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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1614화 (1,613/1,826)

§ 나는 될놈이다 1614화

원래 멍석을 깔아주면 하던 일도 하기 힘들어지기 마련.

최강지존무쌍 소속 길드원들은 자랑할 타이밍을 놓치고 묵묵하게 전진하기 시작했다.

어쩌겠는가.

자랑할 타이밍은 놓쳤어도 퀘스트는 깨야지….

“???”

“뭐, 뭐야??? 저 오크들은?!”

별 생각 없이 나아가던 파티장들은 뒤에서 몰려오는 오크들을 보고 기겁을 했다.

너무 많아서 처음에는 함정이거나 몬스터인 줄 착각할 정도였다.

“도와주러 온 사람들이라는데요? 지금 방송 보니까 우르크 지역 쪽 길드들이 다 모여서 왔나 봐요.”

“와… 인원이 장난이 아닌데. 오크 NPC들 고용하기가 쉽다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파티장들은 혀를 내둘렀다.

보통 우르크 지역에 가지 않으면, 레벨 높은 플레이어들도 오크 종족의 저력을 눈치채지 못했다.

판온 종족 중에서 가장 빠르게 늘어나는 물량의 종족.

영지 관리하는 입장에서는 테크를 높게 가기는 힘들어도 넓은 땅 곳곳에 뿌리를 내리기는 수월했다.

평소에는 ‘저긴 뭐 도시도 없고 대부분이 작은 마을이네? 발전이 너무 느리지 않나?’ 싶어도 이런 상황이 벌어지자 저력이 드러났다.

그 많고 많던 마을의 NPC들을 총동원하자 어마어마한 물량이 동원된 것이다.

최상윤과 정수혁도 놀란 눈으로 오크들을 쳐다보았다.

“이 인원들이 다 어디서 나온 거야?”

“그… 그러게 말입니다.”

이다비는 원정대를 크게 3갈래로 나누었다.

이세연의 언데드 대군세가 중심이 되어서 진격할 동부 원정대.

이다비와 여러 교단 대주교들이 중심이 되어서 진격할 중앙 원정대.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골짜기 랭커들 파티 주축으로 진행될 서부 원정대.

서부 원정대에 전력이 부족하다는 건 모두가 느끼고 있었다. 최상윤이나 정수혁 같은 팀 KL 선수들이 서부 원정대에 참가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좀 부족한 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이렇게 오크 대군이 등장하다니….

“케인 안 와도 되겠는데?”

“에이. 그래도 오면 좋지 않겠습니까.”

“하긴. 걔 진짜 언제 탈출하는 거냐? 아직도….”

“쉿. 듣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정수혁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최상윤이 말을 못하게 막았다.

지금 케인이 굶주린 혼돈 세력 쪽에서 위장한 채로 뛰고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들통나는 순간 케인의 목숨이 위험해진다!

“걱정 마. 그런데 저거 보니까 태현이네 아버지께서 힘을 쓰신 거 같은데, 좀 신기하네. 홍보도 없이 그냥 바로 참가를 하실 줄이야.”

최상윤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신기해했다.

지금 리그도 멈췄겠다 굶주린 혼돈 관련 퀘스트로 다들 뭐라도 홍보를 하지 못해서 안달이 난 상태였다.

-ST 파이브, 충격! 굶주린 혼돈 퀘스트에 참가… 공격을 위해 물자 준비 중!

-KG 위자드, 이럴 수가…! 굶주린 혼돈 퀘스트를 깨기 위해 화살 제조!

└미친놈들 아니야 이거? 화살 제조했다는 걸 기사로 내??

└기사 날로 먹네 진짜.

└어제는 칼 만들었다는 걸로 기사 내더니 지금 장난하나!

여러 양심 없는 게임단들이 치졸한 방식으로 낚시를 하고 있는 이 와중에, 본거지를 다 버리고 오크 대군세를 이끌고 온 김태산 같은 경우는 한 1년 정도는 자랑해도 됐다.

저렇게 화끈하게 퀘스트 참가한 경우가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저렇게 말없이 참가하실 줄이야….

‘태현이네 아버지께서 자랑하기 싫어하시는 성격은 아니신데?’

최상윤은 김태산과 몇 번 밥 먹은 적도 있는 만큼 더더욱 의아해했다.

잘 모르는 정수혁은 살짝 감동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게 부모님의 마음 아니겠습니까. 조용히 자식의 뒷바라지를 해주는 그 마음.”

“으음…??”

최상윤은 잘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일단 받아들이기로 했다.

저만한 오크들이 도와주면 솔직히 든든했다.

“최상윤 선수!”

파티장들이 몇몇 달려오더니 외쳤다.

“무슨 일이죠?”

“이번에 새로 참가하신 길드 분들 있지 않습니까. 진격하는 도중에 저희 방송에 나와서 인터뷰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파티장들도 눈이 있고 귀가 있는데 오크 대군세에 고마워하는 건 당연했다.

원래 좋은 뜻으로 온 착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푸대접을 받으면 상처를 받기 마련.

다들 굶주린 혼돈 퀘스트에 참가하기 싫어하고 눈치를 보는 지금. 참가해 준 사람들은 더 띄워주고 고마워해 줄 필요가 있었다.

파티장들은 최강지존무쌍 길마와 간부들을 방송에 초대해서 띄워주고 홍보해 주고 고마워할 생각이었다.

아주 조금의 보답이라도 되지 않겠는가!

“저기 길드 분들 불러왔습니다.”

“무슨 일…?”

오크 아저씨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찾아왔다.

파티장들은 다 꽤 유명한 랭커들인 만큼, 오크 아저씨들도 누군지 알아보았다.

‘아니. 저 친구는 파렐이잖아?’

‘헉. 김재준? 내 딸이 저 녀석 팬인데.’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참가해 주신 게 너무 고마워서… 저희 방송에 잠깐 나와 주실 수 있으신가 해서 불렀습니다. 솔직히 다들 피하고 있는데 본거지 버리고 이렇게 와주신 분들이 없거든요.”

“!”

오크 아저씨들은 눈을 크게 떴다.

여기 젊은 친구들이 사람 대접하는 방법을 제법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야 물론….”

“아닙니다.”

“…?”

“???”

뭐가 아니야?

오크 아저씨들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입을 연 것은 정수혁이었다.

정수혁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 와주신 분들은 그런 작위적인 홍보를 좋아하지 않는 분들입니다. 왜 조용히 오셨겠습니까?”

“아…!”

“과연…!”

파티장들은 정수혁의 말에 감탄한 표정을 짓거나 깨닫고 부끄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가 이렇게 순수한 분들에게 무슨 짓을!

“여기 분들은 그저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온 겁니다.”

“…그, 그렇지.”

“크흠. 해야 할 일이라서… 온 게 맞지.”

오크 아저씨들은 원망과 슬픔이 반반 섞인 눈빛으로 정수혁을 쳐다보았지만, 정수혁은 눈치채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저희 생각이 짧아서….”

“아… 아니야. 진심이 느껴져서 좋았네.”

“맞아. 우리가 원래 그런 작위적인 홍보를 좋아하진 않지만, 자네들 방송에 도움이 된다면….”

미련을 버리지 못한 아저씨 한 명이 입을 열자 파티장들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닙니다!”

“저희 욕심만을 강요한다면 그것만큼 무례한 짓이 없을 겁니다. 도와주러 오셨는데, 저희가 최대한 맞춰드리겠습니다!”

“으응….”

“고마우이….”

말문이 막힌 오크 아저씨들은 그저 구슬프게 고개를 끄덕였다.

분위기를 아직도 못한 파티장들은 다 같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짝짝짝짝짝-

‘훈훈하다!’

자리에 모인 플레이어들은 진심으로 감동을 느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삭막한 판온에, 이런 감동을 또 언제 느껴보겠는가.

오크 아저씨들도 같이 느꼈는지 눈가가 촉촉했다.

* * *

-회의를 시작하겠다.

[음악공, 구시렉이 마계 대회의를 주최합니다!]

[이는 마계에서 보기 드물게 열리는 이벤트로, 아주 중대한 일이 있을 때에만 악마 공작의 권한으로 열 수 있는 일입니다.]

[마계 대회의에 참가한 것으로 인해 악명이 크게 증가합니다!]

[스탯이…]

[마법 스킬이…]

[검술 스킬이…]

[……]

[……]

[참가하지 않은 악마 공작들도 마계 대회의에서 결정된 것에 따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주의하십시오. 악마 공작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이기적인 존재들입니다!]

[<마계 대회의-아키서스의 화신 퀘스트>를 진행하십시오! 이번에 성공시키지 못하면 더 이상 기회가 없을 것입니다!]

[……]

[……]

‘정신없군 정말.’

태현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장관이긴 했다.

평소에는 한 명 봐도 목숨이 위험한 악마 공작들이, 각자 원탁의 자리에 앉아서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사실 당장에라도 다 같이 손을 잡고 ‘우리 아키서스부터 죽이고 시작할까?’ 해도 이상하지 않은 라인업이라, 태현은 긴장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내가 꺼낼 주제는 하나다. 지금, 굶주린 혼돈이 감히 마계를 침략하려고 하고 있다.

-으흠!

-감히….

악마 공작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분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평소에는 서로를 헐뜯고 약점을 잡으려고 하는 이들이지만, 밖에서 외적이 들어오면 뭉치는 게 악마 공작들이었다.

-굶주린 혼돈은 만만한 적이 아니다. 지금 사태는 먼 옛날, 신들이 마계를 공격하려던 그때와 같다. 나는 여기서 선언한다! 모든 공작들이 일치단결하여 굶주린 혼돈을 몰아내야 한다고!

-…….

-…….

구시렉의 말에 악마 공작들은 생각에 잠겼다.

[구시렉의 제안에 악마 공작들이 동의합니다!]

[지금부터 악마 공작들은 고민에 들어갑니다. 반대하는 악마 공작들을 설득하십시오.]

[더 많은 악마 공작들이 찬성할수록, 마계의 힘이 강해질 것입니다.]

‘아니 이 자식들은 동의를 했으면 찬성을 해야지 그걸 또 반대를 하고 있냐?’

태현은 속으로 악마 공작들을 욕했다.

보나마나 생각하는 게 뻔했다.

남들 싸울 때 자기는 어떻게든 뒤로 빠질 수 없나 생각해서 저러는 거겠지!

-대검공 에다오르는 찬성한다.

-빙결공 푸르네우스 또한 찬성한다.

-꿀꿀. 포악공 골라돈 또한 찬성한다.

-나, 광기공 에슬라도 찬성하네.

-…저 미친 새끼는 어느 누가 부른 건가!?

뒤늦게 온 악마 공작은 에슬라가 얌전히 자리에 앉아 있는 걸 보고 기겁하긴 했지만, 일단 회의 자체가 멈추지는 않았다.

생각보다 많은 악마 공작들이 찬성하자 다들 놀라워했다.

-놀랍군. 저 푸르네우스가 찬성할 줄이야.

-그런데 아다드는 어디 가고 저 악마가 앉은 거지?

-그러게 말일세.

-저 미친 새끼는 어느 누가 부른 건지 아무도 말 안 해줄 생각인가?

아직 찬성을 던지지 않은 악마 공작들은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다.

그중 태현도 얼굴을 아는 악마가 입을 열었다.

계략공 모스락.

악마 공작 중 하나로, 예전에 대륙에 나타났다가 태현에게 역소환당한 적 있던 악마 공작이었다.

당연히 감정이 좋을 리 없었다.

-굶주린 혼돈을 막아야 한다는 건 동의한다.

-당연히 그래야지.

-하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여기 악마 공작들이 갑자기 찬성을 하는 지금 상황이 조금 수상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군. 우리가 없는 사이에 무슨 수상쩍은 음모가 오간 걸지도 모르지 않나?

계략공답게 모스락은 혓바닥을 굴려서 절묘하게 판을 짰다.

찬성파 악마 공작과, 그 나머지 악마 공작들을 한데 묶는 솜씨!

구시렉은 분노한 목소리로 물었다.

-내 명예를 걸고 그런 건 없었다. 모스락! 마계가 위기인데 또 네놈의 욕심으로 망칠 생각이냐?

-저런. 그렇게 강조하지 마라.

모스락은 유들유들하게 구시렉의 속을 긁었다.

-오히려 그럴수록 더 수상해지니까… 나도 굶주린 혼돈을 막는 것 자체는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몇몇 악마 공작들이 주도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지. 그 과정에서 몇몇 함정이 있을지도 모르잖나?

[계략공 모스락이 대회의를 주도하기 시작합니다!]

[악마 공작들이 동요합니다!]

[악마 공작들의 동요를 막으십시오. 막지 않을 경우 모스락의 의도대로 회의가 흘러갑니다!]

-네놈이 하면 함정이 없다는 거냐? 아직 말하지도 않은 계획을 그렇게 말하는 네놈의 의도가 더 수상하다, 모스락! 네놈의 칭호를 생각해 봐라!

-내가 분명 계략공의 칭호를 갖고 있지. 하지만 봐라.

모스락은 손가락으로 악마 공작들을 가리켰다.

-저기에는 누가 있는가? 광기공이 있다.

-너무하는군.

에슬라는 부드럽고 친절한 목소리로 섭섭해했다. 물론 악마 공작들은 넘어가지 않았다.

-또 누가 있는가? 아키서스의 후계자가 있다.

-음.

-확실히….

[카르바노그가 치사하게 아픈 곳을 찔렀다고 말합니다.]

‘나서야겠군.’

태현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혀를 차고 일어섰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모스락이 대회의를 알아서 주도하게 될 것이다.

이 방법은 너무 극약처방이라, 할까 말까 망설였었지만….

“내가 한 마디 하겠다.”

-말해봐라.

모스락은 의기양양하게 태현을 보며 말했다.

태현이 어떤 말을 하든 통하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이었다.

“이번 굶주린 혼돈 원정에서 가장 커다란 공을 세운 악마 공작에게는 내가 포상을 하겠다.”

-…?

-무슨 포상? 우리가 네 하찮은 재산을 탐낼 것 같으냐?

“포상은 잊혀진 악마왕의 지팡이다.”

-…….

-…….

그 순간 모든 악마 공작들이 숨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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