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609화
‘게임 접는 거 아니야?’
게임 접는 것에서 끝나면 모를까, 몇몇 간부들은 인간불신에 빠지거나 진지하게 앨콧을 찾아 해외까지 쫓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앨콧도 무서웠다.
‘절대 부길마 자리는 받지 말아야지….’
“무슨 대화를 하고 있었나?”
주변 정찰을 끝내고 돌아온 제카스는 분위기가 이상하자 질문을 던졌다.
“이 일이 끝나면 앨콧에게 부길마 자리를 줘야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앨콧?”
제카스는 그 말에 앨콧을 쳐다보았다. 앨콧은 속으로 부탁했다.
‘제카스. 말려라! 말려다오!’
부길마 자리에 앉았다가 진짜 목숨까지 위협당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앨콧이라면 그럴 만도 하지. 쑤닝. 네놈은 정말 많이 달라졌군.”
“하. 네놈 따위에게 칭찬 들어봤자 쓸모도 없다. 칭찬하지 마라.”
“칭찬할 생각은 없다. 그저 사실을 말했을 뿐이지. 원래라면 그놈의 의심병 때문에 절대 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야.”
“…….”
둘의 훈훈한 대화에 앨콧은 어이가 없었다.
미친놈들이 무슨 대화를 나누는 거야!
‘말리라고 제카스 놈아…!’
제카스가 무게 잡고 그럴듯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앨콧이 보기에는 제카스도 완전히 멍청한 놈이었다.
앨콧이 첩자인데 뭔 부길마를….
“애들아.”
“?”
관 안에서 따뜻하고 상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이제 진짜 마음 다잡았어. 풀어줘도 돼.”
“그러냐?”
“응.”
“그래. 마음 다잡았다는 거 들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라. 도착하면 풀어줄게.”
“야 이 개*$&*!&*@들아! 이거 안 풀어?! 안 풀어주냐고!!!”
도동수는 격렬하게 욕설을 퍼부었다.
그 모습에 길드 동맹 간부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프로 선수가 저런 욕설을 하다니.”
“인성이 똑바르지 않군.”
“저러니까 베이징 파이터즈 성적이 안 나온 거야.”
“맞아. 저러니까 월드컵 예선 탈락을 했지.”
“…응? 도동수는 중국 선수가 아니라 한국 선수인데?”
“아차. 그랬지.”
관 안에 갇혀 있는 건 바로 도동수였던 것이다.
* * *
-도동수! 이데르고 교단에서 탈퇴하고 찾아갈 새 세력을 찾았다.
-오. 그게 정말이냐??
이데르고 교단에서 사고를 저지른 뒤 새로 가입할 세력을 찾고 있던 도동수와 제카스.
먼저 쑤닝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던 제카스는 새로 가입할 세력을 결정했다.
-혹시 굶주린 혼돈인가??
-아니. 김태현 쪽 원정대에 합류할 거다.
-…하하. 농담하지 마. 제카스. 하나도 안 웃겨.
-농담 아닌데.
-…미쳤냐!? 죽으러 가냐!? 아, 아니지. 제카스. 너…!
-도동수. 깨달은 거냐? 지금 상황이라면 김태현이 우리를 죽이지 않….
-…나를 바치고 네놈 목숨은 건지기로 한 거구나!!
-…깨달은 게 아니군.
물론 빠르게 결정을 내린 제카스와 달리, 도동수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김태현 쪽 원정대에 가서 좋은 꼴을 볼 것 같지가 않았던 것이다.
사실 태현은 도동수에 별 관심이 없었다.
도동수야 김태현 비슷한 그림자도 피해가고 있다지만 태현은 도동수 같은 플레이어들을 하나하나 다 기억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도동수 입장에서는 겁이 날 수밖에 없는 상황.
도동수는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죽어라, 제카스!! 날 감히 김태현에게 팔아넘기려고 하다니!
-도동수 선수! 정신 차려라! 우리도 여기 있다! 우리도 김태현하고 협력하려고 하고 있단 말이다. 상황을 이해 못 하겠나!
보다 못한 길드 동맹 간부들도 나섰다.
쑤닝도 도동수에게 외쳤다.
-지금 김태현도 정신이 없는 상황이다. 다들 굶주린 혼돈으로 넘어가고 있는 상황에, 자기 원정대에 참가하고 있는 플레이어를 공격하지는 않을 거란 말이다. 정신 차려라, 도동수! 굶주린 혼돈에 가입하는 것보다는 반대쪽에 서는 게 지금은 이득이다! 퀘스트를 깨고 레벨을 올리면 기회는 돌아온다는 걸 이해 못하나!
쑤닝의 외침에 도동수가 멈칫했다. 순간 쑤닝은 진심이 통했다고 생각했다.
…물론 도동수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놈이 아니었다.
-쑤닝 너….
-그래!
-스미스한테 져서 길드 망했다고 이제 자기 목숨 하나 구하려고 그러는 거냐! 날 바쳐서 김태현한테 잘 보이려고!! 진짜 추하다!! 어떻게 사람이 그러냐!
-…….
진심이 무시당하자 쑤닝은 개빡쳤다.
뒤에서 듣고 있던 길드 동맹 간부들도 어이가 없었는지 격분해서 외쳤다.
-뭔 개소리를 저렇게 길게 지껄여!?
-야, 네놈이 뭐라고 그렇게 스스로를 과대평가를 하는 거냐!? 김태현한테 잘 보일 거면 다른 걸 바치지 누가 네놈을 바쳐!
-김태현은 네놈 이름도 기억 못해!!
길드 동맹 간부들이 뒤에서 외쳐댔지만 도동수는 무시하고 달렸다.
이미 도동수의 머릿속에서는 논리가 완성된 것이다.
‘저놈들이 날 바쳐서 김태현한테 잘 보이려고 하고 있어!’
도동수는 신전 지하를 뚫고 밖으로 빠져나가려고 했다.
푹!
[<발목 절단>이 대성공합니다!]
[이동 속도가 크게 느려집니다!]
[……]
그러나 도동수는 그러지 못했다.
뒤로 돌아온 앨콧이 도동수의 급소를 정확히 공략한 것이다.
-역시 앨콧이다!
-앨콧 만세!!
-이… 앨콧 이 자식. 네놈도 날 김태현에게 바쳐서 출세하려고….
-야. 김태현은 네가 누군지도 기억 못 한다니까.
-크윽… 그렇게 날 속이려고!
[도동수가 포로 상태로 변합니다!]
[……]
[……]
* * *
포로 상태로 잡은 건 좋았지만, 길드 동맹과 제카스는 곧 문제에 직면했다.
도동수 놈이 가능한 모든 지랄을 하지 않겠는가.
-저놈이 방송으로 우리 위치라도 알려주면 큰일인데.
-그러면 시야를 아예 막아버리면 되지 않나?
-그게 무슨 소리지 앨콧?
-관이나 상자 같은 것에 넣어서 이동하면 도동수의 시야가 가려져서 우리가 어디로 이동하는지 모를 거 아니야.
-과연…! 역시 앨콧이다!!
-앨콧! 앨콧!
심지어 까탈스러운 제카스도 앨콧의 의견에 감탄했다.
-과연. 한국의 전통적인 처벌 중에는 뒤주에 사람을 가두는 벌도 있었지. 영리하군. 앨콧.
-그… 그런 벌이 있어? 한국 놈들 무시무시한데.
그렇게 길드 동맹과 제카스는 도동수를 관 안에 집어넣고 포위망을 뚫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 정도면 도동수를 풀어줘도 됐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아직 안심하기는 일렀으니까!
“도착하면 풀어주자.”
“맞는 말이다. …길마님. 왜 그러십니까?”
간부들은 쑤닝의 표정이 복잡한 것을 보고 물었다.
설마 도동수를 가둬서 저런 것은 아닐 테고, 어째서지?
“김태현 놈의 방송을 봤다. 우리 쪽 간부들이 여럿 넘어갔더군.”
“…….”
“…….”
간부들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사실 그들도 도망치면서 주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김태현부터 시작해서 뉴욕 라이온즈 방송들까지 다 챙겨보고 있었다.
그중 김태현의 방송은 확실히 대단했다.
거의 혼자서 굶주린 혼돈에 맞서고 있는 수준!
하지만 대단한 건 대단한 거였고, 길드 동맹 입장에서는 기분이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길드 동맹 소속 간부들부터 랭커들이 여럿 원정대에 참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방송을 보면 곳곳에서 길드 동맹 출신 파티들이 활약하고 있는 게 보였으니….
“내가 제대로 이겼다면 그렇게 넘어가지도 않았겠지. 내 잘못이다.”
“아닙니다! 길마님!”
“길드원들도 어쩔 수 없어서 합류한 걸 겁니다. 마음속으로는 길마님을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물론 원정대에 참가한 길드 동맹 길드원들이나 랭커들은 쑤닝이 어디서 뭘 하는지 별 관심 없었지만, 간부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분명 그들 사이에는 끈끈한 우정이 남아 있으리라!
“그런가?”
“예! 길마님께서 나타나기만 하시면 길드원들이 구름처럼 몰릴 겁니다!”
“오히려 이것 덕분에 김태현이 길마님을 존중할 겁니다. 원정대에 참가한 대형 파티 몇 개가 사실상 길마님 소속 아닙니까!”
간부들의 말에 쑤닝은 솔깃했다.
확실히 일리가 있었다.
지금 원정대에서 뛰고 있는 길드 동맹 소속 파티들.
이 파티들이 쑤닝의 편을 들어준다면….
여기서 유일하게 제정신을 차리고 있던 앨콧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되나?’
물론 쑤닝이 평소에 길드원들과 친하게 지냈고 개인적으로 끈끈한 사이였다면 저게 말이 됐다.
하지만 길드 동맹 규모는 어마어마한 수준이었고, 쑤닝은 몇몇 간부들을 제외하면 길드원들과 개인적으로 교감이 없었다.
그리고 쑤닝이 길드원들한테 인기가 좋은 것도 아니었다.
쑤닝이 가진 힘은 길드 동맹이라는 거대한 조직의 수장이라는 것에서 나오는 거였지, 쑤닝 개인의 인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손익 계산 안 하고 무조건 따르겠다고 나설 정도면 김태현 정도 인기는 되어야 가능한 거고 쑤닝은 불가능할 것 같은데…?
“그거 괜찮은 생각이군.”
“!?”
제카스도 간부들의 말에 동의했다.
“확실히 그러면 우리가 합류하고 나서도 좀 더 편할 거다. 쓸데없는 희생이나 불리한 퀘스트 같은 것에 나서지 않아도 될 테니.”
“그렇지?”
“제카스까지 저렇게 말하는 걸 보니 맞을 겁니다. 길마님.”
간부들과 제카스의 말에, 쑤닝은 기운이 나는 걸 느꼈다.
쑤닝은 마지막으로 앨콧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앨콧.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
앨콧은 차마 기대 가득한 쑤닝에게 ‘길드원들이 이미 박살 난 길드 길마인 네 말을 들을까?’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마지막 남은 양심의 가책!
“물… 론 다 쑤닝 네 밑으로 모일 거다.”
“그래?!”
앨콧까지 동의하자 쑤닝은 정말로 그런가보다 믿었다.
제카스에 앨콧까지 동의했다면 거짓말일 리가 없는 것이다.
“빠르게 이동하자! 이제 곧 오스턴 왕국 남부다.”
일행은 우르크 지역 해안가를 따라 빠르게 달려서 오스턴 왕국 남부로 달릴 생각이었다.
많이 돌아오긴 했지만 이제 포위망은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니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촤아아아-
“…?”
길드 동맹 간부 중 한 명이 문득 이상한 점을 깨닫고 고개를 돌렸다.
바다 너머 수평선에 뭔가….
뭔가 몰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어….”
“왜 그래?”
“저… 저거 뭐냐??”
“??”
그 말에 다른 간부들도 고개를 돌렸다.
어마어마한 숫자의 언데드 함선들이 수평선을 꽉 채우고 해안가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
“…….”
그 규모에 길드 동맹 간부들은 그대로 압도되었다.
그건 굶주린 혼돈과는 종류가 다른 공포였다.
“야! 무슨 일인데?! 풀어줘! 풀어주면 내가 도와준다고!!”
관 안에서 아직 상황 파악을 못한 도동수가 다급하게 외쳤다.
* * *
-마계 대회의를 열기 위해서, 초대장을 보내야 한다.
지금 마계에 가 있는 태현 일행이 해야 하는 일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계속 넘어오는 굶주린 혼돈의 군대 섬멸.
다른 하나는 마계 공작들 힘 합치기.
거기에 태현 개인 퀘스트로 푸르네우스의 봉인 풀기, 악마 설득해서 아키서스 진영으로 넘어오게 하기 등등 같은 게 있었지만 그건 지금 당장 중요하지 않았고….
지금 당장 중요한 건 마계 대회의였다.
“초대장이라… 그걸 받으면 악마 공작들이 다 모이겠군.”
-아니.
“?”
-악마 공작들은 초대를 받아도 바로 응하진 않는다. 자존심 때문이지.
“…….”
태현은 황당했지만 참고 물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지?”
-자존심을 잠시 굽히고 모일 정도로 매력적인 제안을 해야 부를 수 있다.
악마 공작, 구시렉은 초대장을 보낼 수 있는 조그만 차원의 문을 열었다.
각 악마 공작들끼리 긴급한 연락을 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차원의 통로였다.
거기에 초대장을 던지자, 초대장이 그대로 다시 돌아왔다.
-봤나? 자기가 이 정도로 대단한 존재니까 초대를 무시하겠다는 거다.
“오… 악마 공작들은 정말 똑똑하군.”
-…비아냥거리지 마라. 어쨌든 악마 공작들을 부를 만한 제안이 필요하다. 나보다는 아키서스 네가 낫겠지.
구시렉의 말에는 살짝 가시가 돋아 있었다.
확실히 쥐를 잡는 데에는 고양이가 뛰어나듯이, 악마를 속이는 데에는 아키서스가 뛰어난 것이다.
“별로 어렵지 않군.”
-그래? 무슨 제안을 할 생각이지? …참고로 내 영지의 어떤 것도 놈들에게 대가로 내줄 수는 없다.
“그럴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이렇게 보내. 아키서스의 후계자가 여기 있으니 보고 싶은 놈들은 오라고.”
[카르바노그가 감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