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594화 (1,593/1,826)

§ 나는 될놈이다 1594화

“이게 다 너희들 때문이다!”

“뭐… 아니… 무슨…?”

“너희들이 제대로 두들겨 팼다면 놈이 도망칠 힘도 없지 않았겠나!”

“….”

선수들은 할 말을 잃고 케인을 빤히 쳐다보았다.

아무리 굶주린 혼돈의 NPC라고 해도 그렇지 이렇게 뻔뻔하게 억지를 부릴 줄은 몰랐던 것이다.

‘이런 X새끼가…?’

‘굶주린 혼돈 NPC들은 다 왜 인성이 이 모양이지?’

‘악 성향 NPC들이 원래 이렇지.’

“대답 안 하나! 이 하찮은 필멸자 놈들!”

“…죄송합니다.”

선수들은 이를 악물며 대답했다.

아무리 치사하고 더럽더라도, 굶주린 혼돈 세력에 가입해서 퀘스트를 깨고 있는 이상 NPC한테 시비를 걸 수는 없었다.

지금은 참고 인내할 때.

미국 선수들이 고개를 숙이자 케인은 갑자기 짜릿한 쾌감을 느꼈다.

‘…!’

맨날 김태현이 구박하면 고개 숙이고 감독님이 구박하면 고개 숙여왔던 케인.

반박하려고 해도 상대가 하는 말이 열이면 열 다 맞는 말이라서 ‘크흑 반박할 수가 없어’하며 눈물만 삼켰던 케인.

그런 케인에게 쟁쟁한 대형 게임단의 선수들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입을 꾹 다문 모습은 너무나도 통쾌했다.

…이래서 사람들이 감독을 하는 건가!?

‘김태현은 이래서 날 갈궜나?!’

태현이 들었다면 뒤통수를 몇 대는 갈겼을 개소리였지만, 케인은 이미 권력에 반쯤 취해 있었다.

“엎드려라!”

“…?”

“엎드리라고! 엎드려뻗쳐서 반성해!”

“….”

선수들은 어이가 없었지만 일단 하라는 대로 했다.

“일어서! 다시 엎드려! 일어서! 다시 엎드려!”

‘저 새끼….’

‘나중에 공적치 포인트 올라가서 등급 올라가면 저 새끼는 확실히 조진다.’

‘겉모습도 특이하게 생겨서 무조건 기억한다.’

미국 선수들은 이를 갈며 케인이 하라는 대로 했다.

파파파팍-

그때 뒤늦게 추가로 도착한 선수들이 모습을 보고 황당해하며 물었다.

“김태현은!?”

“도망쳤어.”

“미친놈들아! 그럼 쫓아가야지 여기서 뭐 하고 있는데!”

케인은 잘 되었다 싶어서 외쳤다.

“네놈들도 이놈들의 동료였군. 엎드려라!”

“…뭐, 뭐라고?”

“이봐. 굶주린 혼돈의 NPC야. 높은 지위 같으니까 참아.”

“그래서 엎드리라고?”

“그러면 어쩔 건데? 일단 비위 맞춰줘야지.”

“뭐 이런… 지금 김태현이 도망치고 있다니까?”

“시끄럽다! 빨리!”

“….”

결국 선수들은 옹기종기 모여서 엎드렸다가 일어났다가를 반복했다.

케인은 한동안 반복시키고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의외로 감독이 적성에 맞을지도….’

감독, 사베트가 들었다면 태현이 때린 뒤통수를 한 번 더 때렸을 소리였다.

* * *

“와아아아아아아아아!”

“김태현! 김태현! 김태현!”

너덜너덜해져서 돌아온 태현을 발견한 원정대는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다.

같이 간 길드 동맹 랭커들도 여럿 로그아웃당하고, 태현도 몇 번이고 죽을 위기를 넘겼지만, 어떻게든 살아서 돌아온 것이다.

그것도 그냥 돌아온 게 아닌 남이 점령한 수도에서 당당하게 NPC들 다 탈출시키고 숨겨놨던 보물들 챙긴 다음 돌아온 것.

태현이 직접 중계를 하진 않았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시청자들도 모두 다른 방송으로 그 모습을 똑똑히 보고 있었다.

그냥 한 방 먹여주고 돌아왔다는 단순한 기쁨이 아니었다.

유명 선수들도 굶주린 혼돈 퀘스트를 선택하고 있는 상황.

모두가 다 어느 정도는 불안해하고 있었다.

방금 태현이 보여준 건 그런 상황에서도 할 수 있다는 걸 모든 판온 플레이어한테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굶주린 혼돈 퀘스트는 내가 깨겠다!

“모두 다 도와줘서 고맙다!”

“김태현! 김태현!”

“도움이 없었다면 나 혼자서 해내지 못했을 거다!”

“김태현! 김태현!”

“덕분에 굶주린 혼돈에 맞서 싸우는 NPC들부터 플레이어들까지 모이기 시작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퀘스트를 해나갈 거다!”

“김태현! 김태현!”

“오늘 보여줬던 것처럼 오스턴 왕국 곳곳을 파괴하고 부수자! 굶주린 혼돈을 쫓아내자!”

“김태현! …김태현?”

같이 외치던 길드 동맹 랭커들이 당황해서 멈칫했다.

다른 사람들은 신나서 외치고 있었지만 그들은 아직 제정신이었다.

“야, 김태현…? 다 파괴하고 부수면 안 되지!”

“?”

“우, 우리가 열심히 만들고 가꾼 곳이잖아! 잘 가꾸고 다스려야지!”

“어… 그래야 하나?”

“당연히 그래야 하지! 미친놈아!”

길드 동맹 랭커들은 황당해했다.

그들이 길드 동맹에서 나와서 태현한테 온 건 그냥 굶주린 혼돈이 마음에 안 들어서가 아니었다.

물론 그것도 있었지만, 나름 랭커라는 사람들이 아무런 목적도 없이 무작정 나오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렇게 나온 이상 오스턴 왕국의 영지들을 다시 탈환하고, 태현의 밑에서 새로 영주를 할 생각이었다.

“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나?”

태현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그 질문에 더 황당한 건 길드 동맹 랭커들이었다.

“그러면 우리가 왜 널 찾아왔다고 생각한 거냐? 설마 오스턴 왕국 불 지르는 거 도와달라고?”

“하긴 그렇게 말하니 이상하긴 하군.”

오스턴 왕국을 불태우고 파괴하려면 굳이 태현과 손을 잡을 이유가 없긴 했다.

태현도 생각하니 새삼 이상해졌다.

확실히 태현 밑에서 싸우려고 왔다고 생각하는 게 보통이지, 태현 밑에서 같이 불태우려고 오는 건 특이한 경우였다.

“그러면 오스턴 왕국에서 싸울 때도 너무 불태우고 파괴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나?”

“당연하지!”

“으음….”

“….”

매우 고민하는 태현의 모습에 길드 동맹 랭커들은 입을 떡 벌렸다.

지금 알아서 영주가 되어서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겠다는데 저걸 고민하고 있어??

‘미친놈아 떡을 만들어서 그냥 바치겠다고 하고 있는데!’

‘지금 오스턴 왕국 안 불태우고 좀 평화롭게 싸우겠다고 말하는 게 그렇게까지 어려운 일이냐!?’

“그래. 생각을 해보겠다.”

“….”

“….”

길드 동맹 랭커들은 어느 길드를 가든 편한 곳은 없다는 것을 실감했다.

세상에 편하기만 한 곳은 없구나!

* * *

“이쪽으로.”

“…고맙다. 앨콧.”

암살자 랭커, 앨콧은 쑤닝을 부축하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산맥의 가파른 등성이를 내달리면서 적당한 수풀이 보이면 그쪽으로 숨어들었다.

[<흐릿한 암살자의 은신>을 시전합니다.]

[흔적이 사라집니다.]

[<아키서스를 향한 기도>를 시전합니다.]

[흔적이 발견될 확률이 줄어듭니다.]

[….]

평원에서의 충격적인 패배 이후 부활한 쑤닝과 길드 동맹 간부들.

당연히 스미스는 이들을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아예 본인이 직접 부활 지점을 수색하면서 쑤닝을 잡아 조지려고 하고 있었다.

쑤닝과 간부들은 사망 페널티와 장비까지 잃어버려서 지금 싸울 수 없는 상황.

만나는 순간 다시 한번 죽고 박살이 날 게 확실한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그리고 그런 이들을 구한 게 길드 동맹의 랭커이자 간부, 앨콧이었다.

길드 동맹의 순혈로 취급받는 중국인 간부와는 달리 외국인 플레이어였는데도 그 특유의 충성심 덕분에 다른 간부들도 ‘앨콧이라면 믿을 수 있지’라고 하던 앨콧!

“앨콧… 정말 고맙다.”

“솔직히 니가 올 줄은 몰랐다.”

간부들도 미안하고 고마운 표정으로 말했다.

앨콧의 충성심과는 별개로, 지금 길드 동맹은 거의 반쯤 붕괴된 상황이었다.

당장 영주들도 이탈하고 간부들도 스미스 쪽으로 갈아타는 놈들이 나오고 있는데….

심지어 앨콧은 에랑스 왕국 쪽에 자리를 잡은 영주였다.

상황을 포기하고 도망치면 충분히 갈아탈 수 있는데 그걸 다 내버려 두고 쑤닝과 간부들을 도와주러 달려온 것이다.

쑤닝과 간부들은 눈시울이 붉어지는 걸 느꼈다.

“앨콧. 넌… 명예 중국인이다. 중국인보다 더 중국인 같은 중국인이야. 자부해도 좋아.”

‘이 새끼들은 이걸 칭찬이라고 하나….’

앨콧은 황당해했다.

예전부터 느끼는 거였지만 길드 동맹 간부 놈들은 칭찬을 좀 이상하게 했다.

-앨콧! 넌 정말 코쟁이답지 않게 일 처리가 뛰어나구나! 중국인이라고 봐도 이상하지 않아!

-앨콧, 나중에 괜찮으면 중국으로 이민 오지 그러냐?

물론 자기들이야 진심을 담아서 하는 말이었지만, 외국인인 앨콧에게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칭찬이었다.

“이쪽이다! 달려!”

“!!!”

멀리서 들려오는 외침. 그렇게 숨겼는데도 흔적을 발견한 것이다.

앨콧은 눈을 질끈 감았다.

‘아… 젠장. 운이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없는데.’

당연히 앨콧은 충성심 때문에 쑤닝을 구하러 온 게 아니었다.

그냥 평원에서 졌을 때 도망치는 방향을 잘못 잡았을 뿐.

에랑스 왕국 쪽으로 튀었으면 쫓아오는 사람도 없었을 텐데, 방향을 잘못 잡은 바람에 동쪽의 우르크 지역으로 몰리고 몰렸다.

그리고 그러던 도중에 부활한 쑤닝과 길드 동맹 간부들을 만난 것이다.

-앨콧!! 우릴 구하러 온 거냐!?

-…물론이지!

거기서 또 ‘아니 나도 튀다가 온 건데’할 수는 없었으니 앨콧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고 보니, 그냥 처음부터 모르는 척을 하는 게 나았을지도 몰랐다.

‘스미스 놈 진짜 더럽게 지독하네.’

온갖 은신 스킬과 교란 스킬을 썼는데도 스미스가 이끄는 추적대는 살벌하게 쫓아왔다.

스미스의 얼굴도 보지 못했지만, 반드시 쑤닝을 게임 접게 만들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어쩔 수 없다. 쑤닝. 나뉘자.”

앨콧은 쑤닝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렇게 된 이상 쑤닝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길드 동맹에 있었던 것도 얻어먹을 게 많아서 있는 거였지, 충성심이나 애정 때문이 아니었다.

“그런…! 앨콧!! 지금 네가 미끼를 해주겠다는 거냐!?”

“그렇게까지 희생할 필요 없어! 차라리 내가 희생하겠다!!”

간부들은 감정이 격해져서 외쳤다.

물론 앨콧은 더 황당할 뿐이었다.

‘미친놈들아 도망친다고 한 거야….’

하지만 여기서 ‘나 도망치려고 말한 건데’라고 했다가는 분위기가 싸늘해질 테니, 앨콧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내가 미끼를 맡겠다. 너희들은 쑤닝을 데리고 빠져나가! 길드 동맹을 위해서!”

“…앨콧. 너는 우리 길드원들 중에서 가장 명예로운 놈이다.”

결국 눈물을 참지 못한 간부들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그러면 흩….”

[숨겨진 입구를 발견합니다!]

[<이데르고 교단의 비밀 신전>을 발견합니다!]

“!”

“이데르고 교단이면 악신 교단이잖아?”

“지금 악신 교단 신경 쓰게 생겼냐? 무조건 들어가자! 필드를 돌아다닐수록 발견될 확률만 높아져!”

“나, 나는 미끼 역할을….”

“아니야! 앨콧! 가지 마라!”

“차라리 위험을 감수할지언정 널 희생하고 싶진 않다!”

길드 동맹 간부들은 와르르 달려들어서 앨콧을 도망치지 못하게 붙잡았다.

앨콧은 울고 싶었다.

‘날 좀 놔줘…!’

저기 왕국에 내 영지가 기다리고 있는데!

* * *

-교황님. 이제 좀 침착함을 되찾으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같이 건설적인 이야기를 합시다. 우리는 같이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왜 저를 여기에??

스타인하우어는 입을 나불대다가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땅딸막한 드워프들이 그를 끌고 감옥 같아 보이는 우리로 데리고 간 것이다.

-교황님! 교황님!!

태현은 아키서스 교단을 운영하면서 이런 NPC들과는 길게 이야기해 봤자 남는 게 하나도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오. 새로운 친구인가?

멸망한 제국의 황자, 페르소텔턴은 자기 감옥에 들어온 스타인하우어를 보고 신기해했다.

스타인하우어는 발끈하며 말했다.

-이봐! 나는 오스턴 왕가의….

-나는 제국의 황자다.

-…증, 증거 있습니까?

그 말에 페르소텔턴은 주먹을 들었다. 스타인하우어는 페르소텔턴의 손등에 무슨 문양이라도 있나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댔다.

퍽!

-감히 건방진 후손 놈이 내 핏줄을 의심해!? 네놈이 뭐라도 되는 줄 아는 것이냐!

-아, 아이고, 아닙니다! 아니에요! 교황님! 저 좀 꺼내주십시오! 뭐든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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