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628화
“오스턴 왕가의 궁전이 왜 무너져 내린 거야? 스미스 놈이 미쳤나?”
“좋은 거 아닙니까?”
“좋은… 건가? 잘 모르겠군.”
길드 동맹 간부들은 충격에 빠져서 혼란스러워했다.
일단 지금은 그들 도시가 아니라 스미스 놈들이 점령한 도시긴 했지만….
이게 사람 마음이란 게 그렇게 깔끔하게 정리가 되는 게 아니었다.
열심히 키운 궁전이 날아갔는데 냉정하게 ‘어차피 남의 도시니까’ 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 * *
“어차피 남의 도시니까.”
태현은 망설이지 않고 악마 공작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
어차피 스미스에게 점령당한 상태의 도시.
괜히 내버려 둬봤자 좋을 게 없었다.
냉정한 마음으로 공격!
[고대 제국, 아레네 시를 발견했습니다!]
[아레네 시는 미래에 세워질 오스턴 왕국의 수도가 될 역사 깊은 도시입니다.]
[현재 굶주린 혼돈의 하수인들과 떠돌이 악마들, 제국 배반자들이 도시를 점령하고 있습니다.]
[……]
“마음껏 공격해도 좋다.”
-그게 정말이냐?
악마 공작들은 믿기 힘들다는 듯이 태현을 쳐다보았다.
악마 공작들이 뭐라고 부수거나 파괴하려고 하면 사사건건 방해를 하던 게 태현이었다.
-이 요새는 원래 파괴했던 만큼 이번에도 파괴를….
-어허! 그랬다가 굶주린 혼돈이 더 강해지면 어쩌려고!
-…이 마을은 원래 우리 악마들이 점령했던 만큼 이번에도 점령을….
-어허!! 그랬다가 굶주린 혼돈이 더 강해지면 어쩌려고!!
태현이 없었다면 키도가오넬 놈을 막아낼 수 없었다는 건 악마 공작들도 알고 있었다.
지금 과거에서 굶주린 혼돈을 막지 않으면 미래에서 더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도.
…하지만 그걸 알고 있더라도 태현이 사사건건 방해하는 건 악마 공작들을 열 받게 만들었다.
너만 싸웠냐??
그런데 그랬던 태현이 아레네 시 같은 대도시 가까이 와서는 악마 공작들에게 자유롭게 공격해도 좋다고 허락을 해준 것이다.
“당연하지. 지금 여기를 점령한 놈들은 굶주린 혼돈에 떠돌이 악마들, 그리고 제국 배반자들이잖나. 이런 놈들하고 싸우면서 어떻게 힘조절을 하겠어?”
-다른 곳에서 싸울 때는 힘조절을 하라고 지랄을 했….
“싫으면 하지 마라.”
-아, 아니다.
구시렉은 급히 손을 내저었다. 괜히 심기를 거슬러서 기회를 날릴까 봐 아쉬웠던 것이다.
-확실히 이런 기회도 필요하긴 하지. 굶주린 혼돈 놈들 때문에 부하들이 많이 죽었다.
-꿀꿀. 굶주린 혼돈 때문에 대륙에 퍼진 악마들의 힘이 확 줄었다. 여기서 악마들의 영향력을 퍼뜨려놔야 한다.
악마들은 혼란스럽고 타락한 대륙을 좋아했다.
그럴수록 악마들이 더욱더 활동하기 좋아지고 강력해졌으니까.
반대로, 악마들이 활동하면 활동할수록 주변은 타락하게 되었다.
[악마들이 도시를 점령할 경우 그 영향력이 퍼져 나갈 것입니다!]
[악명이 오릅니다!]
[……]
[……]
‘상관없지.’
태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차피 미래에는 남의 도시!
치안 내려가고 혼란도 올라간다고 하더라도 그걸 수습해야 하는 건 스미스와 친구들이었지 태현이 아니었다.
“공격 개시!”
-공격 개시!!
함성과 함께, 악마 공작들은 부하들을 데리고 아레네 시의 각 성문들로 쇄도해 들어갔다.
* * *
[오스턴 왕가의 궁전이 무너져 내립니다!]
“왕궁이 무너진다!!”
“?!?”
뉴욕 라이온즈 선수, 고메즈는 깜짝 놀랐다.
도시의 자랑 중 하나인 궁전이 갑자기 무너져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제대로 경계하라고 했을 텐데!”
“경계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는데 그냥 갑자기 무너져 내린 겁니다!”
“뭐라고??”
“지금 굶주린 혼돈 상대하겠다고 모인 놈들이 이것저것 퀘스트 깨고 있을 텐데, 그것 때문 아니야?”
“…….”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은 놀란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확실히 지금, 반(反) 굶주린 혼돈 세력은 조금씩 커져 나가고 있었다.
퀘스트 초반에 굶주린 혼돈이 보여준 압도적인 기세와 비교해 보면 신기할 정도!
몇몇 이름 있는 최상위권 랭커들이 반 굶주린 혼돈 세력에 참가해서 나선 덕분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런 최상위권 랭커들이 계속해서 활약을 해나가고 퀘스트를 생중계한다면….
“지금 도시들 점령하고 땅따먹기 할 때가 아닌 것 같은데. 스미스는 뭐하고 있는 거야? 길드 동맹 놈들 결국 잡지도 못했잖아? 소문을 들어보니까 쑤닝이 탈출해서 김태현 쪽으로 붙었다던데.”
“그건 헛소문이지. 쑤닝이 그 정도로 멍청해 보이냐? 김태현한테 붙게?”
“있던 거 다 날리면 김태현한테 붙을 수도 있겠지. 어쨌든 뭐든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란 말이야. 지금 이렇게 한가하게 기다리기만 해도 되나? 이번 퀘스트 망하면 우리도 선수 커리어 타격 심할걸.”
현재 스미스 밑의 <화이트 나이트> 길드원들이나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은 점령한 도시들과 성들을 관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일개 성 하나를 점령해도 그 뒷마무리를 하려면 꽤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들어가는데, 굶주린 혼돈은 오스턴 왕국 남부를 제외한 거의 모든 영역을 통째로 집어삼킨 데다가 외부의 다른 영역들도 계속해서 점령해 나가고 있었다.
그런 만큼 부작용이 없을 수가 없었다.
[치안이 내려갑니다!]
[불만도가 올라갑니다!]
[……]
[오스턴 왕국 북부 반란군이 조직됩니다!]
[오스턴 왕국 기사단이 굶주린 혼돈에 저항합니다!]
[……]
[……]
굶주린 혼돈의 통치 방식은 길드 동맹 뺨을 후려칠 정도의 독재 통치였다.
길드 동맹도 세금을 세게 걷는 편이었지만, 굶주린 혼돈은 그보다 더 심했다.
계속해서 공물을 바치고 제물을 바쳐야 하는 것이다.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왕국 곳곳에 굶주린 혼돈의 힘을 상징하는 동상과 조각상, 관문들을 계속해서 제작해야 했다.
굶주린 혼돈의 무한한 군단들이 계속해서 저편에서 넘어올 수 있도록!
아무리 이해해 주려고 해도 지금 플레이어들은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다.
굶주린 혼돈 쪽에 들어간 건 기존 판온 체계가 뒤집어지면 위에 올라가서 잘 먹고 잘 살려고 들어간 거지, 이렇게 반복 노동만 하려고 들어간 게 아닌 것이다.
심지어 그런 상황에서 반 굶주린 혼돈 세력이 점점 늘어나고 있으니 초조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고생만 하다가 퀘스트가 실패라도 한다면?
생각만 해도 오싹했다.
‘안 그래도 지금 불만 많은 팬들이 많은데….’
‘실패하면 진짜 위험하다.’
이제까지 뉴욕 라이온즈를 응원해 줬던 팬들 중에는 ‘어떻게 굶주린 혼돈 쪽에 붙냐?’ 하며 항의하는 팬들도 많았다.
다행히 꽤 많은 팬들이 ‘이기면 그만이지 뭘 그런 것까지 따지냐’ 하고 반응해 주기는 했지만….
이 반응은 언제든지 뒤집어질 수 있다는 걸 선수들 본인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집어질 때는 쌓아놨던 업보까지 같이 날아올 것이다.
“모두들 걱정할 거 없습니다.”
“스미스!”
불안해하던 선수들은 문을 열고 나타난 사람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이 자식 굶주린 혼돈 퀘스트를 얼마나 깬 거야?’
‘장비가…?!’
선수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같은 뉴욕 라이온즈 선수고, 밖으로는 ‘스미스와 선수들의 참된 약속’ 같은 훈훈한 기사들을 내며 사진을 찍곤 했지만, 서로 경쟁심이 없을 수가 없었다.
뉴욕 라이온즈 선수 정도 되면 최상위권 랭커들인 만큼 스미스 혼자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게 배가 아플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만큼 굶주린 혼돈 퀘스트를 시작하면서 선수들은 남몰래 경쟁심을 키워왔었다.
굶주린 혼돈 퀘스트는 스미스와의 차이를 단번에 뒤집을 수 있는 강력한 퀘스트였으니까.
그런데 지금 스미스의 겉모습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했다.
저번에 입었던 장비들과는 전혀 다른 장비.
최상위권 랭커쯤 되면 장비를 바꾸는 것도 쉽지 않았다. 기존 장비보다 더 강한 장비를 찾는 게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장비가 스탯적으로는 강하다고 하더라도 스킬 부분을 맞추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계속 익숙해진 스킬 콤보를 버리고 새 스킬 콤보를 만드는 것도 꽤 어려운 일인 것이다.
그런데 장비들을 아예 바꿔버리다니.
그만큼 대단한 장비들을 얻은 게 분명했다.
“지금 숨을 고르느라 움직이지 못하는 게 답답하게 느껴질 겁니다.”
“그야 당연하지. 이번 주만 반란군 이벤트가 15번째 일어나고 있어!”
“저번에 고메즈가 NPC들 놓친 것 때문에 반란군들 질이 장난이 아니라니까.”
“그게 내 책임이라고? 네놈들이 눈뜬장님인 양 지나가는데 못 잡고 놓쳤으니까 그렇겠지!”
“탑 안에 첩자가 숨어 있는 걸 어떻게 잡아내라고! 애초에 탑 수색을 안 한 놈들 잘못이지!”
“자자. 모두들 진정하십시오.”
스미스가 선수들을 달랬다.
“지금 모두들 답답한 건 이해합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상황은 우리가 유리합니다. 굶주린 혼돈이 대륙의 대부분을 점령했고, 반대쪽은 고작해야 몇몇 도시들이 전부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초조해지는 건 저쪽일 겁니다. 눈치를 보던 플레이어들도 이쪽으로 넘어오기 시작할 테니 말입니다.”
“…….”
스미스의 말에는 확실히 설득력이 있었다.
궁전이 무너져서 당황했지만 잘 생각해 보면….
[오스턴 왕가의 대장간이 무너져 내립니다!]
[오스턴 왕가의 지하 포션 저장실이 무너져 내립니다!]
[오스턴 왕가의 찬란한 빛의 탑이 무너져…]
[……]
[……]
“이런 미친놈들이!!”
“작작 부숴먹어!!!”
“스미스! 이러고도 지금 시간이 갈수록 초조해지는 게 저쪽이라고!?”
스미스도 당황했는지 얼굴이 살짝 굳었다.
“예.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직접 가서 막을 생각이니까요.”
“네가…?”
“굶주린 혼돈 퀘스트를 받았습니다. 곧 관문을 타고 움직일 겁니다.”
그 말에 선수들은 서로 눈치를 봤다.
굶주린 혼돈 퀘스트가 나왔다면 거기에 참가시켜주는 건 스미스의 권한.
스미스에게 잘 보여야 했던 것이다.
그 모습에 스미스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계획대로 흘러가는군.’
이렇게 선수들을 다루는 건 태현이 하는 모습에서 보고 배운 것이었다.
당근과 채찍을 절묘하게 휘두르는 모습!
물론 태현이 봤다면 ‘내가 언제 그랬냐’ 하며 황당해했을 테지만….
* * *
-크아아악! 왜 이러시는 겁니까! 같은 악마들끼리!
-하찮은 놈이 어디서 감히! 너와 내가 같은 급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도시 안으로 침입한 악마 공작들은 거침없이 날뛰었다.
굶주린 혼돈의 주력이 없는 만큼 악마 공작들을 막을 자는 아무도 없었다.
떠돌이 악마들은 악마 공작들에게 덤볐다가 박살이 나거나, 그대로 머리를 박고 부하로 들어갔다.
-제발 부하로 삼아주십시오! 부하로!
-하하하! 네놈의 하찮은 충성을 받아주겠다. 목숨을 걸고 싸워봐라!
제국 배반자들은 태현이 제압했다.
-으아악! 아키서스 교단이다!!
-제발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제발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나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다.”
[제국 배반자 도적대장이 항복합니다!]
[제국 배반자 도적백부장이…]
[……]
[……]
태현이 아무 말도 안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키서스 교단이란 명성을 들으면 일단 배반자들은 항복부터 하고 봤다.
이렇게 파죽지세로 밀고 나감에도 불구하고 항복하지 않는 굶주린 혼돈의 하수인들도 있었다.
-건물을 점령하고 싸워라! 저 악마들에게 건물을 내주지 마라!
-흥! 건물 자체를 무너뜨려 버려라!
[오스턴 왕가의 지하 포션 저장실이 무너져 내립니다!]
[……]
악마 공작들이 화끈하게 부수는 것을 보며 태현은 감탄했다.
누가 악마 아니랄까 봐 정말 남의 도시에서 분탕 치는 재주는 뛰어나구나!
[굶주린 혼돈의 관문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지원군이다! 악마 공작들 집합!”
메시지창을 본 태현은 바로 반응했다.
아레네 시 상공에 관문이 나타난 것이다.
“…!”
그리고 그 관문에서 나타난 건 익숙한 얼굴이었다.
‘스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