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621화
악마 공작들은 왜곡된 차원문을 통과한 탓에 아직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냉정하게 생각했다면 일단 뒤에 신전 비스무리한 건물이 왜 있는지부터 확인하고, 저 건물이 어느 교단 건물인지 확인부터 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많이 익숙한 문양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짐승들을 짓밟아라!
-굶주린 혼돈 놈. 네놈이 감히 악마 공작을 능멸하고도 무사할 줄 알았느냐? 네놈은 잘못된 판단을 내렸다!
‘이 자식들 만신전 표식 앞에서는 모기향 앞 모기처럼 빌빌대놓고 센 척은 더럽게 하는군.’
태현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악마 공작들을 쳐다보았다.
이렇게 잘 싸울 줄 알면 저번에도 그렇게 싸우지 그랬냐?
그런 태현의 속마음은 모른 채 악마 공작들은 드디어 자신의 힘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대검공, 에다오르가 포효합니다!]
[전사들의 전투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모든 검술 스킬들의 공격 속도가 올라갑니다!]
[모든 검술 스킬들의 쿨타임이 줄어듭니다!]
[근접전에서 상대의 공격이 빗나갈 확률이…]
-하찮은 짐승 놈들. 얼어붙어라!
[빙결공, 푸르네우스가 빙하를 낙하시킵니다!]
[얼음조각의 파편들이 굶주린 혼돈의 짐승들을 타격합니다!]
[……]
[……]
[……]
두 악마 공작뿐만 아니라 각자 맡은 위치에서 전력을 뽐내며 야수 군단들을 쓸어버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납게 덤비던 짐승들이 악마 공작들의 공격에 기가 죽어서 깨갱대며 도망쳤다.
[야수 군단의 사기가 크게 떨어집니다!]
[야수 군단의 사기가 크게 떨어집니다!]
[야수 군단이 도망칩니다!!]
-누구십니까??
뒤늦게 뒤에 있던 신전 폐허에서 아키서스 교단의 성기사들이 뛰쳐나왔다.
성기사들도 놀랐지만 태현도 놀랐다.
‘어? 신전 부서진 거 아니었어?’
겉모습만 봤을 때는 거의 폐허에 가까운 신전이라서, 안에 NPC들이 남아 있을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신전이 부서진 게 아니었나? 왜 안에 있는 거지?”
-신전이 부서졌다고 해서 도망치는 건 아키서스 교단의 신도가 아닙니다!
“…!”
태현은 깊은 감동을 받았다.
아니…!
과거의 아키서스 교단 NPC들은 다 왜 이렇게 진국이지??
‘진짜 억울할 정도군!’
“적이 신전을 부쉈는데도 버티다니, 훌륭하다!”
-예? 적이 부순 게 아니라 저희가 부쉈습니다만.
“???”
-매복하고 있다가, 신성 마법으로 신전 건물과 함께 적을 날려 버렸습니다.
“…….”
[카르바노그가 이건 과거나 미래나 똑같다고 말합니다.]
황당하긴 했지만 생각해 보면 할 수 있는 전략이긴 했다.
태현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나는 아키서스의 후계자다! 너희를 구하러 왔다!”
[직업, 아키서스의 화신입니다!]
[아키서스 교단의 교황입니다!]
[신성력이 매우 높습니다!]
[칭호…]
[……]
[……]
[퀘스트…]
[……]
[……]
[고대 제국 전역에 남은 아키서스 교단의 사기가 크게 오릅니다!]
[살아남은 아키서스 교단의 NPC들이 이쪽으로 모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아키서스의 후계자께서 도착하셨다!!
성기사들의 함성에, 싸우고 있던 악마 공작들이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지?
-뭐하고 있는 거냐, 아키서스?
“아무것도 아니다! 싸움에 집중해라! 저기 야수들 도망치고 있지 않나!”
[화술 스킬이 매우 높…]
[……]
[설득에 성공합니다!]
악마 공작들은 뭔가 찜찜했지만 고개를 돌리고 야수 군단을 섬멸하는 것에 집중했다.
시간을 번 태현은 아키서스 교단 NPC들에게 물었다.
“지금 상황이 어떻지?”
-굶주린 혼돈의 부하 놈들이 갑자기 이 주변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원래 이 주변은 굶주린 혼돈의 하수인들이 없던 곳이었는데….
<과거로부터의 습격-굶주린 혼돈 토벌 퀘스트>
고대 제국은 수많은 적들로 인해 멸망했다.
원래 오스턴 왕국에서는 악마들이 주로 나타났었지만, 갑자기 굶주린 혼돈의 하수인들이 새로 나타나 주변을 파괴하고 있다.
이는 미래에서 온 굶주린 혼돈의 하수인들이 대륙 침략을 위해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게 분명하다!
아키서스 교단의 남은 NPC들을 지키고 굶주린 혼돈의 하수인들이 하는 작업을 막아라!
보상: ?, ???
‘오스턴 왕국 지역이었나!’
태현은 퀘스트창을 보고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원래 고대 제국은 멸망할 때 하나의 이유만으로 멸망하지 않았다.
굶주린 혼돈+악마 공작들+기타 등등 잡세력들 모두 총동원되어서 사방에서 날뛴 탓에 멸망한 것이다.
여기는 원래 악마들이 날뛰던 곳인데, 미래에서 온 굶주린 혼돈의 하수인들이 새로 찾아와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카르바노그가 그러면 악마 공작들은 어떻게 되는 거냐고 당황해합니다.]
‘…그것도 그렇군.’
태현은 골치가 아파졌다.
원래 역사에서는 악마 공작들은 굶주린 혼돈과 손을 잡지는 않았지만 서로 방해하지도 않았다.
고대 제국을 멸망시킨다는 목적은 같았던 것이다.
암묵적으로 서로 구역 나눠서 ‘여기는 너가 태워라’ ‘그래 그럼 여기는 내가 가진다?’ 하며 오순도순 멸망을 진행시킨 이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굶주린 혼돈이 대륙을 전부 삼키기 위해 과거까지 부하를 보낸 상황.
악마 공작들 입장에서는 막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버려 둘 수도 없는 환장할 상황이 찾아온 것이다.
[카르바노그가 어떻게 악마 공작들을 속일 거냐고 묻습니다.]
‘속이는 게 전제야? 속일 생각이긴 했지만….’
고민하던 태현은 빠르게 결론을 내렸다.
‘…아니, 이번에는 진심으로 간다.’
[카르바노그가 재미없는 농담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진짜야.’
태현이 진심으로 가려는 이유는 간단했다.
때로는 진실이 거짓말보다 효과적이었던 것이다.
악마 공작들한테 사실을 말해준다면?
악마 공작들은 자기 손으로 고대 제국을 지켜주는 꼴이 되는 게 매우매우 싫긴 하겠지만, 그래도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을 것이다.
안 그러면 굶주린 혼돈이 착실하게 작업을 해버리고 미래에서 대륙을 점령해 버릴 테니까.
자기들이 불태웠던 고대 제국을 막아주는 게 매우 배가 아프겠지만….
어쩌겠는가.
세상에는 원래 싫어도 해야 할 일이 있는 법이었다.
그리고 악마 공작들도 그걸 알 때가 됐다.
‘솔직히 생각해 보면 자기들이 부순 거 자기들이 막는 거니까 자업자득이지.’
* * *
[악마 공작들이 극도로 괴로워합니다!]
[설득에 성공합니다!]
[화술 스킬이 오릅니다!]
뒤늦게 설명을 들은 악마 공작들은 처음에는 부정했다.
-말도 안 돼! 굶주린 혼돈이 그렇게까지 하고 있다고!? 놈도 혼자서는 고대 제국을 멸망시키지 못했을 거다. 그런 놈이 감히 과거로 돌아가서 수작을 부릴 리가 없단 말이다!
다음에는 분노했다.
-이게 다 음악공 네놈이 차원문 하나 제대로 열지 못해서잖나!
-어디서 남탓을 하는 거냐! 오히려 이 과거로 오지 않았다면 굶주린 혼돈 놈이 펼치는 음모에 꼼짝없이 당했을 거다!
그 다음은 어떻게든 협상하려고 했다.
-아키서스. 새로 나타난 굶주린 혼돈 놈들은 처리하겠다. 하지만 고대 제국도 같이 파괴하자. 이래야 공평하지 않나? 과거를 바꾸는 건 위험한….
-그게 말이 되는 소리 같나? 굶주린 혼돈 놈들이 사라지고 나면, 굶주린 혼돈 놈들이 파괴했던 곳은 누가 파괴하겠나!
어떻게든 협상하려고 했던 악마 공작들은 길이 다 막히자 급격하게 우울해졌다.
-이 모든 일의 시작이 대체 어디서 잘못되었단 말인가?
-아키서스와 엮인 불운인가?
‘이 자식들이 남탓하고 있네.’
그리고 마지막에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
-굶주린 혼돈… 개자식! 비열한 배신자 자식. 과거까지 건드려서 대륙을 점령하려고 해??
-네놈은 상도덕이란 게 없는 놈이다.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
악마 공작들은 극도로 분노했다.
악마 공작들의 힘이 없었다면 굶주린 혼돈도 고대 제국을 멸망시키지 못했을 텐데, 그런 일은 싹 잊어버리고 이기적으로 굴다니.
절대 용서할 수 없다!
* * *
“저, 이세연 선수.”
쑤닝은 공손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좀 풀어주실 수 없겠습니까?”
간부들은 쑤닝의 친절하고 부드러운 태도에 놀랐다.
투자자들 앞에서나 볼 수 있는 매우 희귀한 모습!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아직까지 포로 상태였던 것이다.
이세연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세연 선수! 기회라도 좀 주십시오!”
“아, 싫으시다잖아!”
“질척거리지 말고 꺼져!”
유성 게임단 선수들이 길드 동맹 간부들을 구박했다.
현재 이세연이 이끄는 대형 파티는 오스턴 왕국의 동쪽을 향해 진격하고 있었다.
그 인원에 포함된 게 바로 도중에 붙잡힌 길드 동맹 간부들과 쑤닝.
쑤닝은 원정대에 도착만 하면 기존 길드 동맹 길드원들이 나서서 쑤닝을 도와줄 줄 알았다.
-기다리고 있었겠지! 너희들의 길마가 여기 왔다!
-어… 어?? 쑤닝님. 게임 안 접으셨습니까?
-공안에 끌려가서 죽은 줄 알았는데?
-여기는 왜 온 거야?
-잡혀서 온 거 아닌가…?
그러나 생각보다 길드원들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애초에 쑤닝을 기다리려고 원정대에 참가한 게 아니라, 길드 동맹 망해서 자기 살 길 찾겠다고 참가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쑤닝(그것도 포로 상태로)의 편을 들어줄 리 없었다.
결국 쑤닝과 길드 동맹 간부들은 그 포로 상태 그대로 끌려가게 됐다.
“이세연 선수! 이거 너무한 거 아닙니까! 쑤닝 님이 그래도 한 길드의 길마였는데 그렇게 의심을 하다니!”
“야. 로그아웃시켜버리기 전에 닥쳐. 입 열어놨더니 자꾸 떠드네.”
“그냥 로그아웃시키죠?”
유성 게임단 선수들은 슬슬 귀찮아졌다.
솔직히 굶주린 혼돈과 싸우는 것도 힘든 일인데 저렇게 신경 쓰이는 포로들 데리고 다니는 것도….
“안 돼. 나중에 김태현 만나면 넘겨야 하니까.”
“언니는 정말 너무 친절한 것 같아요.”
김현아는 감동한 표정으로 말했다.
동료도 아닌 사람을 위해 저렇게 친절을 베풀어주다니.
“…?”
“???”
듣고 있던 제카스는 뭔가 이상해서 지적하려다가 멈칫했다.
여기서 괜히 떠들어서 어그로 끌어봤자 처지만 더 곤란해질 것 같았다.
“크윽… 정말 도와주려고 했는데 이런 취급을 받다니…!”
쑤닝은 분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정말 사악한 속셈을 갖고 있었다면 억울하지나 않았을 것이다.
스미스를 거꾸러뜨리기 위해 이제까지 묵은 원한을 잊고 협조해 주겠다는데 그걸 또 의심하다니!
“길마님. 시간이 해결해 줄 겁니다. 앨콧이 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앨콧이 지금 설득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도동수나 제카스, 길드 동맹 간부들과 달리 한 명 풀려난 사람이 있었다.
그건 바로 앨콧이었다.
유성 게임단 선수들과 안면이 있는데다가, 이세연은 앨콧이 첩자라는 걸 태현한테 들은 적이 있어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앨콧! 힘내라!’
‘네 능력이라면 저 꽉 막힌 놈들을 설득할 수 있을 거다!’
“아. 더럽게 부담되네 진짜….”
앨콧이 그 시선을 못 느낄 리 없었다.
진짜 부담된다!
이세연은 옆에서 물었다.
“그래서 정말 스미스하고 같이 싸우려고 온 거라고?”
“맞아. 자기들 말로는 그렇던데.”
“길드 동맹은 혹시… 자존심이 없어?”
“…….”
앨콧은 할 말이 없긴 했다.
하긴 앨콧이 봐도 그렇게 태현한테 맞아 놓고 협력하겠다는 게 좀 이상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이게 그 밖에서 보면 이상하게 느껴지긴 하는데, 안에서 보면 그렇게 안 이상하거든?? 그 자존심의 문제라고 해야 하나….”
이세연은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는 거지’ 하는 눈빛으로 앨콧의 변명을 들었다.
“잠깐. 여기 원래 이런 요새가 있었나?”
“네?”
“앞.”
이세연은 손가락을 들어 앞을 가리켰다.
절벽 위에 자리 잡은, 고풍스러운 요새가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 지도에 없었는데요??”
[고대 제국 요새를 발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