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595화 (1,594/1,826)

§ 나는 될놈이다 1595화

[오스턴 왕가의 핏줄, 스타인하우어가 당신을 고대 제국의 후계자로 인정합니다!]

[명성이 크게 오릅니다!]

[오스턴 왕국의 남은 귀족 NPC들이 당신을 인정하고 찾아올 확률이 늘어납니다.]

[현재 오스턴 왕국 저항군들이 당신과 같이 싸우기 위해 찾아올 확률이 늘어납니다.]

[….]

“고맙군.”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에 시퍼렇게 멍이 든 스타인하우어는 창살을 붙잡고 말했다.

-그러면 이제 나갈 수 있는 겁니까?

“아니. 굶주린 혼돈의 암살이 위험해서 안전하게 지켜줄 사람이 필요하다.”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제국의 후계자. 이 멍청한 놈은 내가 지켜줄 테니까.

-잠, 잠깐! 잠깐!!

스타인하우어는 필사적으로 외쳤다.

-알려줄 게 있습니다!

“??”

-이건 정말 중요한 정보입니다! 교황님께서도 들으시면 감탄하실 겁니다!

“말해봐라. 듣고 있다.”

스타인하우어는 눈을 데굴데굴 굴리다가 말했다.

-오스턴 왕국 지하에… 통로가 있습니다.

“…??”

스타인하우어의 말은 이랬다.

어쩌다가 핏줄빨로 오스턴 왕국의 중요한 위치에 앉아서 대접을 받게 되자, 스타인하우어는 이렇게 생각했다.

-아, 내가 이렇게 운 좋게 자리를 얻었을 때 바짝 한 몫을 챙겨놓아야겠구나. 언제 저 사악한 모험가 놈들이 나를 쫓아낼지 모르니!

[카르바노그가 자기 주제 파악능력에 감탄합니다.]

‘정말 아키서스 교단에 어울리는 인재라서 불쾌하군. 절대 풀어주지 말아야지.’

태현은 스타인하우어를 절대 감옥 안에서 풀어주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아키서스 교단에 들어오면 너무 적응을 잘할 것 같은 인재였던 것이다.

-그래서… 저는 준비를 했습니다.

“무슨 준비를?”

-…그, 땅굴도 파고, 창고도 만들고, 이것저것….

“….”

[지도가 추가됩니다!]

별생각 없이 지도를 확인한 태현은 경악했다.

오스턴 왕국 남부, 중앙, 동부를 관통하는 지하 통로들!

이런 통로들이 있을 거라고 어느 누가 예상을 했겠는가.

‘이걸 쓰면… 굶주린 혼돈에게 들키지 않고 오스턴 왕국을 움직일 수 있다.’

-어떻습니까!?

“훌륭하군.”

-그렇죠?!

“고맙다. 스타인하우어. 생각보다 뛰어나군.”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자! 그러면 저를….

태현은 돌아섰다. 스타인하우어는 당황해서 외쳤다.

-잠, 잠깐. 어디 가시는 겁니까? 약속하셨잖습니까!

“무슨 약속?”

-제가 말하면 풀어준다는 약속 말입니다!

“난 그런 약속을 내 입으로 한 기억이 없는데.”

-….

스타인하우어는 경악했다.

생각해 보니 태현이 자기 입으로 괜찮으면 풀어주겠다고 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자신이 너무 성급하게 털어놓았다!

-자. 그만 조용히 하고 여기 앉아봐라. 내가 왕족의 핏줄을 가진 자로서 보여줘야 할 태도를 가르쳐주겠다.

-교황님!! 교황님!!!

스타인하우어는 울부짖었다. 그러나 태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훌쩍 떠나버렸다.

* * *

“이데르고 교단 놈들이 숨어 있으면 어쩌지?”

“숨어 있으면 밟아버려야지. 우리가 지금 많이 약해지긴 했어도 그 정도는 할 수 있어. 걱정 마라. 앨콧. 너 혼자 싸울 필요 없어.”

“맞아. 앨콧. 넌 혼자가 아니야.”

“….”

앨콧은 인상이 자동으로 찌푸려지는 것을 참았다.

길드 동맹 간부 놈들은 원래 좀 띠꺼운 놈들이긴 했는데, 이렇게 사근사근하고 친절하게 굴자 좀 두 배로 띠꺼워졌다.

그냥….

평소대로 굴면 안 되나?

“알겠으니까 좀 떨어져.”

“앨콧. 네가 앞장서서 희생할 필요 없다니까. 같이 가자.”

“맞아. 우리는 함께 해야 해.”

“아, 좀 떨어지라고.”

쿵-

“!”

어두컴컴한 신전 통로 저편에서 묵직한 소리가 났다. 거대한 석조 문이 열리는 듯한 소리였다.

“누가 온다!”

길드 동맹 간부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이데르고 교단 비밀 신전에 숨어 있을 놈은 정해져 있었다.

어느 놈이든 간에 무조건 선공!

-셋. 둘. 하나….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

앞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플레이어가 분명했다. 간부들은 고민에 빠졌다.

공격을 해야 하나?

아니면 상대가 누군지 알아봐야 하나?

만약에 상대가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이라면….

쑤닝은 단호하게 명령을 내렸다.

-무조건 공격해! 쓰러뜨리고 나서 확인해도 된다.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이것이 길드 동맹의 방식.

남에게 배신을 당할 바에는 자기가 먼저 배신하겠다!

‘새삼스럽게 미친놈들이라니까.’

앨콧은 속으로 투덜거리며 양손에 단검을 들었다.

물론 앨콧도 이 상황에서 선공을 거절할 생각은 없었다.

“쳐라!”

팟!!

[삼중 도약을 시전합니다!]

[배후 습격을 시전합니다!]

[상대의 뒤를 붙잡습니다.]

[약점이 활성화됩니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추가 대미지가….]

푹푹푹푹푹!

앨콧은 암살자답게 상대의 뒤를 잡고 그대로 난도질했다.

김태현 정도나 되어야 이런 기습에 바로 반응을 하지, 어지간한 랭커들도 암살자의 이런 선공에 쉽게 반응하지 못했다.

“크아악!”

상대 플레이어는 피가 쭉쭉 닳았는지 다급히 움직였다.

-이데르고의 혈액 촉진, 이데르고의 회복!

“회복 못 하게 막아!”

앨콧은 다급하게 외쳤지만, 길드 동맹 간부들보다 상대가 한 발 더 빨랐다.

[이데르고의 역병이 주변을 휘감습니다!]

“너희… 너희 길드 동맹이군!”

‘젠장.’

앨콧은 혀를 찼다.

들킨 이상 상대가 스미스의 부하들을 언제 이쪽으로 부를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큰일 났다!

쑤닝도 그걸 알고 있었는지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쑤닝. 이 자식.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공격을 하는 거냐?”

“??”

“나 제카스다.”

탐험가 랭커, 제카스.

한때는 쑤닝과 손을 잡고 반(反) 김태현 연합을 조직하고 태현을 조지려고 했었지만, 태현의 무차별 왕국 테러 이후 쑤닝이 조지는 걸 포기하자 따로 움직이게 된 플레이어였다.

한동안 연락이 끊겼는데 이데르고 교단에 들어가 있었을 줄이야.

쑤닝은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

“여기서 뭐 하고 있었던 거지?”

“너하고 비슷한 짓을 하고 있었지.”

“뭐? 너도 스미스를 피해서 도망치고 있었단 말이냐??”

“…아니. 굶주린 혼돈을 피해서 숨어 있었다는 거다.”

제카스는 쑤닝을 미친놈 보듯이 쳐다보았다. 쑤닝은 민망한 표정으로 헛기침을 했다.

“이데르고 교단도 지금 굶주린 혼돈하고 싸우고 있을 텐데?”

“싸우고 있기야 하지. 하지만 대부분 실패했다. 기껏 공적치 포인트를 쌓아놨는데 말이지.”

제카스는 아쉬운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이데르고 교단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몇몇 전력들이 굶주린 혼돈에게 잘못 걸려서 개박살이 난 데다가, 고위 주교나 성기사단장들과는 연락이 끊겼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카스 본인이 지금 이데르고 교단 내에서 위치가 좋지 않았다.

저번에 역병 선장 폴로뮤스가 죽을 위험에 처했는데 두고 도망친 것이다.

덕분에 이데르고 교단 가입 플레이어들은 단체로 페널티 먹고 교단 NPC들한테 현상금이 걸려 있는 상태였다.

제카스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남은 것도 없고 이것저것 페널티만 있는 이데르고 교단을 떠나서 새 출발을 해볼 것인가?

아니면 이데르고 교단에 남아서 뭐라도 좀 챙겨볼 것인가?

“마침 잘됐다. 쑤닝.”

“뭐가 잘됐다는 거냐?”

“굶주린 혼돈의 힘을 받아들일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단 말이다. 너는 굶주린 혼돈의 힘을 받아들였으니 알고 있겠지. 어떻게 생각하나?”

“….”

쑤닝은 제카스를 노려보았다.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것도 아니고, 묻는 게 매우 싸가지가 없었던 것이다.

지금 당장 굶주린 혼돈의 힘을 빌렸다가 스미스한테 깨진 걸 저놈도 분명히 봤을 텐데!

“강하지. 다만 먼저 가입한 놈들 쫓아가긴 힘들다. 봤을 텐데?”

“그거야 네가 퀘스트를 못 깨서 그런 건지 힘을 잘 못 써서 그런 건지 알 수 없으니까. 그렇군.”

“….”

“….”

길드 동맹 간부들은 시선을 교환했다.

어차피 알 바도 아닌 새끼인데, 그냥 밖에다가 귀찮게 정보를 나불나불 대는 거 보느니 죽여 버리자는 뜻이었다.

스르릉-

무기에 손을 가져다 대는 간부들을 본 제카스는 단호하게 말했다.

“잠깐.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고 있다. 하지만 듣고 결정하는 게 좋을 거다. 내 제안을 듣고 나면 거절할 수 없을 테니까.”

“…뭐냐?”

쑤닝은 한번 말이나 들어보자는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길드 동맹은 무너진 거나 마찬가지다, 쑤닝.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면 말이지. 이 상황에서 네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스미스 쪽으로 항복해서 들어가는 거다.”

“….”

“너는 굶주린 혼돈 세력에 이미 가입한 상황인 데다가, 보아하니 스미스에 비해서도 퀘스트 진행도가 크게 밀리지 않는다. 내가 도와줄 테니, 같이 들어가서 굶주린 혼돈 퀘스트를 깨자. 그러면 언제든지 스미스 놈을 제칠 수 있다.”

“지금 바로 제치는 건 불가능한데, 그러면 제칠 때까지는 스미스 놈의 명령을 들어야 한다는 거냐?”

“그렇게 되겠지.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나? 그리고 쑤닝. 한 가지 더 좋은 점이 있다.”

제카스는 쑤닝을 달래듯이 말했다.

“그게 뭐지?”

“바로 김태현 놈을 짓밟을 수 있다는 거지. 스미스 놈에게 쌓인 감정이 있다는 건 알지만, 그 정도는 감안할 수 있지 않나?”

“그렇군. 그럴듯한데.”

쑤닝이 거의 넘어온 것 같자 제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쑤닝은 수락할 수밖에 없는 제안이었다.

스미스한테 최근 개처럼 두들겨 맞았지만, 원한을 따져보면 당연히 태현>스미스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 누군가를 밟고 퀘스트를 진행해서 세력을 회복하려면 그 상대는 무조건 태현이어야 한다!

쑤닝 같은 놈은 이걸 거절할 리가 없었다.

‘지금 의외로 굶주린 혼돈 퀘스트를 깊게 나간 게 쑤닝이다. 저번 평원에서 쓴 지팡이만 봐도….’

스미스도 스미스지만 쑤닝도 제법 굶주린 혼돈 관련이 깊었다.

제카스는 쑤닝을 이용해서 굶주린 혼돈 퀘스트를 빠르게 따라가 볼 생각이었다.

“제카스. 그런데 여기 벽에 있는 글자는 뭐냐?”

“무슨 글자?”

“이 글자.”

쑤닝의 질문에 제카스는 의아하다는 듯이 발걸음을 옮겼다.

여기 몇 번이고 왔었지만 딱히 비밀문자는 보지 못했던 것이다.

“무슨… 크아아아악!”

[<패랭이꽃 독>이 퍼집니다!]

[<갈로고로스 독>이 퍼집니다!]

[….]

[….]

[마비 상태에 빠집니다!]

[움직일 수 없습니다!]

[제압당합니다!]

[포로 상태로 변합니다!]

앨콧은 제카스의 등짝을 아주 제대로 쑤셨다. 제카스는 당하고 나서도 이해가 가지 않아서 쑤닝을 쳐다보았다.

“뭐하는 거냐, 쑤닝! 내 말을 이해 못 한 거냐?!”

“이해 못 한 건 너다. 이 자식.”

쑤닝은 제카스를 노려보며 말했다.

“내가 스미스보다 김태현 놈을 더 싫어할 줄 알았냐? 개소리하지 마라! 내가 아무리 짧은 순간이라도 스미스 놈을 돕는 일을 할 것 같아!? 차라리 캡슐을 부수고 게임을 접고 말지, 스미스 놈은 돕지 않는다!”

“쑤닝! 다시 생각해 봐라! 지금 이거 말고 다른 방법은 없다!”

제카스의 외침에 길드 동맹 간부들이 움찔했다.

확실히 제카스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스미스 놈과 협력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지금 굶주린 혼돈 퀘스트를 깨지 않으면 피해를 복구할 방법이 있을까?

“있다.”

“…?”

“김태현 쪽에 합류하겠다. 스미스 놈의 모가지에 칼날을 꼭 찔러 넣어주마!”

“…!!!”

제카스의 눈이 충격과 공포로 휘둥그레졌다.

그 쑤닝이 김태현 쪽에 합류하겠다고 선언하다니.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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