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629화
‘…하고 누구지?’
태현은 스미스 뒤에 나타난 플레이어들을 보고 의아해했다.
물론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이었지만 태현은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 * *
-김태현 저기서 저러고 있었네.
-장난하나 진짜!
뉴욕 라이온즈가 진행하는 공식 생중계를 보고 있던 사람들은 화면에 나오는 태현의 모습을 보고 황당해했다.
저런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숨기고 있었단 말인가!
이제까지 놓친 것들이 얼마나 됐을지 생각해 보면 아쉽기 그지없었다.
-들키면 안 되니까 그렇겠지.
-이게 다 뉴욕 라이온즈 때문이네.
-하여간 굶주린 혼돈한테 붙은 놈들은….
-잠깐. 여기가 뉴욕 라이온즈 계정이야, 팀 KL 계정이야??
몇몇 뉴욕 라이온즈 팬들은 실시간으로 달리는 리플에 황당해했지만, 그런다고 막을 수 있는 현상이 아니었다.
지금 태현을 포함해서 여러 팀 KL 선수들은 다시 한번 생방송을 멈추고 퀘스트에 집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상대적으로 불리한 입장인 만큼 정보를 숨기고 움직일 수밖에 없는 상황.
…물론 팬들이 그걸 머리로는 이해해도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였다.
덕분에 열려 있는 뉴욕 라이온즈 방송 계정은 전 세계에서 온 팀 KL 팬들로 인해 혼란 그 자체였다.
-김태현 파이팅! 스미스 놈 모가지를 따버려라!
-뉴욕 라이온즈 팬 아닌 놈들은 꺼져버려!
-와, 스미스 인성 봐. 어떻게 악마들을 데리고 다니지?
-저건 김태현이 데리고 다니는 거잖아?!
-아닌데? 스미스가 데리고 다니는 건데?
-스미스 인성 너무하네요… 도시에 불도 놓고….
-김태현이 파괴한 거잖아!! 지금 스미스가 저걸 왜 부숴! 점령한 도시인데!!
-내가 어떻게 알아? 굶주린 혼돈하고 붙어먹은 놈인데 도시 하나 정도는 심심해서 부술 수도 있겠지.
“너무 긴장한 표정으로 보는 것 아닌가?”
“아. 이사님.”
뉴욕 라이온즈의 스카우트 총괄팀장, 매킨리는 생방송을 보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뉴욕 라이온즈의 이사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내가 듣기로, 지표는 다 안정적이라고 했는데. 너무 긴장한 표정으로 보는 거 같아서 말이야.”
이사의 말에 매킨리는 쓴웃음을 지었다.
상대는 뛰어난 경영가였지만 역시 외부 업계에서 온 사람인만큼 보는 시각이 달랐다.
직접 판온을 하면서 선수들과 부딪혀보거나 하는 게 아닌 결과와 숫자만으로 판단을 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게 잘못된 건 아니었지만, 그런 사람한테 해줄 수 있는 설명은 한계가 있었다.
‘김태현 같은 선수는 아무리 불리한 상황이라도 방심할 수 없다고 말해봤자 이해하지 못하시겠지.’
“예. 지표는 안정적입니다.”
뉴욕 라이온즈 입장에서도 굶주린 혼돈으로 갈아타는 건 상당한 도박이었다.
기껏 쌓아 놓은 이미지를 뒤흔드는 걸 수도 있는 데다가 실패라도 하면 타격만 남을 테니까.
하지만 주장인 스미스가 강하게 원했고, 리그가 일시 중지된 지금 다른 게임단들 하는 것처럼 평범하게 따라가는 건 의미가 없다고 다들 판단했다.
기왕 뭔가 할 거면 최고가 되어라!
뉴욕 라이온즈는 평범한 성적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명문 게임단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도박은 지금까지 봤을 때 성공적이었다.
몇몇 불만을 가진 팬들은 있어도 훨씬 더 많은 팬들이 유입되었다.
굶주린 혼돈 퀘스트를 가장 앞에서 이끄는 만큼 관심도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악역이라도 상관없다. 결국 사람들은 승자를 좋아하게 될 테니까.’
매킨리는 이길 수만 있다면 악역이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판온이 굶주린 혼돈에게 지배당하게 되더라도 사람들은 결국 거기에 적응하게 될 테니까.
욕하던 사람들도 결국 다시 뉴욕 라이온즈의 팬이 될 것이다.
“저 선수들이 김태현을 잡을 수 있나?”
“반반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반이라고?”
이사는 놀란 표정으로 매킨리를 쳐다보았다.
이사가 듣기로,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은 어느 게임단보다 대(對) 김태현 전략을 착실하게 준비해 온 선수들이었다.
리그에서 당하고 월드컵에서 당한 만큼 그 전략은 철두철미해질 수밖에 없었다.
매킨리 본인도 확신할 정도였다.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은 누구보다 김태현 상대의 스페셜리스트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킨리는 선수들로 태현을 잡을 수 있는 확률은 반반이라고 생각했다.
“이봐. 그게 말이 되는 소린가? 반반이라니. 이제까지 그렇게 준비를 했는데?”
이사가 황당해하는 것도 당연했다.
김태현 패턴을 학습한 AI부터 시작해서 분석팀이 김태현 스킬셋만 분석해서 약점 공략 스킬들만 전문적으로 완성시킬 정도였는데….
이 정도면 예의상 ‘무조건 이깁니다’라고 말해야 하지 않나?
“하지만 이사님. 김태현은 그 정도의 선수입니다.”
“초일류 선수라는 건 나도 잘 아네. 리그도 봤고 월드컵도 봤으니까. 하지만 이제 슬슬 무너뜨릴 때가 된 거 아니냐 이 말일세. 하물며 지금은 1:1로 싸우는 투기장도 아니잖나.”
정보도 쌓일 대로 쌓였고 심지어 1:1도 아닌 지금.
이사는 아무리 생각해도 반반이라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 생각에 절대 반반은 아닌 것 같은데.”
그리고 놀랍게도 이사의 생각이 맞았다.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과 김태현의 승부는 절대 반반이 아니었다.
그건 일방적인 도륙이었다.
* * *
[검술 스킬이 일시적으로 전설 검술 스킬로 변합니다.]
[아키서스 검법의 모든 스킬이 열립니다.]
[공격 속도가…]
[공격 범위가…]
[공격 데미지가…]
[스킬이 추가됩니다.]
[스킬이…]
[……]
[……]
태현은 메시지창들이 내려오는 것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키서스 축복의 룰렛으로 얻은 보상.
다이아몬드 칸에 있던 전설 등급 검술 스킬!
원래 묵히고 묵히다가 아끼는 태현이었지만, 이번에는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바로 사용했다.
애초에 스미스를 만나면 이걸 쓸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스미스는 무조건 한 번 죽여야 한다.’
태현이 이곳저곳 들쑤시고 있었지만 여전히 굶주린 혼돈이 유리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대륙의 대부분이 지배당하고 있었고 많은 플레이어들이 눈치를 보고 있었다.
최소한 스미스를 한 번 밟아 놔줘야 분위기가 뒤집어지리라.
“간다.”
[카르바노그가 모두 죽여버리라고 응원합니다!]
“김태현!”
저번에 결승전에서 태현과 만난 적이 있던 미국 선수, 앤디가 하늘에서 굉음을 내며 착지했다.
쾅-!
<하늘의 첫 번째 창잡이>란 영웅 직업을 가진 랭커.
하지만 저번과는 모습이 전혀 달랐다.
저번에는 절대 태현과 맞상대를 하지 않으며 시간을 끄는 역할만 맡았지만, 이번에는 그때 모습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적극적으로 덤벼 들어왔다.
“이렇게 만나게 되어서 영광이군! 네 목은 내가 가져가겠다!”
파파파파팟!
[창공의 회오리가 창끝에 맺히기 시작합니다!]
[하늘의 창술이…]
[굶주린 혼돈이 힘을 불어넣습니다!]
김태현한테 가장 먼저, 혼자 덤벼드는 건 미친 짓이라는 게 이제까지 모든 랭커들의 중론이었다.
판온에서 손꼽히는 폭딜.
그리고 그걸 상대의 빈틈에 어떻게든 꽂아 넣는 컨트롤.
이 두 가지가 합쳐지면 1:1에서는 거의 지옥이 나왔다.
아무리 단단한 탱커라도 순식간에 녹아버리는 괴력!
그러나 앤디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길 수 있다!’
이번 퀘스트 전에, 앤디는 쌓아 놓은 공적치 포인트를 모두 사용해서 굶주린 혼돈에게 각종 축복을 받은 상태였다.
전 스탯 버프는 물론이고 스킬 강화에 추가 스킬까지.
솔직히 앤디는 지금이라면 스미스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콰르르륵!
앤디의 손에 잡힌 <꿈틀거리는 혼돈의 창>이 살벌하게 회전하더니 태현을 향해 자동으로 쫓아 들어갔다.
회피력이 높든, 컨트롤이 좋든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압도적인 스탯과 스킬 앞에서는 회피 자체가 불가능하다!
[굶주린 혼돈의 힘이…]
[……]
“<아키서스의 반격>.”
태현은 피하지도 도망치지도 않았다.
가만히 있다가 검을 겨누고 바로 <반격의 원> 스킬을 사용했다.
[<반격의 원>이 <아키서스의 반격>으로 변합니다.]
[새로운 비전 검술 스킬을 처음으로 사용했습니다. 검술 스킬 레벨이 내려가더라도 익힐 확률이 올라갑니다.]
[추가 효과가 발동됩니다!]
[……]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상대의 HP가 일격에 50% 이상 깎였습니다! 상대가 추가 데미지를 입습니다!]
[……]
꽝!!!
실낱같은 타이밍에 정확히 맞춰서 들어가는 상급 반격기.
앤디는 공격이 들어오자 이를 악물고 맞을 각오를 했다.
‘김태현. 반격기가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맞고 들어간다!’
김태현은 모르고 있었지만 김태현 공략법 중 하나가 ‘한 대 맞고 한 대 치기’였다.
무식하게 들려도 어쩔 수가 없었다. 안 맞고 싸우려고 하면 애초에 말려드는 것이다.
김태현도 사람인 만큼 한 대 때리는 순간에는 무조건 틈이 나온다!
…그런데 그 한 대가 너무 셌다.
“커어어어억!”
[HP가 10% 미만으로 떨어집니다!]
[굶주린 혼돈이 하사한 피가 혈관에서 흐르며 HP를 회복시킵니다!]
[시야가 흐려집니다!]
[<아키서스의 반격>으로 인해 맹독이 퍼져나갑니다!]
[갑옷이 파괴됩니다!]
[……]
[……]
각종 상태 이상은 물론이고 장비까지 파괴되자 앤디는 경악했다.
태현이 폭딜로 유명한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정말 이상했다.
이게 말이 되나?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잠….”
앤디는 무심코 외쳤다.
보이지 않아도 김태현이 앞에서 달려오고 있는 게 느껴졌던 것이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상대의 HP가 0이 되어…]
[굶주린 혼돈이 내린 힘이 상대를 부활시킵니다!]
‘흠.’
평소라면 각종 권능 스킬 다 부어 넣었는데 상대가 부활해서 당황했을 테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태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전설 검술 스킬에 어울리는 검광이 번뜩이더니 그대로 다시 한번 앤디를 난타했다.
[상대의 HP가 0이 되어…]
[……]
“자. 다음 놈들! 도망치지 말고 덤벼봐라!”
태현은 검을 들고 역으로 달려들었다.
그 모습에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은 얼어붙었다.
어디선가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까지 쌓아 놓은 자신감에 금이 가는 소리였다.
* * *
뉴욕 라이온즈 소속 선수, 저스틴.
4초.
뉴욕 라이온즈 소속 선수, 그라임스.
6초.
뉴욕 라이온즈 소속 선수, 퍼소프.
5초.
스미스 못지않다는 평가를 받는 탱커 랭커도, 이번에 새로 뽑힌 재능 넘치는 신진 랭커도, 근접 딜량 하나만큼은 태현을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는 암살자 랭커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10초를 넘기는 선수들은 한 명도 없었다.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은 거짓말처럼 녹아내렸다.
말 그대로 도륙이었다.
-!!!!!!
-???????
-이게… 이게 지금 무슨….
-뉴욕 라이온즈 선수 맞지?? 뭔 후보 선수들 아니라??
-후보 선수들도 저렇게 뒤지지는 않을 것 같은데.
처음에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이 나타났을 때만 해도, 어느 쪽 팬이든 제법 팽팽한 승부를 예상했었다.
뉴욕 라이온즈 팬들은 이제까지 선수들이 준비한 것에 기대를.
그리고 김태현 팬들은 태현이 해왔던 것들을 믿고 기대를.
…그러나 아무도 이렇게 일방적인 상황을 예상하진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일방적으로 밀리지는 않겠지. 뭔가 보여주겠지!
-그, 그래. 뭔가 아껴뒀던 스킬을 써서 그런 걸 거야.
뉴욕 라이온즈 소속 선수, 네퍼.
8초.
뉴욕 라이온즈 소속 선수, 프랭크.
9초.
-와! 버티는 시간이 1초씩 늘어나고 있네!
-이대로 계속 싸우면 한 천 명부터는 팽팽한 싸움 될 듯?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