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608화 (1,607/1,826)

§ 나는 될놈이다 1608화

구시렉은 세상의 모든 감정이 담긴 눈빛으로 태현을 노려보았지만, 태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건 태현의 잘못이 아니었다.

구시온이 갑자기 참회하고 아키서스의 천사가 된 게 태현의 탓은 아니지 않은가.

“데리고 가면 되잖아.”

-네놈 같으면 데리고 가겠나!! 넌 더 이상 내 자식이 아니다!

구시렉은 절연을 선언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구시온은 진지하게 구시렉을 설득하려고 했다.

-아버지! 사악한 어둠의 길에서 벗어나신다면….

-듣기 싫다!

<아키서스와 사랑의 길-아키서스 교단 퀘스트>

때로는 증오보다는 사랑이 더욱 강한 힘을 발휘할 때가 있다.

아키서스 또한 언제나 검만을 휘두르지 않았다.

마계의 악마들 중에서 아키서스의 뜻에 깊게 감화된 악마들은 아키서스의 신앙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길로 들어섰던 것이다.

아키서스의 화신인 당신은 이제까지 검만을 휘둘러왔지만, 오늘 새로운 길을 발견하게 되었다.

악마들을 감화시켜서 아키서스의 신앙을 받아들이게 만들어라!

(악마 공작: 0/1)

보상: 아키서스의 권능

‘장난하나?’

둘이 싸우는 사이 새 퀘스트창을 본 태현은 할 말을 잃었다.

아키서스의 새로운 권능을 찾는 퀘스트가 나온 건 좋았지만, 이건 사실상 불가능한 퀘스트 아닌가.

‘악마 공작 아들 감화시켰다고 악마 공작도 설득하라니….’

그리고 실제로 감화시킨 것도 아니었다.

솔직히 저 정도면 세뇌 아닌가?

[카르바노그가 조용히 하라고 말합니다.]

태현은 퀘스트는 일단 넘어가고 받은 보상부터 확인하기로 했다.

사실, 악마 공작의 아들을 감화시킨 것만으로도 보상은 넘치도록 충분했다.

각종 스탯 보상도 있었지만 가장 기쁜 건 역시 아키서스의 권능이었다.

<아키서스의 애정>

아키서스의 적들을 감화시킵니다.

“???”

태현은 스킬 설명에 당황했다.

이제까지 스킬들과 너무 달랐던 것이다.

‘패시브 아니지?’

놀랍게도 패시브가 아니었다.

누가 보면 데메르 교단 권능 스킬일 줄 알 정도!

남을 죽이는 스킬을 하나라도 더 줘도 모자랄 판에 뭐 이딴 미적지근한 스킬을…?

‘이제 와서 아키서스 교단 이미지를 바꿔보려고 이러는 건 아니겠지? 이미 늦었는데.’

마계부터 시작해서 대륙 사람들까지 다 아키서스 교단이 어떤 교단인지 알고 있는데 이제 와서 사랑의 힘을 보여줘 봤자 다른 사람들이 ‘아, 아키서스는 사실 진실된 사랑의 교단이었구나!’ 하고 받아들일 리 없었다.

‘아키서스 교단이 미쳤구나!’거나 혹은 ‘아키서스 교단이 속임수를 또 쓰나 보군’ 하는 반응이 나오겠지!

‘일단 광역기 같긴 한데….’

광역기에, 아키서스 권능 정도면 쓸 만하긴 할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불안한 게 있다면 성능이 제대로 나와 있지 않다는 것!

‘…진짜 이상한 스킬이면….’

아키서스의 애정이고 지랄이고 태현의 증오가 터져 나올 것!

* * *

구시온은 아키서스의 전투천사로서 포병대에서 일하겠다고 말했다.

드워프들과 구시온은 서로 얼싸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물론 그 모습이 매우 꼴 보기 싫었던 구시렉은 빠르게 이동했다.

-자. 마지막으로 확인하겠다. 이 토끼 부족 전사를 가두고 있는 얼음을 치워달라고?

“그래.”

태현도 화염에는 나름 일가견이 있었지만, 그건 공격용이었지 얼음 안에 갇힌 자들을 안전하게 꺼내는 용도가 아니었다.

게다가 광기 상태도 있는 만큼 구시렉의 노래에 맡기는 게 나았다.

-나는 마계에 떠도는 여러 전설적인 노래들을 수집해서 갖고 있다. 내 악보책들에는 그러한 노래들이 기록되어 있지. 하지만, 이 노래들은 절대 영원하지 않다. 아주 오래되어서 한 번 연주하고 나면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지. 지금 그런 노래를 네놈의 부탁을 위해 사용하는 거다.

‘거 더럽게 생색내네….’

태현은 구시렉을 속으로 욕했다. 카르바노그도 고개를 끄덕였다.

태현은 구시온 풀어주면서 ‘야 내가 구시온한테 매번 밥도 주고 방석도 주고 채찍질도 안 해주고 얼마나 잘 대해줬는지 아냐?’ 같은 생색을 내진 않았는데….

‘아니. 생각해 보니 저렇게 생색낼 만도 하군.’

태현은 이번만은 넘어가주기로 했다.

그만큼 구시렉 입장에서는 황당하고 억울한 일일 테니까.

-만약에 얼음을 치우고 광기를 잠재웠는데도 저 수인족 놈들이 덤빈다면 그건 네놈의 책임이다. 알겠냐?

“알겠다.”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구시렉은 속으로 음흉하게 웃었다.

‘수인족 놈들이 저놈을 크게 다치게 해줬으면 좋겠군.’

구시렉이 보기에 저 야만족 놈들을 설득하는 건 헛소리에 가까웠다.

일단 설득 자체가 불가능한 자들!

얼음을 풀고 광기를 치운다 하더라도 대답도 듣지 않고 칼을 휘두를 게 뻔했다.

-그렇다면 시작하겠다.

지이이잉!

[음악공, 구시렉이 <끔찍하고 붉은 마계의 강>을 연주하기 시작합니다!]

[이는 신들과 악마들이 싸웠을 때 마계가 입은 피해를 묘사한 전설적인 곡으로, 3장에는 아키서스의 등장도 있습니다.]

[현재 노래 스킬이 너무 낮습니다! 노래에 담긴 뜻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노래를 배우는 데에 실패합니다.]

[노래 스킬이 오릅니다.]

[고대의 지식이 늘어납니다!]

[……]

[카르바노그가 노래에 감탄합니다!]

카르바노그뿐만 아니라 휴식을 취하고 있던 원정대 플레이어들도 감탄했다.

마치 몇 개의 교향곡을 합쳐 놓은 것 같은 웅장한 노래!

듣는 것만으로도 노래 스킬을 올려주고, 각종 스탯을 올려주는 이런 대단한 노래를 들을 기회는 흔치 않았다.

“와. 악마치고는 노래 진짜 잘하는데??”

“게다가 가사도 흥미진진해.”

노래의 선율 자체도 훌륭한데 안에 담긴 가사도 스토리텔링이 대단했다.

옛날 옛적에 악마들하고 신들이 크게 싸웠는데, 비겁한 신들이 치사하게 정면승부를 해와서 악마들이 피해를 입고….

플레이어들은 모처럼 얻은 기회를 즐기기로 마음먹고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그때 아키서스가 나타났다네. 아키서스는 악마들을 모조리 속였다네. 악마들은 분노로 눈물 흘렸다네.

“…….”

“…….”

흥미진진한 마계대전에 갑자기 아키서스가 등장하자 플레이어들은 당황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키서스가 마계에서 뭘 했는지 잘 몰랐던 것이다.

“왜 아키서스가 나오지?”

“아하! 그러니까 다른 신들 편에 있던 아키서스가 나서서 악마들을 속인 거구나!”

-신들도 아키서스에게 속아서 눈물 흘렸다네. 그때부터 마계의 강은 붉게 물들었다네.

“…….”

“…??”

플레이어들은 의문에 찬 표정으로 태현을 쳐다보았지만 태현은 못 본 척했다.

원래 옛날에 만들어진 노래는 좀 부정확한 부분들이 많은 법.

[<끔찍하고 붉은 마계의 강>이 완전히 연주됩니다!]

[스탯이 완전히 회복됩니다!]

[모든 저주가 사라집니다!]

[일시적으로 모든 공격에 추가 보너스를…]

[아름다운 음악으로 인해 영혼이…]

[……]

파아아앗!

곡 자체의 내용과 별개로, 곡의 효과는 어마어마했다.

마계에 넘어와서 수많은 싸움을 끝낸 플레이어들을 전부 다 회복시켜버리는 강렬한 버프 효과!

방금까지 각종 저주와 디버프에 신음하던 플레이어들도 벌떡 일어설 정도로 그 효과는 대단했다.

“!!!!”

“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특히 충격을 받은 건 음유시인 플레이어들이었다.

대륙의 이름난 음유시인 NPC들도 방금 악마 공작 같은 연주를 보여주진 못했던 것이다.

설마 이 악마 공작이 대륙과 마계를 통틀어서 가장 뛰어난 노래 스킬을 갖고 있는 것일까?

“혹시 노래 스킬 좀 가르쳐달라고 하면 가르쳐주나?”

“악마 공작한테 그래도 돼?”

“지금은 김태현 부하 아님?”

“과연… 그럴듯한데.”

“하긴 같이 퀘스트 깨는데 이 정도는 해줘야지.”

평소라면 ‘악마 공작한테 가면 노래 스킬을 배울 수 있대’라는 말을 들었을 경우 ‘오 나도 프로 데뷔하는 방법 암 김태현이랑 일대일 떠서 이기면 됨’ 같은 식으로 대답했겠지만, 지금은 좀 달랐다.

그 무시무시하던 악마 공작이 바로 옆에서 같이 퀘스트를 깨고 있지 않은가.

꽤 친근하게 느껴진달까?

물론 구시렉이 들었다면 분노로 하프를 휘둘렀을 대화였다.

* * *

[토끼 부족 전사들이 깨어납니다!]

[광기가 사라집니다!]

“…….”

태현은 긴장한 표정으로 앞을 쳐다보았다.

뒤에 있던 교단 NPC들은 물론이고 파티장들도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태현에게서 설명을 듣고 각오를 마친 상태였던 것이다.

‘명령만 내려오면 바로 공격한다…!’

그리고 구시렉도 살짝 기대 섞인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아키서스 놈이 지금 죽으면 그건 그거대로 곤란했지만, 좀 크게 다치는 걸 보면 속이라도 시원할 것 같았다.

쩌저적, 쩌적-

얼음이 깨지고 토끼 부족 전사들이 걸어 나왔다.

그들은 얼음을 털어내더니 태현을 딱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닭똥 같은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카르바노그 님의 뜻을 갖고 오신 분을 이렇게 공격하게 될 줄이야….

-저희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저희 부족을 감싸고 있는 광기 때문에!!

-저희를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어, 잘 된 거지?”

보고 있던 파티장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더니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뭔 상황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훈훈하니까 잘 된 모양이다!

짝짝짝짝짝-

한두 명씩 박수를 치기 시작하자, 자리에 있던 플레이어들도 일단 훈훈한 거 같아서 박수를 쳤다.

와, 뭔진 모르겠지만 잘 풀렸나 봐!

[카르바노그가 기쁨의 눈물을 흘립니다!]

-…….

구시렉은 매우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될 놈은 뒤로 자빠져도 돈을 줍는다더니….

아까 미친놈처럼 날뛰던 수인족 부족들이 갑자기 저렇게 공손하게 구는 걸 보니 정말 배가 아팠다.

“혹시 문제라도 있나?”

-흥. 그럴 리가.

* * *

김태현 세력과의 협력을 결정한 쑤닝이었지만, 그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일단 쑤닝 본인한테 어마어마한 현상금이 걸려 있는 상태인 것이다.

오스턴 왕국의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쑤닝을 찾아서 스미스한테 바치려고 혈안이 된 상태!

맨날 척살령을 내리던 입장에서 직접 당하게 된 쑤닝의 고생은 말로 다 할 수가 없었다.

“이걸… 영상으로 공개했으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을 텐데 말이야.”

“그렇게 말하는 거 보니 좀 여유가 돌아오신 모양입니다.”

쑤닝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간신히 오스턴 왕국의 지옥 같은 포위망을 벗어난 것이다.

전부 이야기하면 끝이 없을 정도로 다사다난했던 탈출기.

적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 길게 빙 돌아서 대륙을 달려야 했다.

간부들 모두 눈부신 활약을 했지만, 그중 가장 뛰어난 활약을 한 것은 역시 앨콧이었다.

“진지하게 상황이 수습되면 앨콧을 부길마로 해야겠다.”

“저도 동의합니다. 이제까지 부길마를 안 만든 이유는 배신자가 나올 수 있어서 아니었습니까. 하지만 앨콧은 절대 배신할 놈이 아닙니다.”

쑤닝은 부길마를 따로 만들지 않았다.

안 그래도 몇 번 쪼개지고 분열된 적 있던 길드 동맹에서 그런 권한을 새로 줬다가는 한 번 더 내분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앨콧은 달랐다.

쑤닝은 솔직히 자기 가족보다 앨콧이 더 믿음직스러웠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믿음!

“나… 나는 괜찮다니까.”

“아니다. 앨콧. 우리가 꼭 밀어주마.”

“너는 보답을 받아야 해.”

“진짜 괜찮다니까!”

“기특한 자식….”

“…….”

앨콧의 부담스러워하는 모습도 간부들에게는 더욱더 믿음직스럽게 보일 뿐.

앨콧은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이 자식들….

나중에 앨콧이 첩자라는 진실을 알게 되면 멘탈이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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