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580화 (1,579/1,826)

§ 나는 될놈이다 1580화

‘이상한데?’

태현은 손에 들어온 아이템을 보고 의아해했다.

[<굶주린 혼돈의 날카로운 한손검>을 얻었습니다!]

이 주변에서 딱히 나올 만한 아이템이 아니었던 것이다.

[카르바노그가 눈 속 어딘가에 묻혀 있었던 거 아니냐고 말합니다.]

‘그럴 수 있긴 하지.’

확실히 이 주변은 넓고 눈과 얼음투성이인 만큼 뭐가 묻혀 있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게다가 굶주린 혼돈의 지역이기도 하니….

[카르바노그가 계속해 보자고 말합니다.]

‘그래. 그래야겠다.’

-아키서스의 오염된 토템!

[<아키서스의 오염된 토템>을 시전합니다!]

[토템이 당신의 기도에 반응해 아이템을 내려줄 것입니다.]

[<굶주린 혼돈이 하사한 사악한 투구>를 얻습니다.]

‘진짜 이상한 곳이군.’

태현은 아이템을 확인해 보았다.

굶주린 혼돈이 붙은 만큼 아이템의 성능은 제법 뛰어났다.

일반적으로 이런 걸 만들려면 각종 희귀 재료는 물론이고 대장장이의 뼈를 깎는 노력이 들어가야 했다.

[카르바노그가 사악한 기운이 느껴진다고 몸서리칩니다.]

‘그래. 착용했다가는 저주 걸리겠군.’

딱 봐도 매우 수상쩍다는 게 느껴졌다.

‘이건 나중에 모아서 갈아버린 다음에 굶주린 혼돈의 기운 추출하자.’

다른 사람들은 ‘굶주린 혼돈은 위험하니까 보이는 대로 치워버려야지!’라고 생각한다면, 태현은 ‘굶주린 혼돈은 위험하긴 한데 뭐 쓸 수 있으면 써도 되지’라고 생각했다.

독도 약으로 쓰면 약인 것!

[남의 기운을 적극적으로 훔쳐 쓰려는 하는 그 모습, 참으로 아키서스 같다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아키서스의 오염된 토템>!”

“<아키서스의 오염된 토템>!”

“<아키서스의 오염된….>”

“그만둬! 이 빌어먹을 놈!”

[<아키서스의 오염된 토템>을 시전합니다!]

[토템이 당신의 기도에 반응해 아이템을 내려줄 것입니다.]

[….]

[<굶주린 혼돈의 명령서>를 얻습니다!]

결국 견디다 못한 4인조들이 튀어나왔다.

그들의 목소리는 슬픔으로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뭐야?”

태현은 오랜만에 깜짝 놀라서 시선을 돌렸다.

상대의 은신 스킬이 아무리 높아도 태현은 그걸 카운터 치는 스킬들을 여럿 갖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제까지 태현을 노리는 여러 암살자들을 상대할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 그걸 완전히 뚫고 은신해 있던 놈들이 나타난 것이다.

‘방심했군.’

태현은 스스로 반성했다.

옛날이었다면 돌다리도 두들겨 본 다음 케인 같은 놈 한 명 앞장세워서 건너게 했을 텐데, 워낙 플레이어들도 많고 부하들도 많다 보니 안일해진 것이다.

생방송도 진행 중인 만큼 태현을 방해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상황인데!

‘게다가 굶주린 혼돈은 여러 특수 스킬을 갖고 있으니….’

권능 스킬들만 믿으면 안 됐다.

아무리 좋은 스킬들을 갖고 있어도 거기에 너무 의존하면 사람이 약해지는 법.

“제법이군. 여기 숨어 있었을 줄은 몰랐는데.”

태현은 검을 뽑고 상대의 견적을 냈다.

4명이긴 했지만 몇 명이 더 있고 무슨 스킬을 쓸지 알 수 없는 이상 경계하는 게 최선이었다.

“아이템 내놔, 이 자식아!”

“그, 그만둬.”

하쉬안의 절절한 외침에 김재식이 쪽팔린다는 듯이 말렸다.

아무리 그래도 자존심이 있지 찾아와서 아이템 돌려달라고 말하는 건 좀….

“지금 체면 따지게 됐냐?!”

“이 자식 너 혼자 아이템 덜 뺏겼다고….”

“말한다고 김태현이 내놓겠냐! 멍청한 새끼들아! 집중해!”

4인조의 대화에 태현은 상황 파악을 바로 할 수 있었다.

‘아. 저놈들 아이템이었구나.’

빙하 속에 묻혀 있던 아이템치고는 뭔가 너무 새것 같아서 의아하던 참이었다.

어쩐지…!

4인조 중 한 명인 윌슨이 입을 열었다.

“김태현. 타협하자. 아이템을 돌려주면 우리도 얌전히 돌아가겠다.”

“오….”

태현은 솔깃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 태도에 4인조는 살짝 희망을 가졌다.

모습만 보니 왠지 모르게 잘 풀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러나 그건 태현을 너무 얕잡아본 생각이었다.

“내가 왜?”

“….”

“….”

태현의 말에 4인조는 당황해했다.

“지금 레이드 앞두고 있을 텐데? 여기서 싸워서 너한테 좋을 게 있나?”

“오. 걱정해 줘서 고맙다. 근데 그건 내가 알아서 잘할 테니까 너희들은 너희들 목숨부터 걱정해.”

태현은 앞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평범하게 걸어가고 있는데도 그 모습에서는 왠지 압박감이 느껴졌다.

꿀꺽-

누군지 모르겠지만 침을 삼키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그제야 4인조들은 태현을 상대했던 플레이어들이 왜 그렇게 질색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레벨이나 직업을 떠나서 태현은 압박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냥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상대를 무섭게 만드는 플레이어!

윌슨은 발악하듯이 외쳤다.

“김태현!! 잘 생각해 봐라! 지금 레이드 하러 모인 사람들이 몇 명이나 있는데! 이 사람들의 입장도 생각해 줘야 하지 않나! 우리는 진짜 아이템만 돌려주면 돌아간다! 우리도 신의를 지키는 사람이다!”

“그래?”

태현은 멈칫했다. 그 말에 4인조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저 뒤의 놈은 누구냐?”

태현은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4인조는 무심코 뒤를 돌아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도 없….”

-아키서스의 돌격!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컥!”

4인조가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는, 이미 태현이 각종 스킬을 켜고 달려들고 있었다.

* * *

“위에서 싸움 났다!”

“대기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도와주러 가야 해요!”

아래에서 대기하고 있던 플레이어들은 위에서 일어난 소란에 깜짝 놀라 절벽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배장욱은 그 모습에 흐뭇해했다.

이게 파티원들의 끈끈한 우정!

[미끄러져서 추락합니다!]

[….]

[….]

쿠당탕콰당!

“….”

배장욱과 스태프들은 황당하다는 듯이 랭커들을 쳐다보았다.

랭커들도 민망하긴 했는지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했다.

“으흠.”

“이건 그… 편집 좀 해주시죠.”

“아니, 이거 생방송인데….”

아까 김태현이 씩씩하게 잘 올라가길래 무심코 덤벼들었다가 호되게 당한 것이다.

‘난이도가 보통이 아니다!’

‘스킬이 잘 안 먹히는데?’

순전히 피지컬로만 뚫고 올라가야 하는 절벽.

물론 보고 있던 사람들 입장에서는 개수작으로 보였다.

-왜 안 올라가는 건데?!

-미친 거 아니냐? 저런 검은 머리 짐승들!

-저기 머리칼 안 검은 사람들이 더 많지 않나요?

-조용히 해 외국 놈아! 여기 한국 방송이거든?

-절벽이 미끄러운 거 아닌가?

-절벽이 미끄러워서 못 올라간다는 게 랭커가 할 소리냐?

그러는 사이 절벽 위에서의 싸움은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갑옷의 내구도가 크게 내려갑니다!]

철컥, 쾅!

[<아키서스의 행운 파편 폭탄>이 폭발합니다!]

[파편이 비산합니다!]

[치명타가 터집니다!]

“진짜 한국 정부는 법적으로 저 새끼 계정을 금지해야 해!”

윌슨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나름 굶주린 혼돈의 세력으로 갈아타고서 어지간한 랭커들은 이길 수 있을 정도로 강해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김태현은 지독할 정도로 막강했다.

‘아니, 그 정도로 강하면 좀 정정당당하게 싸워도 되지 않나?’

그런 놈이 싸움은 또 치사하게 하니까 더 짜증이 났다.

같잖은 속임수로 시선을 돌린 태현은 바로 파고들어서 약한 놈부터 조지기 시작했다.

투기장에서 많이 봤던 바로 그 그림!

태현은 마법사인 하쉬안부터 달려들어서 아주 집중적으로 조졌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치명타 폭발을 시전합니다! 치명타 스택이 전부 소모됩니다!]

[아키서스의 첫 번째 공격!]

[제국섬광검을 사용합니다!]

[아키서스의 신성 영역으로 인해….]

[….]

숨도 쉬지 않고 퍼붓는 미친 듯한 무호흡 폭딜.

하쉬안이 갖고 있던 방어 스킬들은 순식간에 바닥이 났다.

[굶주린 혼돈의 가호가 사라집니다!]

[장비가 파괴됩….]

[HP가 0이 되어….]

“떨어져!!”

“죽여버려!”

남은 셋이 정신을 차리고 태현에게 덤벼들었지만 태현은 잽싸게 다시 거리를 벌렸다.

“둘러싸서 포위… 큭!”

셋이 거리를 벌려서 태현을 포위하려고 하자 태현은 또 달려들어서 딜을 넣었다.

다시 뭉치려고 하자 태현은 폭탄을 집어 던지고 거리를 벌렸다.

다가가려고 하면 거리 벌리고, 포위하려고 하면 와서 때리고, 다시 잡으려고 하면 폭탄 던져서 방해한 다음 거리 벌리고….

진짜 이가 갈릴 정도로 빈틈이 없었다.

하쉬안이 살아 있었다면 각종 마법으로 변수를 만들어봤을 텐데 태현은 운도 좋게 바로 하쉬안부터 날려버렸다.

‘젠장. 그냥 숨어 있었어야 했어. 김태현 놈하고 엮이는 게 아니었는데….’

‘김태현 놈의 저주가 괜히 있는 게 아니라니까.’

남은 셋은 후회막심한 표정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태현도 그렇게 여유 넘치는 상황은 아니었다.

‘스킬들이 다 제법이다.’

[굶주린 혼돈의 기운이 파고듭니다!]

[저항에 성공합니다!]

[굶주린 혼돈의 기운이 파고듭니다!]

[저항에 실패합니다.]

[이동 속도가….]

상대가 쓰는 스킬들이 다 태현에게 대미지를 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중 몇 개는 꽤 위협적이었다.

직격은 피한다 하더라도 광역기 같은 경우는 디버프가 쌓일 수밖에 없는 것!

물론 싸우는 와중에 티를 낼 수는 없었기에 여유 넘치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앞으로도 싸워야 할 적이 많은 입장에서 이건 좀 곤란했다.

‘굶주린 혼돈으로 갈아타면 이렇게 빨리 강해지나?’

태현은 목 뒤가 서늘해졌다.

안 그래도 지금 태현한테 원한 가졌다가 밟힌 놈들, 줄 세우면 골짜기에서 에랑스 왕국 수도까지 채울 수 있을 텐데….

“김태현. 우리도 자존심이 있다.”

윌슨은 노려보며 말했다.

원래는 레이드를 방해하기 시작할 때, 결정적인 순간에 방송을 켜려고 했었다.

그러나 아까부터 신나게 두들겨 맞는 바람에 방송은커녕 목숨을 걱정하고 있는 상황.

태현은 방송을 하고 있을 테니 지금 그들이 보이고 있는 추태는 아주 제대로 남을 게 분명했다.

“이렇게 된 이상 반드시 네놈한테 한 방 먹여주마.”

“꼭… 꼭 그래야 하나?”

“그냥 도망치는 것도….”

“….”

동료들의 말에 윌슨은 분노했다.

이 도움 안 되고 자존심 없는 새끼들 같으니…!

태현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뒤를 가리켰다.

“그런데 뒤는 괜찮냐?”

“…이 자식이 진짜 사람을 뭘로 보고!!”

윌슨은 분노의 함성을 터뜨리며 달려 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뒤를 돌아본 김재식은 비명을 질렀다.

“야!”

“?”

콰콰쾅!

[<아키서스의 행운 파편 폭탄>이 폭발합니다!]

[파편이 비산합니다!]

[치명타가 터집니다!]

[절벽이 무너집니다!]

그들이 서 있던 얼음 절벽 밑에서 폭발이 일어나더니 그대로 그들을 날려버렸다.

“…!!”

날아가면서도 윌슨은 경악했다.

이걸 언제?

‘싸우면서 이걸 설치했다고!?’

아까 싸우면서 잠깐 남는 틈에 눈 속에 폭탄을 설치하고, 그리고 또 이쪽으로 유도를 했다고??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미친놈…!’

[추락합니다!]

쾅!

3명은 데굴데굴 굴렀다. 그래도 레벨이 있어서 죽지는 않았다.

“으어어억….”

“김태현 이 자식이 진짜….”

일어선 셋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밑에서 대기하고 있던 원정대 파티들이 그들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혹시 지금이라도 굶주린 혼돈을 탈퇴하고 정의의 편이 되겠다고 하면 용서해 주실 수 있으신….”

“죽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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