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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1612화 (1,611/1,826)

§ 나는 될놈이다 1612화

광기공 에슬라.

사실 악마 공작들은 에슬라를 광기공이라고 불러주지도 않았다. 그냥 광기의 대악마라고 불렀다.

그 정도로 에슬라는 미친놈이었던 것이다.

오죽하면 여러 악마 공작들이 힘을 합쳐서 에슬라를 대륙 미궁에 봉인해놨을까.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나타난 것이냐, 에슬라! 해보자는 것이냐!

구시렉의 외침에, 차원문을 열고 나타난 에슬라가 섭섭하다는 듯이 말했다.

-너무하는군. 친구들이여. 나의 정당한 권리로 마계 대회의에 참석하려고 하는데, 이렇게 무례하게 대할 줄이야.

-네놈은 어떤 무례를 받아도 싼 놈이다! 잠깐. 다가오지 마라! 다가오지 말란 말이다!

구시렉은 질색하며 에슬라에게 경고를 던졌다.

어떻게 보면 에슬라는 아키서스보다 더 위험한 놈이었다.

모든 악마들을 다 죽이고 자기 혼자서 마계를 점령하려고 했다가 다른 공작들의 합공으로 쓰러진 광기의 대악마!

아키서스는 악마들을 이용하고 써먹으려고나 했지, 에슬라는 그냥 눈에 보이는 악마들은 닥치는 대로 다 죽이려고 했다.

‘다 죽이면 마계의 주인은 내가 되겠지?’란 아주 간단한 미치광이 논리!

광증으로 날뛰는 에슬라를 쓰러뜨리고 봉인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이 필요했던가.

악마 공작들은 그 생각을 하자 치를 떨었다.

-그보다 네놈은 대체 어떻게 풀려난 거냐?! 네놈은 봉인되어 있어야 할 텐데?

“…그러게 말이다! 정말 믿을 수가 없군!”

옆에 있던 태현은 가만히 듣고 있다가 찔려서 추임새를 넣었다.

에슬라를 풀어준 건 태현 본인이었던 것이다.

-저기 아키서스의 후계자가 나를 풀어줬지.

-…….

-…….

-…….

[마계에서 더 이상 공포가 오를 수가 없습니다!]

[마계에서 더 이상 평판이 내려갈 수가 없습니다!]

악마 공작들은 태현을 죽일 듯이 쳐다보았다.

들킨 걸 깨닫자 태현은 뻔뻔하게 나갔다.

“아. 내가 저놈이 저런 놈인 줄 알고 풀어줬겠냐? 니들이 미궁 앞 표지판에 상세한 이유를 써놨으면 내가 풀어줬겠냐?”

[카르바노그가 감탄합니다!]

-이런 미친 아키서스 놈이 진짜 마계를 불태우려고 작정을 했나….

구시렉은 기가 막히다는 듯이 말끝을 흐렸다.

풀어줄 놈이 없어서 에슬라를 풀어주다니.

계속되는 항변에, 에슬라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친구들이여. 다시 한번 말하지만 섭섭하기 그지없군. 물론 내가 과거에 실수를 조금 저질렀다는 것은 인정하겠네.

-조금? 그게 조금이냐??

-미치광이 놈이 진짜!

악마 공작들은 일제히 에슬라를 비난했다.

그게 조금 실수면, 많이 실수를 저질렀을 경우 악마 공작들의 모가지가 전부 날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모두 과거의 내가 한 짓이네. 미궁에서 봉인되어 있는 동안, 나는 과거를 참회하고 반성했네. 내 난폭한 실수를 되짚어보고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단 말일세. 마계의 미래를 위해 헌신하겠다 다짐했지!

‘…복수한다고 하지 않았나?’

태현은 에슬라를 풀어줬을 때를 떠올렸다.

분명 풀어줬을 때만 해도 ‘하하 악마 공작 놈들 전부 죽여 버리겠다’라고 말했던 것 같은데?

그 사이 에슬라가 복수심을 꺾었다기보다는, 에슬라가 지금 연기를 하고 있을 가능성이 더 높았다.

찡긋-

[광기공, 에슬라가 당신에게 신호를 보냅니다!]

[에슬라가 당신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에슬라의 부탁-광기공 에슬라 퀘스트>

다른 악마 공작들의 비정한 배신으로 봉인당한 광기공, 에슬라는 그 날부터 끊임없이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었다.

겉으로는 부드러운 미소를 유지하고 있지만 에슬라는 지금 당장이라도 악마 공작들의 목을 뒤에서 찌르고 싶어 한다.

이번 마계 대회의에 참석한 에슬라는 속임수로 악마 공작들을 불러낸 당신에게 감탄하고 있다.

이제 악마 공작들을 죽일 기회만 제공한다면 에슬라는 당신에게 영원히 고마워하리라!

보상: ?, ??, ????

‘…아니야 미친놈아!’

태현은 속으로 황당해했다.

에슬라는 지금 태현이 악마 공작들을 죽이려고 마계 대회의를 열었다고 오해하고 있었다.

정말 굶주린 혼돈 때문에 연 건데!

“잠깐. 다들 싸우지 마라.”

-지금 네놈이 봉인에서 풀어줘서 싸우는 거잖나!!

구시렉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외쳤다.

애초에 아키서스 놈이 풀어주지만 않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진짜 존재 자체가 마계의 독 같은 놈이었다.

“아. 과거 일은 과거 일이고! 지나간 일을 어쩌자는 거냐! 지금 그거 잘잘못 따지면서 네 탓이니 내 탓이니 할 거냐!”

태현은 적반하장으로 따졌다.

원래 이럴 때는 목소리 큰 놈이 강한 법.

게다가 태현의 화술 스킬은 이런 말싸움에서도 유리했다.

[화술 스킬이 매우 높습니다!]

[구시렉이 바로 반박하지 못합니다!]

[……]

[……]

[화술 스킬이 오릅니다!]

-뭐 이런 새….

“굶주린 혼돈을 막는다! 그 목적을 위해서라면 서로의 작은 단점이나 원한 같은 건 잠시 참을 수 있어야 한다!”

[카르바노그가 작은 원한 같지는 않다고 말합니다.]

자기 악마왕 되겠다고 다른 악마들 전부 죽이려고 하기 vs 대륙 미궁에 만 년 넘게 갇혀 있기.

둘 다 딱히 작은 원한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태현은 자리의 분위기를 확실하게 휘어잡았다.

애초에 마계 대회의를 주최한 이유는 정말로 굶주린 혼돈을 막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그렇다! 친구들이여. 나는 정말로 굶주린 혼돈을 막기 위해서 왔다. 그런데도 정말 날 거부할 생각은 아니겠지?

-…….

-…….

[악마 공작들이 에슬라의 참가를 인정합니다!]

[화술 스킬이 오릅니다.]

악마 공작들은 매우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물러났다.

에슬라는 태현에게 고마워하며 말했다.

-고맙군. 아키서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지.”

-그러면 이제 언제 악마 공작들을 죽일 생각인가?

“…아니. 굶주린 혼돈 상대해야 한다니까.”

-정말로? 그런 핑계가 아니라?

“굶주린 혼돈이 진짜로 쳐들어오고 있는데 지금 핑계 대게 생겼나?”

-그게 정말이었다니… 아키서스도 많이 부드러워졌군. 분명 이걸 핑계로 다 죽이려고 함정을 판 줄 알았는데.

에슬라는 살짝 실망한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태현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이 자식 무슨 기대를 하고 온 거야?’

“에슬라. 싸우는 건 상관 안 하는데. 굶주린 혼돈부터 잡고 싸우자고. 알겠지?”

-그러도록 하지. 걱정하지 마라. 아키서스. 나도 절대 섣부르게 행동할 생각은 없으니까.

“그래. 다행이군.”

-그런데 저놈은… 왜 대검이 없지? 대검을 잃어버린 건가?

에슬라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묘하게 살벌하게 들렸다.

“그냥 치워 놓은 거겠지.”

-아닌 것 같은데? 지금이 기회일지도 모르겠는데….

“아니야. 그냥 대검이 무거워서 옆에 놓은 거라니까.”

* * *

처음에는 상륙한 언데드 대군세를 보고 기겁했던 쑤닝이었지만, 곧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유성 게임단의 공식 채널로 이세연의 언데드 대군세가 방송되고 있었던 것이다.

-여러 대형 게임단 선수들이 굶주린 혼돈 세력에 가입하는 건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판온의 대다수 플레이어들이 즐기지 못하는 방향으로 퀘스트를 깨기보다는, 즐길 수 있는 방향으로 퀘스트를 깨겠습니다.

이세연은 단호한 선언과 함께 굶주린 혼돈 토벌 퀘스트에 참가했다.

굶주린 혼돈에게 고통 받고 있는 플레이어들에게는 매우 희망찬 소식이었다.

이세연뿐만 아니라 유성 게임단 선수들은 전원이 다 상위권 랭커.

그런 이들이 굶주린 혼돈 토벌 퀘스트에 참가한다면….

“저건… 불가능한데?”

제카스는 당황한 표정으로 언데드 대군세를 보고 말했다.

그냥 스켈레톤으로만 숫자를 채운 게 아니라 상급 정예 언데드들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현재 플레이어의 능력으로는 절대 유지가 불가능한 대군세.

그 제카스가 당황할 정도로 양과 질에서 압도적인 언데드 군대였다.

“굶주린 혼돈과 계약한 건 아니겠지?”

“이세연이 그런 선수는 아니지 않나?”

“하긴 쑤닝과 달리 굶주린 혼돈과 계약할 플레이어는 아니긴 하지.”

“그래. …음?”

제카스의 말에 담긴 미묘한 조롱을 깨달은 쑤닝은 뒤늦게 분노했다.

이 자식이….

“길마님. 어쩌시겠습니까?”

“쑤닝. 굳이 부딪혀서 좋을 게 없다. 굶주린 혼돈 쪽이 아니라지만, 저 정도 되는 전력과 부딪히는 건 현재 무리니까.”

“이세연도 오스턴 왕국 쪽으로 가서 김태현 세력에 힘을 합치려는 거 아닌가?”

“그럴 수도 있지만, 독자적으로 놀 수도 있겠지. 충분히 그러고 남을 세력이잖나. 평소에 이세연 쪽하고 사이가 좋았나?”

제카스의 질문에 쑤닝은 멈칫했다.

기본적으로 길드 동맹은 길드 동맹 밖의 모든 랭커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 그냥 숨어 있는 게 나을 것 같군.”

“현명한 판단이십니다.”

그러나 길드원들이 숨어 있고 싶다고 해서 숨어 있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유성 게임단의 류태수가 언데드들을 이끌고 수색에 들어간 것이다.

[둠 레인저들이 당신을 발견합니다!]

[은신이 풀립니다!]

“!!!”

언데드 정찰대가 발견했다는 메시지창이 뜨자 길드원들은 경악했다.

설마 걸릴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플레이어도 아니고 그냥 NPC들한테…!

“여기 숨어 있는 놈이 있다!!”

“굶주린 혼돈과 계약한 놈일 거야! 밟아버려!”

유성 게임단 선수들은 소식을 전해 듣자마자 사방에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대로 가다가는 바로 박살 날 걸 짐작한 쑤닝은 다급하게 외쳤다.

“잠깐! 잠깐! 오해다! 내가 누군지 알면 오해가 풀릴 거다!”

“누구냐! 혹시 한국 선수….”

“…….”

쑤닝은 잠깐 고민했지만, 앨콧이 옆에서 말했다.

“구라쳐봤자 무조건 들킬 테니까 부끄러운 개수작은 안 하는 게….”

“…알, 알고 있다. 앨콧. 쑤닝! 나는 쑤닝이다!”

“…….”

“…….”

대답을 들은 유성 게임단 선수들은 침묵했다.

그들은 눈빛으로 대화하고 있었다.

-쑤닝이라는데?

-…그러면 그냥 죽여도 되는 거 아니야? 저 자식은 무슨 배짱으로 지가 쑤닝이라고 말한 거지?

-그러게? 오해가 다른 의미로 풀렸는데.

“저. 주장. 저 자식이 지가 쑤닝이라는데요.”

“쑤닝이?”

이세연은 의아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오스턴 왕국 동북쪽으로 도주한 쑤닝이 여기 있다니.

물론 불가능한 건 아닌데 좀 신기한 일이었다.

왜 다시 돌아가려고 하지?

“이유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류태수는 단호하게 말했다.

“바로 김태현 선수 때문이겠죠.”

“그래! 맞췄다!”

쑤닝은 무심코 기쁜 목소리로 외쳤다.

다행히 한국 선수들 중에서도 쑤닝의 마음을 알아차린 놈이 있었던 것이다.

“길드도 망했고 자기 인생도 망했으니 김태현 선수를 방해하겠다, 이런 쓰레기 같은 속셈 아니겠습니까.”

“…아니다!!”

쑤닝은 어이가 없었다.

누구를 그런 졸렬한 새끼로 보고…??!

“그럴듯한데?”

“길드 동맹 길마면 그럴 만하지 않나요? 김태현 선수한테 길드 기둥뿌리가 두세개는 뽑혔다는 걸로 알고 있는데.”

쑤닝은 이대로 가다가는 오해를 떠나서 여기서 로그아웃당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스미스의 집요한 추적을 피해서 간신히 여기까지 왔는데, 같은 적을 둔 아군에게 죽으면 너무 허무한 결말이었다.

오해를 풀어야 한다!

“물론 내가 김태현 놈한테 묵은 원한이 있다는 건 인정한다. 그것까지 부정하지는 않겠다.”

“그러면 죽어라!”

알겠다는 듯이 류태수가 달려들려고 하자 옆의 선수들이 급히 말렸다. 쑤닝도 움찔했지만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내 목표는 스미스다. 스미스 놈에게 복수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이세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해가 잘 안 갔던 것이다.

“스미스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뭘 어떻게 하려고 했던 거지?”

“오스턴 왕국 남부에 가서 원정대에 참가하려고 했다.”

“…김태현 밑에서??”

“…따지고 보면 그렇게 될 수는 있긴 한데 원정대가 꼭 상하관계는 아니고 같은 뜻이 있으면 모일 수도 있는 거니까….”

구구절절 말이 길어졌지만, 결국 원정대에 참가한단 소리 아닌가.

이세연은 매우 기묘한 표정으로 쑤닝을 쳐다보았다.

유성 게임단의 다른 선수들도 매우 기묘한 표정으로 쑤닝을 쳐다보았다.

‘그렇게 쳐맞아놓고 들어갈 생각이 드나…?’

‘저거 혹시 맞는 걸 즐기는 변태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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