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615화
잊혀진 악마왕의 지팡이.
마계의 악마들이라면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는 아이템이었다.
지금은 서로 분열되어서 악마 공작들이 각자 통치하고 있었지만….
악마 공작들이 기억하기 힘들 정도로 까마득한 먼 옛날에는 한 명의 절대자가 마계를 지배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 절대자의 상징이 바로 잊혀진 악마왕의 지팡이!
한마디로 마계의 왕이 될 수 있는 자격이 담겨 있는 아이템이나 마찬가지였다.
[최고급 화술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잊혀진 악마왕의 지팡이를 갖고 있다고 악마 공작 구시렉을 속이는 데 성공했습니다.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잊혀진…]
[……]
[……]
[……]
그 모스락도 태현의 발목을 차마 잡지 못할 정도로 압도적인 이름값.
대회의의 자리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그… 그게 정말인가?
악마 공작 중 한 명이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네가 악마왕의 지팡이를 갖고 있다고? 어떻게?
“내가 누구냐. 아키서스의 후계자 아니냐?”
-과연….
[카르바노그가 지금 그걸로 납득하면 어떡하냐고 황당해합니다.]
카르바노그는 황당해했지만, 악마 공작들은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아키서스 그 새끼라면 악마왕의 지팡이를 갖고 있었어도 이상하지 않다!
빙결공 푸르네우스처럼 먼 예전부터 태현에게 잊혀진 악마왕의 지팡이로 낚시를 당했거나, 아니면 대검공 에다오르처럼 최근에 새로 낚시를 당한 악마 공작들은 태현의 말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퍼즐 맞추듯이 모든 단서가 맞아 떨어진 것이다.
설마 했는데 역시 저놈이 악마왕의 지팡이를 손에 갖고 있었구나!
‘아차.’
모스락은 악마왕의 지팡이에 정신이 팔려서 자신이 실수를 저질렀다는 걸 깨달았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저 아키서스의 후계자 놈이 이 회의를 마음대로 주무를 것 아닌가.
어떻게든 분위기를 다시 갖고 와야 했다.
-잠깐. 아키서스. 악마왕의 지팡이를 갖고 있다면 그걸 볼 수도 있겠지. 그걸 보여줘라!
모스락은 일단 트집을 잡아 볼 생각으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태현도 만만치 않았다.
애초에 있지도 않은 걸 보여줄 수는 없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여기 있는 악마 공작들이 몇 명인데 내가 지팡이를 꺼낼 거 같나? 지팡이는 나만이 아는 안전한 곳에 있다. 모든 일이 끝나기 전에는 절대 보여줄 수 없다.”
-으음!
-크으음….
“잘 생각해 봐라. 여기 있는 악마 공작들이 몇 명인데. 내가 거짓말이나 속임수를 쓸 것 같냐! 만약 그렇게 한다면 모든 악마 공작들이 적이 되는 셈인데!”
-과연 그렇지.
-아무리 아키서스의 후계자라 하더라도 그런 짓은 하지 않을 거야.
악마 공작들도 논리가 납득이 갔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카르바노그가 일단 해낸 건 좋은데 뒷감당 진짜 어떻게 할 거냐고 진지하게 걱정합니다.]
‘…뒷일은 나중에 생각하자.’
[……]
카르바노그가 할 말을 잃었지만 태현도 어쩔 수 없었다.
일단 지금 퀘스트는 깨고 봐야 할 것 아닌가.
[악마 공작들이 당신의 말에 납득하고 동의를 표합니다!]
[대회의가 끝납니다!]
[당신이 일시적으로 명령권을 갖습니다. 하지만 조심하십시오! 불합리한 명령을 내릴수록 악마 공작들의 불만도는 빠르게 솟구칠 것입니다!]
[악마 공작들의 불만도가 높아질 경우 이탈할 수 있습니다!]
[……]
[……]
[……]
[악마 공작들이 약속한 보상이 없다는 걸 알게 될 경우, 당신의 이름은 마계에서 영원히 저주 받게 될 것입니다.]
[악마 공작들을 속이는 것은 매우 위험한 짓입니다! 다시 한번 고민해 보십시오!]
‘메시지창이 이상하게 겁을 주는 것 같은데….’
[레벨 업 하셨습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화술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채찍이 있으면 당근도 있는 법.
태현은 레벨 280을 달성했다.
‘퀘스트 난이도가 살벌한 만큼 빨리 오르긴 해.’
이걸 좋아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는 고민이 되긴 했지만!
그리고 화술 스킬도 크게 올랐다.
최고급 화술 스킬 6 (88%).
최고급 화술 스킬 7이 머지않았다는 건 태현에게 많은 기대를 하게 해주었다.
최고급 검술 스킬은 아직 4.
최고급 마법 스킬은 무려 1.
가장 높은 최고급 기계공학 스킬이 7인 만큼, 화술 스킬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었다.
‘기계공학은 당장 전투에 바로 도움이 되진 않고, 검술 스킬이 당장 도움이 되는 스킬인데 아직 4밖에 안 되니… 화술이라도 올라야지.’
[아키서스의 화신 직업 퀘스트를 클리어했습니다.]
[<아키서스 축복의 룰렛>이 발동합니다.]
‘아. 이거 직업 퀘스트였지.’
태현은 그제야 마계 대회의 퀘스트가 아키서스의 화신 직업 퀘스트였다는 걸 떠올렸다.
하도 안 어울려서 순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계 대회의하고 아키서스의 화신은 상관이 없는 것 같지만….’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해냈습니다. 룰렛에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퀘스트의 난이도가 높았습니다. 룰렛에 추가…]
[……]
[……]
<아키서스 축복의 룰렛>.
태현이 직업 퀘스트를 깰 때마다 돌아가면서 기간제 축복을 부여해 주는 권능 스킬!
온갖 제작과 불합리에 시달리면서 확률에 초연해진 태현이라 하더라도, 이런 스킬을 마주하게 되면 기도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제발. 쓸 만해야 한다.’
태현은 오랜만에 기도를 올렸다.
마계 대회의 퀘스트가 어려웠던 만큼, 룰렛에 보너스가 붙었다.
그렇다면….
조금 기도를 해봐도 되지 않을까?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자. 일단 다이아몬드색 칸은 불가능에 가깝고. 황금색 칸… 정말 양보해서 은색 칸도 참아줄 수 있긴 하지.’
그보다 낮은 청동색 칸은 안 됐다. 그건 너무 보상이 낮았다.
최소한 은색 이상.
저번에 돌렸을 때 기억이 맞다면, 다이아몬드 색 칸에는 <전설 등급 검술 스킬>이 있었다.
하지만 태현은 그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칸이 너무 좁았던 것이다.
‘은색이라도 쓸 만한 것들은 있었어. 개인적으로 <스킬 쿨타임 감소>나 <권능 강화> 같은 것들이 좋겠는데.’
황금색이 더 일반적으로 좋기는 했지만, 은색이라고 해서 꼭 나쁜 건 아니었다.
스킬이란 건 결국 누가 어떻게 쓰느냐도 중요하기 마련.
‘황금색에서는… <스킬 레벨 보너스>나 <권능 일시 개방> 쓸 만하겠군. <팔 추가>는 대체 어떤 새끼가….’
솔직히 <팔 추가>는 아니었다.
그거 할 바에는 그냥 은색 칸을 뽑고 말지!
촤르르르륵-
룰렛이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태현과 카르바노그는 숨을 참고 결과를 기다렸다.
과연…?
‘?’
방금 다이아몬드 칸에 멈추지 않….
[<아키서스 축복의 룰렛>이 결정됩니다!]
[<전설 등급 검술 스킬> 버프를 얻습니다!]
[일시적으로 <전설 등급 검술>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발동 후 30분이 지나면 버프가 사라집니다.]
“…….”
[……]
태현과 카르바노그는 얼어붙었다.
제대로….
제대로 본 게 맞나?
지금 제대로 본 게 맞나???
‘아… 아키서스가 이런 선물을 준다고?’
태현은 몇 번이고 확인해 봤지만, 아무리 봐도 봐도 전설 검술 스킬이 맞았다.
시간 제한이 있긴 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전설인데!!
‘정말 오랜만에… 아키서스의 화신으로 강제 전직한 보람을 느끼는군.’
[악마 공작들이 잊혀진 악마왕의 지팡이를 찾아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거짓말이 들키지 않도록 다시 한번 주의하십시오!]
‘…까짓거 할 수 있겠지.’
전설 등급 검술 스킬을 손에 넣은 태현은 보기 드물게 낙관론자가 되어 있었다.
모든 일이 잘 풀릴 것만 같다!
* * *
-가장 먼저 죽여야 할 놈은 갈랄타와 놈이 데리고 온 야만족 놈들이다.
-감히 마계의 악마들을 넘보다니. 야만족 놈들이 미쳐버린 것인가?
-당장에라도 추격해서 쓸어버리도록 하지. 다들 가만히 있어도 좋다. 내가 선봉을 맡도록 할 테니.
-선심 쓰듯이 이야기 할 거 없네. 내가 맡을 테니까.
모처럼 악마 공작들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일단 지금 상대 자체가 그렇게 위험해 보이지도 않았다.
한 번 깨지고 도망간 놈들.
패잔병이나 마찬가지인 놈들이었다.
게다가 악마왕의 지팡이를 손에 넣으려면 다른 악마 공작 놈들이 발목을 잡지 못할 만큼의 공적치가 필요했다.
이럴 때 미리미리 나서야 좋다!
-아키서스. 네가 중재해라. 누가 선봉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하나?
-잘 생각해라. 아키서스. 나는….
-아키서스. 너와 가장 깊은 악연을 가진 게 누구냐?
‘미친놈이 뭘 자랑하는 거야?’
태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대답했다.
애초에 이미 결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안하지만 정해 놓은 게 있다.”
-그게 뭐지? 역시 나인가?
“다 같이 동시에 공격해라. 그게 공평하겠지.”
-…….
-…….
[악마 공작들이 실망합니다!]
[주의하십시오. 악마 공작들이 계속해서 실망할수록…]
‘아니 이 새끼들은 공평하게 해줘도 난리네.’
악마들이 괜히 악마가 아니었다.
자기 편 안 들어주면 무조건 삐져서 툴툴거리는 종족!
태현은 새삼 옛날 아키서스가 악마들을 어떻게 꼬드겼는지 신기하게 느껴졌다.
정말 귀찮은 종족들인데….
-그렇다면 움직이겠다!
-에다오르 놈에게 지지 마라. 놈을 쫓아라!
-흥. 느려 터진 놈들 같으니. 다 비켜라!
악마 공작들이 각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빙결공 푸르네우스는 아이스 드래곤을 불러내더니 눈보라를 흩뿌리며 높게 날아갔다.
대검공 에다오르는 괴수들이 이끄는 전차를 타고 주변을 부수며 전진했다.
다른 악마 공작들도 제각각 자신만의 탈것을 타고 움직였다.
그 모습은 실로 위풍당당 자체였다.
태현은 새삼 이 전력이 얼마나 대단한 전력인지 깨달았다.
판온에서 이런 전력이 모인 적이 있었을까?
악마 공작들은 보스 몬스터 중의 보스 몬스터.
그런 보스 몬스터들이 연합해서 동시에 진군하고 있는 것이다.
어지간한 드래곤들도 꼬리를 내리고 도망을 칠 정도로 살벌한 전진이었다.
‘그리고 이제 저게 나중에 날 죽이러 올 수도 있는 거지.’
[카르바노그가 우울해합니다.]
‘괜찮을 거야. 카르바노그.’
태현은 검을 잡았다.
나중에 정말 크게 다칠 수 있어도 일단은 지금 퀘스트를 진행해야 했다.
넘어온 굶주린 혼돈을 막는다!
* * *
“…너희 악마 공작 맞냐??!”
태현은 경악한 표정으로 악마 공작들을 쳐다보았다.
놀랍게도 악마 공작들은 밀리고 있었다. 힘에 부친 표정으로 물러서던 악마 공작들은 수치스러운 얼굴로 시선을 피했다.
“대답해라! 뭐하는 거냐 이게!?”
-놈이… 비열한 수단을 갖고 왔다. 악마의 힘을 빨아들이고 있어!
갈랄타와 야만족 전사들이 임시로 만든 요새.
얼기설기 쌓아 올린 외벽에, 정체 모를 짐승 가죽과 진흙을 발라 굳힌 겉모습.
누가 봐도 순식간에 무너뜨릴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다.
그러나 요새 안에는 갈랄타와 야만족 전사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마계 심해의 괴물, 레비아탄이 포효합니다.]
[레비아탄의 첫 번째 가죽이 회복됩니다!]
[마계 심해의 괴물, 레비아탄은 수십 개의 살아 움직이는 가죽 갑옷을 덮고 있는 괴물입니다. 이 가죽들을 파괴하기 전에는 놈에게 데미지를 줄 수 없습니다!]
악마 공작들도 두려워하는 마계의 초대형 괴수.
레비아탄이 굶주린 혼돈의 힘을 받고 요새에서 뛰쳐나온 것이다.
[레비아탄이 포효합니다!]
[모든 악마들의 힘이 약해집니다!]
예상과 다르다는 건 태현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건 심했다.
악마 공작들이 모여서 마계 괴수 하나 못 상대하다니.
“더 공격해라! 지금 저놈 하나 못 잡으면 너희들은 어디 가서 공작이라고 하지 마! 그냥 노예라고 해!”
-…….
-…….
악마 공작들은 정말 할 말이 많았지만 그럴 정신이 없었다.
[카르바노그가 레비아탄의 위를 보라고 말합니다!]
그때 무언가 눈치를 챈 카르바노그가 비명을 질렀다.
아무리 저 괴수가 계약을 했다지만, 악마 공작들이 그냥 이렇게 무기력하게 밀릴 리가 없었던 것이다.
레비아탄 위에는 굶주린 혼돈이 흐릿한 안개의 형태로 앉아 있었다.
마치 레비아탄을 조종하는 기사 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