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605화
길드 동맹 길드원들은 씩씩대며 외쳤지만, 다들 지금 그걸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왜 자기들끼리 싸우고 있지?
“굶주린 혼돈의 하수인들이 워낙 사악한 만큼, 자기들끼리 다퉈서 새로 우두머리를 정하려는 거 아닐까?”
“길드 동맹처럼?”
“야….”
“에이. 길드 동맹처럼은 아니지. 길드 동맹은 아무리 실수를 해도 길마가 안 비키잖아.”
“너희 일부러 이러는 거냐??”
* * *
[곰 수인 부족의 대전사, 갈랄타가 쓰러집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명성이 크게 오릅니다!]
[제국의 후계자 스탯이 오릅니다!]
[검술 스킬이 오릅니다!]
[……]
[……]
넉넉한 보상.
악마 공작들과 같이 쓰러뜨렸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의 보상이 들어온다는 게 태현을 기쁘게 만들었다.
그렇게 힘들게 싸운 보람이 있….
[주의하십시오! 굶주린 혼돈의 가호를 받고 있는 갈랄타는 한 번의 죽음으로는 영원히 쓰러지지 않는 괴물 같은 존재입니다.]
[갈랄타가 다시 깨어난다면 당신의 이름을 기억할 것입니다.]
“…푸르네우스 만세!! 갈랄타를 뒤집어 놓으셨다!!”
태현은 갈랄타를 데리고 도망치는 곰 부족 전사들의 뒤에 대고 외쳤다.
[곰 부족 전사들의 지능이 부족합니다.]
[굶주린 혼돈의 힘이…]
[설득에 실패합니다!]
[화술 스킬이 조금 오릅니다.]
‘칫.’
태현은 입맛을 다셨다.
예전에는 잘 통했던 방법이었는데 역시 두 번은 안 통했다.
옆에 있던 푸르네우스가 황당과 경멸의 눈빛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대체 뭔 개수작을….
“널 칭찬한 거잖나.”
-…….
푸르네우스는 무언가 매우 찜찜했지만 태현의 깊은 속셈까지는 눈치채지 못했다.
아무리 푸르네우스라도 그 짧은 사이에 태현이 갈랄타의 원한을 자신한테 돌리려고 했다고는 의심하지 못한 것이다.
-지금 쫓아가야 한다. 저놈들이 회복해서 돌아오면 얼마나 끔찍할지 상상도 가지 않는군.
가장 많은 피해를 본, 음악공 구시렉이 이를 갈며 말했다.
굶주린 혼돈의 마계 침공이 본격화된 지금 제대로 막지 않으면 피해가 얼마나 커질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원래라면 다른 악마 공작이 피해를 보면 ‘그것 참 보기 좋구나’ 하고 좋아했을 푸르네우스도 구시렉의 의견에는 동의했다.
-놈들을 전멸시키지 않으면 아키서스 이래 최대의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사람 옆에 있는데 말이 너무 심한 것 아닌가?”
두 악마 공작은 태현의 말을 무시했다.
아키서스가 마계에 온갖 피해란 피해는 다 입혔지만, 적어도 한 가지 긍정적인 영향은 남기고 갔다.
악마 공작들한테 ‘그래도 뭉쳐야 할 때는 뭉쳐야 하는구나’라는 깨달음을 남기고 간 것이다.
뭉쳐야 할 때 안 뭉치면 아키서스한테 아키서스당하는 미래밖에 남지 않았다.
굶주린 혼돈의 군대를 보니 그런 생각이 더욱더 강하게 들었다.
<마계 대회의-아키서스의 화신 퀘스트>
다행히 멍청한 악마들도 지금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 움직이려고 하고 있다.
악마 공작들이 주최하는 ‘마계 대회의’는 마계에 긴급한 일이 생겼을 때만 열리는 중대 행사다.
이 행사에 참가해 악마들을 당신의 밑으로 끌어들여라.
아키서스의 화신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보상: ?, ???
‘장난하나 진짜?’
태현은 퀘스트창에 정색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저게 아키서스 화신 직업 퀘스트라는 게 믿겨지지가 않았다.
아니, 아키서스의 화신 직업 퀘스트면 권능 스킬 모아서 힘을 되찾는 걸 우선시해야지 왜 마계 일에 끼어든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아키서스의 화신 직업 퀘스트랑은 맞지 않았다.
‘그리고 아키서스의 화신이라면 할 수 있을 거라고 못 박는 점이 매우 괘씸하군.’
태현은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리 어려운 퀘스트를 던져놔도 그 밑에 ‘아키서스의 화신이라면 할 수 있을 거다!’라고 붙여놓으면 다 되는 줄 아는 것 아닌가?
그런 의심이 들 정도였다.
[카르바노그가 그래도 악마 공작들 둘을 포섭했으니 희망이 보인다고…]
‘지금이야 내 말을 듣지만 언제 내 뒤통수를 때릴지 모르는 놈들이야. 카르바노그.’
특히 푸르네우스 같은 경우에는 정말 위험한 편이었다.
태현한테 성을 뺏긴 적이 있는데다가 성격도 난폭하고 오만하지 않은가.
물론 누구든 성을 뺏기면 난폭해지긴 하겠지만 푸르네우스는 그걸 감안해도 좀 심했다.
-일단 놈들을 추격하고 나서 이야기하도록 하지.
-동의한다. 추격을… 음?
악마 공작들은 멈칫했다.
도망치던 굶주린 혼돈의 부하들 사이에서 싸움이 일어난 것이다.
-매복을 시켜놨었나? 역시 아키서스….
“아닌데.”
-부정할 것 없다. 그런 걸로 해두지.
“…….”
악마 공작들이 멍청하게 구는 것도 나름 웃기긴 했지만, 태현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집중했다.
[늑대 부족 전사들이 곰 부족 전사들을 공격합니다!]
[여우 부족 전사들이 곰 부족 전사들을 공격합니다!]
‘자기들끼리 싸우나!?’
태현은 메시지창에 놀랐다.
물론 굶주린 혼돈을 섬기는 놈들이 기본적으로 난폭하고 과격하단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자기들끼리 싸울 줄이야.
[카르바노그가 누가 우두머리를 할지 다투는 거 아니냐고 묻습니다.]
‘아마 그럴 가능성이 높겠지.’
-놀랍군.
구시렉이 그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간질로 저런 상황을 만들다니… 역시 아키서스답군.
-소름 돋는 이간질 솜씨다.
“…….”
태현은 두 악마 공작에게 아니라고 해명하려다가 말았다.
지금 말해봤자 믿어주지도 않을 것 같았던 것이다.
“그래. 내가 저렇게 다투게 만들었다.”
악마 공작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한 걸음 태현에게서 물러났다.
매우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괜히 공격했다가 뭉치게 하는 것보다는, 자기들끼리 싸우게 기다리는 게 낫….”
<토끼 부족 구출-카르바노그 교단 퀘스트>
토끼 수인족 전사들은 먼 옛날부터 카르바노그를 섬겨왔던 충실한 이들이었다.
교단이 쇠퇴하고 여러 야만부족들의 타락으로 굶주린 혼돈 세력에 가담하게 되었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아직 신앙심이 남아 있다.
토끼 부족을 구출해서 진정한 신앙심을 돌려주어라!
보상: ?, ???
“!”
[!]
태현과 카르바노그 모두 놀랐다.
‘아니. 카르바노그 넌 놀라면 안 되지…!’
태현은 황당해했다.
자기 신도를 자기가 몰라?
[카르바노그가 이게 오랫동안 잊혀져 있다가 깨어나면 기억이 오락가락할 때가 있다고 변명합니다.]
[제발 토끼 부족들을 구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알겠어.’
카르바노그의 부탁도 부탁이지만, 굶주린 혼돈의 하수인들을 빼돌려서 원정대에 참가시킬 수 있다면 무조건적으로 이득이었다.
‘…그런데 하늘성에 얼려 놓은 고대 수인 부족들 중에 토끼 부족들도 있지 않았나…?’
태현은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났다.
노드란체 퀘스트를 깨기 위해 고대 수인 부족 전사들을 모조리 얼려서 하늘성 냉기의 핵 근처에 봉인시켜 놓은 상태.
분명 그 부족들 중에 토끼 부족들도 있었던 것 같은데?
[카르바노그의 얼굴이 창백해집니다.]
‘그때 말을 제대로 했어야지….’
[카르바노그가 일단 저 부족들부터 구해달라고 말합니다!]
-그렇군. 확실히 싸우는 걸 그냥 보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는데.
푸르네우스는 모처럼 태현의 말에 동의했다.
원래 외부에서 공격이 들어오면 내부에서는 뭉치기 마련.
자기들끼리 다투다가도 태현이 공격하면 멈출지도 몰랐다.
“…다고 생각하는 건 어설픈 하수의 생각이다. 진정한 고수는 이럴 때 공격을 하지.”
-그런가?
-…….
구시렉은 태현의 말을 듣고 그런가보다 싶었다.
아무렴 아키서스인데 이런 전술을 모를까.
물론 푸르네우스는 표정이 종잇장처럼 구겨졌지만….
[최고급 화술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최고급 전술 스킬을…]
[……]
[……]
[아키서스의 화신입니다!]
[악마 공작들이 당신의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상황도 상황인 데다가 태현의 신분도 신분이었다. 악마 공작들은 더 이상 말리지 않고 추격 준비를 했다.
-내가 왼쪽, 성뺏긴ㄴ… 아니, 푸르네우스가 오른쪽을 맡도록 하지.
-방금 성….
“자! 그러면 내가 가운데를 맡겠다! 추격 개시!!”
푸르네우스가 따지기도 전에 태현은 출발 명령을 내렸다.
대기하고 있던 파티장들은 바로 추격 개시 명령을 전달했다.
“앞으로! 쫓으란다!”
“아까 안 쫓을 테니까 쉬어도 된다고 한 놈 누구야?”
“길드 동맹 놈들인듯.”
“아니라고!! 이 새끼들 진짜 너무한 거 아니냐!?”
길드 동맹 출신 파티장은 폭발해서 씩씩댔다.
“미, 미안. 우리가 오해했나 봐.”
“새로 들어온 사람들이면 더 잘 해줬어야 했는데 우리가 부족했다. 미안하게 됐어.”
“…알면 됐다. 앞으로 조심하라고.”
길드 동맹 출신 파티장이 납득하고 넘어가려고 하자, 뒤에 있던 같은 출신 길드원이 소곤거렸다.
“저. 파티장님. 사실 우리가 한 소리인데요.”
“…….”
“…….”
“우리가 가장 앞장서겠다! 길드 동맹의 이름을 보여주자!!!!”
길드 동맹 출신 파티장은 황급히 태세를 전환한 뒤 외쳤다. 그러나 이미 파티장들의 시선은 싸늘하게 바뀐 상태였다.
* * *
[카르바노그가 안타까움의 눈물을 주륵주륵 흘립니다.]
‘조금만 기다려라. 카르바노그!’
-용용아. 속도 올려라!
“알겠다. 주인이여!”
태현은 마치 이다비가 고생하는 걸 봤을 때처럼 마음이 아팠다.
카르바노그처럼 쾌활하고 유쾌한 신이 이렇게 슬퍼하는 건 본 적이 드물었던 것이다.
미우니 고우니 해도 도움을 많이 받았던 만큼 카르바노그를 도와주고 싶었다.
“김태현 선수! 너무 위험합니다!”
“속도 줄이세요!!”
뒤에서 따라붙고 있던 파티장들이 기겁해서 외쳤다.
용용이를 타고서 돌진하는 태현의 속도가 지나치게 빨랐던 것이다.
아무리 태현이 자기 실력을 믿는다지만 혼자서 저 아수라장에 끼어들었다가는 크게 다칠 수가 있었다.
그러나 태현은 무시하고 전진했다.
그 뒷모습에 배장욱은 감탄했다. 이 상황에서 저럴 이유는 하나밖에 없는 것이다.
쇼맨십!
정작 본인은 별 관심이 없다면서 매번 사양하지만, 판을 깔아주면 누구보다 더 잘하는 게 바로 김태현이란 선수였다.
이런 살벌한 난이도의 퀘스트를 하면서 보는 사람들까지 생각해서 저런 퍼포먼스를 보여주다니….
‘감동적이다. 정말!’
물론 태현은 그런 생각은 전혀 없었다.
‘토끼 부족 찾아서 가까이 붙은 다음 권능 스킬로 지원해서 시간을 번다. 그런 다음 설득해서 이탈시켜야 해!’
정확히 말하자면 그럴 생각을 할 시간이 전혀 없었다.
수인 부족 전사들이 서로 치열하게 다투고 있는 와중에서 한 부족을 찾아 설득하고, 데리고 나오는 건 아무리 태현이라도 상상을 초월하는 난이도인 것이다.
[카르바노그가 저기서 토끼들의 기운이 느껴진다고 말합니다!]
‘알겠어!’
-주인이여. 조심해야 한다! 보통 전사들이 아니다!
용용이가 태현에게 경고를 날렸다.
지금 바로 앞은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
갈랄타를 지키기 위해 곰으로 변신한 곰 부족 전사들이 포효하며 주변을 앞발로 박살 내고 있었고, 그 부족 전사들을 짓밟기 위해 변신한 늑대 부족 전사들과 여우 부족 전사들이 사납게 곰 부족 전사들의 급소를 물어뜯었다.
다들 레벨이 500, 600은 되는 데다가 굶주린 혼돈의 힘까지 받은 상태였으니 개개인이 보스 몬스터라고 봐야 했다.
아까 플레이어들이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던 것도 숫자에서 우위였고, 교단들의 어마어마한 버프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할 수 있을까?’
태현은 온몸을 긴장시키며 앞을 쳐다 보았다.
토끼 부족들을 데리고 나가기 전에, 토끼 부족들이 전멸하지나 않을까 걱정이었다.
이 살벌한 부족들 사이에서 어떻게….
서걱!
그때 앞에서 싸우던 늑대 부족 전사와 여우 부족 전사의 목이 날아갔다.
-약해 빠진 놈들! 비켜라! 목이 날아가고 싶지 않으면!
-으아악! 미치광이 토끼 부족 놈들이다!!
-누가 저놈들을 부른 거냐! 내가 토끼 부족 놈들은 부르지 말자고 그렇게 말했는데!!
“…….”
[…….]
예상과는 다른 광경에, 태현과 카르바노그는 침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