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596화 (1,595/1,826)

§ 나는 될놈이다 1596화

“패배로 미쳐버린 거냐, 쑤닝??”

제카스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카스가 낸 의견은 완벽했다.

쑤닝이 거절할 수가 없는 의견.

…그런데 쑤닝이 저렇게 반응하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말도 안 된다! 쑤닝이!’

제카스가 아는 쑤닝은 속이 좁고 졸렬하고 오만한 데다가 한 번 당한 원한을 절대 잊지 못하는 놈이었다.

아무리 스미스한테 졌다고 하더라도 그런 걸 쉽게 잊을 놈이 아니었는데….

설마….

설마 쑤닝이 그사이 성장이라도 했단 말인가?

“제카스. 네가 한 가지 착각하고 있는 게 있다.”

쑤닝은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딱히 김태현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뭐라고? 그런 착각은 하지도 않았는데??”

제카스가 황당하다는 듯이 되묻자 쑤닝은 못 들은 척 말을 이었다.

“다만 스미스를 더 용서할 수 없을 뿐이지. 그렇다고 내가 김태현을 용서했다고 착각하지 마라. 스미스를 쳐낸 다음에는 다시 김태현을 밟을 테니까.”

“먼저 스미스의 편에서 김태현을 밟는 게 뭐가 다르단 말이냐? 그게 더 가능성이 높….”

“내가 납득할 수 있냐의 차이지!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란 말이다! 이 멍청한 놈아.”

“…쑤닝. 솔직히 인정하마. 내가 널 잘못 평가했다.”

갑자기 제카스의 칭찬에 쑤닝은 놀랐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기분은 좋군.’

잘 모르겠지만 일단 칭찬은 기분이 좋은 법.

“난 네가 속이 좁고 졸렬하고 오만한 데다가 한 번 원한을 사면 절대 잊지 않는, 길마로서의 자격이 없는 놈이라고 생각했었다.”

“…….”

“…….”

옆에 있던 간부들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제카스 저 미친 새끼가 뭐라는 거야…!’

‘분위기 좋은데 개짓거리 하지 말라고!’

“하지만 이렇게 보니 내가 착각했던 것 같군. 원한이나 돈 때문이 아니라 자기 신념에 따라 판단을 할 줄이야. 너 같은 놈한테도 신념이 있었구나.”

“그냥 죽일까요?”

쑤닝이 입술을 분노로 씰룩대는 걸 본 간부들은 소곤거렸다.

그러는 사이 제카스는 자기 할 말을 했다.

“네가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협조하겠다. 예전보다 더 믿음직스럽군.”

간부들은 쑤닝이 언제 죽이라고 명령을 내릴지 기다렸다.

그러나 쑤닝이 내놓은 대답은 의외의 대답이었다.

“좋다. 제카스. 손을 잡자.”

-길마님 안 죽이십니까!?

-저놈을 죽이면, 저놈이 우리 위치를 불 수도 있잖아. 협력을 시켜야 해.

-…!

간부들은 감탄했다.

그들은 진심으로 생각했다.

길드 동맹의 길마로 어울리는 사람은 쑤닝밖에 없다고.

이제까지 많은 실수를 저질렀고 앞으로도 저지를 테지만, 계속해서 저렇게 성장하는 길마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런데 제카스, 네놈도 꽤 김태현한테 원한이 있었던 걸로 아는데….”

“지금 하던 퀘스트가 망했는데 원한이 뭐가 중요하겠냐. 중요한 건 어느 한쪽이든 가입하는 거지. 솔직히, 굶주린 혼돈 쪽이 유리해 보이긴 해도 아직 모른다고 생각한다. 대륙에 워낙 남은 저력이 많아서….”

굶주린 혼돈 세력 쪽이 지금 막대한 강함을 자랑했지만, 언제나 악 성향 세력들은 시간이 지나면 자멸하곤 했다.

대륙에 남은 왕국들과 영웅 NPC들을 생각해 보면 아직 확신하기는 일렀다.

게다가 그쪽에 가입하면 페널티 또한 만만치 않을 테니, 반대쪽에 걸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쑤닝 너하고 같이 가면 김태현도 날 건드리지 못하겠지.”

“그렇군. 김태현이 그 정도 생각은 있을 테니까.”

남은 길드 동맹 길드원들의 협력을 얻으려면 태현도 쑤닝을 함부로 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제카스는 그걸 노리고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저놈 김태현한테 바쳐야겠군.’

물론 쑤닝은 제카스가 생각하는 것보다 조금 더 나쁜 새끼였다.

제카스는 쑤닝을 ‘나중에는 같이 김태현을 상대할 동지’로 생각해서 믿고 있었지만, 쑤닝은 그런 뒷일까지는 생각 안 하고 그냥 제카스를 밟아주고 싶었다.

‘감히 날 속이 좁고 졸렬하고 오만한데다가 한 번 원한을 사면 절대 잊지 않는, 길마로서의 자격이 없는 놈이라고 했겠다?’

“참. 저기 도동수도 있다. 도동수도 불러서 데리고 가자.”

“도동수가 누구였지?”

“김태현하고 사이 안 좋은 도적 랭커. 기억 안 나나? 베이징 파이터즈 선수잖나.”

예전에는 한국대표팀까지 뽑혔었지만, 태현과 대놓고 싸우다가 하도 이미지가 안 좋아져서 중국 쪽 게임단으로 넘어간 도동수.

제카스와 같이 이데르고 교단에 가입한 만큼 여기 대기하고 있었다.

“베이징 파이터즈… 헉. 도동수가 가 그 도동수였나!?”

“그러면 다른 사람이라도 있나?”

“아니, 중국 게임단에 한국 선수가 어지간하면 잘 안 오니까 그냥 한국 이름 닉네임으로 한 중국인 선수인 줄 알았는데….”

“…….”

제카스는 황당하다는 듯이 길드 동맹 간부들을 쳐다보았다.

‘요즘 중국 선수들은 한국 이름을 닉네임으로 쓰나??’

* * *

-지금이 기회입니다! 굶주린 혼돈에게 넘어간 타락자들이 저항군들과 싸우느라 정신이 없는 사이 나아가야 합니다!

-맞습니다. 다음 관문으로 이동해 관문을 파괴해야 합니다!

태현이 있는 원정대는 모처럼 분위기가 좋았다.

한 방 먹인 것도 그렇고, 새로 참가하겠다고 온 플레이어들이 여럿인 것도 그렇고, 분위기가 희망찬 건 당연했다.

하지만 언제나 이럴 때 분위기를 깨는 사람도 있었다.

정확히는 사람이 아니긴 했지만….

-하. 이 멍청한 필멸자 놈들이 콧대가 높아졌구나. 지금 상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니.

“…….”

“…….”

원정대 플레이어들은 매우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악마 공작을 쳐다보았다.

‘저 새끼는 대체 왜 여기 있는 거지’하는 표정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빙결공 푸르네우스는 자기 할 말을 했다.

-지금 조금 성공했다고 콧대가 높아지다니. 한숨만 나온다! 굶주린 혼돈을 얕보지 마라. 놈의 군대는 다시 무장하고서 이쪽을 노릴 것이다.

랭커 중 한 명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 악마 새… 아니, 악마 공작께서는 뭐 어쩌자는 겁니까?”

-간단하다. 수비를 해야 한다. 해자를 깊게 파고, 성벽을 세워 올리고, 내 부하들을 불러올 수 있도록 의식을 준비해라.

‘미친놈 아니야?’

‘괜히 악마 공작이 아니지.’

랭커들은 황당해했다.

플레이어들 입장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었던 것이다.

호랑이를 몰아내자고 늑대를 불러들이는 꼴!

그러나 푸르네우스는 완강했다.

-지금 너희 모험가들의 숫자를 봐라. 지리멸렬해서 얼마 되지도 않지 않나! 내 부하들이 오지 않는다면 절대 이겨낼 수 없다. 굶주린 혼돈의 군대가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 봐라.

‘으음. 저 자식….’

[카르바노그가 단단히 작정을 한 것 같다고 말합니다.]

‘내가 너무 심하게 굴었나?’

[그건 맞지만, 카르바노그가 화신이 그러지 않았어도 악마 공작은 알아서 배신했을 거라고 말합니다.]

-맞는 말이에요. 화신님.

아키서스의 상급천사, 아흐다엘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화신님의 자그마한 실수는 악마들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신 것밖에 없답니다.

“그… 그렇군.”

부상 입은 상태라 전력에는 한계가 있지만, 아흐다엘은 누구 천사 아니랄까 봐 광기가 엿보였다.

-악마들은, 특히 악마 공작 같은 경우는 더더욱 강하고 가혹하게 채찍질을 해야 그 흉폭하고 더러운 본성이 통제될 거예요.

“다 좋은데 목소리 좀 낮춰주면 안 돼? 다 들리겠는데.”

-악마 공작을 제압하고 빠르게 이동해서 다른 교단의 전력을 손에 넣으셔야 해요! 특히 저처럼 교단에 내려온 천사들이 있을 테니, 그 천사들도 놓치시면 안 되고요!

하지만 아흐다엘의 원대한 계획과 별개로, 지금 중요한 건 악마 공작을 설득하거나 제압하는 일이었다.

솔직히 지금 제압하는 건….

‘너무 위험한데.’

푸르네우스 놈이 저렇게 말하는 걸 보니 아마 태현한테 공격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게 분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태현이 내분을 일으키지 않으리란 걸 알고 있고, 설사 공격하더라도 받아칠 준비가 되어 있다!

“두 가지 모두 하자.”

태현은 상황을 정리했다. 이대로 시간을 끌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반으로 나눠서 한쪽은 관문 파괴에 나서고, 다른 한쪽은 이 주변에 요새를 짓고 의식을 준비한다.”

-뭘 좀 아는군.

푸르네우스는 태현이 숙이고 나오자 매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있던 랭커들이 태현에게 당황한 표정으로 속삭였다.

“진짜 의식을 준비해도 되나요? 뒷감당은….”

“지금 전력으로 쓰려면 뭐든지 필요하긴 해. 뒷감당은 굶주린 혼돈을 상대하고 생각해도 된다.”

태현 입장에서는 굶주린 혼돈보다는 악마들을 상대하는 게 더 쉬웠다.

애초에 신성 관련 스킬들이 많은 만큼 악마들한테도 상성이 좋은 것이다.

‘의식 주변 장소에 함정 최대한 깔아놓고 소환하라고 해야겠군.’

지금 할 수 있는 대비를 하고 소환시킬 수밖에!

[이데르고 교단의 평판이 조금 하락합…]

[파이토스 교단의…]

[……]

[교단의 평판을 주의하십시오. 너무 크게 하락할 경우 당신의 세력에서 이탈할 수도 있습니다!]

악마들을 전력으로 얻는 대신 당연히 페널티도 있었다.

‘주의 좀 해야겠군.’

지금이야 조금 쌓였지만, 앞으로 진행하면서 얼마나 더 쌓일지 알 수 없었다.

예를 들어 성기사들을 단체로 자폭이라도 시킨다면….

[카르바노그가 왜 대체 그런 예시를 드는 거냐고 황당해합니다.]

‘역시 대규모 퀘스트는 만만치 않은 거 같군.’

태현은 카르바노그의 말을 무시하고 생각에 잠겼다.

단순히 적을 상대하는 것뿐만이 아닌, 수많은 아군들의 균형을 맞추는 것도 필요한 일.

확실히 까다롭기는 했다.

하지만….

“김태현 선수! 지금 졸렌 시에서 온 길드원들이 도착했습니다!”

“지도부터 시작해서 지금 상황까지 각종 정보를 다 정리했으니 오시기만 하면 됩니다!”

이렇게 장점도 있었다.

미다스 길드나 길드 동맹 쪽에서 온 길드 간부, 길드원들이 아낌없이 정보를 제공해 줬던 것이다.

졸렌 시는 오스턴 왕국 서부 쪽 대도시.

지금 원정대가 있는 바야드리안 시처럼 여러 교단들이 있고, 역사가 깊은 도시였다.

당연히 굶주린 혼돈의 관문이 설치되고 있는 만큼 관문을 파괴하고 지킬 가치가 있었다.

“다들 고맙군.”

“아닙니다!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김태현 선수한테 척살령을 내리고 게시판에 악플 달게 하고 골짜기 가서 온갖 방해공작 펼치라고 명령을 한 길드 출신인데도 받아주시다니!”

“…….”

상대가 구체적으로 말하자 넘어가려던 태현도 살짝 정색하게 됐다.

그보다 마지막은 몰랐던 것이다.

‘영지에서 방해공작도 펼쳤었나? 하긴 안 했으면 그게 이상했겠지.’

“그래서, 지금 가장 중요한 게 관문인데….”

“예. 이 마계 관문은 정말 특이합니다. 저희가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지요.”

“마계 관문? 마계의 악마들이라도 불러내는 건가?”

태현은 의아해했다.

굶주린 혼돈과 악마는 그리 친하지 않았다.

물론 마계의 악마들 중에서는 상황 신경 안 쓰고 무조건 대륙에 나가서 피를 보고 싶어 하는 놈들도 있긴 했다.

그런 놈들을 불러오려는 건가?

“아닙니다.”

“그러면?”

“굶주린 혼돈 놈들이 그 관문을 타고 마계로 가려고 하나 본데요?”

“…?!”

놀랍게도 졸렌 시에 지어지고 있는 관문은 굶주린 혼돈의 군대를 더 많이 보내기 위한 관문이 아니었다.

대륙을 거쳐서 마계로 역공을 가기 위한 관문!

마계의 악마들이 들었다면 기절초풍할 소리였다.

이제까지 대륙은 악마들이 내려가서 맛집 돌듯이 필멸자들의 영혼을 탐하는 곳이었는데, 그 연결 때문에 굶주린 혼돈의 군대가 마계로 들어온다니.

어느 악마가 이런 상황을 상상했겠는가.

“뭐? 그러면….”

“…그냥 그건 내버려 둘까요?”

“그러게?”

태현과 이다비는 뜻이 통했다.

지금 안 그래도 적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은데 굳이 저것까지 막아야 하나?

마계는 뭐….

악마들이 알아서 지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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