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625화
고대 제국 수비대 전사들은 아키서스 사제들에게 다급하게 물었다.
제국이 곳곳에서 무너져 내리고 세상의 종말이 다가오는 것 같았지만 고대 제국의 사람들은 투쟁을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도 정신적으로 기댈 곳이 필요한 법.
그곳이 바로 아키서스 사제들이었다.
-뻔히 보이는 속임수겠지요. 제가 여러 악마들을 길러봐서 알지만, 악마들은 하급 악마나 상급 악마나 다 똑같이 거짓말을 합니다. 진심으로 뉘우치고 반성할 줄을 모르는 게 악마입니다.
-역시… 쓸데없는 속임수였군요. 쏴버려라!
[고대 제국의 공성 병기가 작동됩니다!]
[성스러운 축복을 받은 발리스타가 발사됩니다!]
[아키서스의 힘이 발리스타의 화살을 뒤틉니다!]
-!!!
대검공 에다오르는 깜짝 놀라서 거리를 벌렸다.
날아오는 공성 병기들의 기세가 생각보다 너무 살벌했던 것이다.
그러나 발사된 발리스타의 화살은 아키서스의 축복을 받아 묘하게 궤도를 틀더니 에다오르의 어깨를 그대로 뚫어버렸다.
-크악! 이 빌어먹을 제국 놈들아!! 네놈들을 살려주려고 하는데 이렇게 배은망덕하게 굴다니!!
-아주 헛소리를 뻔뻔하게 늘어놓는구나. 그래! 정말 살려주려고 한다면 뒤로 물러나라! 뒤로 물러나면 믿어주마!
-굶주린 혼돈의 하수인 놈이 너희 요새 안으로 숨어들었단 말이다. 왜 이해를 못 하는 거냐!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우리가 알아서 처리하겠다. 뒤로 물러나서 기다려라!
-맞는 말이오! 악마들을 믿어서는 안 되오!
변장하고 나타난 키도가오넬은 수비대를 부추겼다.
비록 변장했다지만 악마 공작들은 키도가오넬에게서 풍겨 나오는 사악한 굶주린 혼돈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저놈! 저놈이 굶주린 혼돈의 하수인이다! 저놈이 하수인이란 말이다! 멍청한 머저리 제국 놈들아!!
키도가오넬은 깜짝 놀란 척을 하며 양손을 내밀고 흔들었다.
-아니오! 아니오! 나는 제국 마탑 출신 마법사요! 요새를 돕기 위해서 왔는데 이런 음해를 받게 되다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우린 악마 공작들의 말을 믿고 제국 시민들을 멋대로 처벌하진 않을 테니까!
-고맙소! 고맙소! 역시 제국의 수비대요! 믿고 있었소!
-환장하겠네 진짜! 저 마법사 잡놈이!!
물론 키도가오넬의 그런 시치미는 악마 공작들을 더 혈압 오르게 만들었다.
진짜 붙잡히면 갈아마신다!
하지만 악마 공작들이 그럴수록 키도가오넬의 지위만 올라갈 뿐.
키도가오넬은 수비대에게 외쳤다.
-내가 마법을 써서 이 요새의 수비를 강화하겠소! 악마 공작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내려가서 마법진을 치고 오겠단 말이오!
-그건 지나치게 위험한 일이지 않습니까! 빨리 하십시오!
-…알겠소!
키도가오넬은 새삼 제국 수비대를 다시 욕했다.
사람이 위험한 일을 한다고 하면 말릴 생각을 해야지, 저렇게 쿨하게 받아들이다니.
그러니까 키도가오넬 같은 인재들이 제국을 떠나는 것 아닌가.
-잠깐!
그 때 악마 공작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나타났다.
악마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선량한 모습.
그건 구시온이었다.
-아키서스의 사제들이여! 들어다오! 나는 아키서스의 천사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사제님?
-진, 진짜 아키서스의 천사잖아?!
수비대는 무시하려고 했지만, 아키서스 교단의 사제들은 금세 구시온의 모습을 알아보았다.
저 대가리 세 개 달린 모습은 다른 교단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모습인 것이다.
-천사가 왜 악마 사이에?
-이 악마 공작 놈들!! 아키서스의 천사를 붙잡아서 가뒀구나! 비열하기 짝이 없는 놈들!
악마 공작들은 또 한 번 아무 잘못 없이 욕을 먹었다.
공작들이 발끈하기 전에 구시온이 다급히 말했다.
-나도 한때는 악마였다. 타락하고 오만한 벌레의 삶을 살았지! 하지만 아키서스의 신앙을 믿고 내가 진실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깨닫게 되었다. 날 믿어다오!
-…잠깐. 저거 음악공의 아들 아니냐?
-닮은 놈이겠지.
악마 공작들과 부하 악마들 사이에서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무리 봐도 구시렉과 닮게 생겼던 것이다.
구시렉은 표정 관리를 위해 전력을 다한 채 시선을 피했다.
들키면 구시렉은 앞으로 악마 공작들을 만날 때마다 저걸로 조롱당할 테니까!
키도가오넬은 예상 밖의 상황이 벌어지자 살짝 당황했지만, 머뭇거리지 않았다.
-사제님들! 속지 마시오! 악마 놈들의 속임수요! 나도 아키서스를 믿지만, 어떻게 악마가 천사가 된단 말이오!
-걱정 마시오. 마법사. 우리는 그런 것에 속지 않으니까!
-맞소! 맞소!
아키서스 사제들은 우르르 달려와서 키도가오넬을 위로해 줬다.
그 모습에 키도가오넬은 안심했다.
이제 여기 요새 놈들을 잘 이용해서 악마 공작들을 막아내면….
푹!
[아키서스 사제의 단검이 방어를 뚫고 들어옵니다!]
[아키서스의 독이…]
[……]
-…!?
키도가오넬은 경악했다.
가까이 붙은 아키서스 사제들이 싸늘한 표정으로 단검을 찔러대고 있었던 것이다.
-이게 뭔… 뭔 짓….
-감히 아키서스 님의 권능을 믿지 않다니!
-아키서스 님이라면 무릇 악마도 천사로 바꿀 수 있는데… 네놈은 아키서스를 믿는 자가 아니다!
사제들은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키도가오넬은 어이가 없었다.
그러니까 지금….
그냥 아키서스의 능력을 덜 믿었다고 칼로 찔렀단 말인가?
만약에 아니라면 어쩌려고…!
-…개… 같은 아키서스 놈들! 미리 멸망을 시켜버렸어야 했는데!
[굶주린 혼돈의 군단장, 키도가오넬이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키도가오넬은 단검을 뽑아 던지고 숨겨놨던 힘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 모습에 사제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외쳤다.
-역시나! 이 굶주린 혼돈의 하수인 놈! 시커먼 속셈을 드러냈구나!
-그럴 줄 알았다! 아키서스 님을 안 믿는 놈들은 거의 90% 확률로 첩자였지!
키도가오넬은 이를 갈며 욕했다.
-정신 나간 교단 놈들 같으니… 네놈들을 안 믿는다고 단검으로 찌른다는 게 말이나 되는 짓이냐!
-닥쳐라! 굶주린 혼돈의 종놈아! 아키서스 사제님들은 이제까지 한 번도 첩자를 놓친 적이 없으시다!
-다 죽였으니까 없는 거겠지, 정신 나간 놈들!
굶주린 혼돈도 그렇게 이성적인 곳은 아니었지만 키도가오넬이 보기에도 아키서스 교단은 좀 많이 미친놈들이었다.
일단 첩자 같으면 찌르고 숨통을 끊어 놓으니까 무조건 첩자가 되는 것 아닌가!
시체는 변명을 하지 못했으니까.
[아키서스 사제들이 생명력을 소진해서 주문을…]
-저 잡놈을 끌어내려서 갈아 마셔버려라!
성벽 앞에서는 아키서스 사제들과 수비대 전사들이.
성벽 뒤에서는 제대로 분노한 악마 공작들이.
키도가오넬은 상황이 그리 여의치 않다는 걸 인정했다.
-좋다. 좋아! 이 짜증 나는 놈들… 얌전히 있었으면 몇 명은 목숨을 부지했을 텐데! 이렇게 된 이상 아무도 이 요새에서 빠져나가지 못할 거다. 악마 놈들! 네놈들은 붙잡아서 새 노예로 만들어주겠다!
눈부신 빛과 함께 요새의 지면에서 마력이 솟구쳐 올라오기 시작했다.
거대한 마법진이 생겨나더니 안에 있던 공방이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타락자들을 꺼내면 피해가 컸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여기 모인 놈들을 모조리 처리하기 위해서라면 쓸 수밖에!
키도가오넬은 차라리 잘 됐다 싶었다.
타락자들이 많이 파괴되겠지만 악마 공자들이 이끄는 군대라면 더 강한 부하들을 만들 수 있을 테니까!
-놈이 부하들을 꺼낸다. 조심해라!
-굶주린 혼돈의 힘을 받는 놈들이다!
악마 공작들도 키도가오넬의 외침에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경계했다.
기껏 마법사 한 명이라고 하기에는, 굶주린 혼돈의 힘이 너무 강력했던 것이다.
쿠구구구구궁-
굉음과 함께 요새 위로 솟구친 공방에서 타락자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
악마 공작 중 하나인 에슬라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타락자들 사이에 익숙한 얼굴이 있지 않았나?
* * *
쿠구구구구궁-
[공방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요새 위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키도가오넬이 타락자들을 부릅니다. 타락자들이 깨어납니다!]
“?!”
태현은 순간 들켰나 싶었다.
열심히 타락자들 치우고 바꿔치기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공방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순식간에 위로 솟구친 공방.
정신을 차리자 태현은 어느새 요새 위에 떠 있었다.
-타락자들은 일어나라!
파지지지직!
마력이 스파크를 튀기며 모여들기 시작했다.
[대마법사 키도가오넬이 주변의 마력을 전부 빨아들이기 시작합니다!]
[마법 스킬들의 실패 확률이 올라갑니다!]
[마법 스킬들의 위력이 약해집니다!]
키도가오넬의 힘은 놀라웠다.
굶주린 혼돈의 힘이 있다지만 이 인근의 마력을 모두 한 곳에 모아버린 것이다.
-일어나라!
콰아아아앙!
그리고 그 마력들은 공방에 있는 타락자들에게 하나씩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다 완성되지 않은 타락자들을 마력으로 강제 각성을 시킨 것이다.
타락자들이 불완전해지고 빠르게 망가지겠지만 키도가오넬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눈앞의 적들부터 처리한다!
-크르르….
-굶주린 혼돈을… 섬긴다…!
쿵-
번쩍 눈을 뜬 타락자들이 하나둘씩 일어나더니 악마들 앞에 오만하게 착지했다.
-조심해라, 굶주린 혼돈의 하수인인 만큼 결코 약하지 않을 거다.
악마 공작들은 그 모습에 부하들에게 경고했다.
저 짜증 나는 마법사 놈이 저럴 정도라면 분명 믿는 구석이 있으리라!
-알겠습니다. 주인님!
악마들은 사납게 달려들었다.
타락자들도 그에 맞서 흐느적거리며 달려들었다.
악마 공작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과연 타락자들은 어떤 강력한 힘을 보여줄 것인가?
퍽!
-?
-????
타락자들은 종이인형처럼 힘없이 날아갔다.
악마들은 자신들이 발톱을 휘둘러 놓고서도 당황스러워했다.
어? 뭐지?
-방심하지 마라! 멍청한 놈들아, 함정이다!
악마 공작들은 짜증스럽다는 듯이 부하들을 타박했다.
아직까지도 굶주린 혼돈의 수법을 모르다니.
저렇게 그냥 날아가는 건 분명 수상한 저주를 발동시키기 위한 함정이리라.
-과연…!
-다가가지 마라! 조심해라!
악마들은 타락자들을 날려놓고서도 다가가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 사이 타락자들이 느릿느릿하게 다시 일어섰다.
-우리가 속을 줄 알았느냐!
-하하! 멍청한 놈들! 악마를 속이려고 하다니!
퍽!
다시 충돌.
타락자들은 또 종이인형처럼 힘없이 날아갔다.
-…??
-?????
* * *
-…뭐, 뭐야?
악마 공작들도 술렁거리고 있었지만 가장 놀란 건 역시 키도가오넬 본인이었다.
타락자들이 이상할 정도로 약했던 것이다.
완벽한 비전으로 만든 타락자들이었는데 저렇게 약할 리가 없었다.
아무리 완성이 덜 됐다지만 절대….
-노예 놈들! 대체 뭘 잘못 넣은 거냐!
-잘 모르겠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노예들은 흐리멍텅한 눈빛으로 말했다. 키도가오넬은 울화통이 터진다는 듯이 외쳤다.
-머저리들! 네놈들은 모두 머저리다! 뭘 했는지도 모르다니 정말… 아! 이리 와라! 수석 노예!
키도가오넬은 태현을 불렀다.
그나마 지금 상황을 설명해 줄 수 있는 건 저 똘똘한 노예밖에 없어보였다.
-타락자 놈들이 왜 저러는 거냐! 노예 놈들이 뭘 잘못 넣은 것이냐?
“아닙니다!”
-뭐라고?
“제가 감히 말씀드리자면, 불어넣으신 마력의 양이 부족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덜 각성된 게 아닌지….”
[최고급 화술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
[……]
[설득에 성공합니다!]
[화술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원래라면 태현의 말을 들었을 키도가오넬이 아니었다.
자신보다 훨씬 더 마법에 약한 노예의 말을 듣기에 키도가오넬은 너무 오만한 마법사였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너무나도 급박했다.
게다가 태현의 목소리는 이상하게 키도가오넬을 뒤흔들어놓았다.
자신도 모르게 홀린 것처럼 납득해 버린 키도가오넬.
키도가오넬은 바로 마력을 더 불어넣기 위해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푹!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그 순간 등 뒤에서 살벌한 기습이 들어왔다. 키도가오넬은 본능적으로 외쳤다.
-크아악! 아키서스 사제 놈들!!
태현은 깜짝 놀랐다.
뭐지!?
어떻게 정체를 바로 맞춘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