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602화
유성 게임단 선수는 불길한 말을 한 동료한테 구박을 했다.
하지만 그들은 진심이었다.
그들이 한 준비라면 충분히 스미스의 대가리를 깨부술 수 있을 테니까.
‘이 정도 언데드 군대가 이제까지 있었을까?’
질과 양.
하나도 채우기 힘든데 둘 다를 만족시킨 언데드 군대는 흔치 않았다.
우선 양.
사막을 꽉 채운 언데드 군대.
여기서 끝나지 않고 모래 밑의 지하에는 언데드 괴수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 뒤의 도시에도 언데드들이 대기하고 있고, 그 뒤의 뒤에도 또 대기하고 있는….
보는 것만으로도 현기증이 날 정도의 규모였다.
그런데 질적으로 부족하지 않았다.
<네크로노미콘의 힘>, <네크로노미콘의 영역>, <네크로노미콘의 저주> 등등의 스킬로 강화된 언데드들은 가장 약한 구울 전사들도 데스 나이트급 위력을 자랑했다.
구울 전사가 이 정도였으니, 그 위의 데스 나이트들. 그리고 어비스 나이트와 둠 나이트들은 얼마나 강화가 되었을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단순 기사, 지휘관형 언데드들만 있지 않았다.
살덩이 골렘, 키메라 골렘, 융합체 골렘부터 시작해서 본 드래곤, 키메라 와이번 등 각종 살벌한 언데드 괴수들.
그리고 그 괴수들을 뒷받침해 줄 흑마법사형 리치 언데드들!
이 정도쯤 되면 보는 사람들은 이런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저거 어떻게 유지하는 거지?’
특히 흑마법사 플레이어들 입장에서는 일반 플레이어들보다 몇 배로 믿기 힘든 광경이었다.
대부분의 흑마법사 플레이어들은 ‘합성 아니야?’라고 의심할 정도의 광경.
그 정도로 언데드 군대를 유지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초보 네크로맨서입니다… 제가 어제 스켈레톤 여덟 마리를 소환시키고 필드에서 사냥을 돌고 있었는데, 갑자기 쓰러지더라구요. 버그 아닌가요?>
└버그 아닙니다. 초보시면 여덟 마리는 너무 많아요. 한 마리씩 데리고 다니시고, 로그아웃하실 때는 소환 해제하세요. 안 그러면 접속했을 때 MP 바닥납니다.
<네크로맨서 랭커들은 대체 어떻게 언데드 부대를 데리고 다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일단 MP 회복 옵션 달린 귀걸이, 반지, 팔찌, 발찌, 신발, 모자, 로브는 필수입니다. 지팡이도 가능하면 MP 회복 옵션 달린 걸 쓰는 게 좋은데 그건 구하기 힘드실 테니 나머지만 맞추시고….
└이미 충분히 힘든데요??
└그거 힘드시면 네크로맨서 못 하세요.
한 번 필드를 휩쓸고 다닐 때는 이렇게 화려하고 위엄 넘치는 직업이 없었지만, 사실 네크로맨서는 생각보다 되게 자잘하게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이 많았다.
오죽하면 네크로맨서들이 3D 직업이라고 자조를 할까.
그중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이 바로 언데드 군대 유지!
한 마리당 MP가 얼마나 들어가는지, 자기가 감소 옵션이 얼마나 있는지, MP가 회복이 얼마나 되는지….
이걸 다 하나하나 계산하고 소환하고 그러다 실수 하나 나면 눈물 흘리면서 언데드 소환 취소하고 재료 다시 구하다 보면 슬슬 판온을 접고 싶어졌다.
‘스킬 세트가 완성되었어.’
이세연은 간단하게 계산을 되짚어봤다.
지금도 수많은 메시지창이 뜨고 있었다.
[언데드들이 너무 많습니다! MP가 빠르게 감소합…]
[느부캇네살의 비전으로 인해 MP가 회복…]
[너무 많아서 제대로 된 지휘가 불가능…]
[……]
[……]
대충 MP가 감소하고, MP가 회복하고, 언데드가 너무 많아서 페널티 붙고….
하지만 이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이런 언데드들을 소환해서 유지하고 있다는 것.
한땀한땀 직업 퀘스트를 깨서 장비를 모으고, 스킬을 얻고 할 때마다 ‘이게 진짜 될까?’ 싶을 정도로 막막했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지원으로 결국 완성시킨 것이다.
이제 굶주린 혼돈과 싸울 때였다.
“방송 시작합니다!”
“오스턴 왕국으로! 바다를 건너서 오스턴 왕국으로 가자!”
사막 투성이인 아스비안 제국에서 지루한 소모전을 벌일 생각은 없었다.
스미스와 미국 선수들이 있는 오스턴 왕국!
유성 게임단은 제대로 뭔가 보여주기 위해서 오스턴 왕국으로 갈 생각이었다.
* * *
음률과 선율의 화경.
건너 온 플레이어들이 감탄할 정도로 아름다운 마계의 영역.
…그 영역이 지금 개판나고 있었다.
정확히는 태현이 끌고 온 원정대 때문이 아니라, 먼저 건너 온 굶주린 혼돈의 군대 때문이었다.
-꽃을 짓밟고 음악을 끊어버려라, 악마 놈들에게 굶주린 혼돈 님의 위대함을 알려주어라!
-예!!
지금 넘어 온 굶주린 혼돈의 하수인들은 야만부족 계열이 분명했다.
털가죽을 두른 굶주린 혼돈의 야만전사들은 닥치는 대로 양손무기를 휘두르며 주변을 부수고 불태웠다.
뒤에 있던 주술사들도 말리는 대신 닥치는 대로 마법을 날려댔다.
그 모습에 악마들은 분노해서 외쳤다.
-이 아무것도 모르는 야만스러운 타락자 놈들이 어디를 더럽히느냐!
-구시렉 님이 너희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하하! 악마 공작 따위는 두렵지 않다. 굶주린 혼돈 님 앞에서 악마 공작 따위는 하찮은 존재에 불과하다!
‘와. 열 좀 받겠군.’
태현은 맞붙는 상황을 보며 구시렉이 불쌍해졌다.
골짜기 안에서 이런 싸움이 벌어졌다면 태현은 뒷목을 잡았을 것이다.
이기든 지든 무조건 구시렉의 눈에서는 피눈물이 날 수밖에 없는 상황.
-헉… 헉헉. 아키서스 개자식아!
“?”
태현은 뒤를 돌아보았다.
빙결공 푸르네우스가 냉기를 흩뿌리며 뒤에서 달려오고 있었다.
“너 왜 거기 있냐?”
-네… 네놈이… 나를 두고….
“아. 그건 오해다. 마계의 일이 워낙 급하니까 먼저 들어온 거지. 봐라. 지금 구시렉 땅이 불타고 있는데.”
-그딴 게 지금 뭐가 중요하단 말이냐! 한시라도 빨리 마계로 연결된 관문을 닫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계가 타락할 수 있다!
[카르바노그가 악마들이 타락 걱정을 하는 게 좀 웃기다고 말합니다.]
-빨리 구시렉의 땅 따위는 버려놓고 관문을 닫을 방법을 찾아야….
-푸르네우스!!
뒤늦게 자신의 성에서 달려 나온 구시렉이 푸르네우스를 알아보고 눈이 뒤집혔다.
물론 앞에서 날뛰는 굶주린 혼돈의 전사들도 있고, 태현과 같이 온 원정대 플레이어들도 있었지만, 원래 이럴 때 가장 잘 보이는 건 평소에 미웠던 놈.
구시렉은 푸르네우스를 보며 격분해서 욕설을 내뱉었다.
-네놈이!
-오… 오해다!
푸르네우스도 이 상황에는 당황했는지 말을 더듬었다.
구시렉 버리고 관문 해결하러 가자고 하다가 걸렸으니 악마 공작의 뻔뻔한 낯짝으로도 조금 부끄러운 상황이었다.
-내가 네놈이 배신할 줄 이미 알고 있었지!! 굶주린 혼돈하고 결탁해서 내 영지로 들어오다니. 네놈이 할 만한 짓이다! 그러니까 네놈이 성을 도둑맞고 속는 것이다. 악마 공작씩이나 된 놈이 굶주린 혼돈에게 무릎을 꿇다니! 너는 자격이 없다!
-…….
사과를 하려던 푸르네우스의 마음도 사라지게 만드는 폭언의 연타.
서로 악마 공작인 만큼. 구시렉은 푸르네우스가 어떻게 하면 더 빡칠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푸르네우스는 주변의 얼음마저 녹이며 극노하고 있었다.
-저… 저딴 새끼를 구해줄 필요는 없다! 버려놓고 빨리 관문 해결 방법이나 찾아야 한다!
‘아차. 너무 재밌어서 정신 놓고 보고 있었군.’
태현뿐만 아니라 이다비나 다른 플레이어들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악마 공작 둘이 서로를 삿대질하면서 싸우는 모습을 또 언제 본단 말인가.
흥미진진할 수밖에 없었다.
“구시렉! 오해다! 푸르네우스가 물론 성을 도둑맞고 이런저런 멍청한 실수를 저지르긴 했지만, 굶주린 혼돈에게 무릎 꿇을 정도로 자존심이 없는 악마는 아니다!”
-…!
구시렉은 그제야 다른 일행을 알아차렸다.
태현을 비롯한, 신성력을 강력하게 풍기는 연합 원정대!
각 교단의 고위 NPC들이 곳곳에 배치되어서 플레이어들을 이끌고 있는 만큼 신성력이 안 느껴질 수가 없었다.
-여기가 어디라고… 아키서스! 네놈이 겁을 상실한 것이냐?
저번에 굶주린 혼돈의 요새에 붙잡혀 있을 때와 달리, 자기 영역에 자리 잡고 있는 구시렉은 그야말로 위풍당당 그 자체였다.
원래 악마들은 마계에 있을 때 가장 강력하기 마련.
힘을 많이 잃고 대륙에 내려왔을 때 망신을 당한 악마라도, 마계에서는 강력한 모습을 보이곤 했다.
물론 태현이 저런 모습에 겁을 먹지는 않았다.
그러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보스 몬스터들의 목을 날려 온 것이다.
“구시렉! 굶주린 혼돈의 요새에 붙잡혀 있던 널 구해준 게 누구인데, 은혜를 잊은 것이냐! 너희들이 그렇게 욕하는 아키서스 교단의 성기사들도 은혜는 잊지 않는데,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은혜를 잊다니!”
-…조용히 하지 못하겠냐!
구시렉은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이고 외쳤다.
지금 듣는 귀가 몇 개가 있는데 저런 말을 외치다니.
물론 구시렉이 그렇게 말한다고 멈춰주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아키서스 포병대의 드워프들과 거인들이 외쳤다.
-이놈 구시렉아! 교황님께서 네게 자비를 베풀어 풀어줬는데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여기 들어와서 따끔하게 교육을 받고 싶은 것이냐!
-맞습니다, 아버지! 은혜를 잊으면 그게 짐승이지 악마겠습니까?
-아이구 우리 구시온이! 말도 잘 해!
-…….
푸르네우스는 처음으로 구시렉을 동정했다.
드워프들 사이에서 구시렉을 비난하는 구시온을 보자 아무리 라이벌이라 하더라도 안쓰러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저 모습을 보니 차라리 성을 뺏긴 게 나을 것 같았다.
“구시렉! 네가 은혜를 모르는 배은망덕한 놈이란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지금 상황이다. 굶주린 혼돈이 마계를 점령하기 위해 곳곳에 관문을 열고 있다. 한시라도 빨리 대비하지 않으면 마계가 위험하다!”
-네놈도 충분히 위험해!
[카르바노그가 솔직히 반박하기 힘들다고 움찔합니다.]
구시렉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모든 악마들을 복속시키기 위해 찾아온 굶주린 혼돈 vs 악마 공작을 죽이거나 아들을 가두거나 성을 뺏어서 튀어버린 아키서스!
자웅을 가리기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태현은 당당했다.
“내가 낫지!”
“맞습니다!”
“이 멍청한 악마들아! 굶주린 혼돈보다는 당연히 김태현 선수가 낫지! 정신 차려라!”
원정대 플레이어들부터 교단 NPC들까지 입을 모아 외치자 구시렉은 이를 갈았다.
-시끄럽다. 더 이상 너희들을 상대해 줄 시간은 없다! 일단 굶주린 혼돈 놈들부터 여기서 치워버리고 너희들을 상대해 주겠다.
“김태현 선수. 저 악마 공작 설득이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그냥 같이 공격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몇몇 파티장들이 걱정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마계에서 악마들이 얼마나 강해지는지는 모든 플레이어들이 알고 있었다.
구시렉이 굶주린 혼돈들을 처리하고 나서 태현의 설득을 무시한다면, 남은 건 싸움밖에 없었다.
원정대의 전력도 이제까지 모인 적 없을 정도로 대단하긴 했지만, 자기 영지에 있는 악마 공작의 힘도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
과연 괜찮을까?
[굶주린 혼돈의 야만전사들이 <소리 무효의 함성>을 터뜨립니다!]
[굶주린 혼돈의 주술사들이 <조각난 음율의 노래>를 시전합니다!]
“…아니. 구시렉이 밀리잖아?!”
-저런 멍청한 놈 같으니?!
푸르네우스는 정말로 경악했다.
악마 공작도 가끔 패배할 때가 있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집 밖에서 싸울 때였다.
자기 영역에서 싸울 때는 다 큰 드래곤도 악마 공작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구시렉은 자기 영역에서 밀리고 있었다.
‘아니. 구시렉이 약한 게 아니라…’
태현은 이상함을 눈치챘다.
구시렉이 약한 게 아니었다.
여기 들어온 굶주린 혼돈의 군대가 정확하게 구시렉의 약점만 노리고 있었다!
플레이어들이 보스 몬스터 잡기 전에 공략 방법을 세우듯, 완전히 공략 방법을 준비해 온 굶주린 혼돈의 하수인들.
악마 공작들 입장에서는 한 방 먹은 셈이었다.
-아버지를 구해주십시오! 교황님!
“…그, 그래!”
어차피 구시온이 외치지 않았어도 나설 생각이긴 했지만, 구시온이 저렇게 외치니 좀 당황스럽긴 했다.
[구시온의 충성도가 크게 오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