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592화
“또 온다!”
“!”
선수들은 한 번 더 달려오는 길드 동맹 랭커들의 모습에 움찔했다.
사람인 이상 방금 그런 꼴을 봤는데 긴장이 안 될 수가 없었다.
‘뭔가… 뭔가 있나?’
‘설마 또 자폭을….’
[<바할라스의 화살>이 시전됩니다!]
콰아앙!
그렇게 움찔한 사이 길드 동맹 랭커는 유유히 앞에 와서 공격을 퍼붓더니 뒤로 빠졌다.
“겁먹어서 공격도 못하는군! 준우승 한 놈들아! 난 여기 있다! 날 찔러봐라!”
“저 자식이 진짜!”
모인 선수들은 슬슬 태현을 먼저 죽여야 할지 길드 동맹 랭커들부터 죽여야 할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김태현 쪽에 붙은 것도 어이가 없었지만, 붙은 다음에 저렇게 충성을 다해서 싸울 거라고 누가 알았겠는가.
솔직히 쑤닝한테 저렇게 충성했으면 길드 동맹이 이렇게까지 몰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김태현! 저거 봐! 저놈들이 거리를 벌리고 있어!”
“하하하하하하!”
“거리를 두고 쫓아오는군. 다음 살아 움직이는 폭탄 부탁한다.”
“…….”
뚝-
웃던 길드 동맹 랭커들은 멈췄다.
또….
또 해야 해?
“못, 못 쫓아오고 있지 않아? 그런데 해야 하나?”
“천천히 거리 좁히고 있는 거 보면 언제든 다시 들어올 놈들이야. 한 번 더 충격을 줘야 해.”
“…알겠다.”
길드 동맹 랭커들은 시무룩해진 표정으로 주사위를 굴렸다.
“잠깐.”
태현이 말하자 랭커들은 화색이 돌았다.
혹시 안 해도 되나?
“한 명만 더 뽑자. <아키서스의 제물>도 써야겠다.”
“…….”
* * *
꽝! 꽝! 꽈르르릉!
주변에 포위망을 만들고 있던 선수들은 어이가 없었다.
김태현이 저렇게 잘 도망치는 건 놀랍지 않았다. 원래 실력이 있는 놈이었으니까.
길드 동맹 놈들이 김태현하고 손을 잡는 것까지도 그렇다 칠 수 있었다. 원래 적의 적은 친구 아니겠는가.
…그런데 자폭까지 해가면서 저렇게 도와주는 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김태현이 무슨 협박이라도 하나?
대체 왜 길드 동맹 랭커 놈들이 뭐에 홀린 것처럼 자폭하고 희생하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실, 길드 동맹 랭커들 본인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분위기에 자신들도 모르게 휩쓸린 것이다.
-저 사람들 정말 대단하다. 골짜기 랭커들이지? 레벨도 높을 텐데 김태현 탈출시키려고….
-아닌데? 길드 동맹 랭커임.
-…구라치지 마.
-진짜야. 저기 마크 봐.
-무언가 수상쩍은 꿍꿍이가 있나 보구나!
-그래도 저렇게 나서서 자폭했는데 너무하지 않아?
-저번에 발견한 던전 입구 막고 길드원들만 들어가게 한 길드가 어디게? 힌트는 길로 시작해서 맹으로 끝남.
-…무언가 수상쩍은 꿍꿍이가 있는 게 분명하군!
길드 동맹 랭커들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반응은 ‘저놈들이 왜?’에 가까웠지만, 어쨌든 저 희생 때문에 추격에 지장이 생긴 건 틀림없었다.
안 그래도 잡기 힘든 놈이 더 잡기 힘들어진 것이다.
“김태현!!”
드디어 고메즈가 도착했다.
뉴욕 라이온즈의 1군 선수들과 함께 온 고메즈는 분노로 가득 찬 눈빛을 태현에게 던졌다.
“여기 온 이상 살아나갈 생각은 하지 마라! <굶주린 혼돈의 장벽>!”
“!”
태현 일행이 달려 나가는 앞쪽에 순간 거대한 벽이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일행 모두가 당황할 수밖에 없는 광역 스킬.
-캬오오!
[불불이가 레드 드래곤 종족의 분노로 마법을 포효합니다!]
[<드래곤 함성>을 시전합니다!]
[<굶주린 혼돈의 장벽>에 일시적으로 구멍이 뚫립니다!]
“!”
태현이 뭘 하기도 전에 먼저 나서서 울부짖는 불불이.
요즘 부쩍 성장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예상 밖이었다.
“대단해!”
-캬오캬오.
“너희들도 혹시 뭐 비슷한 거 쓸 수 있니?”
태현은 기대 섞인 눈빛으로 용용이와 흑흑이를 쳐다보았다.
아직 덜 자란 불불이가 분노의 힘으로 저런 걸 썼으니, 용용이나 흑흑이 정도면 더 대단한 걸 쓸 수 있을지도….
-주, 주인이여. 저건 분노로 평소에 내지 못하던 힘을 끌어내서 쓴 거다.
-맞습니다. 주인님. 저건 일반적으로 쓸 수 있는 스킬이 아니지 않습니까.
“너희는 이 상황에서 분노 안 하냐?”
태현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러자 두 드래곤은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긴 한데…!
[<섬광 폭사> 스킬이 시전됩니다!]
[회피에 성공합니다.]
[……]
“김태현, 내 이름은 알고 있겠지!”
뉴욕 라이온즈 선수 한 명이 스킬로 급가속을 하더니 태현 앞을 가로막았다.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서 발목을 잡으려는 속셈이었다.
-폭발 도약, 행운의 일격, 행운의 일격, 행운의 일격… 치명타 폭발!
태현은 말 대신 공격으로 대답을 돌려주었다.
화끈하게 폭발하면서 날아오는 태현의 모습에 상대 선수는 기겁해서 방향을 틀었다.
태현을 막을 생각이었지 같이 죽을 생각은 조금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태현은 상대를 놓치지 않았다.
콱!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공중에서 스쳐 지나가는 짧은 순간에 곡예라도 하듯이 상대한테 공격을 찔러 넣는 태현!
[강한 충격으로 인해 떨어집니다!]
상대 선수는 날개 달린 말 위에서 그대로 균형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태현은 무시하고 바로 뛰어들었다.
“!?”
시야가 뒤흔들리는데 갑자기 누군가 말 뒤에 타자 상대 선수는 기겁을 했다.
“뭐… 뭐야?!”
태현은 상대 선수의 뒤에 바짝 붙어서 말을 움직였다.
“김태현이 뒤에 붙었어!! 김태현이 뒤에 붙었다고!!”
“?!”
“같이 공격한다!”
“멈춰! 미친놈아! 뭘 같이 공격한다는 거야!”
다른 선수들이 희생을 감수하고 공격하려고 하자, 태현한테 붙잡힌 선수가 기겁을 했다.
이 미친놈들이 자연스럽게 그를 희생시키려고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어쩌자고! 같이 공격하는 것밖에 없어! 아니, 차라리 네가 김태현과 같이 떨어져라! 아까 길드 동맹 놈들 하는 거 봤잖아!”
“개소리 뻔뻔하게 하지 마라! 네가 여기 있었으면 그랬을 거 같냐!”
서로 살벌하게 욕설을 퍼붓는 선수들.
그러는 동안에도 태현은 계속 앞으로 움직였다.
“흑흑이. 용용이. 양 옆으로 빠져서 마법만 넣어라! 너희들까지 공격 받으면 곤란해진다!”
-알겠습니다!
-주인이여. 그러면 주인이 너무 위험해진다!
-…….
바로 OK를 했던 흑흑이는 머쓱해져서 다시 말했다.
-주인님! 그러면 주인님이….
“흑흑아! 개소리 하지 말고 빨리 안 움직이냐!”
-예!
태현도 사람인 이상 지금 급박한 상황에서 드래곤들이 헛소리 하고 있으면 봐줄 수가 없었다.
‘절반 정도 왔다. 스타인하우어 안 뺏기고 이대로 쭉 가면 된다!’
“김태현 이 자식 이거 안 놓냐?!”
“후. 어쩔 수 없군. 폭탄으로 만들어주지.”
“…안, 안 돼! 폭탄만은 제발! 폭탄만은 제발!”
랭커들의 스킬은 한 번 공개되면 대부분 분석되기 마련이지만, 태현의 스킬들 중에는 아직도 과장된 게 몇 개 있었다.
그중에 <살아 움직이는 폭탄>도 있었다.
원래 실전에서 쓰려면 상대방이 계속 움직이지 않고 있어야 하는, 공격용으로 쓸 수는 없는 스킬이었지만….
그걸 모르는 선수 입장에서는 무서울 수밖에 없었다.
“김태현! 정정당당하게 1:1로 붙자. 너한테도 나쁠 이야기가 아니야! 전 세계의 팬들이 그걸 기다리고 있어!”
“…잠깐. 네가 누군데?”
“…….”
태현의 말에 뉴욕 라이온즈 선수는 방금까지보다도 더 커다란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아무리 그래도 설마 이름도 모를 줄이야….
“제임스! 김태현한테 흔들리지 마!”
“아. 제임스였군. 미안하다. 제임스.”
“닥쳐 이 자식아! 이제와서 친한 척 하지 마!”
제임스의 목소리는 왠지 모르게 촉촉이 젖어 있었다.
“도움 안 되는 놈들… 비켜!”
고메즈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치며 태현의 위에서 그대로 찍듯이 급강하했다.
[<굶주린 혼돈의 거대 새>가 소름끼치는 비명을 지릅니다!]
[신성 권능으로…]
[……]
[……]
‘만만치 않다!’
랭커들끼리는 서로 눈빛만 교환해도 견적을 내기 마련.
태현은 위에서 달려드는 고메즈를 보고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걸 직감했다.
아까 굶주린 혼돈의 권능을 쓴 것도 그렇고, 지금 보여주는 공격도 그렇고 굶주린 혼돈 세력 쪽에서 꽤 퀘스트를 한 모양이었다.
고메즈는 머리카락을 옆으로 쓸어 넘기며 도도하게 말했다.
“김태현, 오랜만이다. 날 기억하고 있겠지?”
“미안하군.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이 많아서 일일이 기억 못한다.”
“…….”
뉴욕 라이온즈에서 팬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많은 고메즈였다.
실력이면 실력, 외모면 외모.
…그리고 심지어 판온 리그에서 김태현하고 붙은 적도 있는데!
“고메즈! 속지 마! 김태현 저 자식 도발하려고 저러는 거다!”
“…알고 있다!”
“아니 진짜로 기억 못….”
* * *
‘이걸 직접 찍지 못하다니 가슴이 아프다!’
배장욱은 개인방송 여덟 개를 켜놓고 달리고 있었다.
현재 오스턴 왕국 중앙 지역에서 치열하게 다투고 있는 선수들 방송이었다.
김태현 vs 뉴욕 라이온즈나 마찬가지였으니, 관심을 받지 못한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배장욱은 개인방송의 아마추어 같은 솜씨가 더 신경이 쓰였다.
각도부터 시작해서 소리까지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다!
아무리 개인방송이라지만….
“피디님! 그렇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우리가 가고 있지 않습니까!”
“맞아요! 김태현 선수는 우리가 구해낼 거라고요!”
“…그렇죠!”
배장욱이 태현 걱정을 하느라 인상을 쓰고 있었다고 생각한 방송국 랭커들은 위로를 던졌다.
“지금 상황은 어떻습니까?”
“김태현 선수가 도발하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요??! 좋은 생각 같진 않은데….”
“아니야. 오히려 도발을 해야지 상대 포위망에 빈틈이 나오지.”
“…야. 저걸 봐라. 빈틈이 나올 포위망 같냐?”
도주를 위한 싸움은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공중에서 전속력으로 질주하면서 서로 공격을 주고 받는 선수들!
-김태현, ‘고메즈처럼 미미한 선수까지는 다 모른다’….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 개빡친것같은데.
-열 받으면 어쩔 건데? 지들이 뭐 어쩌겠어?
-김태현! 김태현! 김태현!
대부분의 방송에서는, 심지어 뉴욕 라이온즈 공식 계정에서도 태현을 응원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 이미지란 이미지는 다 챙기면서 굶주린 혼돈 퀘스트에서는 굶주린 혼돈 쪽에 선 게임단들.
그에 비해 혼자서 수도 들어가서 수도 불태우고 나온 김태현!
…그러나 태현의 상황은 그렇게까지 좋지 않았다.
“죽어라, 좀! 제발!”
“한 대만 좀 맞아줘라!”
[반격의 원에 성공합니다!]
[공격이…]
[상대의 장비를 파괴시키는 데에 성공합니다!]
[치명타가 터집니다!]
[회피에 실패합니다!]
[<세 번째 서리의 칼날>이…]
[……]
[카르바노그가 안타까워서 발을 동동 구릅니다!]
‘상황이 안 좋긴 하군.’
솔직히 목숨 버리고 달려드는 게임단 선수들을 전부 상대하는 건 태현으로서도 힘든 일이었다.
피하고 튕겨내고 흘려내고 막아낸다 하더라도 몇 대는 들어왔다.
태현이야 여기 있는 선수들을 모른다지만 여기 있는 선수들은 태현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게임단 내에서 김태현 AI 만들어서 연습 돌릴 정도였으니….
“김태현. 솔직하게 말해봐라! 무슨 수를 써서 중앙 탑에 침입한 거지?”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는지 고메즈는 질문을 던졌다.
대화를 해서 시간을 끄는 건 태현으로서도 사양할 이유가 없는 일.
태현은 진지하게 대답했다.
“첩자가 있었지.”
“그럴 줄 알았어!”
“고메즈! 지금 그거 신경 쓸 때가 아닌… 크악!”
태현은 그 짧은 사이에 다시 폭발 도약을 시전해 옆으로 갈아탔다.
오늘 김태현의 ‘탈것 올라타기’를 몇 번이고 당한 선수들은 지긋지긋해 죽을 지경이었다.
“조심하라고 했잖아! 멍청한 놈아!”
“니가 직접 와서 피해봐!”
“김태현, 포기해라! 넌 못 도망가! 십분 동안 네가 움직인 거리를 봐라. 우리를 뚫고 갈 수 있을 거 같냐!”
선수 중 한 명이 태현에게 외쳤다.
확실히, 선수들이 몸으로 막고 스킬로 막은 바람에 아까부터 태현은 내달리기보다는 피하고 반격하는 데에 집중해야 했다.
“…어쩔 수 없군.”
“항복하는 거냐!?”
“같이 죽을 수밖에.”
태현은 비장한 표정으로 주먹을 들었다. 그 모습에 선수들은 경악했다.
“잠….”
“피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