 가고 싶군.”
“…….”
매킨리는 속으로 절망했다.
하필 왜 이렇게 흥미진진하게 싸워서…!
* * *
-이, 이 내가 인간 따위에게! 인간 따위에게!?
음악공, 구시렉은 충격받은 표정으로 외쳤다.
아무리 마계에서 대륙으로 나오느라 힘을 많이 썼다지만 일개 인간 하나 제압하지 못할 줄이야.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하찮은 놈 같으니. 죽어버려라.
-구시렉도 죽을 때가 되긴 했지.
다른 악마 공작들은 구시렉을 도와주는 대신 구시렉을 비난했다.
악마 공작이 되어서 인간 하나 제압 못 하다니!
“후욱. 후욱.”
스미스는 호흡을 들이쉬며 집중했다.
굶주린 혼돈에게 각종 버프를 받았다고 해도 악마 공작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저 음악공 구시렉은 까다로운 마법사 같은 적이었다.
온갖 음률로 각종 디버프를 날리고, 방심하는 순간 칼날 같은 음파를 날려 오는 악마 공작!
지금 몰아붙이고 있긴 했지만 디버프 쌓이는 속도를 보면 무서울 정도였다.
-멍청한 놈들. 나서서 막지 못하냐!? 굶주린 혼돈의 하수인이다!
-그거 하나 막지 못하면 네놈은 악마 공작으로서의 자격이 없다.
푸르네우스는 진설의 네 번째 조각을 개방하고 나서 더더욱 오만해져있었다.
주변의 건물들을 닥치는 대로 얼리고 박살 내버린 푸르네우스는 구시렉이 맞든 말든 상관하지 않았다.
포악공의 자리를 이어 받은 골라돈도 구시렉에게 무관심한 건 마찬가지였다.
-꿀꿀. 여기 부숴버린다.
콰르르르릉!
대충 괜찮아 보이는 건물 같아 보이면 들어가서 몸집으로 부숴버리는 괴력!
스미스는 마음 같아서는 달려가서 ‘그만 부숴 이 새끼야!’ 하고 싶었지만 구시렉을 상대하느라 집중해야 했다.
그리고 에슬라는….
-도와줄까?
-네 도움은 필요 없다! 다가오지 마라, 에슬라! 꺼져라, 에슬라!
-너무하는군.
“저들을 막아라!”
스미스는 관문에서 차례대로 나오는 굶주린 혼돈의 하수인들에게 외쳤다.
악마 공작들이 저렇게 말한다 하더라도, 스미스가 정말 구시렉을 쓰러뜨린다면 바로 포위해서 공격할 가능성이 높았다.
발을 묶고 싸워야 했다.
‘김태현 선수 잡았나? 싸움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지?’
스미스는 슬슬 궁금해졌다.
싸우기 전, 스미스와 선수들은 간단하게 계획을 세웠다.
-제가 김태현 선수를 양보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잡으십시오.
-…정말 그래도 되나??
-예. 그 정도는 양보할 수 있습니다.
말은 양보였지만 스미스에게도 속셈은 있었다.
먼저 김태현이 아닌 다른 거물 NPC를 잡으면 그 보상이 대단할 거라는 예상이었다.
굶주린 혼돈 퀘스트에 있어서 공적치 포인트는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리고 솔직히, 스미스는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이 그리 쉽게 김태현을 잡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철저하게 계산하고 준비하긴 했다.
전략들을 보면 스미스도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불리하겠군!’이라고 납득했으니.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태현이 쉽게 잡힐 것 같지는 않았다. 스미스의 본능이 그렇게 말했다.
김태현이 쉽게 잡혀주지 않는다면 오히려 좋았다.
스미스가 하나 끝낸 다음 가서 참가하면 되니까.
선수들이야 불평하겠지만 핑계는 충분했다.
일석이조의 전략!
…그러나 스미스는 알지 못했다.
지금 태현이 선수들을 다 썰어버리고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다는 것을.
* * *
[굶주린 혼돈이 당신에게 위험을 경고합니다!]
[아키서스가 오고 있다고 말합니다!]
“!??!”
스미스는 공격하다가 말고 바로 방패 올려서 가드 굳힌 다음 뒤로 펄쩍 뛰었다.
붙잡혀서 두들겨 맞던 구시렉은 허겁지겁 정신을 차리고 거리를 벌렸다.
-무슨… 아키서스! 도와주러 왔구나!!
[음악공, 구시렉의 친밀도가 오릅니다!]
“쯧. 어떻게 안 거지?”
은신 스킬로 뒤에서 기습을 시도했던 태현은 아쉬워했다.
분명 스미스가 정신이 팔려 있어서 성공했을 줄 알았는데.
“제 스킬은 예전과 다릅니다.”
“굶주린 혼돈이 알려줬나? 스미스. 나중에 후회할 거야. 굶주린 혼돈이 대륙 점령하면 뒷감당을 어쩌려고 그러냐?”
“굶주린 혼돈이 대륙을 점령한다고 하더라도, 그것도 게임의 일부입니다. 플레이어들은 적응해 나갈 겁니다.”
“말은 잘 한다. 나중에 굶주린 혼돈이 대륙 다 삼켜버리고 모두 다 초기화시켜버리면 그때도 적응하라고 할 거냐?”
“…그건 너무 많이 나간 추측 아닙니까?”
-죽어라!
둘이 대화하는 사이 몰래 다가간 구시렉이 강렬한 음악을 시전했다.
[음악공, 구시렉이 <제국 기사의 파멸>을 시전합니다!]
[음악의 힘이 스미스를…]
[……]
그러나 스미스는 방패를 들어서 음악을 막아내더니 능숙하게 거리를 벌렸다.
‘아쉽군.’
태현은 구시렉과 시선을 교환했다.
날로 좀 먹어보려고 했더니….
“다른 선수들을 따돌리고 온 겁니까? 아니면 발을 묶었거나?”
“다 잡고 왔다.”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김태현 선수. 예전의 제가 아닙니다. 하여간 이세연 선수도, 김태현 선수도 절 어떻게 보는 건지 그런 거짓말들만….”
한국 선수들에게 속을 만큼 속은 스미스는 코웃음을 치며 믿지 않았다.
그 모습에 태현은 아주 살짝 미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