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598화 (1,597/1,826)

§ 나는 될놈이다 1598화

“마계로 간다.”

“…?”

“예?”

뒤에 있던 랭커들은 귀를 의심했다.

어디로 간다고?

“마계로.”

“왜요?”

“악마들이 굶주린 혼돈한테 지배당하면 상황이 더 안 좋아지니까 그걸 막으려고.”

“아…!”

랭커들은 태현의 말에 납득했다.

확실히 굶주린 혼돈의 강점 중 하나는 이것저것 NPC들과 세력들을 흡수하며 자신의 부하로 만들고 있다는 점이었다.

여기에 악마 군대까지 추가된다면 더욱더 막강해지리라.

“그러면 악마들을 먼저 공격해서 제거하려는 건가요?”

“아니. 악마들을 지배해서 데려오려고.”

“…….”

“???”

랭커들은 잘 듣다가 멈칫했다.

응?

* * *

-주인님, 모험가 놈들이 오고 있습니다.

-드디어 움직이는가!

푸르네우스는 파도처럼 밀려오는 적들을 얼려 버리다가 말고 멈췄다.

그렇게 가증스럽게 굴더니 드디어 나서는 모양이구나!

-빨리 와라, 아키서스 놈아! 여기 이 적들이 얼마나 많은지 보이지도 않느….

외치던 푸르네우스는 고개를 돌렸다.

모험가들의 방향이 이상했던 것이다.

-어디 가냐?? 어디 가냐???! 야!

새로 생긴 관문을 통해 마계로 넘어가기 시작한 모험가들!

푸르네우스는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저 미친 모험가 놈들이 떼로 몰려와서 한다는 게 싸움 구경에 이제는 관문으로 넘어가?

-돌아오란 말이다! 돌아오라고!

[<마계로 이어지는 통로>를 이용합니다.]

[이동합니다!]

[차원을 관통해서 움직입니다. 후유증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이동 속도가 내려갑니다.]

[후유증으로 인해…]

[……]

“으억!”

“끄어억….”

넘어온 플레이어들은 뒤흔들리는 시야에 괴로워했다.

항해에서 엄청난 폭풍이라도 만나지 않는 한 경험할 일 없는 멀미!

“와. 마계 오랜만에 오네. 예전에 마계 유행할 때 한 번 가보고 말았는데.”

“그때 마계 진짜 힘들었지.”

“뉴비들이 마계가 뭔지 알겠냐?”

랭커들 중 마계 경험이 있는 랭커들은 추억이 떠올라서 우수에 찬 눈빛을 보냈다.

물론 신진 랭커들한테는 헛소리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뭐라는 거야?”

“잠깐. 저거 길드 동맹 랭커잖아.”

“길드 동맹 그때 전멸할 뻔하지 않았나?”

“…….”

그 말을 들은 길드 동맹 랭커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기억력 좋네 이 새끼들….’

한때는 마계로 가는 길이 열리고 엄청나게 인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퀘스트 있는 몇몇 랭커만 조용히 들어가는 식으로 바뀌었다.

마계라는 지역 자체가 워낙 난이도가 높은 데다가 실패할 경우 탈출하기도 쉽지 않았던 것이다.

어차피 대륙에도 아직 남아 있는 곳들이 많은데, 퀘스트라도 있지 않은 한 굳이 마계까지 갈 이유가 없었다.

-교황 성하. 마계의 악마들은 신성력에 매우 예민한 편이오. 이렇게 많은 인원들이 넘어왔으니 언제라도 악마들이 찾아올 수 있소.

“그렇긴 하겠지.”

태현은 저번 고대 제국 관련 퀘스트를 떠올렸다.

과거로 넘어간 건 물론이고 마계까지 엮이는 바람에 정말 죽을 맛이었던 퀘스트였다.

사방팔방에서 아키서스 죽이겠다고 달려오는 악마들이 우글우글거렸으니….

게다가 지금은 혼자 온 게 아니라 파이토스 교단, 베레타르바 교단, 타이란 교단, 데메르 교단 등등 고위 NPC들을 데리고 온 상태였다.

일종의 종합선물세트!

-한시라도 빨리 위치를 파악하고 악마들과 싸울 준비를 해야 하오.

“여기서? 일단 싸우기 좋은 곳으로 이동해야 하지 않나?”

-하지만 교황 성하. 이동하다가 적을 만나면 위험할지도 모릅니다.

데메르 교단의 대주교, 비니시오가 태현에게 말했다.

지금은 평소처럼 태현 혼자 돌아다니는 것과는 상황이 달랐다.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다 같이 움직이는 것이다.

잘못해서 포위당하거나 기습이라도 당하면 크게 손실이 난다!

[카르바노그가 여기 길을 잘 알지 못해서 아쉽다고 말합니다.]

-제가 여기 길을 잘 압니다!

“!”

-!

[!]

갑자기 뒤에서 들려오는 외침에, 다들 놀라며 시선을 돌렸다.

-누구지? 교단 성기사인가?

비니시오 대주교는 놀라워하며 물었다.

아키서스 교단의 성기사라면 분명 악마들과 많이 싸워 왔을 테니, 마계의 길을 잘 알지도 몰랐다.

그러나 말을 꺼낸 건 아키서스 교단의 젊은 성기사가 아니었다.

그건 악마 구시온이었다.

-…….

-…….

주교들이 황당해하는 사이, 드워프들은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우리 구시온이! 어쩌면 이렇게 기특할 수가 있느냐!

-세상이 널 악마 공작의 아들이라고 비난하지만 우린 널 믿는단다!

-…잠깐, 지금 악마 공작의 아들이라고 하셨소?

대주교 한 명이 당황해서 물었지만 아키서스 포병대의 드워프들은 무시했다.

[악마 구시온이 지도를 추가합니다.]

[<불타오른 회랑>의 지도가 추가됩니다.]

마계에서도 악마 공작이 지배하고 있는 영지가 있고, 아무도 주인이 없는 땅이 있었다.

<불타오른 회랑> 같은 경우는 후자였다.

‘악마 공작이 없어서 그나마 다행인가?’

만약 악마 공작의 땅이었다면 오자마자 한바탕 격돌이 벌어졌을 것이다.

차라리 지금처럼 중립 지역에 떨어진 게 나았다.

“구시온. 여기서 가장 가까운 악마 공작의 영역이 어디인지 아나?”

-구시온이 아무리 정신나간 놈이라 하더라도 그걸 말해주겠나?

옆에 갇혀 있던 소환공 에다게르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지금 구시온이 무슨 아키서스의 계략에 당했는지 저쪽 편을 들고 있기는 했지만, 에다게르는 구시온을 믿었다.

분명 언젠가 정신을 차리고 악마 공작의 아들다운 품위를 되찾으리라.

-예! 압니다. 제 아버지, 음악공 구시렉 님의 영역입니다!

-야 이 정신 나간 놈아!!

에다게르는 기겁해서 외쳤다.

설마 설마 했는데 진짜 자신의 아버지가 있는 위치를 불어버린 것이다.

아무리 미쳐도 지킬 선이 있지 않은가!

“구시온. 저 붙잡힌 악마 공작 놈 말 듣지 마라.”

-맞아. 구시온 너 인마. 교황 님께서 너를 얼마나 아끼는지 알지?

태현과 드워프들은 구시온을 달랬다. 구시온은 헤헤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에다게르는 경악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모습을 보면 구시렉이 얼마나 가슴이 찢어질까!

* * *

악마 공작.

마계에서 가장 강력한 악마들에게만 주어지는 칭호이자, 혼돈으로 가득 찬 마계의 땅을 다스릴 수 있는 칭호였다.

이런 위엄 넘치는 칭호에 비해, 사실 악마 공작들은 다들 한두 번씩 험한 꼴을 당한 적이 있었다.

워낙 수명이 긴 데다가 심심하면 대륙으로 내려가려고 시도하다 보니 가끔은 격퇴도 당하고 하는 것이다.

그중에서 악마 공작 구시렉은 최근에 좀 많이 망신스러운 일을 당한 악마 공작이었다.

무려 굶주린 혼돈의 군세한테 붙잡혀서 요새로 끌려갔었던 것이다.

-주인님. 제게 군세를 주신다면 구시온 님을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

부관 중 하나가 그렇게 말하자, 구시렉은 필요 없다는 듯이 손을 흔들었다.

-필요 없다.

-…?!

-내 자식이라면 어떤 위기에 처해 있든 스스로 극복해서 나올 터. 그런 도움 따위는 필요 없음이다.

-과연…!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악마 부관의 말과는 달리, 구시렉의 속마음은 별로 좋지 않았다.

왜냐하면 구시온은 아키서스 교단에 붙잡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이제는 붙잡혀 있다고 말하기도 뭐했다. 저번에 보니 구시온은 매우 적응을 잘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쯤이면 그냥 아키서스 교단 소속이라고 봐도 좋을 수준 아닌가?

-지금 중요한 건 굶주린 혼돈 놈들이다. 대륙을 굶주린 혼돈 놈들이 불태우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놈들이 대륙을 모조리 불태우면 우리가 먹을 영혼은 하나도 남지 않을 것 아니냐!

-맞는 말씀이십니다! 당장에라도 준비를 해서 나가야 합니다. 제가 구시렉 님의 악기를 닦아 놓았으니, 언제라도 출전하실 수 있습니다.

-으음. 내가 나가는 건 좀 더 생각을 해봐야겠다.

-?!

부관들은 당황스러워했다.

언제나 패기 넘쳤던 구시렉이 이상하게 신중해졌던 것이다.

저번 원정 때 정말 무슨 일이 있으셨던 것일까?

-주인님!

하피 형태의 악마가 비명을 지르듯이 달려왔다.

구시렉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무슨 일로 너 같은 하찮은 악마가 나의 대화를 방해하느냐?

-큰일 났습니다!

-??

-대륙의 교단 놈들이 성 앞에 찾아왔습니다!

-정신이 나갔구나. 굶주린 혼돈 놈들이나 상대할 것이지. 처리해라! 마계의 황무지에 흩뿌려 버려라.

-아키서스 교단도 있습니다!

-…내가 직접 가겠다!!

구시렉은 벌떡 일어섰다. 아키서스 교단이라면 부하들에게만 맡기기 걱정이었던 것이다.

* * *

“여기가 마계 맞아요?”

“솔직히 골짜기보다 더 좋은 것 같은데.”

“…태현 님….”

이다비가 안쓰러운 눈빛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뒤에 있던 골짜기 랭커들이 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닙니다! 우리 골짜기가 여기보다 작을 수는 있어도 훌륭한 골짜기입니다!”

“맞습니다! 판온에서 가장 유명한 폭탄들을 만들고 김태현 선수가 있는 영지인데!”

“창피하니까 조용히 해…!”

태현은 수치심으로 가득 찬 목소리로 랭커들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지금 이거 생방송 나가고 있는데 무슨 개쪽팔리는 칭찬을 하고 있는 거야!

[음악공, 구시렉의 영역을 발견합니다!]

[<음률과 선율의 화경(華京)>에 진입합니다!]

[명성이 크게 오릅니다!]

[예술 관련 스킬들이…]

[……]

[……]

악마 공작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구시렉의 영역은 정말 아름다웠다.

탁 트인 초록색 들판과, 곳곳에 자리 잡은 싱그러운 숲들과 시냇물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소리였다.

시냇물들이 졸졸거리는 소리와 수풀들이 바람에 부딪혀서 사그락거리는 소리.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와 바람이 부는 소리들이 정교하게 어우러져서 하나의 음악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음률과 선율의 화경>에 흐르는 노래를 알아챘습니다.]

[노래 스킬이 오릅니다!]

-악마들치고 아름답게 만들었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다른 교단의 성기사단장이나 주교들도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일 정도였다.

파이토스 교단의 망치기사단 단장, 아크락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이제 불을 지릅시다.

“…….”

-…….

-…….

다들 아크락스를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교황 성하. 어떻게 접근하실 생각이십니까?

“글쎄, 구시렉과 안면이 있는 사이긴 한데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겠군. 아들을 이용해서 협상해 볼까 싶은데….”

우어어어어어어!

“?”

말하던 도중 들리는 거대한 함성 소리에, 자리에 있던 플레이어들은 고개를 돌렸다.

수많은 전사들이 들판을 달려서 앞으로 돌진하고 있었다.

“악마 공작의 부하들인가?”

“설마 우리가 와서 저러는 건 아니겠죠?”

플레이어들은 불길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 말고 다른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

“…저거 굶주린 혼돈의 전사들이잖아!”

태현은 뒤늦게 깨닫고 깜짝 놀라서 외쳤다.

생각해 보니 관문으로 먼저 넘어간 굶주린 혼돈의 하수인들이 갈 곳은 가장 가까운 여기밖에 없었던 것이다.

* * *

-김태현 선수가 이끄는 원정대는 마계로 향합니다! 과연 이게 옳은 선택일지….

-지금 대륙에서 버티고만 있어도 위험한데 마계로 가는 건 더 위험한 거 아닌가요?

-아니, 이럴 때일수록 오히려 적극적으로….

판온 리그 대신 굶주린 혼돈 퀘스트를 중계하고 있는 만큼,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수많은 관심들이 쏟아져 내렸다.

그중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건 역시 태현이었다.

하나하나 굵직한 사건을 터뜨리는 건 물론인 데다가 이번에는 심지어 마계까지 들어가려고 하고 있었다.

다른 게임단들도 거기에 자극을 받았는지, 작정하고 움직이려고 하고 있었다.

목표는 굶주린 혼돈에 가입한 스미스!

-파리 라이트닝 선수들이 오늘, 오스턴 왕국 공략전을 진행하기로 발표했습니다. 오스턴 왕국의 상황이 점점 더 흥미진진해지겠습니다! 저희 해설진들은 이번 방송을….

한동안 파리 라이트닝 방송에 시청자들이 몰릴 거라고 모두가 예상했다.

그러나 그 예상은 뒤집어졌다.

모두의 관심을 독차지한 건 갑자기 튀어나온 오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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