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586화 (1,585/1,826)

§ 나는 될놈이다 1586화

“…….”

태현은 진심으로 당황했다.

‘길드 동맹이 망했다고?’

사실 길드 동맹이 망했다면, 그 이유 중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건 태현일 것이다.

그 정도로 태현은 길드 동맹을 치고 차고 괴롭히고 삥뜯고 불태우고 약탈하고 했었으니까.

하지만 정말로 길드 동맹이 망했다는 말을 들으니 믿기지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 규모는 망하기도 쉽지 않을 텐데.”

자신의 원수들을 줄 세우면 가장 앞에 길드 동맹이 서 있을 테니, 태현은 당연히 길드 동맹의 전력을 유심히 평가하고 있었다.

아예 첩자들도 여럿 들어가 있지 않았던가.

길드 동맹은 그냥 단순한 게임 길드라고 하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덩치가 컸다.

굳이 비교하자면 대형 게임단에 가까운 구조.

어마어마한 규모로 투자를 받고, 그만큼 판온 내에서 광고를 하고, 또 판온 밖에서는 방송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길드 동맹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규모가 규모인 만큼 좋아하는 사람들도 제법 됐다.

게다가 길드 동맹 같은 경우는 거대한 중국 시장에서 압도적인 인기를 자랑하는 길드.

중국 쪽 굵직한 거대 자본들이 투자하고 중국 시장에서 인기를 얻으니, 길드 동맹은 자금이 넘쳐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삽질을 하고 손해를 봐도 복구가 가능한 이유!

…그런데 망했다니.

“정확히, 아직 망한 건 아닌데요. 사실상 망했다고 봐야 할 것 같아요.”

이다비는 영상을 켰다.

거대한 평원에서 양쪽 세력이 격돌하는 영상이었다.

* * *

‘장난 아니군.’

태현은 영상 시작부터 감탄했다.

오스턴 왕국의 평원에서 늘어선 양쪽 세력들.

하도 숫자가 많아서 하나하나 다 주목해 주지는 못해도, 스쳐 지나가면서 어떤 놈들이 모여 있는지는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오스턴 왕국에서 활동하는 거대 용병단 단장 NPC들부터 시작해서, 교단 고위 NPC들, 귀족 기사단장 NPC 등등.

길드 동맹이 진짜 제대로 열이 받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모아 놓은 골드와 공적치 포인트를 싸그리 투자해서 동원 가능한 전력들을 집합시킨 것이다.

거기에 평소에는 ‘제가 배가 아파서’ ‘제가 허리가 안 좋아서’ ‘제가 사실 김태현과 사촌이라서 김태현을 만나서 싸우기가 좀… 제 성씨 보십쇼 김씨잖습니까’ 하며 핑계를 대던 길드 동맹 랭커들도 총집합해 있었다.

이번 전투에 정말 사활을 걸었다!

그에 맞서는 상대는 스미스가 이끄는 <화이트 나이트> 길드.

그뿐만이 아니었다. <뉴욕 라이온즈>를 포함한 미국 쪽 게임단 선수들 몇몇이 스미스 쪽에 서 있었다.

이번 굶주린 혼돈 퀘스트에서 스미스가 만만찮게 욕을 먹고 있다는 걸 생각해 보면 실로 과감한 선택이었다.

-욕은 순간이고 조회수는 영원하다. 잊혀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굶주린 혼돈 쪽으로 참가해서 퀘스트를 진행하겠다!

-어차피 굶주린 혼돈이 승리하면 유리한 건 굶주린 혼돈 쪽으로 참가했던 랭커들이다!

게임단의 허락 없이 독단적으로 진행했을 리 없을 테니, 아마 이야기가 다 끝났으리라.

‘…아니 잠깐. 생각하니까 빡치네.’

태현은 분노했다.

이 새끼들은 내가 지금 가능한 전력 모아서 굶주린 혼돈 토벌하고 있는데 지들은 내전 벌이고 있어?

어쩐지 오스턴 왕국 남부에서 도와주러 오는 놈들이 없더라!

“스미스 저놈, 아주 쑤닝 같은 놈이군.”

“??”

옆에서 듣고 있던 이다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갑자기 그런 심한 욕을?

-영광스러운 길드 동맹의 동지들이여! 저 앞에 모여 있는 비겁한 놈들을 봐라! 지금 대륙의 선량한 플레이어들이 고통 받고 있는데, 이기적으로 자기 혼자 살겠다고 굶주린 혼돈으로 갈아탄 배신자 놈들이다!

쑤닝도 전술 스킬과 화술 스킬이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보통 대형 길드 길마들은 필연적으로 어느 정도는 올려놓는 것이다.

…그렇다고 최고급까지 찍는 이상한 사람은 없긴 했지만!

-저놈들이 우리를 욕했던 걸 기억하나? 우리보고 판온의 선량한 플레이어들을 괴롭히는 길드라고 비난한 놈들이다! 그런데 지금 봐라! 누가 사악한지! 저놈들은 양심이 없는 놈들이다!

‘오….’

태현은 감탄했다.

살면서 이런 일을 몇 번이나 볼 수 있겠는가.

정말 별일이긴 했다.

길드 동맹이 상대를 명분으로 몰아붙이는 모습을 보다니!

‘너무 맞는 말이라 스미스가 어떻게 반박할지 궁금하군.’

태현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스미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시끄럽다!

-…….

쑤닝은 너무나도 황당한 상대의 대답에 할 말을 잃은 것처럼 얼굴이 굳어버렸다.

-재잘재잘! 약한 놈들이 언제나 말이 많지! 으 하 하 하!

“…….”

“…….”

태현과 이다비는 황당하다는 듯이 서로 쳐다보았다.

스미스 저런 말투 어디서 배워 온 거야?

-안 그러냐 애들아?

-맞는 말씀입니다!

-크 핫… 콜록. 콜록. 핫 핫!

미국 선수들도 어색한 표정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보아하니 아예 작정을 한 게 분명했다.

어차피 말로 따지기 시작하면 불리하니 그냥 대놓고 악역으로 가겠다!

-억울하면 힘으로 싸워서 이겨라! 그게 너희들이 하던 소리 아니었나!

-저… 저런 뻔뻔한 놈들!

쑤닝은 분노했다.

솔직히 길드 동맹이 주로 쓰던 논리에 당하니 더 화가 나는 것도 있었다.

-전투 준비!

-전투 준비!!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팽팽하게 당겨진 긴장감이 거대한 평원 위를 가득 채웠다. 누구 한 명도 숨소리를 내지 못할 정도로 공기가 조여졌을 무렵, 누군가 외쳤다.

-공격 개시!!

-공격! 개시!!

그 외침과 함께 평원의 대격돌이 시작되었다.

‘강하다!’

보고 있던 태현은 놀랐다. 양쪽 모두 강했다. 덕분에 싸움의 수준이 생각보다 훨씬 높았다.

먼저 몰아붙이기 시작한 건 길드 동맹이었다. 숫자가 상대보다 훨씬 많은 만큼 초반 기세가 좋았다.

-린야오! 파티들을 이끌고 오른쪽을 뚫어라!

-수아나! 김태현척살ㄷ… 아니, 궁수단을 이끌고 후방으로 돌아서 힐러들을 저격해라!

-펭귄팬더! 정면으로 들어가서 힘싸움을 부탁한다!

길드 동맹의 랭커들은 그 숫자도 많을 뿐만 아니라 장비도 살벌했다.

보고 있던 태현도 ‘헉’ 하고 놀랄 정도로 비싼 장비들이 곳곳에서 튀어나왔다.

‘이 자식들 이걸 다 숨기고 있었나?’

게다가 스미스 쪽에 미국 선수들이 참가한 것처럼, 길드 동맹 쪽에서는 중국 선수들이 곳곳에서 튀어나왔다.

서로 리그 중지해서 할 일 없는 건 똑같았던 것이다.

스미스 쪽 세력이 양쪽 날개가 꺾이고 그대로 포위당하나 싶었을 때, 반전이 일어났다.

[굶주린 혼돈의 군단이 강림합니다!]

허공에서 그대로 차원의 문이 열리더니 쏟아져내리는 굶주린 혼돈의 군단.

살벌한 기운을 풍겨내며 우두머리의 목을 노리는 군단의 모습에, 쑤닝은 당황하지 않고 맞섰다.

[굶주린 혼돈의 군단이 강림합니다!]

“!??!”

태현은 경악했다.

아니 이런 미친 새끼들이!

‘굶주린 혼돈 좀 막아!!’

판온에서 손꼽히는 길마 놈하고 손꼽히는 랭커 놈이 서로 사이좋게 굶주린 혼돈 쪽으로 갈아타냐!?

뭐 이런 새끼들이 있어?

-스미스!! 이 자식. 네놈의 뼈를 부숴버리겠다!

쑤닝은 이를 갈며 지팡이를 휘둘렀다. 지팡이를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주변이 뒤집어지며 굶주린 혼돈의 힘이 작렬했다.

그러나 스미스는 당황하지 않고 방패로 맞섰다.

길드 동맹의 랭커 열한명이 스미스한테 달라 붙어서 폭딜을 넣고 있는데도 스미스는 꿈쩍하지 않았다.

오히려 역으로 밀어붙였다.

-이… 이 미친 자식!

-칼이 안 들어가!!

-무슨 스킬을 써도 다 튕겨냅니다!!

보고 있던 태현의 등골이 서늘해지는 광경이었다.

무슨 탱크가 장애물을 부수고 전진하는 모습 같다!

전투 후반.

중앙에서 벌어진 혈전이 이번 전투의 분수령이 됐다.

방패를 앞세우고 굶주린 혼돈의 힘을 뿜어내며 돌진하는 스미스.

그리고 거기에 맞서 스미스를 어떻게든 무너뜨리려는 길드 동맹의 랭커들.

온갖 스킬과 아이템이 튀어나왔지만 스미스는 전진했다.

그리고 쑤닝과 맞붙었다.

‘쑤닝이 너무 불리하다.’

쑤닝의 직업과 지팡이는 어울리지 않았다. 게다가 굶주린 혼돈의 힘은 스미스가 훨씬 더 먼저 계약한 상황.

스미스가 더 잘 부릴 수밖에 없었다.

쑤닝은 어떻게든 검과 지팡이를 휘두르며 공격했지만 스미스에게 금세 막히고 카운터를 먹었다.

-순수한 판온을 추악한 자본으로 더럽힌 쑤닝! 죽어라!

-야 이 새끼야! 너도 게임단 돈 받아가면서 게임하면서… 크악!

[총사령관이…]

[……]

[……]

태현은 길드 동맹의 허리가 ‘뚝’ 하고 부러지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로그아웃당한 건 쑤닝 한 명이었지만 그 결과는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각종 페널티와 함께 차례대로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후퇴해! 후퇴!!

-절대 후퇴시키지 마라! 포위해!

상황이 망했다는 걸 깨달은 길드 동맹 랭커들은 황급히 전력을 후퇴시키려고 했다.

이기기는 글렀고 최대한 전력을 아껴야 나중에 뭐라도 할 수 있었다.

그걸 아는 적 플레이어들은 들개처럼 달려들었다.

길드 동맹 쪽 랭커들은 악명 높은 경우가 많아서 죽일 경우 아이템도 많이 떨어진다!

* * *

“…….”

태현은 입맛을 쓰게 다시며 영상을 껐다.

이다비가 왜 길드 동맹이 망했다고 하는지 이해가 갔다.

쑤닝 로그아웃당하고, 길드 동맹 핵심 랭커들 포위당해서 로그아웃당하고….

‘피해 복구가 가능한가 지금?’

레벨 페널티는 물론이고 장비도 꽤 잃어버렸을 것이다. 쑤닝 혼자만 죽은 게 아니라 랭커들 여럿이 죽었으니 더더욱.

“지금 길드 동맹은 어떻게 움직이고 있어?”

“남은 랭커들은 길드원들 데리고 흩어졌나봐요. 남은 성에서 버티거나 은신할 것 같은데….”

“저 상황에서는 버티기도 힘들텐데.”

태현이라면 저 상황까지 가지도 않았겠지만, 저 상황에 갔으면 성이나 도시를 버렸을 것이다.

일단 무조건 숨어야 했다.

‘굶주린 혼돈 쪽 세력이니까 필드 돌아다니는 건 문제도 없을 거고, 성이나 도시부터 바로 공격하겠지.’

안 그래도 남은 사람 더 죽으면 피해가 기하급수로 늘었다.

막을 수 없을 때는 도망쳐라.

그게 기본이었다.

문제는 길드 동맹이 그걸 할 수 있는가?

“…아니 근데, 진짜 어떻게 굶주린 혼돈이랑 싸우는 놈이 안 보이냐??”

“…….”

이다비도 할 말이 없었는지 가만히 있었다.

확실히 좀 열이 받긴 했던 것이다.

하라는 퀘스트는 안 하고 진짜!

“김태현 선수?”

“?”

“어, 새 손님들이 찾아왔는데요.”

태현은 밖으로 나갔다.

꽤 많은 숫자의 플레이어들이 파티를 짜고 앞에 서 있었다.

-길드 동맹하고 미다스 쪽 길드원들 같은데요?

“김태현 선수! 함께하고 싶습니다.”

“뭘 함께하자고? 같이 굶주린 혼돈으로 갈아타자고?”

“아, 아니. 같이 싸우고 싶다고요.”

놀랍게도 여기 모인 길드원들은 길드를 나온 이들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진짜 굶주린 혼돈으로 갈아타는 건 좀 아닌 거 같아!’ 하고 모인 사람들!

그 모습에 다른 플레이어들은 감동했다.

‘역시 진심은 통하는구나.’

‘김태현 선수의 플레이에 감동을 받아서 이렇게 올 줄이야….’

태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이 자식들은 올 거면 빨리 오거나 아니면 길드 랭커들 설득해서 더 데리고 올 생각을 해야지 굶주린 혼돈으로 갈아타서 대전 벌인 다음에 지니까….’

태현은 속으로 투덜투덜투덜댔다.

물론 여기 길드원들 잘못은 아니긴 했지만, 지금 상황이 푸념이 안 나올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 도와준다니 고맙다.”

태현은 한숨을 참고 말했다.

그래도 왔으니까 환영은 해줘야지 안 그러면 다음에 올 사람도 안 오기 마련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길드원들이 이탈해서 오는 걸 보고 매우 감동 받은 표정이었지만, 태현은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물방울 모아서 언제 바다를 채우겠는가.

‘그래봤자 얼마나 모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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