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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1607화 (1,606/1,826)

§ 나는 될놈이다 1607화

-뭐… 뭐하는 거냐?

“뭐하는 거냐니. 구시렉. 진짜 악마 공작한테 존중의 의미를 표현하고 있는데!”

-…….

구시렉이 태현을 미친놈 보듯이 보고 있었지만, 태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금은 푸르네우스를 부추겨야 할 때다.’

푸르네우스가 진설의 조각을 3단계까지 개방한 지금.

태현은 진지하게 냉기의 핵 퀘스트를 깨볼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푸르네우스가 앞으로도 진설의 조각을 더욱더 사용하게 만들어야 했다.

가장 좋은 건 스스로의 힘에 취하게 만드는 것!

-…….

푸르네우스는 예상치 못한 태현의 반응에 잠깐 가만히 있었다.

‘아차. 너무 노골적이었나?’

-…크하하하하하하하! 무서운 줄 모르고 까불던 놈이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제법 괜찮군. 하긴. 그래야 아키서스지!

‘아니었군.’

[푸르네우스를 만족시키는 데에 성공합니다!]

[푸르네우스가 자신의 힘에 취합니다. 더욱더 오만해집니다!]

[진설의 조각 사용 확률이 올라갑니다!]

[화술 스킬이 오릅니다!]

안 그래도 진설의 조각 3단계를 개방한 상태라서 힘이 온몸에서 끓어오르는 푸르네우스는 그 짜증 나는 아키서스마저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자 도취되어서 웃음을 터뜨렸다.

원래 사람이 자신의 그릇에 맞지 않는 힘을 갖게 되면 그 힘에 휘둘리면서 변하게 되기 마련.

마치 케인처럼, 푸르네우스는 힘에 취해가고 있었다.

[카르바노그가 아키서스의 노예하고 악마 공작을 비교하는 건 좀…]

옆에서 듣고 있던 카르바노그가 황당해했다.

물론 지금 푸르네우스가 약간 맛이 갔긴 했지만, 그렇다고 아키서스의 노예하고 비교하는 건 너무 얕잡아보는 것이었다.

악마 공작이 물로 보이는 것도 아니고….

-너. 구시렉. 너 또한 주제를 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뭐… 뭐??

-네놈은 그저 뒤에서 노래나 부르며 날 도우면 된다. 내 말을 잘 따르면 네놈의 공작 자리는 내버려 두겠다. 알겠나?

-뭐 이런 미친놈이…!

구시렉은 격노했다.

굶주린 혼돈의 습격 때문에 망신을 당하긴 했지만, 이런 모욕을 듣고서도 그냥 넘어간다면 그건 악마 공작이 아니었다.

죽여 버리겠다!

-아키서스. 지금 저딴 말을 듣고서 가만히 있….

“역시 빙결공! 정말로 관대하다! 앞으로 내가 구시렉에게 잘 말해놓을 테니 화를 풀어다오!”

-크핫핫핫핫!

-…….

* * *

푸르네우스가 떠나고 나서야 구시렉은 태현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감히 날 배신해!?

“배신이라니. 구시렉. 네 목숨을 구해준 거다.”

-내 목숨을 구해줬다니! 물론 저 빙결공 놈이 강해져 있긴 하지만 싸웠다면 나 또한 지지는 않았을….

구시렉의 말에는 살짝 힘이 빠져 있었다.

그 정도로 진설의 조각 3단계를 개방한 푸르네우스는 압도적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구시렉은 정면에서 싸우는 스타일이 아닌, 뒤에서 노래로 상황을 컨트롤하는 원거리 음유시인 스타일.

“물론 알지. 하지만 둘이 싸웠다가는 뒷감당이 되지 않잖아. 마계 대회의는? 굶주린 혼돈 좋은 일만 해주는 거라고.”

-그것도… 그렇긴 하지만….

구시렉은 결국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 태현의 손을 놓을 수는 없었으니까.

“자. 빨리 저 얼음 속에 갇힌 토끼 부족 전사들을 구해달라고.”

-지금 저 꼴을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나?!

구시렉은 황당해했다.

아까 광기에 빠져 있을 때도 어이가 없었는데, 지금은 더 어이가 없었다.

저 단단하게 갇힌 얼음을 녹이고 광기까지 풀어보란 소리 아닌가.

-안 그래도 무리한 일이었다. 아키서스. 미치광이 같은 소리 하지 말고 내버려 둬라! 남은 수인족 놈들이나 잡아서 해치운 다음 마계 대회의를 열란 말이다.

구시렉은 생각보다 완강했다.

‘하긴 보통 일이 아니긴 하지.’

광기 치료+푸르네우스의 얼음 제거.

이 두 가지를 같이 해야 하는데 아무리 같은 악마 공작이라고 하더라도 힘을 적잖이 써야 하는 것이다.

태현은 당근을 내밀었다.

“구시렉. 만약 내가 해결한다면….”

-?

“네 아들을 돌려주겠다.”

-!

구시렉은 인상을 찌푸렸다.

아키서스의 사제들 사이에 갇혀 있는 구시렉의 아들, 구시온!

대륙에 소환되었다가 웬 미치광이 드워프들한테 붙잡히더니 이제는 아키서스한테 붙잡혀 있으니 구시렉의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게다가 구시온은 지금도 마력을 쭉쭉 뽑히고 있었으니 구시렉은 더더욱 데리고 가고 싶을….

“?”

태현은 의아해했다.

구시렉이 별로 기뻐하지 않았던 것이다.

“뭐야. 싫나?”

-주인님! 구시온 님은 데리고 오셔야 합니다!

구시렉 옆에 있던 악마 부관들이 당황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무리 붙잡혀 간 게 꼴사나워도 그렇지 구시온을 버릴 수는 없었던 것이다.

아키서스가 양보하고 내민 이 기회를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

-설마 구시온 님이 필요 없으신 겁니까?!

-아… 아니다.

구시렉은 급히 대답했다. 부관들은 걱정과 의심 섞인 눈빛으로 구시렉을 쳐다보았다.

설마 구시온을 버리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카르바노그가 구시렉이 별로 구시온을 안 좋아하는 것 같다고…]

‘너무하네.’

[아마도 저번에 잡혔을 때 구시온이 화신 편을 들어서 아니냐고 카르바노그가 묻습니다.]

‘구시온이 좀 착하긴 하지.’

아키서스 포병대들이 데리고 있는 악마들 중 구시온이 가장 착하고 성실한 편에 속했다.

오죽하면 드워프들도 ‘우리 구시온’ 같은 애칭으로 부를까.

태현도 구시온을 내주는 건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퀘스트를 위해서는 감수하겠다.’

[카르바노그가 감동의 눈물을 흘립니다.]

‘근데 이렇게 했는데도 토끼 부족 전사들이 나 공격하면 카르바노그 네가 책임져야 하는 거 알지?’

[카르바노그가 시선을 피합니다.]

* * *

저벅, 저벅-

태현과 같이 걸어가는 구시렉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아키서스 포병대 우리 안에 갇혀 있는 악마들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마계의 악마들은 서로 같은 악마라는 동지의식이 전혀 없었지만, 아키서스는 별개였다.

‘저 꼴을 나도 당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본능적인 두려움!

-…잠, 잠깐. 저건 빙결공의 부관, 폴리네르 아니냐!?

“앗. 젠장. 조용히 해라. 드워프들. 빨리 천 덮어놓도록.”

-죄송합니다! 환기 시간이라서….

-…….

구시렉은 경악했다.

아키서스 이 미친 새끼가 빙결공과 같이 움직이면서 빙결공의 부관을 감옥 안에 가둬놨어?!

최상급 악마들 몇 마리가 우리에 우울한 표정으로 갇혀 있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악마 부관 정도 되면 이제 마계에서도 악마 공작의 오른팔쯤 되는 높은 자리였다.

대륙에서 어지간한 보스 몬스터 정도는 손쉽게 뺨 때릴 수 있는 위치의 존재인데….

“비밀을 지켜주겠지?”

-…그, 그래.

자기 부관도 아니고 푸르네우스의 부관인데 구시렉이 어디 가서 말할 이유가 없었다.

조금 많이 어이가 없긴 했지만.

그러나 구시렉의 놀라움은 이제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저, 저, 저, 저… 저거???

“왜? 아. 저거?”

태현은 구시렉이 왜 놀라는지 깨달았다.

또 다른 악마 공작, 에다오르의 아버지, 고대의 악마 소환공 에다게르가 우리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소환공!!

-뭘 보는 거냐? 꺼져라.

-소, 소환공이 왜 저기 있단 말이냐!?

구시렉은 충격으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악마 공작들이 늙어 죽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세대 차이가 있긴 했다.

소환공 에다게르는 고대 제국이 멸망할 때도 직접 참가했던 악마 공작이었고, 소문이 맞다면 아키서스가 속임수로 마계를 파멸에 빠뜨렸을 때도 현장에 있었던 악마였다.

그의 지위를 대검공, 에다오르가 이어 받아서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는데….

여기 아키서스의 감옥에 갇혀 있을 거라고는 상상치도 못했었다.

-아키서스!! 대체 소환공을 어떻게 가둔 거냐?

“가둘 수도 있지. 왜 난리냐?”

-뭐… 뭐라?

태현은 얼굴에 철판을 깔고 뻔뻔하게 나왔다.

애초에 에다게르를 어떻게 가뒀는지를 설명할 수가 없는 상황.

이럴 때는 그냥 당당하게 우기는 게 나았다.

“싸우다 보면 어? 가둘 수도 있고 그런 거지.”

-네가… 네가 소환공을 싸워서 붙잡았다고?

“그건 네가 알 바 아니니까. 빨리 구시온이나 꺼내고 토끼 부족들이나 구해라.”

구시렉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진설의 조각을 3단계 개방한 푸르네우스보다 지금 가만히 서 있는 아키서스의 후계자 놈이 더 무서웠다.

이래서 늙은 악마들이 ‘아키서스와는 상종도 하지 마라’라고 했던 것일까??

포병대 드워프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물었다.

-그런데 교황님. 구시온은 왜 찾으시는 겁니까?

“풀어주려고.”

-…안 됩니다!!!

[아키서스 포병대의 드워프들이 크게 실망합니다!]

[충성도가 일시적으로 하락합니다!!]

[드워프들이 슬픔에 빠집니다!!]

“…….”

드워프들은 몸을 날려서 태현의 발목을 붙잡았다.

-차라리 다른 악마들을 풀어주십시오! 구시온이는 안 됩니다!!

-그놈이 얼마나 착한데!!

-…….

옆에서 듣고 있던 구시렉은 귀를 씻고 싶은 심정이었다.

드워프들한테 ‘착하다’라는 말을 듣는 악마라니….

그게 악마가 맞단 말인가?

“미안하다. 드워프들. 하지만 구시온은 이번 일에 필요해.”

-…크흐흑흫흐흫!!

-으헝헝헝헝!

드워프들은 땅이 꺼져라 울었다. 안에 갇혀 있던 구시온이 당황해서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어르신들?

-구시온이. 이제 우리가 작별할 시간인가 보다. 내가 너 주려고 아껴둔 먹이를 어제 줬어야 했는데….

-무슨 소리십니까! 저는 어르신들을 떠나고 싶지 않습니다!

-작작 해라 정신 나간 놈아!

구시렉은 벌컥 화를 냈다.

저 꼴을 보니 괜히 왔다는 후회만 들었다.

저런 놈을 구해주려고 아키서스와 거래를 했다니….

-악마 공작의 아들이라면 악마 공작의 아들답게 굴란 말이다! 네놈이 지금 무슨 꼬라지인지 봐라!

-아버지야말로 정신 차리십시오! 사악한 악마들이 걷는 길은 음침한 어둠의 골짜기로 이어져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의로운 신자들이 걷는 길은 아키서스께서 지켜주십니다. 나중에 사악과 타락의 길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어도 그때는 이미 늦었을 겁니다!

“…….”

[…….]

태현과 카르바노그는 할 말을 잃고 구시온을 쳐다보았다.

…아키서스 교단의 어지간한 NPC들보다 신앙심이 깊은 것 같은데??

“야. 빨리 풀어줘라.”

-알겠습니다.

철컥!

문이 열리는 그 순간,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음악공 구시렉의 아들, 구시온이 진심으로 회개하고 죄를 씻습니다!]

[구시온이 악마 종족을 버리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구시온이 진실된 마음으로 아키서스의 신앙을 받아들입니다.]

[구시온이 아키서스의 전투천사로 전직합니다!]

파아아앗!

구시온의 전신에서 사악한 기운이 빛과 함께 사라졌다.

그리고 머리통이 두 개 더 생겨났다. 팔의 개수도 3배로 늘어났다.

마지막으로 등 뒤에는 천사의 날개가 자라났다.

예전에 본 적 있었던, 아키서스 교단의 전투천사들이 보여줬던 그 모습!

구시온이 지금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마계의 악마가 타락을 부정하고 아키서스 교단의 신앙을 받아들입니다!]

[이는 어마어마한 사건으로, 교단의 명성을 드높일 것입니다!]

[잊혀졌던 아키서스의 권능이…]

[신성 스탯이…]

[제국의 후계자 스탯이…]

[……]

[……]

[레벨 업 하셨습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너무나도 신화적인 사건에 모두가 압도되었다.

보고 있던 어느 누구도 입을 열지 못할 정도로.

가장 빨리 정신을 차린 태현이 구시렉을 보며 말했다.

“…그래도 토끼 부족 풀어주는 건 약속이니까 해주는 거 잊지 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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